석전박한영스님의탄생150주년
임혜봉스님이석전박한영스님의
삶과생애,학문,수행을담담히그린평전!
“스님은일제강점기조선제일의불학강사(佛學講師)였을뿐만아니라선(禪)에도조예가깊었고당대의뛰어난시인·서화가·묵객들과시회(詩會)에서시를지으신시인이었다.사람마다삶이힘들고어렵기마련이다.힘겹게인생을사는불자와젊은이들이그어둡고혼란했던한말과일제강점기에도꿋꿋하게학문과수행에정진했던석전큰스님의전기를읽고삶의어떤긍정적인실마리와좋은계기가되기를기대한다.”
-머리말중에서
올해는석전박한영스님(1870∼1948)의탄생150주년이되는해이다.석전박한영스님은구한말출가와재가를막론하고가장뛰어난석학중의한분으로손꼽히는분이다.일본에항거한독립운동가,근대불교교육의선각자,조선불교의제일인자,한국학의태두(泰斗),문사철의석학,근대지성의멘토등그어떤말로도스님을제대로표현할수없을정도다.
일제강점기그어둡고힘든시절을밝게비추어준큰스승,석전박한영스님은한국불교근대화의문을열었고,해방후초대종정으로한국불교가가야할길을제시하였다.수행력깊은박람강기의석학으로당대지성인들을이끌어문화계전반에지대한영향을주었다.
『석전박한영』,이책은『친일불교론』,『일제하불교계의항일운동』,『종정열전』1·2,『망국대신송병준평전』,민족문제연구소에서간행한『친일인명사전』의친일불교인사를집필한것으로유명한임혜봉스님이철저한고증과수많은자료를바탕으로서술한석전박한영스님의평전이다.
석전박한영스님의삶과생애와학문,수행을객관적으로그려놓은가운데관련사진도곁들여생생한감동을더해준다.
‘문사철의석학,근대지성의멘토’『석전박한영』!
“대원강원에는학인스님들외에도석전스님의심후한학덕을존경하고따르는재가거사와준수한청년들이모여들었는데,운성의기억에남는이름으로는김형태·김동리·이봉구·신석정·서정주·이종익등이었다.그외에도여러사람이있었지만오래전일이라기억할수없다고하였다.”
-본문224쪽중에서
석전박한영스님은근대지성을대표하는고승이다.1895년순창구암사에서강의를시작한이래광성의숙,고등불교강숙,개운사불교전문강원등여러사찰에서강주로있으면서수많은학인들을지도하였다.그뿐아니라중앙학림의학장,동국대전신인중앙불교전문학교의교장으로재직하면서역시많은후학들에게가르침을베풀었다.
석전박한영스님은불교계뿐만아니라,육당최남선(崔南善,1890~1957)과위당(爲堂)정인보(鄭寅普,1893~1950),미당서정주(徐廷柱,1915~2000)등학계와문학계에도수많은제자들을남겼다.육당과위당은당대의5대천재로손꼽히는석학이었는데,이들은석전박한영스님과30여년동안지속적인교류를통해스님의가르침을받아왔다.
당대조선최고의지식인이라고자타가공인했던육당최남선은석전스님의한시(漢詩)를모은〈석전시초石顚詩抄〉발문에서,“석전사(師)를만나매,내전(內典)이고외전(外典)이고도대체모르는것이없을만큼박식했다.나는누구에게도물어볼것이없는데,석전선생에게는물어볼것이있다”고고백했다.
위당정인보는〈석전산인소전(石顚山人小傳)〉에서,“한영과함께길을갈라치면한국땅어디를가나그는모르는것이없다.산에가면산이야기,물에가면물이야기……,이른바사농공상(士農工商)무엇에관한문제를꺼내든지화제는고갈될줄몰랐다.”고술회했다.
석전박한영스님은당대저명한시인묵객들과교류하면서산벽시사(珊碧詩社)의동인으로서활발하게시회(詩會)활동을하기도했다.만해한용운을비롯해이능화,만암,청담,운허,운성,운기,남곡,경봉스님등출가자들과정인보,오세창,이동영,이광수,서정주,신석정,조지훈,모윤숙,김동리,조종현,김영수등내로라하는문인들도모두석전스님의제자이거나혹은깊은학문적·인격적인영향을받았다.박람강기의석학인데다친일행적이전무(全無)한항일의곧은지조와인격을갖추었기에석전박한영스님에게수많은당대지성들이감화되었던것이다.
석전박한영스님의항일행적과중생사랑
“석전박한영스님은불교계개혁과유신운동의선봉에서있었다.그런데그는1919년3.1운동당시민족대표33인의대열에합류하지못하였다.만해한용운이훗날시간적으로촉박하여석전을민족대표로내세우지못했다고해명했지만(중략)석전의제자인중앙학림학생들이대거3.1운동의전위대로활동하였다.”
-본문118쪽
김법린,김상헌,백성욱,정병헌,오택언,신상완,김대용,박학규,김규헌,김봉신등석전박한영스님에게지도받은중앙학림의학생스님들이서울시내일원과전국각지방의사찰을중심으로독립선언서를배포하고독립만세운동을분담하여추진하였다.이렇듯중앙학림의학생스님들이3.1운동에적극참여하는가운데석전박한영스님은중앙학림의전임학장으로선출되었고,곧이어결성된한성임시정부와대동단에참여해항일운동대열에적극참여하였다.한성임시정부에서배포한국민대회취지서의말미에첨부된명단에석전박한영스님이기록되어있다.또한한국이일본으로부터독립되어야한다는1921년워싱턴에서개최된태평양회의에제출한‘한국인민치태평양회의서’에불교계대표로서명날인함으로써항일의지를만천하에천명하였다.석전박한영스님이조선불교의일본임제종과의합병을적극반대한것역시항일운동의일환이라고할수있다.
“일제가강압적으로식민통치하던때임에도불구하고석전은과감하게임진왜란을들먹이고일본인들이애써기피하는‘이충무공·왜군·강강술래’라는금기어를사용하였다.석전은「명량(鳴梁)」이라는시에서도임진왜란때의일본군을‘비휴(??)’라는사나운동물에비유하기도하였다.석전의시「명량」과기행문「영주기행」에나오는‘명량해전’에관한대목을보면그가비록‘방외(方外:세속의테밖)’의사람이었지만투철한역사의식과강한민족적주체성을지니고있었음을알수있다.”
-본문166쪽~167쪽
이책은1부석전의출가와구도,2부불교유신과항일운동,3부기행시대,4부종정(교정)시대,5부만년의물외도인등총5부로나뉘어편집되어있는데,3부에는춘원·가람과금강산여행,제주도기행,육당과풍악기행,눈내리는겨울,남쪽지방기행,심춘순례,묘향산과경주여행,백두산등반등최남선,이병기,정인보등과함께한라에서백두까지기행한내용이담겨있다.
우리나라의명승지를두루여행하면서가는곳마다술술써내려간석전의기행시를음미하는것도이책의색다른묘미다.석전의한시에는위의내용처럼투철한역사의식과강한민족적주체성이담겨있어읽는이로하여금항일의식을북돋워주고있다.
인재양성과종단발전에힘쓴근대불교의선각자
구한말에서일제강점기의어렵고힘든시절에살았던석전박한영스님은시대의험난함에도불구하고치열한구도열정으로일생을시종하였다.스님은조선불교선교양종의교정(1929)이자개운사조실이었으며대원암강원의강주였던시절에도강원의학인들과똑같이일찍일어나매일새벽좌선을하고학인들에게강의를한후20리길을걸어중앙불교전문학교에출근하여교장인데도직접『선문염송』과유식학등을학생들에게가르쳤다.
교육을통한인재양성뿐만아니라석전박한영스님은수많은저서를집필하여불교학의발전과불교유신에큰기여를한근대불교의선각자다.스님은강원과불교전문학교의교재로편찬한책이여러권이며,인명학과유식론을비롯하여『계학약전』·『대승백법』·『팔식규구』·『정선치문집설』·『선문염송및설화』등불교학의이론서도다수출간하였다.
또한『석전시초(石顚詩抄)』(동명사,1940)에석전박한영스님의한시598편이수록되어있다.(다른사람의시6편을합하면총604편).이시집은육당최남선이석전스님의고희를기념해만들어드린책으로육당은이시집의원판을멀리상해까지가서제작했다고한다.한시뿐만아니라여러사찰의상량문·중건비문·사리탑명·승려들의영찬(影贊)과행략(行略:짧은전기)들을무려64편이나지었고,석림수필또한21편을썼다.[스님의산문은『석천문초』(법보원,1962)에수록되어있다.]한편난해하기로유명한최치원의『사산비명(四山碑銘)』을연구하여『정주사산비명(精註四山碑銘)』(1931)을완성해출간하기도하였다.
교계의여러잡지와신문에끊임없이시와산문을써서게재하였고,『해동불보』라는불교잡지의편집·발행인으로매월많은글을써서발표한것은오로지독자들을깨우치기위한중생사랑의발로였다.
당대의최고지성들이놀라움을금치못할만큼박학다식하고,단한번도불의에타협하지않고시종일관일제에항거했던석전박한영스님,이책은저자가머리말에서밝혔듯이시대를살아가는이들에게‘어떻게살아가야할것인가?’,삶의의미와바른삶의이정표를제시해주고있다.
◆석전박한영스님약력◆
박한영스님은1870년8월완주군초포면에서태어났다.불명(佛名)은정호(鼎鎬),호는석전(石顚),한영(漢永)은그의자(字)이다.일찍부친을여의고농사를지으며살았고17세때부터마을서당에서훈장을지냈다.19세에위봉사금산스님을찾아가머리를깎고출가하였다.이때정호(鼎鎬)라는법명을받고3년동안위봉사에서정진하였다.
21세때장성백양사운문암에서김환응(幻應)스님으로부터4교(四敎)를배웠다.23세때는순천선암사로가서경전에밝은김경운(擎雲)스님에게대교를배웠고,우리나라불교의주맥인선학과화엄을통달하고내외군서를섭렵한설유(雪乳)스님의법을이었다.이로써설파(雪坡1707∼1791)이후조선불교교학(敎學)의커다란산맥을잇게되었다.
석전박한영스님은만해(卍海)·금파(琴巴)스님등과불교개혁에나섰고만해·성월(惺月)·진응(震應)·금봉(錦峯)스님과친일불교에맞서조선불교정체성을수호하기위해임제종(臨濟宗)운동을전개했다.또한고등불교강숙숙사(1914),중앙학림강사와교장(1915~1922),중앙불전교장(1930~1938)으로후학을양성하고조선불교교정(敎正)을지냈다.
석전은1946년까지동국대학교의전신인중앙불교전문학교교장과조선불교교정을맡아보며불교계의발전에진력했다.8·15해방후에는조선불교중앙총무원회의제1대교정으로선출되었다.불교계의화엄종주로불렸던석전은개운사에서내려와정읍내장사에서만년을보내다1948년세수79세로입적했다.
**자세한내용은책뒤의연보(464쪽)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