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따마 붓다의 정관명상 (현상과 생각 저 너머를 보는 길)

고따마 붓다의 정관명상 (현상과 생각 저 너머를 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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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명상의 뿌리는 깨달음의 종교인 불교, 불교의 창시자인 고따마 붓다의 명상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광사 혜담 스님이 아함경과 니까야 등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을 토대로 50년 수행 체험과 깊은 사유를 통해 붓다가 최초로 발견한 명상의 본래 모습, 사마타(定)와 위빠사나(觀)의 세계를 밝혀 놓은 책 〈고따마 붓다의 정관명상(定觀冥想)〉, 이 책에서 고따마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명상법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풀어 주고 있다.
저자

혜담

혜담 스님
부산 금정산 범어사에서 광덕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 승가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일본 불교대학 대학원 석사과정을 수료하였다. 칠불선원, 해인사 선원 등에서 참선 수행, 해군 군종법사 대위 전역하였다.
불광사 불광법회 지도법사ㆍ조계종 총무원 홍보실장ㆍ소청심사위원ㆍ호법부장ㆍ재심호계위원을 역임하였으며, 불교신문 논설위원ㆍ경향신문 정동칼럼 필진으로 깨달음의 글로써 대중과 소통하기도 했다.

*저서 및 역서로 『대품반야경(상ㆍ하)』, 『불교 상식 백과(공저)』, 『반야불교신행론』, 『新 반야심경 강의』, 『한강의 물을 한입에 다 마셔라』, 『방거사 어록 강설』, 『행복을 창조하는 기도』, 『그대의 마음을 가져오라』, 『진리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목차

서문 저 너머를 본다는 말 4

불교사상과 명상
불교사상에는 없었던 명상이라는 말 16
불교적 명상과 행복 18
고따마 붓다의 수습명상 24
「성읍경」의 수습명상(修習冥想) 24 | 「도시경」의 수습명상 27
초기불교의 경전인 『아함경』과 『니까야』 30

고따마 붓다의 지관수행止觀修行
『수행본기경』 「출가품」의 지관법문(止觀法門) 34
고따마 붓다의 어린 시절의 명상 체험 38
지관겸수명상의 의미 42

고따마 붓다의 정관명상定觀冥想
왜 정관명상인가 46
정관[지관·정혜]명상의 순서 48
관조명상[觀照冥想, 위빠사나]의 방법 52
입정명상[入定冥想, 사마타]의 의미 66
입정명상의 방법 70

관조명상에 의한 깨달음
「도시경」에서의 깨달음 76
「도시경」과 「초전법륜경」 82
「도시경」에서의 깨달음의 의미 89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 96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 103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 106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의 성스러운 진리 109
바른 견해 110 | 바른 사유 114 | 바른 말 116 | 바른 행위 118
바른 생계 119 | 바른 정진 120 | 바른 마음챙김 124 | 바른 삼매 131

상의성相依性·緣起의 세계
연기법과 반야바라밀 138
연기법을 깨달아 고따마 붓다가 되다 142
연기란 무엇인가 145
연기의 어의(語義) 해석 세 가지 147
12지연기(十二支緣起) 151
늙음·죽음[老死] 155 | 태어남[生] 157 | 존재[有] 162 | 취착[取] 166
갈애[愛] 173 | 느낌[受] 175 | 감각접촉[觸] 176 | 여섯 감각장소[六入] 178
정신·물질[名色] 180 | 알음알이[識] 182 | 의도적 행위[行] 183 | 무명(無明) 184
유전문(流轉門)과 환멸문(還滅門) 187

현상 저 너머의 세계
통찰의 지혜 192
현상 저 너머를 보라 197
연기와 공(空) 204
「반야경」과 신비주의 204 | 공이란 무엇인가 206 | 연기와 공의 상관관계 210
중도(中道) 215
『초전법륜경』의 중도 215 | 「깟짜나곳따경」의 중도 218
「반야경」의 중도 222 | 팔정도와 중도 225

현상 저 너머, 그리고 중도中道
삼라만상이 반야바라밀의 현현이다 234
절대 독존성 238
중도의 영원성 240
맑고 밝은 본성 243
원만 구족성 246
동일자성(同一者性) 250

출판사 서평

붓다가 최초로 발견한 명상의 본래 모습
사마타(定)와 위빠사나(觀)의 세계!

스트레스에 짓눌린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명상에 대한 모든 것이 담긴 책!

요즘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형국이다. 고통 속에서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루어진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면 불행 중 다행이라 하겠다. 코로나 19는 가볍게 넘어갈 수도 있으나 전염력이 높고, 기저질환자나 노약자는 치명적일 수도 있어서 더 두렵게 느껴지는 것 같다.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실질적인 예방법이라고들 하는데, 어떻게 하면 면역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인가? 미국 모 대학에서 발표한 명상이 면역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명상과 면역력의 상관관계는 자명하다. 스트레스가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명상은 스트레스를 완화시켜 면역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로 인해 짓눌린 현대인들이 명상을 통해 마음의 안정뿐만 아니라 육체 건강에도 큰 도움을 주고, 치유 효과가 매우 크다는 것은 보편적 상식이 되었다. 온갖 종류의 명상센터는 물론이고 다양한 명상앱이 계발되어 디지털 명상까지 활성화될 정도로 명상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명상의 뿌리는 깨달음의 종교인 불교, 불교의 창시자인 고따마 붓다의 명상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광사 혜담 스님이 아함경과 니까야 등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을 토대로 50년 수행 체험과 깊은 사유를 통해 붓다가 최초로 발견한 명상의 본래 모습, 사마타(定)와 위빠사나(觀)의 세계를 밝혀 놓은 책 『고따마 붓다의 정관명상(定觀冥想)』, 이 책에서 고따마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명상법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풀어 주고 있다.

삶의 근본적 변화 위해 노력하는 것이 수행이자 명상!
누구나 명상으로 행복한 삶 살 수 있도록 안내하는 처방전!

“그대가 저 너머로 가려면 스스로 사물에 갖다 붙이는 한계를 자꾸자꾸 넘어가야만 합니다. 이것은 당신 존재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합니다. 불교에서는 이렇게 우리 존재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서 노력하는 삶을 수행이라고 부릅니다. 때문에 수행은 출가 수행자의 독점물이 아닙니다. 요즈음 수행이라는 이름 아래 명상의 붐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납이 보기에 작금의 명상이 ‘명상은 수행이다’라는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머리말 중에서

이 책의 저자 혜담 스님은 일찍이 일본으로 유학하여 오래도록 ‘공사상(空思想)’, ‘반야사상’을 연구해 왔다. 귀국 후에는 수십 년 동안 선수행을 하면서 도심포교 도량으로 유명한 불광사에서 대중들에게 법을 설하고 지도해 왔다. 스님은 요즘 명상이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있다는 생각, 한마디로 본말이 전도되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이 이 책을 저술하게 된 동기임을 밝히고 있다. 세속적인 욕망에 기인한 건강이나 성공 등이 아닌, 인간 존재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삶인 수행으로서의 명상, 고따마 붓다가 최초로 발견한, 깨달음을 얻은 수행법인 명상의 본래 모습을 찾아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처음 『아함경』과 『남전대장경』을 통하여 연구하던 중 다행히 『니까야』를 연구하고 한글로 번역한 각묵 스님과 전재성 박사 등 선학(先學)들 덕택에 그 동안 미진했던 부분을 메울 수 있었다.”는 혜담 스님은 우리 모두의 삶의 행복을 얻을 수 있는 처방전을 받아 나누어 주기 위해 고따마 붓다의 명상법에 대해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도 부처님처럼 명상을 통해 오욕락(五欲樂; 식욕, 수면욕, 성욕, 재물욕, 명예욕)을 제어한다면 욕망이 자타(自他)를 함께 이롭게 하는 기쁨과 보람으로 바뀌게 된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아아! 세간의 중생들은 극심한 괴로움을 받나니 곧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이며, 또한 가지가지 고뇌를 받으면서 그 가운데 전전하여 떠나지 못하는구나. 어찌하여 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지 않고, 어찌해서 괴로움을 싫어하고 고요한 지혜를 구하지 않으며, 어찌해서 나고 늙고 병들고 죽음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생각지 않는가.’(불본행집경)
- 본문 39쪽 중에서

혜담 스님은 고따마 붓다의 어린 시절의 명상 체험에 대해 주목했다. 위 경전 내용처럼 고따마 싯다르타는 중생들의 삶에 대하여 고뇌하면서 명상에 들었다. 선정을 닦는다는 생각조차 없었고, 단지 고통스러운 보통 사람들의 현실을 생각하며 골똘히 깊은 사유의 세계로 들어가다 보니 현상세계를 벗어난 고요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날 명상에서 얻은 신비한 체험은 뒷날 고행과 선정수행 때 짧은 시간 안에 두 번째 선정을 얻게 하는 디딤돌이 되었다고 한다.

“고따마 붓다는 어렸을 적에 경험한 첫 번째 명상을 상기하며 깨달음에 이르는 방법임을 확신한 것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명상까지 달성하고 거기에서 궁극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 노납의 생각입니다. (중략) 고따마의 어릴 적 이 체험을 구태여 이름을 붙인다면 ‘지관겸수명상(止觀兼修冥想)’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당하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으로서는 타고난 본성(本性) 즉 불성(佛性)을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훼손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사마타와 위빠사나의 수행을 함께 닦는 경지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40쪽 중에서

고따마 붓다는 첫 번째 명상 스승인 아라다 깔라마와 두 번째 명상 스승인 우드라까 라마뿌뜨라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스승들의 능력을 뛰어넘는 경지에 이르렀지만 선정과 고행으로는 해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혜담 스님은 고따마 붓다가 어릴 적의 명상 체험을 떠올림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역설한다.
고따마 붓다 이전에는 아무도 행하지 않았던 고따마 붓다의 수행법은 대승불교권에서는 지관겸수명상으로 불렸다. 지관은 어지럽고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멈추게 한다는 의미의 지[止, 사마타]와 자신의 본래 청정한 본성을 끊임없이 지켜본다는 의미의 관[觀, 위빠사나]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 보조국사 지눌이 주창한 정혜쌍수 역시 정(定)은 사마타의 다른 번역이고, 혜(慧)란 반야[般若, praj??] 즉 ‘최고의 지혜’ 혹은 ‘깨달음의 지혜’로 마음의 본래 성품을 본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정혜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본래 청정한 성품을 끊임없이 비추어 살펴보는[觀照]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고따마 붓다는 어떻게 깨달았을까? 혜담 스님은 “고따마 붓다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던 수행은 당시에는 없었던, 독자적인 방법을 계발하여 네 번째 선정을 증득한 것으로, 어릴 적 체험을 바탕으로 한 지관겸수명상이라 할 수 있다.”고 한다.

왜 고따마 붓다의 정관명상(定觀冥想)인가?

“첫째는 사마타를 남악혜사 선사나 천태지의 스님처럼 지(止)라고 번역했을 경우에는 대부분이 한글세대인 현대인이 이해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이고, 정(定)이라고 번역했을 경우는 선정(禪定)이라든가 입정(入定) 등으로 번역했을 때처럼 그 의미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중략) 관이라고 번역했을 때는 위빠사나의 본래 의미가 잘 살아날 뿐만 아니라, 쉽게 그 의미에 접근할 수가 있어서 수행을 용이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 본문 46쪽~47쪽 중에서

혜담 스님은 한글세대가 알아듣기 쉽고 위빠사나의 본래 의미인 ‘관찰’이나 ‘분석’의 뜻을 살리기 위해 지금까지 불교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해 왔던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번역한 ‘지관명상’이나 ‘정혜명상’이 아닌 ‘정관명상’이라고 명명했다고 한다.
“고따마의 어릴 적 체험인 ‘정관겸수명상’의 경우에 있어서 정(定; 사마타)과 관(觀; 위빠사나)은 서로가 동시적으로 밑받침이 되는, 상호(相互) 간에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혜담 스님은 정명상(定冥想)을 의지하여 관명상(觀冥想)에 도달하고, 정명상을 통해서 얻어진 선정[三昧]을 바탕으로 관명상에 의한 지혜가 발현된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한편 인간이 필연적으로 가지고 있는 번뇌와 망상, 근심 걱정 등 온갖 번민을 없애고 편안하고 활기찬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정관명상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인지가 발달할수록 고따마 붓다의 명상법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정(定)이라는 약으로 생사의 병을 치료하고, 관(觀)이라는 약으로 번뇌의 병을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다.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이 되다

“「도시경」에서의 관조명상의 방법은 이와 같이 해서 ‘태어남이 있기 때문에 늙음·죽음이 있음’을 알게 되었지만, 이러한 본격적인 불교적 명상수행을 계속하다 보면 번뇌와 망상으로 생멸을 거듭하며 요동치는 마음을 전환하여 반야의 지혜로써 본래 맑고 빛나는 본성(本性)인 불성(佛性)을 환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됩니다.”
-본문 65쪽 중에서

불교는 믿음의 종교가 아닌 수행 곧 명상의 종교라고 한다. 불교의 창시자인 고따마 붓다가 인간의 근본적인 고통인 생로병사에서 벗어나기 위해 출가했고, 명상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 완전한 열반의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고따마 붓다는 보리수 아래에서 연기(緣起)의 항목을 하나하나 관찰하고 깨달았다. 즉 위빠사나, 관조명상이야말로 모든 번뇌를 완전히 끊고 가장 완벽하고 원만한 깨달음을 증득하는 최고·최초의 수행방편으로서 고따마 붓다는 위빠사나를 통해서 비로소 붓다가 되신 것이다.
연기법을 깨달은 고따마 붓다는 “연기법은 내가 만든 것[所作]도 아니요, 또한 다른 깨달은 이[餘人]가 만든 것[所作]도 아니다. 그러므로 연기법은 저들[彼] 여래들[如來]이 세상에 출현하거나 세상에 출현하지 않거나 항상 법계(法界)에 존재한다[常住].”고 하면서 모든 이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열어 주었다. 누구든지 괴로움과 윤회의 원인을 바르게 관(觀)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대승불교의 정법론

“다른 종교에서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