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죄를고발하는갈레아노의명징한시선,
감춰진진실을비추는577개의거울들
에두아르도갈레아노는라틴아메리카를대표하는급진적언론인이자위대한작가로,평생에걸쳐식민지배와군부독재,자본의착취에맞서라틴아메리카민중의목소리를대변해왔다.특히갈레아노는우고차베스전베네수엘라대통령이버락오바마전미국대통령에게선물한책으로알려진대표작『수탈된대지』에서서구에의한라틴아메리카수탈의역사를통렬히고발하며세계적명성을얻었다.
2008년4월15일아르헨티나,에스파냐,멕시코에서동시출간된『거울들』은,라틴아메리카의역사와현실에천착해온그의시선이라틴아메리카를넘어전세계를향한결과물이다.인류사시초부터현재까지세계사의단편들을담은577편의이야기들은저마다감춰진진실을비추는‘거울들’이다.『거울들』은장구한세계사의이면을투사해진실을들춰내는하나의거대한거울이고,그런의미에서기존의역사책에맞서는또하나의역사책이다.갈레아노가그러모은거울들에비춘역사속에서,우리는폭력과정복을통해역사에자신의이름을남긴서구·백인·남성·권력자가아닌비서구·유색인종·원주민·여성·민중의시각으로세계를새롭게이해하게된다.
“유일한진실은존재하지않는다”
‘보편’이독점한역사,그맞은편에서역사를다시쓰다
책의서두에서갈레아노는『거울들』을이루는“이야기하나하나가확실한문헌자료에근거하고있다.비록이야기를내방식대로풀었다고해도모두실제로일어난일”이라고말한다.갈레아노가수집한이들이야기는그동안공식역사는물론,신문에도제대로실린적이없는것들이다.갈레아노는공식역사가기술하기를거부했거나,왜곡해기술함으로써역사의바깥으로밀려난진실들을발굴해한권에담아냈다.이렇게해서『거울들』에서는죽은자가되살아나고,익명의존재,무명씨가이름을되찾는다.
갈레아노는가려진진실을캐내고위장된진실의허위성을벗겨내기위해집요하게노력한다.그는“신문은자신들이말하는것과말하지않는것을통해내게가르침을준다.(……)아마도신문이말하지않는것이말하는것보다더많은것을말하고,그리고종종신문이하는말은진실을거짓으로드러낸다.그래서나는『거울들』을세상에내놓게된것이다”라고말한다.갈레아노는공식역사너머를바라보기위해시대와장소,글쓰기장르의경계를넘나들며신화,민담,민요,대중가요,신문기사,일기,편지,시,소설,평론,역사책,각종문헌등이세상에존재하는모든장르를수용했다.그리하여그의작품에서는과거와현재가,서구와비서구가,근대와비근대가,자연과인간이,남성과여성이,주인과노예가,삶과죽음이,높음과낮음이,고상함과비루함이각자고유의존재방식과동일한가치를지닌채되살아난다.갈레아노는“영혼의경계도,글쓰기기법의경계도인정하지않는다.”
불의한현실을폭로하는유머,풍자,아이러니,시적감수성
갈레아노가증명하는문학과이야기의힘
갈레아노의책이세계주요언어로번역되어수많은독자와평자를매료시킬수있었던힘은무엇일까?그것은기존의역사서술방식과는완전히다른방법,즉역사를문학이라는그릇에담아내는그의독특한스타일덕분일것이다.문학은역사적사실을단순히재현하는데그치지않는다.문학은독자가역사의씨줄과날줄에내재한숨결을포착하고,자신이속한현실과관계를맺어현실과삶을돌이켜보면서새롭게기획하도록한다.갈레아노의이야기에서는지극히일상적이고하찮게여겨지던존재들이특유의‘문학적’언어를통해역사의주체로되살아난다.갈레아노특유의유머,신랄한조롱과풍자,감칠맛나는아이러니,시적감수성이불의한현실을폭로한다.정치적압제로고통을겪어온민중의고난이고발되고,역사적·정치적현실에대한민중의투쟁과생명력이얼마나강하고질긴지가드러난다.
갈레아노는역사적진실을발굴하는작업에몰두했음에도불구하고,스스로‘역사가’라불리는것을달가워하지않았다.그에게공식역사는“입을꼭다물고있는”,“숨이끊어진”,“교과서에서배신당하고교실에서거짓으로포장되고,연표속에잠들어있는”,“박물관에갇힌”,“꽃이놓인동상이나대리석기념물밑에매장된”것이었기때문이다.그는역사를제대로“기억하기위해발버둥치는작가”로남고싶어했다.갈레아노에게문학은,가혹하고정의롭지못한현실을개선하기위해그가의지할수있는가장훌륭한무기였던것이다.
진실을비추는거울들속의이야기로
『거울들』은고전주의학자들의견해를곧이곧대로따르지않고,세계에대한‘보편적’인시각을해체한다.‘예수그리스도의대리자’인교황도,전설속의영웅도,인류역사의위인들도갈레아노의비판을피하지못한다.『거울들』에서인류사의영웅들은죄인이되고,역사가계몽과진보의연속이라는주류역사관은전복된다.갈레아노가서구중심주의,인종주의,남성우월주의,영웅사관,진보사관에맞서길어낸진실들의일단을,예문들과함께소개한다.
갈레아노는서구중심주의적시각을단호히거부하며,비가시화되었던라틴아메리카,아시아,아프리카,원주민사회등비서구사회의역사와시각을발굴했다.
유럽은거울에자신의모습을비추어봄으로써세상을보았다./거울너머에는아무것도없었다./르네상스를가능하게했던세가지발명품,즉나침반,화약,인쇄술은중국에서유래한것이었다.바빌로니아사람들은피타고라스보다1,500년을앞서나갔었다.인도사람들은그누구보다도먼저지구가둥글다는사실을알았으며,지구의나이를측정했다.또마야사람들은별,밤의눈(目),시간의신비에관해그누구보다도훌륭하게알고있었다./그런데,당시에그런자잘한것들은관심의대상이되지못했다.─「유럽이모든것이다」
갈레아노는백인이가한인종주의의만행을거침없이폭로한다.
맨위에백인이있다./백인고유의순수성은아래층의더러운피부를지닌인종들,즉오스트레일리아원주민,아메리카인디오,아시아황인종에의해파괴되고있었다.맨아래계층에는내적으로도외적으로도기형인아프리카흑인이있었다./과학은흑인을항상지하실에배치했다./1863년런던인류학회는흑인이백인에비해지적으로열등하며,유럽인만이흑인을“인간화하고문명화할수있다”는결론을내렸다.유럽은자신들의가장훌륭한에너지를이고귀한임무에투여했으나운이따라주지않았다.약1세기반뒤인2007년,노벨의학상을수상한미국인제임스왓슨은흑인이백인에비해여전히지적으로열등하다는사실이검증되었다고밝혔다.─「인종차별주의의과학적기원」
갈레아노는가부장제의뿌리깊은역사를밝히며,여성에대한폭력의역사와가려져있던여성들의저항을증언한다.
그녀는남아메리카에서어린시절에사냥당한뒤여러차례팔리면서이주인저주인의손을거쳐북아메리카의세일럼마을로갔다./노예티투바는그곳청교도의성소(聖所)에서목사새뮤얼패리스의집하녀로일했다./티투바는악마의요리법으로파이를만들었다며기소되었고,그녀는그것이사실이라고대답할때까지채찍질을당했다./티투바는악마의연회에서벌거벗은채춤을추었다며기소되었고,그녀는그것이사실이라고대답할때까지채찍질을당했다./티투바는사탄과함께잠을잤다며기소되었고,그녀는그것이사실이라고대답할때까지채찍질을당했다./그리고고문하는사람들이그녀에게그녀의공범은단한번도교회에나가지않는두노파라고말했을때,기소된여자는이제기소하는여자로바뀌어,마귀에홀린두명의여자를손가락으로가리킴으로써더이상채찍을맞지않게되었다./그후기소당한다른여자들이또기소를했다./그렇게해서교수대는작업을멈추지않았다.─「티투바」
갈레아노는영웅중심역사서술의허위성을단호히배격하며,그것이폭력과정복의역사임을신랄하게고발한다.
나폴레옹이유럽을정복하러가면서거대한부대의선두에서서알프스를넘었다./그장면을자크루이다비드가그렸다./그림속의나폴레옹은프랑스군총수의화려한정복을입고있다./(……)실제나폴레옹은군복을입지않았다.그는두꺼운회색외투로온몸을가리고겨우눈만내놓은채,이름모를미끄러운바위산에서넘어지지않으려고최선을다하는암갈색노새를타고추위에벌벌떨면서땡땡얼어붙은그높은산을넘었다.─「프랑스의공식예술」
그대신갈레아노가귀기울인것은영웅들뒤에가려진밑바닥민중의삶,힘없는이들의목소리였다.
어느무명병사의관점에서라면트로이전쟁은어떻게기술되었을까?신들로부터는무시를당하지만전장위를선회하는독수리들이유독탐을내는어느그리스보병의관점에서라면?농사를짓다전사가되어그누구의찬사를받지도못하고,그누구도그의상(像)을만들어주지않은어느농부의관점에서라면?의무적으로타인을죽여야했지만왕비헬레네의눈에들기위해자신이죽고싶은마음은전혀없었던평범한남자의관점에서라면?/(……)트로이가멸망한지3,000여년이지난뒤,참전기자로버트피스크와프란세비야는전쟁이냄새를풍긴다고우리에게이야기한다.그들은여러전쟁에서종군기자로활동하면서온갖것을겪으며썩은냄새,뜨거운냄새,달콤한냄새,끈적거리는냄새를맡았는데,그냄새는사람몸의모든피부구멍을통해들어와몸속에자리잡게된다./그냄새는당신에게결코잊을수없는구역질을유발할것이다.─「영웅」
더나아가갈레아노는인류의역사가끊임없이발전한다는선형적진보사관을거부하고,근대문명에관한근원적비판을제기했다.
우리는숲과시냇가를찾아방황하는데지쳐있었다./우리는정착을해갔다.마을을세워공동체생활을하기시작했으며뼈로바늘을,등뼈로작살을만들었다.그런도구는우리의손을연장하고,손잡이는도끼,괭이,칼의힘을증가시켰다./(……)우리는“네것”과“내것”이라는단어를발견했고,땅은주인이있고,여자는남자의소유물이며,아버지는자식들의주인이라는사실을깨달았다./(……)문명의결과는놀라울정도였다.우리의삶은더안전해졌지만우리는덜자유로워졌고,더많은시간일했다.─「문명의간략한역사」
기계들은우리를위해작업할것이라고우리에게약속했다./이제우리는기계들을위해작업한다./우리가식량을증대시키기위해발명한기계가굶주림을증대시킨다./우리가스스로를방어하기위해발명한무기가우리를죽인다./우리가움직이기위해발명한자동차가우리의활동을막는다./우리가서로만나기위해만든도시가우리를서로못만나게한다./우리가서로소통하기위해발명한거대한매스컴이우리의말을듣지도우리를보지도않는다./우리는우리의기계의기계다./기계들은죄가없다고주장한다./그리고그말은맞다.─「기술혁명의간략한역사」
이처럼,역사를제대로“기억하기위해발버둥친”갈레아노의명징한시선을따라,세계와역사의진실에다가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