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쿠데타와 나

12.12 쿠데타와 나

$18.50
Description
12·12 군사반란을 끝까지 막으려 했던
장태완 장군의 회고록 재출간!
1979년 12월 12일, 10·26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으로 혼란했던 국정 속 자신들의 세력을 키워왔던 하나회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하나회에 대한 여러 견제의 손길은 있었지만 결국 쿠데타는 일어나고 말았고, 전두환을 비롯한 수많은 군인들이 수도 서울로 진격했다. 당시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수경사령관이었던 장태완 장군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진압을 시도했으나, 결국 서울과 대한민국은 그들의 손에 넘어가고 말았다.
“속죄하는 마음으로 나는 지난 세월을 침묵으로 일관해 왔다.” 장태완 장군의 회고록, 『12·12 쿠데타와 나』는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장태완 장군은 쿠데타를 막기 위해 죽음도 불사했지만, 결과적으로 진압 작전이 실패한 것에 대해 오랫동안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장태완 장군의 이야기는 여러 매체에서 다뤄진 적은 있으나, 그의 실제 삶과 정신에 대해서는 많이 담지 못했다. 이 책은 1993년 출간되었다가 절판된 '12,12 쿠데타와 나'를 재출간한 도서로, 독자의 가독성을 위해 맞춤법 수정과 교열 작업을 거쳤다. 다만, 저자의 의도를 그대로 전달하고자 하는 부분의 문장들은 원문을 그대로 사용했다.

저자

장태완

저자:장태완

1931년9월13일경상북도칠곡군인동면신동에서태어났다.대구상고를졸업한후1950년에육군소위로임관했다.이후제20사단본부사령,수도사단작전참모,육군본부군사연구실실장등을맡다가1979년11월16일부로수도경비사령관으로임명되었다.그리고1979년12월12일‘12,12군사반란’의진압을시도했지만다음날새벽무장해제당하고연행되었다.

이후두달간의조사를받고풀려났지만,가택연금및강제예편을당했다.그리고이충격에서벗어나기도전에,부친과외동아들을잃는비극을겪어야했다.삶이송두리째흔들리는상황이었지만,가족들의권유로조그만회사의사장자리를맡으며슬픔을이겨내려했다.

그리고1993년‘12,12쿠데타진상조사위’에공개증인으로나서며다시조국을위해헌신하기시작했다.2000년3월새천년민주당에입당하며정계에입문하며민주당고문직을맡기도했다.이후2010년7월폐암으로생을마감했다.



엮음:이원복

황해도연백출생.서울에서대학을다니던중6.25전쟁이발발하여학도병으로지원했다.KLO부대원으로차출되어황해도연백일대를중심으로유격대로활동했고,전후참전공로를인정받아1954년2월육군소위로임관했다.군복무당시에는여러지휘관및부대로부터정훈업무에서두각을드러낸것을인정받았다.이후중령으로진급하여1976년까지근무하였다.전역이후에도육군의정훈에크게기여했다.진중문고로선정된『세계안보일일대사』『한국전쟁사10권』등다수의책을집필했으며강원도문화상을수상했다.

목차

1장.쿠데타라는비극의씨앗
6·25한국전쟁부터시작된군인의삶
군내사조직하나회의등장
윤필용사건으로드러난군의병폐
박대통령의비호하에커나간하나회
무소불위의권력,차지철과전두환의등장
이병형,김복동그리고나

2장.10·26이후드러난야욕의발톱
10·26박대통령시해사건발생
정승화참모총장‘2급비상사태’하달
군인의정치참여를경계했던정총장
얼떨결에맡게된수경사령관자리
전두환보안사령관이보내온김장값
작전참모박대령의장군진급탈락

3장.비운의12·12군사반란
연희동비밀요정에서의주연
미뤄지는최대통령의연행재가
재가없이행해진정총장불법연행
치밀하게계획한정총장납치작전
육본B-2벙커속다급한상황
적으로변한전우들
행방묘연했던국방장관의등장

4장.고립무원속수경사령관
수경사로옮겨진육본지휘부
경복궁과보안사를목표로출동준비
반란군측제1공수여단병력출동
진압군측야포단서울진입실패
반란군측정병주특전사령관체포
심야에열린육본참모회의

5장.12·12군사반란그이후
반란군측제1공수여단서울진입
반란군측육본·국방부완전장악
노국방장관,의문의‘상황중지’명령
믿었던부하손에서빙고로압송
쿠데타군부의군권장악과수뇌부물갈이
12·12군사반란의작전평가
12·12군사반란의진상규명과단죄의당위성
12·12군사반란의교훈
12·12군사반란의법률적검토

6장.시련의감방생활2개월
보안사서빙고특수수사대
죽음을각오한심문조사
수사관의끈질긴배후수사
처음으로들은가족들의소식
전두환과의만남그리고석방

7장.아들을가슴에묻고
가택연금과아버님의별세
난데없이떠난동해안격전지순례
가난하지만단란했던우리가족
외아들의가출과죽음
아들을가슴에묻고
외동딸현리의결혼
나를괴롭히는심근경색증
생사의기로앞에서남기는증언

부록
장태완장군자력표
12·12군사반란시차적상황

“12·12는계획된쿠데타였다!”
12·12당시수경사령관이밝히는그날의생생한진실

출판사 서평

6·25한국전쟁부터시작된군인의삶
하지만막을수없었던비극

장태완장군은6·25한국전쟁당시조국을위해몸을바치던수많은청년중한명이었다.대구상업학교에재학중이었던장태완은육군종합학교제11기로입교했고,단기사관교육을받은뒤쉴틈없이전선을오가며대한민국의자유민주주의를지키는호국용사로서의모습을보여주었다.또한장태완은육군보병학교전술학교관,존경하는한신장군부대의검열단장등을거치며장군으로진급하기도했는데,이는6·25한국전쟁3년동안임관한장교3만명중최초였다.

이처럼장태완장군은조국을위해헌신한한명의군인이자,대한민국을사랑하는한명의국민이었다.하지만이와반대로일명‘정치군인’이라불리며뒤에서자신들의이익만을챙기는이들도있었다.특히1961년5·16직후자신의기반이될수있는군내부사조직‘하나회’를만든전두환이바로그런인물의전형이다.전두환과하나회는매우은밀하고치밀하게자기들끼리주요보직을차지하며권력을키워나갔으며,장태완장군은회고록을통해그과정을매우생생하게전달하고있다.

“불충자유구무언의속죄하는마음으로
나는지난13년간의세월을침묵으로일관해왔다”

1979년10·26박정희대통령시해사건이후,하나회는본격적으로쿠데타를준비했다.청와대경호실의행정차장보를거쳐작전차장보의자리에입성한전두환은차지철과함께권세를더욱키워나갔고,12월12일에맞춰치밀하게계획을만들어갔다.그리고이제막수도경비사령관으로부임한장태완장군도결국그농단에당하고말았다.12월12일,장태완장군은비밀스러운식사자리에초대받았으나,알고보니그것은수경사령관이었던장태완장군을묶어두기위한함정이었으며,조치를취하러뛰어나갔을때는이미전두환과하나회세력이수도서울로진격하고있었다.

부임한지한달도안되었지만,장태완장군은수경사령관으로서12·12군사반란을진압하기위해최선을다했다.취할수있는모든연락을취했으며,반란군측군인들을설득하기도했다.하지만자신이할수있는모든방법을동원했음에도불구하고,결국반란군이육본과국방부를완전히장악했고장태완장군은국가가무너지는비극을바라보고만있을수밖에없었다.

이후장태완장군은서빙고로압송되어감방생활을보냈다.그리고석방이후에도오랫동안쿠데타를막지못한것에대해죄책감을느끼며살아왔다는것을회고록을통해밝히고있다.그러나그는절대삶과조국에대한의지를포기하지않았고,1993년‘12,12쿠데타진상조사위’에공개증인으로나서며다시조국을위해헌신했다.

장태완장군은『12,12쿠데타와나』를통해다시는12,12군사반란과같은불행한역사가반복되지않기를바랐다.역사를잊은민족에게미래는없다.비극을바로눈앞에서목격하고,누구보다크게절망했던이의목소리로재현한그날의진실은,대한민국에게아주중요한역사적지침이되어줄것이다.

이책을읽어야할사람들
1.‘12·12군사반란’에관심있는사람들
2.대한민국역사에관심있는사람들
3.정치에관심있는사람들
4.장태완장군에대해알고싶은사람들
5.하나회에대해알고싶은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