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초한신화,고래
바다의괴수에서돈벌이로전락하다
고래에대한설명으로‘경이로움’보다더적절한말은없을것이다.고래는경이로움,그자체다.다른바다동물들과달리,육지에서바다로되돌아간고래는엄청난몸집부터뛰어난지능,운동능력,생태와문화까지놀라운이야기로가득하다.
어느영화에선가,바다에가본적없는산적들에게해적이었던사내가고래를설명하는장면이나온다.모닥불을가운데놓고빙둘러앉은무리바깥으로둥근원을그리고나서,고래의눈크기가이정도라고이야기한다.이어서고래의크기와생김새,생태를설명한다.코는머리뒤쪽에있고,이빨대신수염으로먹이를잡아먹으며,가끔씩숨을쉬러바닷물위로나와비처럼물줄기를뿜어댄다고말이다.또새끼를낳고젖을먹인다는이야기도이어진다.산적무리는거짓말을한다면서해적출신막내를흠씬두들겨팬다.영화를보는사람이야고래의생김새와생태를이미알고있으니재미있게웃어넘기지만,고래를본적없는사람이라면정말그런동물이있다는게믿어지지않을것이다.
이런이유때문인지고래는다양한문화권에서신화와전설의주인공으로등장한다.이누이트의여신세드나전설에,구약성경<요나서>에,신드바드의모험과피노키오이야기에고래는중요한역할로등장한다.고래를섬으로착각했다는이야기는동서양어디에서나쉽게찾아볼수있다.이렇듯사람의힘으로어찌할수없는,거대하고영민한동물이바로고래였다.그래서고래에생활의많은부분을의존했던이누이트부족은고래사냥에나서기전에그리까다로운정화의식을치렀는지도모른다.
캐나다밴쿠버섬과북서태평양연안에거주해온누차눌쓰Nuu-chah-nulth부족은사냥한달전부터아내와잠을자면부정탄다고여겼다.‘눗카Nootka’라고불리기도하는이부족의고래사냥꾼가운데한명이라도터부를깨면,사냥은실패로돌아가고선장이책임을졌다.남편이바다에나가있는동안아내는집에서고래가오도록문을열어두고조용히기다렸다.만약낯선사람이집을방문하면사냥은실패한다고믿었다.누차눌쓰부족의샤먼은사당을짓고고래사냥꾼아내의배설물을갖다놓았다.아내의배설물이고래를해안가로유인한다고믿었다.
_147-148쪽(고래야,네가원하는걸주었다)
이런생각을변화시킨것은고래의좌초,스트랜딩(죽은고래가육지로떠밀려오는것)이다.당시에는고래의좌초가그자체로놀라운자연사적사건이었다.16세기후반까지도사람들에게고래는여전히신비로운동물이었으며,민간구전에서는‘바다의괴수’로인식되었다.하지만르네상스적인식변화와과학의발전으로인해,사람들이뭍으로올라온고래를관찰하고해부하면서이전과는다른시각을갖게되었다.이제고래도한낱동물에지나지않는다고여기게된것이다.
이후두려움과경외의대상이었던고래는돈벌이의수단으로전락한다.스페인비스케이만을시작으로북극해와북아메리카의낸터킷까지세계곳곳에서경제적이득을위해‘바다의거인’에게작살을던지기시작했다.
살육되고,감금되던존재가
다정한거인으로재인식되기까지
두려움의대상,신화적존재,바다의괴수였던고래가한마리동물로추락하고바스크족이상업적목적으로고래를잡아들이자영국,네덜란드,미국,러시아,일본등제국주의열강들은모두포경산업에뛰어든다.고래기름과고기,경랍같은고래부산물을얻기위해서전세계바다가핏빛으로물들어갔다.감당할수없는엄청난크기의대왕고래같은대형고래를잡아들이기위해포경선들은갈수록크기를키웠다.머지않아포경선은바다의공장이되어버렸다.그리고더이상잡을고래가없어지면다른곳으로이동해서다시작살을던졌다.
디젤엔진을단배가등장하고폭약작살이발명되면서고래개체수는기하급수적으로줄어들기시작했다.양차세계대전이후엔어군탐지기와소나(잠수함의음파탐지기),비행기까지더해졌다.이때부터고래는발견대신수색되었다.그렇게20세기중후반에접어들자고래가잘잡히지않았다.포경선도하나둘팔리기시작했고,흥청거리던포경항도점차퇴색되어갔다.1986년점점사라져가는고래때문에포경산업이시들어갈즈음,국제포경위원회는상업포경을전면금지한다.이로써15세기스페인의바스크족이본격적으로개시한상업포경은500년만에막을내린다.
무엇이고래를구출했을까?인간들의현명한지혜도,지구를사랑하는마음도아니었다.그저부족해진자원량으로인해포획비용이상승했기때문에작살을던지지않은것뿐이다.
_274쪽(고래의노래)
그러나상업포경이금지된이후에도고래에대한인간의착취는계속되었다.포경금지대상이아니었던돌고래와범고래는여전히잡혀수족관에갇히고,인간을즐겁게하기위해고통받았다.좁은수조와냉동생선,쇼에적응해야했으며조련사의지시에따라쇼동작을배워야만했다.그래야냉동생선이라도먹을수있기때문이다.그러는사이‘야생의몸’은‘돌고래쇼의몸’으로변해갔다.
이렇게‘경제적자원’으로격하되어대량으로살육되고감금됐던고래의현실에대해반대목소리가커진것은최근의일이다.환경운동가와과학자,그리고미디어제작자들이오랫동안공을들인결과다.과학자가고래의행동·생태연구결과를발표하면,미디어는이를고도의정신작용과다양한감정,그리고개성과문화로번역했다.환경운동가는‘고래도생명’이라고외치며정부,산업계와싸웠다.경제적자원이던고래가‘다정한거인’으로재인식되고나아가‘권리의주체’로호명된것은이러한문화적동력들이뒷받침해준덕분이다.
평화와환경을지키는다정한거인,
권리의주체에서‘비인간인격체’로
이제고래라면‘이상한변호사우영우’를떠올릴지도모르겠다.자폐스펙트럼장애를앓고있는그녀가시끄럽고자극적인지하철소음에서멀어져오롯이고래의노래에집중하며안정을찾아가는모습,그리고그런우영우를지켜주듯지하철위를자유롭게유영하는고래의이미지가생각나니말이다.
고래에대한이러한인식의변화는많은철학적함의를내포하고있다.일찍이데카르트는동물을자의식은물론,감정과고통을느끼지못하는존재로정의했다.오직자극에기계적으로반응하는존재로규정한것이다.고래도이런기계적존재로인식되었다.그러나이런생각은거울실험으로논파된다.오랑우탄,고릴라,보노보,코끼리,유럽까치와함께돌고래도자의식이있음을증명했다.다시말해이동물들도인간처럼감정과고통을느끼는것은물론자신을타자화(他者化)할수있는고도의정신작용을가졌다는뜻이다.
고래를인격적으로대우해야할이유는무수히많다.고래는이제평화와환경을수호하는상징이되어가고있다.누가시키지도않았는데탄소를포집해바다에가라앉히는‘기후변화의해결사’라는것이밝혀졌다.이른바‘고래펌프’와‘고래컨베이어벨트’로불리는현상으로각각심해에서해수면까지,극지방에서적도까지전지구적여행을통해지구의안정적인탄소순환에핵심적인톱니바퀴역할을하고있다.지금우리는인공적으로탄소를포집해서해저에저장하기위해엄청난비용을쓰고있다.그러나이런기후공학적인해결책보다고래싱태계를복원하는것이훨씬안전하고효과적이다.
이제고래를대하는인간의태도도달라져야하지않을까?인간과감정을교류할수있는존재,자의식을가진존재를어떻게바라볼것인가에대해생각해볼시점이다.마침과학자와환경철학자를중심으로이런존재들을‘인격체’로대해야한다는주장이대두되었다.
일부철학자와동물권이론가는자의식을소유한동물종의개체를‘비인간인격체NonhumanPerson’라하여특별한지위를부여하기도한다.이개념은‘휴먼human’과‘퍼슨person’을구별하는것부터시작한다.휴먼이동물외양의물리적특성을비교해정의하는생물학적범주라면,퍼슨은자의식과주체성,사회성을가지고자율적인주체로기능하는개체를말한다.환경철학자토머스화이트는돌고래가자의식을가지고도덕적판단을하는사실이과학적으로밝혀졌다면서돌고래를인격체로봐야한다고주장한다.요약하자면생물학적으로사람과다르지만(비인간),인간만이독보적으로가지고있던것으로여겨졌던특성(인격체)을공유하는비인간인격체라는것이다.
_399-400쪽(비인간인격체고래의권리)
사라진귀신고래,바다로돌아간제돌이
한국고래와포경의역사를최초로담다
이러한변화에가장먼저화답한곳은우리나라다.제돌이와춘삼이,삼팔이등제주연안에서불법으로포획되어돌고래쇼를하던남방큰돌고래들이고향으로돌아가면서,우리나라는‘인간이외의존재들가운데생태적가치가중요한대상에법적권리를부여하는제도’(생태법인)를만들어돌고래에적용하려는첫번째국가가되었다.
(*2017년제정된뉴질랜드의황거누이강법은동식물과강물,바위등강유역에법인격을부여하고,중앙정부와마오리족이각각지정한두명이법적후견인을맡아강의권리를보호하도록했다.황거누이강은인간의소유가아니라강의소유다...마찬가지로)남방큰돌고래가생태법인으로지정된다면,해상풍력발전소공사가진행되는등서식지훼손이이뤄질때손해배상소송을제기할수있다.남방큰돌고래가권리를가진권리주체이기때문이다.
_403-404쪽(비인간인격체고래의권리)
이책은한국포경과고래의역사그리고2010년대중반이후전개된돌고래해방운동에이르기까지기존의책이담지않았던우리나라고래이야기를풍부하게담았다.선사시대포경장면이그려진반구대암각화를남긴수수께끼부족에대한이야기,1945년해방이후재개된한국포경의민족주의적망탈리테그리고동해에서여전히진행되는불법포경과제돌이를비롯한제주남방큰돌고래8마리의귀향이야기는독자의시선을끈다.
저자는이책을위해한국제주와일본다이지,아이슬란드후사비크와흐발피오르,아일랜드의딩글,영국의런던과던디,킹스턴어폰헐,캐나다세일리시해,미국뉴잉글랜드의스텔와겐뱅크와올랜도,낸터킷과뉴베드포드,알래스카의프린스윌리엄해협,서호주의샤크베이와퍼스,북극의카크토비크와스발바르제도까지대학살시대의유적과야생고래의삶터,돌고래가갇힌수족관을20년가까이취재했다.
200여편이상의논문과보고서,자료원문을검토해고래생태에관한최신과학지식을전달하는한편최근들어일본과이아슬란드의상업포경재개등요동치고있는국제포경정치도비판적으로분석했다.
한때‘바다의괴수’였던고래는‘학살과착취의대상’이었다가이제‘다정한거인’을거쳐‘권리의주체’로나아가고있다.기후위기시대,고래는우리인간이자연을어떻게바라보는지를알려주는리트머스시험지다.고래를어떻게바라보느냐는우리앞에닥쳐있는자연의시련에어떻게대처하는가하는기준이될것이다.모두가《다정한거인》을함께읽고생각해봐야할이유다.
《다정한거인》은그자체로고래에관한가장최신의정보를충실하면서도현장감있게담아낸살아있는생태보고서다.그리고신화부터포경문화,수족관돌고래,다시‘권리의주체’로이어지는고래와인간사이의오랜역사를다룬역사책이기도하다.또동물과인간,자연과인간에대한진지한고민과반성,문제의식을던지는생생한취재기로도읽힌다.독자는이책에서고래와인간의역사와이를둘러싼현안들,그리고자연과인간,동물과인간의바람직한관계맺기에관해생각하게될것이다.《다정한거인》은비단신기한고래이야기에국한된것이아니다.자연과함께살아가야할인류의미래에관한따뜻한대화이자성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