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은작가데뷔20년만의첫소설집
시간과기억,죄책감과공포에관한기묘한이야기
“시간과기억에대한짧은글들을써모으는동안,나를포함한몇몇송신자로부터다시한번‘왜?’라는질문을받았다.한번도성공한적없는시도이지만여기서나는다시한번존재쪽으로걸어가보려한다.”―이치은(작가)
<오늘의작가상>으로세상에첫선을보였던이치은작가의첫소설집이출간되었다.『보르헤스에대한알려지지않은논쟁』이라는흥미로운질문을던지고시작하는이소설집은,시간과기억에관한기묘한이야기10편이실려있다.
기억이라는소재를다룬전작『키브라,기억의원점』에서풀어놓은생각들은표제작「보르헤스에대한알려지지않은논쟁」에서조금더직설적으로재조립되고있다.또시간을소재로쓴「마술사진기」나장소-상황에대한상상력으로쓴「바리케이드」,기다림,죄책감,수집등을다룬작품들이한데묶여있어,작가의독특한상상력과작품세계를선보인다.
이치은의작가데뷔20년을맞아알렙출판사에서는<이치은컬렉션>을선보일예정이다.데뷔작『권태로운자들,소파씨의아파트에모이다』를비롯하여현재는절판된3권의책과알렙에서간행되었거나간행될예정인소설등모두7-8권을한데묶은컬렉션이다.
“신은보르헤스에게타인의책과밤을선물했다.”
도발적상상력으로빚어낸,보르헤스의마지막소원에관한논쟁
작가는이소설집의다수작품들에대해페스티시의방식으로글을쓴다.작가의20년전의데뷔작인『권태로운자들,소파씨의아파트에모이다』(개정판근간,알렙,2018)에서는10여명이넘는작가의,그보다많은수의작품들이페스티시기법으로녹아나있었다.신작소설집에서도또한이러한방식을적극적으로도입,활용한다.
짧은글을쓸때면자동적으로카프카와보르헤스를떠올리게된다.「보르헤스에대한알려지지않은논쟁」에서나는전작인『키브라,기억의원점』에서풀어놓으려했던생각을조금더직설적으로,보르헤스를소재로해서새로운(‘새로운’이란말은내게있어서‘는’그렇다는거다)방식으로재조립하고싶었다.형식적인-부분적인측면에서는로베르토볼라뇨의『아메리카의나치문학』에빚진바크다.―작가의말중에서
「보르헤스에대한알려지지않은논쟁」은시인인엘돈셀과평론가인벨마르사이에일어난,보르헤스의마지막소원이무엇인지에관한논쟁이다.물론,작가의상상력이가닿은가상의논쟁이다.작가는둘사이의흥미로운논쟁전개뿐만아니라,보르헤스의미망인인마리아고타마여사의전언까지곁들여,독자들에게보르헤스의마지막소원이무엇일지궁금증을던져준다.벨마르는보르헤스의소원은시력을되찾는것,그리고그토록좋아하던작가의작품을다시읽는것이라한다.하지만엘돈셀은마리아고타마여사에게들은대로,우리둘다틀렸으며,결국보르헤스의마지막소원은기억을잃는것이라전해준다.왕성한독서가인보르헤스는타인의책과밤을신으로부터선물받았지만,또한작가보르헤스에게자신이쓴책과기억력을선물했다는것이다.작가는그기억력때문에자신이쓴글을읽지못한다는것.차라리보르헤스는모든기억력을잃고자신이쓴책을다시읽고싶다는것이었다.
이치은작가는전작『키브라,기억의원점』에서기억/기록이라는소재를다루면서,연쇄살인범이된한기억상실자가자신의정체성을되찾아가면서느끼는공포를그렸다.이주제의식이이번단편에서는좀더직설적으로재조립되고있는것이다.
나는종종인간이더완벽해지려면기억을잃어버려야한다고주위사람들에게주장한다.「죄책감의확률」은이에대한이야기다.생각이문체와이야기에앞서다보니인형극이되고말았다.―작가의말중에서
기억에관한또다른단편인「죄책감의확률」은살인을저지른사람이자살을할확률은얼마나되는지를물으면서시작된다.수학적확률로도두행위사이의연관은없어보인다.예를들어히틀러가자살했다는것도이를설명하지못한다.이이야기에서연쇄살인범은2건의살인과1건의존속살해죄로무기징역을선고받았다.즉분노와질투와탐욕,탐식이라는단테의『신곡』에나오는대죄에기반한연쇄살인을저질렀는데도,죄책감을느끼지못한다.한편,교도소수감중에동료죄수와싸움을벌이다간수에게뒤통수를얻어맞고일시적인혼수상태에빠진다.특별병상에잠시이송되었고,일시적으로기억을잃는다.
문제는다음부터였다.자신의기억상실을답답해하는살인범(죄수)은담당의사에게사건기사가난신문들을구해달라고부탁한다.자신의악행을서서히알아가자,결국살인범(죄수)은자살을선택한다.기억을잃고나서야,자기가저지른죄에비로소죄책감이생겨난것이다.
이단편을통해,이치은작가는기억이라는공포와죄책감을이야기하고있는것이다.자기자신이한일을다시기억하는것이때로는공포이고죄책감일수있음을,작가자신의의식을투영하여말하고있다.
「고해성사」는내용과형식적인면에서「죄책감의확률」과닮은점이많다.죄책감의시점-연원에대한오래된생각이글전체를끌고갔다.인형이둘만나온다는게「죄책감의확률」보다나은점이라면나은점일지도모르겠다.내가만난고해성사를집도하는신부들중그누구에게서도나는한줌호기심의흔적을냄새맡을수없었다.내어릴적죄들이너무시시해서그런건지도.―작가의말중에서
수록된여러편의작품들중에서,유독기억과죄책감에관한글이많은것이특징이다.이는전작『키브라,기억의원점』에서부터이어져온작가의주제의식이라볼수있는데,일종의인간의행위를진실과허위로대비하고이를통한지적게임을벌이는방식으로작가는이를풀어나간다.기억상실자는기억의불완전성이나불일치,조작의가능성을가지고있다.한편현실로돌아와서는반드시기억은완전해야만하고진실되어야한다.그사이에공포와죄책감의근원이자리잡는것이다.또작가이치은은오랫동안자신이쓴작품을어떤감정으로읽을수있는가라는질문을던져왔다.타인의작품은기쁜마음으로선물을받은것처럼읽지만,자신이쓴글은정작읽기힘든것이작가이다.타인의책을읽는것은즐거움이지만,자신의글을읽는것은공포혹은죄책감의감정없이는힘들다.
보르헤스의마지막소원이‘기억을잃는것’이라는기발한설정을통해,이치은작가역시자신의글의소유권(저작권)을주장하지않고,마치타인의글처럼읽고싶다는소망을가진다.
기억의불완전성은시간의불일치,장소-상황의어긋남에서나온다
제조자=작가=창조자의발명은기적일까,장난일까
아인슈타인의일반상대성이론이란과학적추론에서알듯,인간의기억은불완전하고불안정하다.작가이치은은오랫동안이주제에천착해왔다.장소-상황의어긋남에서비롯된기억의퍼즐조각을맞추고자했던작품이『유대리는어디에서어디로사라졌는가』였고,『키브라,기억의원점』이었다.『비밀경기자』와『노예틈입자파괴자』에서는꿈-의식으로나타났다.이번에실린시간과기억에관한이야기는또다시여러방식으로전개되되,카프카나보르헤스가그토록사랑했던장르인단편을통해구현된다.작가는
「전당포」에서도박사기에연루된한택시기사의이야기를통해서이다.도박빚때문에신체장기라도팔려할만큼절박했던택시기사는‘시간’이라도팔아보라는제안을받고,계단을사무실로개조한‘전당포’를찾아갔다.택시기사의미래라는시간은값어치가떨어져,과거의행복한시간을담보로돈을빌리게되었다.그돈으로빚을모두갚고난후도박장에발길을끊었다.한편,외할머니의사망으로상당한유산을받게된택시기사는전당포에돈을돌려주고,자신의과거시간(기억)을되찾으려한다.다시찾아간전당포에서는,택시기사에서새로운제안을한다.자신의과거시간을되돌려줄수있지만,그것보다는타인의행복했던시간을사는게어떠냐는제안이다.택시기사는길게고민할것도없이,이를받아들인다.
「마술사진기」또한시간과관련된작품이다.시간과관련된인간의발명품중에가장매혹적인것이,시계,일기장그리고사진기이다(이치은).어느날도서관에서책을빌리려다우연히카메라를발견한다.누군가놓고간모양이다.이상한카메라였다.렌즈둘레에는숫자가적혀있었다.+∞에서-∞까지.하지만렌즈를돌려보니+10에서-10까지만움직였다.“닿을수없다면무한대가다무슨소용이람.”하고중얼거린다.이렌즈의한계였다.어쨌든카메라를얻은나는무작정사물과풍경과사람을찍어대기시작했다.우연히버스에도올라탔다.“신이없는세상에서는카메라가신인거지.”하고생각한다.그러나갑자기카메라의비밀을깨달았다.그냥검정카메라가아니라,마술사진기인것을.+10과-10의비밀을.렌즈의믿을수없는기능을꿰뚫어보게되었다.+10에맞춰놓고사진을찍으면셔터를누른후10초뒤의현실이사진기에나타난다.-10에맞추어놓으면이번에는셔터를누르기10초전의현실을사진기가풍경에서훔쳐온다.하지만나는마술의목적을알수없었다.10일이나10시간이나하다못해10분이라면또몰라도,10초라는시간은유용해지기에는너무짧은시간이었다.이마술은아무데도쓸모가없어보였다.그때갑자기사진기의LCD화면이꺼졌다.나는수명이다한마술사진기를덤불들사이에숨겨놓고,언덕을맨발로걸어내려가기시작했다.
카메라는마술을부릴줄알지만유용한마술이아니라는것은,마치보르헤스가‘세계는어린신이장난으로만들어놓은것’이라는인식과도통한다.인간은정해진범위내에서마술이나기적을행할수있다.하지만그것이무슨소용일까,하고작가는묻는다.
또한,「바리케이드」는어긋난장소-상황에서빚어진이야기이다.제약회사연구원전영준씨는바리케이드가쳐져있는공사현장을가로지르고싶다는생각에,바리케이드를치우고낯선길로들어선다.지도상에나와있지않는,내비게이션도꺼져버린길에서,한마을을찾고,마을에서수상한소녀를만난다.길을묻는전영준씨에게,소녀는이마을에없는아저씨에게어떻게길을가르쳐줄수있느냐는이상한답을한다.그러면,소녀의위치는이마을에서어디냐고묻고,소녀는비로소자신의위치를지도에서가리킨다.전영준씨는가까스로길을되찾고회사에지각하지않고도착하지만,얼마지나지않아모든상황-장소-현실이바뀌었음을깨닫는다.전용준은강대형이었고,실험실의쥐는토끼로바뀌었고,Tom은Jane이었다.평행우주이론이맞고,그래서평행우주가존재한다는것이현실이면,아마도전영준씨의이경험은사실일것이다.다만,저다른평행한우주속의자아는나라는자아가아니다.같은현실일수있지만,다른자아가살고있다는것.그것은아마도보르헤스의작품세계에나온의식과도궤를같이한다.(보르헤스,「1983년8월25일」)
이치은작가의신작『보르헤스에대한알려지지않은논쟁』은작가의두번째시작을알리는서문에가깝다는느낌이다.?기억과나혹은또다른선택’이충동적이면서도매혹스럽게나열되어있었다.보르헤스식작법과박제된천재이상을통해그는과감한단절과시작을시도하고픈충동을여러단편에담았다.이번작을넘어차기작을더기대하게하는신작이다.―김훈(독자)
이책은이치은작가를새로바라보는계기이자전환점이될것같다.보르헤스에대한호기심으로펼쳐든책이이치은작가에대한관심으로단숨에시공간도약이되기때문이다.현실의환상,환상의현실을표현하면서그속에서방향을잃지않는유려하지만날서고직선적인문장은,마냥가벼움만이미덕인요즘문장을선호하는나를돌아보게하는계기가되었다.“이제나는과거가아닌미래를기억하고싶다”는호르헤루이스보르헤스의문장을인용하며,또다른작품을만날수있는시공간을기다릴것이다.?―송희수(서점인)
볼수도만질수도없는절대적흐름인시간에관한흥미로운몇가지퍼즐맞추기.책을읽고나면시간과한걸음가까워진느낌이신기하다.―이상림(마을활동가)
능청스럽다.천연덕스럽게나를몰아갔다.보르헤스의마지막소원이무엇인지,엘돈셀과벨마르가했던논쟁은또무엇인지찾아헤매다순간헛웃음이났다.그림속의페스타이올로가이런나를보며씨익웃을것만같다.시간과기억이라는것으로기묘한이야기를만들어낸저자의도발적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