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의신화,개발담론을전환하라!”
에스코바르는20세기중반이후서구에서고안된발전담론이세계를움직여왔다는사실을지적한다.따라서소위‘저개발’과‘제3세계’라는용어도이때등장한다.이후발전담론은‘성장’에서뒤처진저개발국가뿐아니라,선진국에서도당연히받아들이는강력한규범이되었다.
또한,발전주의는현대기술사회와도밀접하게연결된다.현재전사회적인주목을받고있는메타버스(Metaverse)는인류발전과미래의상징이되어가고있다.하지만동시에메타버스논의의상당부분이이윤창출이라는상업적목적과새로운자본축적에집중되고있다.
에스코바르는발전주의의도구로서의기술비판을통해기술이이윤의최대화가아닌다른경로를모색해야한다고역설한다.따라서에스코바르는이를넘어설이론과실천을본격적으로탐색한다.이책은그결과물로문명적전환의필요성및대안으로서공동자치의방향과실천경로,즉플루리버스(Pluriverse)를논의한다.
아르투로에스코바르와발전담론비판적연구그룹
흔히우리는‘근대화’‘발전’‘개발’을자연스럽게받아들이지만,21세기첫10년동안라틴아메리카에서활동했던중요한비판적사유집단인“근대성/식민성그룹”은이것들이유럽중심주의,이원론적사고,인종주의의소산이라고비판한다.이연구자들은여러세대에걸친다학문적지식인네트워크로,사회학자인아니발키하노등,기호학자인월터미뇰로등,인류학자아르투로에스코바르등,철학자엔리케두셀,마리아루고네스등이포함된다.
에스코바르는콜롬비아출신인류학자로미국과라틴아메리카를중심으로활동해왔다.캘리포니아버클리대학에서발전철학과정책연구로박사학위를받았고현재학자이자운동가로활발하게활동하고있다.그는전통적인인류학자라기보다는,통섭과융합의원리를받아들여과학기술,철학,거버넌스,비판이론,신유물론등여러학문을가로지르며서로의연계를도모해왔다.또한,라틴아메리카연구자들과의교류속에서탈식민주의와서발턴연구를접목하여정치생태학,발전인류학,사회운동,라틴아메리카정치에관한연구와실천활동을펼치고있다.
‘플루리버스를위한디자인’은‘존재론적전환을위한디자인’이다!
에스코바르는〈서문〉에서“시장에종속된디자인이형태와개념,영토와물질을지닌창조적실험을향해나아갈수있을까?특히지구와함께호흡하는삶을기획하기위해투쟁하는서발턴공동체에적합한디자인을설계할수있을까?”라고질문한다.한국어판을위한서문에서도그는다시묻는다.“한국의디자이너들은자신들의비판에존재론적디자인이나자치디자인,전환을위한디자인이라는개념을포함할수있을까요?포스트발전과부엔비비르,혹은공동성과자치라는라틴아메리카의사고가한국사회를분석하고사회문화적투쟁을전개하는데영감을제공할수있을까요?”이렇듯,이책이던지는주요질문에는존재론적디자인,공동성과자치가포함돼있다.
이책은(사회)디자인이론과실천의함의를탐색한다.그리고인류가기후ㆍ식량ㆍ에너지ㆍ가난ㆍ의미의위기에효과적으로직면하기위해,지식인과활동가들이반드시고려해야할문화와급진적인생태전환을돕기위한디자인실천의잠재력을논한다.
에스코바르는다양한삶의영역에서이러한생태전환,존재론적전환을실천하는모습을보여준다.특히,라틴아메리카의흑인,선주민,농민,도시의소외된그룹의정치적투쟁에서영감이나아이디어가유래했다.라틴아메리카대륙은자원과영토의수호뿐아니라,세계속에서자신이존재하는형식을지키기위해운동한다.이들중일부는대안적인‘삶의기획’이라는이름으로행해지는데,이개념은전환을위한디자인에서중요한위치를차지한다.이책의또다른주요한목적은디자인이이러한삶의기획에담긴자치의공동적형태를실현하는데공헌할수있는가를묻는것이다.즉,이책은플루리버스디자인의관점에서라틴아메리카를기반으로발현하는공동성의개념과자치를탐구하는것이다.
전환디자인의잠재성을배양하기위해서는디자인의방향을재정립해야한다.기능적이고합리주의적인전통에서나온디자인관념은여전히합리성을실현하는방향으로작동하고있다.이런이유로이책의초점은존재론에맞추어진다.디자인은그자체로존재론적인데,각각의사물,도구,서비스,서사속에서특정하게존재하고,생각하며,행동하는방식을창조하기때문이다.지금까지의합리주의전통을수정하기위해서는채굴적세계화에반대하는영토투쟁에나선민중들이보여주는비이원론적이고관계적인삶의방식에주목해야한다.이러한투쟁은여전히이들의사회적삶에서기반을형성하면서강력하게작동하는공동적인모습을보여준다.관계성에관한논의는지난십여년동안종종‘존재론적전환’으로묘사되는학계의비판에서출발한탈이원론적사상에서찾을수있다.관계성은모든생명이의지하는끊임없는,그리고항상변화하는직조과정을통해지구그자체에현존한다.이와같은생명력넘치는지식과에너지의분출을보여주기위해‘관계성의인식론적ㆍ정치적재활성화’에대해이야기한다.
이책의관심사는,문화와생태적전환,존재론에초점을맞춘디자인,전환을위한디자인이다.그리고자치,디자인,전환이라는세가지주제의중심에놓여있는공동적이고관계적인논리와정치적활동을탐구하는것이이책의주요쟁점이다.다시말해,이책이탐구하고자하는질문은다음과같다.근대의디자인전통은근대자본주의의이원론적존재론에의존하는것에서벗어나지식과행위의관계성을강조하는방향으로나아갈수있을까?서발턴공동체가투쟁을벌이고,자치를강화하며,자신들의삶의기획을실현하려는노력은창조적인전유로이어질수있을까?존재론적디자인은존재와행위에뿌리내리는변화의과정에서건설적인역할을할수있을까?그리고마침내인간과지구가서로거름이될수있게인간을양육하는부엔비비르의철학을실현할수있을까?
책의개요와주요논점
발전에서플루리버스로!-미래가없는/있는디자인
이책은크게세부분으로구성된다.1부는디자인(사회디자인,전환디자인)연구의몇가지경향을설명하고,문화연구분야의방법론을소개한다.1장에서는디자인의새로운사회적역할과작동방식,디자인을실천으로옮기는다양한아이디어를다룬다.2장에서는최근인류학,생태학,도시건축,디지털연구,발전연구,정치생태학,페미니스트이론을검토하여,디자인과문화와현실사이의관계를이해한다.
2부에서는디자인이등장하는문화적배경의존재론적읽기를제안하고,디자인의존재론적접근방식을개괄한다.3장에서이러한배경에대한특정한분석을제시하는한편,디자인의전환문제에대해구체적으로답해본다.칠레의인지생물학자인움베르토마투라나와프란시스코바렐라의작업에서영감을얻은이부분은데카르트의객관적인식론과연결된‘합리주의적전통’에대한비판적독해를진행한다.그리고서구근대성의지배적사고를특징짓는이원론적존재론을요약한다.
여기에서새로운점은(몸/마음,나/타자,주체/객체,자연/문화,물질/정신등의)이원론비판이학계만이아니라,다양한지식인과활동가영역에서나타난다는점이다.이러한흐름이이원론에새롭게문제를제기하며,이를넘어정치존재론이라는영역의출현을촉진하고있다고에스코바르는생각한다.이분야의출현은‘관계성’이라는개념으로점점더이론화되는여러대안을이론적으로나정치적으로지각하도록한다.이개념은이전과다른삶과세계를구상하는데필요한새로운디자인에잠재적기초를제공한다.
4장은디자인문제에대한새로운접근방식에서출발하여존재론적디자인개념의윤곽을그린다.존재론적디자인은(사물,구조,정치,전문적시스템,담론,서사등과같은)도구를디자인할때존재방식을창조하고있다는관찰로부터비롯된다.이런맥락에서이견해의핵심적사고는앤-마리윌리스가명명한‘존재론적디자인의이중운동’이다.우리가세계를디자인하고이렇게만들어진세계는다시우리를디자인한다.결과적으로디자인이디자인한다.존재론적디자인은토니프라이와일군의전환디자이너들이암시한지속가능성에서새로운시대로의전환을위해제안한디자인에기초한다.이장에서에스코바르는‘플루리버스’로의전환을사고하는데매개가되는존재론적디자인을제안한다.플루리버스디자인은지역의세계들을다시상상하고복원하기위한도구가된다.
3부는이제안을더적극적으로탐색한다.5장에서는단순한지적상상을넘어실현가능한플루리버스디자인실천이나타나는문화ㆍ정치적배경을논의한다.이장에서는최근10년간북반구와남반구에서생산된풍부한문화적ㆍ생태학적전환서사와담론을살펴본다.에스코바르는바로이전환의상상물이지배적삶과경제모델에근본적인변화의필요성을제기하며,디자인의존재론을재구성하는데더적절한틀을제공할수있다고확신한다.
마지막으로6장에서는존재론적디자인에초점을맞추면서‘자치디자인’이라는개념을발전시킨다.이역시기본적인출발점은간명하다.모든공동체는자신만의디자인을실현해야한다.과거전통적공동체의경우그러했고,현재에도많은공동체가남반구와북반구에서심화되는위기와피할수없는기술-경제에직면하여자기자신을디자인하고있다.다시말해사회운동가,전환적공상가,일부디자이너들이현재의위기가더깊숙한곳에자리한문명적위기를암시한다는주장을받아들인다면,자신의새로운삶을기획하기위한자치디자인은수많은공동체에서분명히실현가능하며,동시에필수적인이론적ㆍ정치적프로젝트임이틀림없다.어떤공동체들에있어이는생존에관한질문이기도하다.에스코바르는구체적으로콜롬비아남서부의한지역에서진행된전환실천을통해자치디자인의사고를설명하려고한다.이지역은백년이넘는기간동안지역적차원에서플루리버스를창조하기위한공동디자인의모델이었다.
자치디자인은근본적인면에서‘공동체’,혹은좀더적절하게는공동적인것을다시기획한다.공동적(communal)인것에대한관심이되살아나면서식량,에너지,경제의재배치와전환마을,커머닝(commoning)관련이슈가라틴아메리카의비평그룹과유럽의전환운동에서유행하고있다.즉,이장에서는자치를디자인의중심에놓는다.또한,자유주의가개인의자치와관련이없다는사실은이책전반에걸쳐분명해진다.실제로이책에서주장하는것은반대다.3장과6장에서는자치가마투라나와바렐라의용어로자기생산(autopoiesis),혹은살아있는시스템의자기생성(self-creation)에있어핵심이라는점을설명한다.
『플루리버스』,자치와공동성의세계를디자인하라!
에스코바르는이책의전반부에서디자인의역사와새로운가능성을다루고,후반부에서는플루리버스의사고와상상력을소개하면서이를북반구와남반구의사례를통해구체화한다.에스코바르는디자인의철학적·정치적·문화적의미를계보학적으로추적하면서이문제를정면으로다룬다.근대세계에서디자인은서구를중심으로하는전문가집단이주도했고,통제와점유,식민화와자본축적을위한목적론의도구로기능했다.하지만에스코바르는디자인을폐기하는대신,비근대적세계를꿈꾸고설계하는디자인의실천적가능성을복원하려는대담한시도를보여준다.디자인은이론과실천의인터페이스로서지금까지와는다른미래를설계하는양가적성격을갖는다는것이다.
이를위해그는디자인주체의범위를확장하는데,전문가집단을넘어모든사람이세계를디자인하는과정에참여한다는점을강조한다.또한,지구상의모든존재와물질에게도행위자로서의문을열어놓는다.이렇게디자인에참여하는존재가많아지는만큼행위자사이에서의관계도중요해지는데,에스코바르는이존재들의관계론을자신의작업에있어핵심으로파악한다.근대적디자인은발전이라는‘강한목적성’에대비되는‘약한관계성’으로설명될수있다.반면,미래를향한전환의디자인은‘약한목적성’과‘강한관계성’을그전제로한다.모든존재는독립적으로살아갈수없으며,네트워크의전체에서얽힘과상호의존을통해세계(들)를형성해나간다.
이러한전환디자인을바탕으로책의후반부는플루리버스를논의한다.플루리버스는원래서구를유일한가치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