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본다, 사진이 나를 자유케 하는 것들 (사진으로 긷는 인문)

나는 본다, 사진이 나를 자유케 하는 것들 (사진으로 긷는 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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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디지털의 숲으로 덮인 이 시대,
우리가 하는 인문의 행위는 무엇일까?
사진 놀이를 통해 자유로이 펼치는 사유의 세계(2009-2019)
사진은 생각의 도구이자 인문의 행위!

사진 찍는 인문학자 이광수 교수에게는 사진이 생각의 도구이자 인문의 행위이다. 이광수 교수는 디지털이라는 피할 수 없는 기계의 숲으로 덮인 이 시대에서 우리가 하는 또 하나의 인문의 행위는 무엇일까를 묻는다.
저자는, “사진을 한다는 것은, ‘봄(시선)’과 권력이 만들어내는 메커니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권력은, ‘봄’과 ‘보임’ 그리고 ‘보여줌’의 차이를 만들어냈다. 그 사이의 차이가 나와 당신의 사이에서 또 다른 차이를 만들어냈다. 모든 게 보기 나름이고, 보이기 나름이고, 보여주기 나름이다. 카메라를 가지고 사유할 수 있는 그 나름의 세계를 ‘봄(시선)’을 통해서 서로 나누어 보는 것, 그것이 사진으로 긷는 인문의 세계다.

이광수 교수는 인도 종교와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학자이자 사진비평가이다. 인도 근대사 연구 중에 사진이 중요한 사료가 될 수 있음을 알고 본격적으로 사진 이론을 공부하여 사진비평의 길로 들어섰다. 또한 2009년부터 2019년까지 한 해에 2-3차례 인도에 방문, 체류하여 인도 세계의 종교, 문화, 생활, 역사의 현장 등을 사진에 담아 왔다.

이광수 교수의 신작 『나는 본다, 사진이 나를 자유케 하는 것들』은 사진 놀이를 통한 자유로운 사유의 세계를 펼쳐보이는 인문 에세이이다. 지난 10년간(2009-2019) 이광수 교수는 필사적이다시피 카메라를 메고 인도로 향했다. 인도 세계에 가면, 보지 못했던 것들, 잊힌 것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만났다. 그곳에서 거기 어떤 신성함이 드러내준 존재들을 카메라라는 기계를 대동해 몸뚱이 육안으로 보고 읽고 해석하다가 이내 자유케 되는 기쁨을 만끽해 갔다. 이런 시간을 본격적으로 가진 지 10년째다.

저자가 접한 세계 안에 정해진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보기 나름이고 해석하기 나름이다. 그것이 자연이든 자연이란 이름으로 드러난 신의 본질이든, 저자는 저자 마음대로 보고 해석한다. 그것이 저자가 생각하는 “봄의 이치”이다. 이는, 힌두 세계에서 말하는 알현謁見의 이치와 비슷하다. 그는 드러내고, 나는 보는 이치. 그 안에서는 자신이 보는 것이 우선이 아니고 그가 드러내주는 것이 우선인 이치다. 그래서 마음대로 보고 해석한다지만, 결국 그 자연이라는 존재에 대한 경외가 그 밑바탕에 깔린다. 저자는, 그 경외 위에서 그렇게 대상을 접하고, 자신의 눈으로 잡아내 자신이 해석하는 것을 인문을 긷는 것이라 말한다. 그런 인문을 긷는 것은 카메라로 할 때 가장 자유스럽다. 이를테면, “카메라가 나를 자유케 해주는 것”이다.

이 책 『나는 본다, 사진이 나를 자유케 하는 것들』은 카메라로 사유할 수 있는 그 나름의 세계를 ‘봄’을 통해 서로 나누어 보는 것, 디지털의 숲으로 덮인 이 시대에 우리가 하는 인문의 행위는 무엇일까를 탐사한다. 한국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보지 못하는 것들, 우리에게 잊힌 것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사진(순간)으로 포착하면서, 사진가의 렌즈에 비친 언어(봄)와 그 세계가 나누는 것들(권력)에 대해 사유해 간다. 그 세계에서 단순한 느낌이나 한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그 대상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사진으로 하는 인문적 사유의 세계이다.
저자

이광수

부산외국어대교수.역사학자(인도사)이자사진비평가이다.
시민운동가로서‘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공동의장,‘만원의연대’운영위원장을맡았고,민주노동당,진보신당,정의당등진보정당당원으로활동해왔다.인도근대사연구중사진도중요한사료가될수있다는사실을알고서는본격적으로사진이론을공부하여사진비평의길로들어섰다.
저술로는인도사에관한것으로『슬픈붓다』,『역사는핵무기보다무섭다』등의지은책이있고,『침묵의이면에감추어진역사』,『성스러운암소신화』등의옮긴책이있다.
사진에관한책으로『사진인문학』,『붓다와카메라』,『사진이묻고철학이답하다』(최희철과공저),『사진으로생각하고철학이뒤섞다』(최희철과공저),『카메라는칼이다』등의지은책과『사진으로제국찍기』의옮긴책이있다.

목차

들어가는글

제1부봄안에들어있는권력
치명적저항과전통사이에서
사진을하면서내가말하고싶은것들
나는인간간디를찾았다
이미지가세계를뒤흔든다
뒤바뀜의법칙
그들의행복에대고나는,무엇을한것일까?
희생양
행복의조건
세상을바라보는나의위치지우기
세계는되어가는것들로이루어지고있다
그러한듯한세계,카오스
사람사는세상,짐승사는정글
나는사랑을보았다
욕(欲)의불은새로움의원천이다
나는내이야기를하고싶다

제2부봄안에자리잡은욕망
버린다,바란다
봄의이치
신들의주사위게임
붓다가저모습을보면허탈해할까?
세계가환(幻)이아닌이유
죽은자는찰나의멸을알지못한다
욕(欲)의꿈을추종하는사람들,불안하다
세상은아름답고잔인하다
이장면은매우불교적이다
사진으로치유한다는것
불과빛,자연과우연
나만의스타일
근대인은과학을세우고이야기를버렸다
사두의수행방식
공간의낯섦

제3부‘봄’과‘나’사이,사진
어중간한이야기꾼의슬픔
사진으로긷는인문
내사진에보편의칙은없다
나는과함의경계에서이야기를찾는다
다른것과의인연
생경함과클리셰
해석을피할수없다
사진을하면서파괴자니체를읽다
우리는우연의의미를해석하려고애쓴다
문법은우열을정하고평가하고배제한다
삶에서생성을맛본다는것
입체에서평면으로,사진이만드는공간
사건을직면하기
일반화는오류다
악의속성

출판사 서평

사진은해석이다,텍스트가아니다.
사진으로,봄(시선)과권력에대해이야기하다.

이광수교수는사진과글이자유롭게교차하는이책에서사진,봄의이치,그리고권력에관한인문학적사유를전개한다.
저자에따르면사진은해석이다,텍스트가아니다.이교수는이를니체의『선악의저편』에나오는한구절,“이것은해석이지,텍스트는아니다.”에서전거를인용한다.보고싶은것만보는것이‘봄’에관한이세계의이치다.사진을매개로하여말하자면,보고싶은것만보는것이아니고,있는사물에대해사람의눈으로보는것을벗어나카메라의눈으로보고싶은것을보는것이다.인간의눈과카메라의눈은모두절대적인것은아니다.기계라하더라도결국그것을어떻게조절하느냐즉관점에따라달라진다.
저자는,힌두세계의‘봄’에대해생각해본다.인간이그렇게보는것은신이자신의모습을그렇게드러내는것이니그의뜻에따라그성안聖眼을알현하는것이다.인간은신의본질을볼수없으니,그상을만들어그신을보게된다.그안에는신이자신의본질을드러내주는성안의‘보여줌’이있고,그후에야비로소인간이하는알현의‘봄’이가능해진다.보여줌과봄은둘이아닌하나이다.‘봄’과‘보여줌’과‘보임’의세계,그것은신에대한알현은인간의주체이지만,신의주체이기도해서결국하나가되어가능해진다.?????
‘봄’의문제는,그래서그자체로서충분하다.인간을보든,자연을보든,신의상을보든그것은본질이드러내는것을알현할뿐이다.그것을숭배하거나보존하거나하는것은어떤우열을가리거나그질의규정을하는것은아니다.그런데사람들은그본질을알현하려하지않고,드러난모습을숭배하려든다.변할수밖에없는유한한것을숭배하려는것은자신의욕망을다스리지못해서하는짓이다.
저자는질서라는권력자들이설정한세계는서로다른‘봄’이공존하는것을용납하지않는다고본다.저자는,사진을한다는것은결국이‘봄’과권력이만들어내는메커니즘으로부터벗어나는것을추구해야한다고믿는다.사진이란세계를자신이보는바에따라해석하고자신이원하는바에따라전유하는행위임을잊지않으려한다.

봄안에들어있는권력

권력은물질의수단을어느한쪽소수가차지할때발생한다.그리고그수단을독차지한소수는다수로하여금자신들이해석한세계안에들어와그정한가치에열과성을다해헌신하도록만든다.여러가지이름이있겠지만,모두강제다.그안에서달리보는것은용납할수없는것이바로권력이다.그렇게세계를‘봄’은자연을부정하고,그것을극복하여질서라는이름으로세우는전통과문법이된다.그리고그에도전하고저항하는것은질서의파괴자로규정하여결코용납하지않는다.그저항의시도는전통과문법의틀에따라때로는유치한것으로,때로는위험한짓으로,때로는미치광이로,때로는불경스러운것으로매도당하고처벌당한다.그리고그위에서저항하는위험한자들로하여금전통과문법의틀안으로돌아오라고끊임없이가르친다.그것이도덕이고그것이종교다.도덕과종교는회개하고회심하는자를용서하고품에안는다.그렇지만그것을부인하는자는영원히사회로부터격리시킨다.그들이달리보지말라는것을끝까지부인할때말이다.
질서라는권력자들이설정한세계는서로다른‘봄’이공존하는것을용납하지않는다.그래서그세계안에서팩트는존재하나진실은존재하지않는다.그안에서어떤생각은어떤기준에맞춰져균질하게되고단순화되어진리로자리잡는다.그것이종교다.그종교는처음에는진리를찾아구도하는단순발심에서시작하지만,이후로조직과돈을갖추게되면서진정한권력으로군림하게된다.그리고그틀은다양한시간과공간속에서도일방적으로통용되는이데올로기가되어널리유통된다.결국,종교는진실을추구한다는명목으로군림하는반(反)진실의토대일뿐이다.그런데도사람들은그것을알지못한다.진리안에서자유롭다는신화에싸여있기때문이다.
저자는,사진을한다는것은이‘봄’과권력이만들어내는메커니즘으로부터벗어나는것을추구해야한다고믿는다.사진이란세계를자신이보는바에따라해석하고자신이원하는바에따라전유하는행위임을잊지않으려한다.마찬가지로남도그가원하는대로보고해석하고전유할수있었으면한다.그래서궁극적으로자신이카메라로보고만들어내는그사진이라는이미지로우와열을가리지도않고,그것으로물질을구하지도않으며,남이만든그만의‘봄’과그결과물을평가하지도않으려한다.자신아닌다른이도사진으로줄서고,줄세우고하는일에서자유로웠으면한다.그것이사진안대동세상일것이다.카메라를들어세계로가까이가볼수있고,보이지않는것을볼수있고,보이는것을보이지않게할수있는행위를하는것이야말로디지털이라는피할수없는기계의숲으로덮인이시대에서우리가하는또하나의인문의행위이다.

봄안에자리잡은욕망

세상이돌아가는이치는무엇일까?저자는,욕(欲)이라본다.욕이없다면행위하지않을것이고,그러면어떤관계도만들어지지않을것이며,그러면세상의삶도없을것이다.욕의삶을부인하고세상밖으로나가절대고독속에서궁극을추구하는사람들이있고,그들가운데많은이들이개인으로서욕을제어하는삶에도달하긴했다지만,그것의최대치는결국개인차원에서일뿐이다.그들의제자는결국다시세상안으로들어와관계를맺게되니,욕을버리는것을부정하는기제는이전보다더강고하게되어더욱세상적으로되고,그안에서욕은더욱커진다.이러한도돌이표의인류사는인간삶의뿌리가절대적으로욕에있음을보여주는것이다.인간의역사가변하는것은바로이때문이다.욕망은변증법적으로변태하여커지고그변태된새로운욕망은새로운사회를만들고그것이역사가된다.역사는결국욕망을통해인간본성이구체화되도록운동하는힘의궤적이다.우리는누구든시간이흐르고그것이역사를만들어내는한욕망을버릴수는없다.
내가안간힘을다해잡으려,잡으려애쓰는그욕은나를변화시키는본질이된다.나에게세계는거울이나창에비친아무런에너지가없는반영이아니다.누군가가정해준도덕이나질서에따라누구라도그러하듯이살아가는그런삶이아니고,나의욕이추동하여끊임없이변화하고운동하는것이다.인간은그세계한가운데고독하게서있는독자적으로완전한존재다.그리고그를둘러싼그세계는나와우리가만드는변화하는어떤비실체적실체다.그래서욕은인간이살아나가는,인간을품어움직이게하는자연의일부다.애써살아가는욕을집착으로규정하는것은세계를환(幻)으로보는것이다.소수가만들어낸초월성혹은신에굴복한‘봄’이만들어내는세계안에서의일이다.그안에서인간은희생을강요당하고,그강요위에서희생당한자는신화로포장된다.그리고그를희생시키는공동체는물질의번영을만끽한다.그러나그번영은소수의것일뿐이다.
카메라는눈앞에보이는실체를아무본질없는허탄한이미지로만들어버리는기계다.그런데사람들은그허탄한이미지를어떤실체가있는본질로삼는다.그위에서진실을규명하고,남의‘봄’을규정하고판단하고그것으로사람마저재단한다.그리고권력이된어떤소수가정한문법위에서그‘봄’의가치를평가하고,그것으로권력과부와명성을쌓는다.본질적으로사람도없고,삶도없고,사랑도없는이미지의세계안에서누군가쌓은권위아래로스스로들굴복하여들어가고줄을선다.욕망이라는사람이살기위해가동시켜야할에너지가이미지에덮여사람을억누르는수단으로전락되는것이다.이시대,우리는카메라를어떻게써야할것인가,곰곰이무겁게고민해야할부분이다.

‘봄’과‘나’사이,사진

사진은,니체의언설을빌려말하자면,해석이다.텍스트가아니다.?보고싶은것만보는것,보여주고싶은것만보여주는것,그것이카메라를둘러싼‘봄’의이치다.좀더정확하게말하자면,눈앞에존재하는어떤대상에대해사람의눈으로보는것을벗어나카메라의눈으로보고그대상의일부만을취해사람들이보도록재현하는것이다.?인간의눈과카메라의눈은모두절대적인것이될수없다.사람이라하더라도이성과감성을통제하는‘나’에의해제어될수밖에없고,기계라하더라도결국그사람의눈에따라보는것이조절되고통제될수밖에없다.대상가운데서무엇을보느냐,왜보느냐,어떻게보이게하느냐를정해야사진하는행위의의미가달라진다.?그러다보니,사진이란‘봄’과‘나’사이에서만들어진행위의결과다.결국‘나’의문제다.
‘봄’의이치는그가사람을보든,자연을보든,신의상을보든그것은그대상의본질이드러내는것을보는것일뿐이다.그래서그것을재현하거나그재현물을전시하거나숭배하는것은어떤우열을가리거나그질을규정하는것이되어서는안된다.이렇게도재현할수있어야하고,저렇게도전시할수있어야하고,또다른방식으로숭배할수있어야한다.그것이자연의이치에따르고,세계를운항하는주체로서의인간의본질에더합당한것이다.그런데사람들은그리하지않는다.사람들은그본질을알현하려하지않고,드러난재현의겉모습을전시하고숭배하려든다.종교가그러더니,물질이그렇고요즈음은사진하는것이가장그렇다.
중요한것은사진으로말하고자하는것이무엇인가를우선아는일이다.사진을구성하는세가지,카메라라는기계,그기계로대상을취하는‘봄’그리고그‘봄’을통제하는‘나’.당신은그셋의메커니즘안에서카메라라는도구로뽑아낸이미지로무엇을말하려하는가?왜그많고많은도구중에사진이라는것을택하는지?그림도있고,동영상도있고,글도있는데,왜당신은그카메라라는도구로무엇을말하려하는지를끊임없이자신에게물어야한다.혹시카메라가조작하기쉽고그것으로뭔가를말하기가쉬워서인지는아닌지계속생각해봐야한다.그것이바로이디지털의시대에글보다그림보다훨씬보편적이고강력한영향력을가진사진으로인문을하는일이다.‘봄’과‘보임’그리고‘보여줌’의차이에대해사색해보자.그사이의차이가나와당신의사이에서어떻게또다른차이를만들어내는지살펴보자.모든게보기나름이고,보이기나름이고,보여주기나름이다.카메라를가지고사유할수있는그나름의세계를‘봄’을통해서서로나누어보자.그것이사진으로긷는인문의세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