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글오글 뭉클뭉클

오글오글 뭉클뭉클

$15.00
Description
현실, 이상, 꿈, 상상
우리는 이 네 가지를 머릿속에서 반죽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 펼쳐 본다.

우리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에 누군가에게
즐거움이고,
희망이고,
용기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 ‘편집인 말’


놀랍다, 시험공부에 시달릴 학생들이 예리한 감성으로 이런 작품들을 쓰다니!
소설은 인간의 본질을 탐색하는 작업이다. 사람들이 사는 시기마다 내부와 외부로부터 오는 두려움이 다르다. 두려움을 털어내려는 ‘알타미라의 동굴벽화’가 진화하여 숫자와 문자를 만들었듯 삶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얻은 기억이 이야기를 만든다. 그리하여 형상화된 서사가 오롯이 사람살이를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의 거울이다.
발표된 작품마다 감정의 온도와 세상을 살피는 각도가 다른 것은 당연할 터.
자기의 내면으로부터 타인을 끄집어내는 발상이 엿보인다. 나를 남처럼-타인을 나처럼, 바꾸어 만든 서사는 타인에 대한 공감으부터 시작된다. 인물 창조의 기술은, 폭 넓고 깊이 있는 독서와 부조리한 세상의 바다에 첨벙 빠져 헤엄쳐 나갈 때 획득된다.
그러므로 소설의 그릇에 담길 음식의 조리는, 기술자의 숙련도에 따라 달라질 것.
몇 편은, 주제의 방향성을 잃지 않고 소재를 잘 녹여 결말로 이끌어가는 힘이 보인다. 거칠고 다소 생소함에도 나는, 이들의 미래를 열어두고 싶다. 진일보할 가능성이 뚜렷하기에!

- 최성배(한국소설가협회 이사)
저자

작은소설가들

저자:작은소설가들
우송고문예창작반학생들.

목차

임나연
하루8
레몬나무 26
세상의모든사랑은아름답다38

김진현
비정59

박주원
다시시작하는마음115

김제헌
사랑에도교과서가있다면130

해서
여름날우리(1부)183

채석강아지씨
맑음의바다205

우서윤
물망초225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겨울이되었다.
그리고하루는감기에걸려버렸다.
올해첫눈이내리는날이마침어제였다.하루가눈을반짝거리며마당을계속쳐다보길래,결국이기지못하고밖을나갔다.따뜻한패딩에털모자,털목도리,털장갑을끼우고따뜻한장화까지신겼는데,그방어를뚫고지독한감기에걸렸다.
영원은헐레벌떡움직이며어린이약을사오고죽도사왔다.끙끙앓으며누워있는하루를일으켜죽을먹이고약을먹였더니,그모습을구경하던하루가그렇게말했다.
“나귀찮으면혼자냅둬도돼.그래도이젠조금괜찮아진것같아.”
영원은기가차서답도안하고같이침대에올라가하루를껴안았다.하루는뜨거운숨을쌕쌕거리면서도영원을밀어내지않았다.어느새잠든하루를토닥이며영원은다시한번전주인에대한앙심을불태웠다.
‘이런착한애를혼자놔두다니.지옥에나떨어져라,망할놈.’
-----임나연소설‘하루’,21쪽중에서

끓어오르는감정을겨우추스르느라,목소리가많이떨리는것을나도느꼈다.이감정을막아야하는데,그럴자신이없다고생각이드는이유가뭘까.몰아쳐오는감정을막을수없다.막아야한다는생각을해본적이없기에,막아줄댐이나,제방은없다.단,내의지로지어두면어느정도시간은벌어둘수있다.그러길바랄뿐이다.
“이제와서묻는건좀갑작스럽긴한데,나어떻게생각해?”
억지로막아두고있던감정을뒤흔드는말.당신의갑작스러운질문에내가흔들렸다.그래도다행인건갑작스러운걸아는지,머리를긁적이듯무안하면서도,궁금한표정을짓고있는당신의모습에나는,순수한궁금증이올라와나에게물은당신의말에,도저히거짓을더할수없었다.그렇게순수한말투로무안하다는듯이바라보는사람앞에서거짓을고할정도로,그러고도버텨낼정도로강한사람이아닌나니까.지금도그대에게그대의뒷모습을바라보던그미소가미처지어지지않는다.진심을전할때마저,나는뒷모습을바라보는게익숙하니까.
-----김진현소설‘비정’,108쪽중에서

“소년이여,그언덕에간다면…무얼하고싶지?”
소년은대답하지않았다.대신작은돌멩이를하나들어달빛속에비춰보았다.
“그냥,그아이가왜우는지알고싶어요.”
그대답에이야기꾼은천천히숨을내쉬었다.
“좋네.그렇다면내가자네와함께가주겠네.”
소년이놀란눈으로그를바라봤다.
“정말요?아저씨도그언덕을알아요?”
“나도예전에그언덕을본적이있네.다만,나는그곳에서돌아온사람이지.”
소년의눈동자가흔들렸다.
“그럼…거기엔뭐가있었어요?”
-----박주원소설‘다시시작하는마음’,119쪽중에서

“그만울어,바보야.”
유나의목소리는떨리면서도단단했다.
“나살아있잖아.그럼된거야.일어나.”
“유…유나야,미안해.정말내가다잘못했어.나앞으로잘할게.한번만,단한번만다시기회를줘.”
내얼굴이지금어떤표정을짓고있는지,나조차알수없었다.웃고있는건지,울고있는건지,그경계가흐릿했다.유나는그표정을잠시바라보다가,한숨처럼말을내뱉었다.
“아,알겠으니까그만매달려.알겠으면…앞으로잘하고.알겠어?”
나는고개를격하게끄덕였다.
“응!진짜로잘할게.앞으로는유나너한테부담스러울만큼매달릴거야.그정도로,정말로잘할게.”
유나는대답하지않았다.다만살짝고개를돌려눈가를닦았다.그움직임이말보다더많은걸전하고있었다.
-----김제현소설‘사랑에도교과서가있다면’,138쪽중에서

너는아무것도모른다는눈치였다.동그랗게눈이커지고,나를올려다보는눈이빛에반짝였다.나는손에든것들을조금흔들며너에게물음표를던졌다.
“혹시이것들너가올려둔거야?”
…혹시너일까?개인적으로난네가해둔거였으면좋겠는데.너는눈을살짝굴리며여러번입을열었다가다물었다.살며시입꼬리를올리다가도금세또눈을또르르굴렸다.
‘왜대답을안해줄까?이러면정말내가너라고생각하게만드는데?’
허리를살짝숙여너를바라보았다.
“아…그냥아침에너한테받은것도있고,아까연습하던거봐서….”
너의말마디마디에자꾸만미소가짙어진다.
“고마워,잘마실게.”
너는또입을가리고고개를마구끄덕였다.
-----해서소설'여름날우리(1부)',198쪽중에서

“삼이야…내가꼭,너만은지켜줄게.”
그러나그속에는다짐과두려움이뒤섞여있었다.그날밤나는처음으로기도했다.이다짐이끝을맺을수있도록.삼이가깨어있는지자고있는지는더이상중요하지않았다.어차피우리는곧멀어지게될운명이니까.
눈을떴을때,세상이온통빨간색필름을덧붙인양붉게빛나고있었다.공기는싸늘하고온몸은납덩이처럼무거웠다.팔과다리는점점감각이무뎌지며가슴속에서는무언가가끓어오르듯꿈틀거렸다.
그럼에도나는미소를지었다.이제끝을낼수있다.몇년간의죄책감을끝낼수있는생각에얼굴이한층밝아졌다.
“삼아,일어나.”
내목소리는갈라져쇳소리처럼날카로웠지만삼이는눈을비비며해맑게고개를들었다.
-----채석강아지씨소설‘맑음의바다’,218쪽중에서

하루의시작을알리는알림소리가방안을가득채운다.닿지않는거리에있는핸드폰을잡으려손을휘적휘적거렸지만당연하게도잡히지않는핸드폰에결국무거운몸을일으켜알림을끄게되었다.화면을보았다.

‘2025년12월24일오전10시2분’

12시에엄마와약속이있기에일어나나갈준비를해야했다.씻고,머리를말리고,옷을입고마지막정돈까지하니금방준비를마칠수있었다.그렇게밖으로나가기위해현관문앞에서신발을신기시작한순간,눈앞에천으로덮여있는사진이보였다.천을걷어내니햇살이와나였다.햇살이를품에안아환한미소를머금고있다.
‘내일이면햇살이기일이지….’
-----우서윤소설‘물망초’,228쪽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