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삶-내조직-내도시-내사회에기후협치를설계하자
탈성장×협치의새로운선언,새로운실천매뉴얼
생태철학자,고신승철소장의유작
알렙생태민주주의시리즈네번째이야기
생태철학과공동체운동,사회적경제등을연구해오다,2023년세상을떠났던신승철소장의유작이이승준독립연구자와의공저로출간되었다.생전에생태적지혜연구소소장으로활동하면서기후위기시대의대안마련을위해고심해온그의뜻을유산으로,동료연구자·활동가·예술가들이탈성장전환사회를향한실험과도전을계속하고있다.
특히,이책은탈성장담론과기후협치라는대안사상을새로운실천매뉴얼과함께제시했다는점에서의의가크다.기후위기시대에필요한협치는위에서아래로내려오는‘관치’가아니라,시민과다중이주도적으로의제를설정하고결정하는‘아래로부터의협치’이다.즉아래로부터의협치와생태민주주의의중요성을강조하는저자들은기존의상명하달식통치(수목형모델)와대비되는수평적협치(리좀형모델)를제안한다.
또한,인간중심주의를넘어선새로운협치를주장한다.인간뿐만아니라비인간존재들(동물,식물,심지어인공물까지)을기후협치의주요행위자로포함해야한다는것이다.이러한‘공생적협치’는모든존재가서로연결되어있음을인식하고,이성과합리를넘어선새로운언어와정동(情動)으로모든존재가공존하는길을모색한다.
아래로부터의구성적협치가강한민주주의이다!
자본의맷돌을멈추고커먼즈를돌리자!
고신승철소장과이승준은이책에서‘기후협치’라는주요테마와핵심사상을분석하기위해몇가지주요한질문을던진다.“탈성장은왜기후위기시대의핵심 전략인가?”“기후협치는기존거버넌스와어떻게다른가?”“생태민주주의는무엇을어떻게확장하는가?”“전지구적위기앞에서국민국가와대의제는왜무능한가?”“탈성장전환을제도화하기위한실천경로는무엇인가?”기후위기시대에필요한이새로운거버넌스모델인‘기후협치’와관련된질문에답하기위해,저자들은2019-2020년부터이지적여정을시도했다.
기후협치:위기와대안의교차점
이책은기후위기가단순한미래의위협이아니라현재우리의삶을지배하는실질적이고긴급한사태임을강조한다.“우리가살아가고있는현재2020년대의시간은지구생태계와전인류그리고미래의생명모두의생사가걸린결정적인시기이다.”(25쪽)이러한절박한인식아래,저자들은기존의통치(governance)방식으로는이위기를해결할수없다고주장하며‘기후협치’라는대안을제시한다.
저자들은위로부터의지배(수목형모델)는한계가있다고보며,국가나관료,전문가중심의일방적의사결정방식은“탁상공론,뻔한결정,성장중심의방향성,인간중심주의,전시행정등의문제를극복하는실질적생태회복의효과를낳을”수없다고비판한다.(9쪽)
대의민주주의또한무능하다고본다.저자들은후쿠시마원전사고나세월호참사,이태원참사등에서보듯이“국민의생명과안전이존재이유라고말하지만정작위기가발생했을때국민의생명과안전을전혀지키고보장하지못하는국가”의현실을지적한다.(77쪽)
제국적협치에도한계가있다.유엔의지속가능발전목표(SDGs)와같은국제적거버넌스는이상적인모델이지만,“제1세계의목표가되고있다는점에서문제”이며,“현실적인문제를해결하기에는무기력하다”고비판한다.(225-226쪽)
그렇다면,아래로부터의구성적협치는무엇이고왜필요한가?기후협치는“위로부터의일방적지배(수목형모델)로나타나는통치와는구별되며,좀더수평적형태(리좀형모델)로작동한다”고설명한다.(7쪽)이는시민과다중에게의제설정과결정권,주도권을부여하고,정부나지자체는이를제도적으로보완하고지원하는방식이다.“리더십과전략은다중에게!전술은정부와전문가들과공동체들의협의체가!”(9쪽)라는전제하에서만시민과다중의자발적참여를유도하고돌발변수에탄력적으로대응할수있다고강조한다.
탈성장사회와생태민주주의
기후협치의핵심전제중하나는‘탈성장사회’로의전환이다.저자들은현재의기후위기가경제성장주의에기인한다고보았고,성장주의와인간중심주의에맞서탈성장론과탈인간중심주의에중점을두는논의들에관심을기울여왔다.
탈성장은경제성장추구의종식을내세우며,“경제성장이여전히인간복지를증진하고,물리적으로경제성장이가능하다고상상하는것이바로비현실적”이라고주장한다.(33쪽)
‘적을수록풍요롭다’라는말처럼,탈성장론은단순한금욕이나내핍을넘어“지구에사는모두를풍요롭게하면서더건강한삶을만들어낼수있는다른형태의삶과경제를추구하는것을목적”으로한다.(34쪽)이는더적은신진대사활동을지향하지만,다른구조와새로운기능을가진삶의방식을추구하는사회를지향한결과이다.
따라서탈성장은“교환가치와이윤증식중심의가치화에서탈가치화,재가치화,자기-가치화로의전환”을모색하며,여기에“돌봄의재생산경제와‘공통적인것’(혹은커먼즈/공통장)”이중요한요소로자리한다.(41쪽)커먼즈경제는누구도소유할수없으며,누구도그것을일방적으로재현/대의할수없는것으로,모두의필요에따라공정하게분배하고,모두가자신의능력에따라생산하며,공통적인것을다스리는협치를뜻한다.(60쪽)
그래서탈성장론은절대민주주의의근거를제공할수있다고저자들은주장한다.탈성장은“인간중심주의나개체중심주의에한정되는것을넘어서지구전체에공존하는생명체들인동식물과,그와는다른형태의존재자들인광물,사물,인공물,대기,해양등의물질및그것들간의관계성,운동성,시간성등을민주주의의구성요소로이해하는포괄적인‘절대적민주주의’의근거를제공”한다는것이다.(45쪽)
탈성장은오로지아래로부터만,세계를구성하는존재자들의삶에의욕망으로부터만강력하고실질적인형태로실현될수있다.위로부터의대안은“늘고통스러운내핍을강제할뿐이며,전지구를반으로가르는위계적단층선을따라‘조용한폭력’의형태로실행된다.”(47쪽)
구성적협치(기후협치)의철학적기반과사례
라투르,가타리,네그리&하트,해러웨이의사상과기후협치
저자들은이제브뤼노라투르,펠릭스가타리,안토니오네그리와마이클하트,도나해러웨이의사상을통해구성적협치(기후협치)의철학적깊이를탐구한다.
브뤼노라투르의사물정치와공생적협치
브뤼노라투르는팬데믹경험을통해인류가도시와집과맺는관계를흰개미가흰개미집과맺는관계에비유한바있다.“우리는흰개미와마찬가지로우리의거주지자체와공생했다.”(121쪽)지구위의모든것은서로공생하며,지구의위기,지구안에서의위기는지구안의모든존재의연합및상호결합의위기로인식되어야한다.
인간을포함한모든생물은“홀로바이온트(holobiont,공생생명체)”로서윤곽이모호한행위자들의앙상블이며,외부와차단된독립체일수없다.따라서저자들은인간협치를넘어서는,다양한생명존재들과의공생적협치로확장되어야한다고라투르의사상을적극해석한다.라투르는“하늘위에서아래를굽어보던그시선을끌어내리고다시땅으로귀환해그땅의존재들과마주보거나나란히살을맞대면서우리가위치한그러한공생적구성체로서의현실을응시해야한다”고주장한사상가이다.(136쪽)
펠릭스가타리의제도요법과구성적협치
프랑스생태철학자펠릭스가타리는제도가고정불변의구조가아니라“관계망에가까운것”이며,“관계망이바뀌면제도도바뀐다”고주장한다.(146-147쪽)제도는완성태가아니라,늘과정태로서만있어야한다는사실을통해“재특이화과정만을필요로하는제도의비밀을드러낸다.”(146쪽)이때,미시정치가중요하다.구성적협치는“기계,배치,구조,제도등의다차원적맥락을신중하게살피는미시정치의장”이되어야하며,“상상력,욕망,정동에기반한담화”를통해풍부한가능성을창출해야한다.(163쪽)
안토니오네그리·마이클하트:다중의어셈블리로서의협치:
네그리와하트는오늘날의‘협치’를“법과소유의지배에기초한공화제로서의전지구적협치”이자“제국적주권의발전된양식”으로이해하며비판한다.(180-181쪽)‘어셈블리(assembly)’는의회,공회,민회,모이기,집회등을포괄하는다층적개념으로,다양한존재들의협력과연대를통해특이한판을짤수있는지에대한구체적이미지를제시한다.
네그리와하트는‘소유공화국’의두형태인자본주의와사회주의,둘다를거부하는탈성장코뮌을기획하며,이는공허한유토피아를지향하지않는다고했다.(197쪽)이는“가난하면서도풍부하고충만하고협동하는영성공동체”를의미하며,“정동과활력을통해생태민주주의를가속화함으로써다중의권리와자율을더욱확장시키는방향성을띨것”이다.(195,197쪽)
도나해러웨이의공-산적협치와이야기만들기
해러웨이는생명들이서로협동하는공생적관점인‘공-산(sympoiesis)’을통해“함께-세계만들기를위한적절한용어”를제시한다.(204쪽)이는상대방이나의몸을만들고,나는상대의몸을만들며,상대가만들어준나의몸으로다시상대를만들기에참여하는상호의존적관계를의미한다.예를들어,하와이짧은꼬리오징어와비브리오피스케리박테리아,그리고아카시아나무와수도머멕스속개미의사례를통해“종과종을넘어,외래종과토착종간의경계를뛰어넘어협력하는어떤사태”를보여준다.
해러웨이는“트러블을겪는위태로운존재들과함께새로운패턴을만들어낼‘이야기만들기’가필요하다”고주장하며,“SF(들)는새로운땅의이야기를만들어냄으로써우리가어울릴친구와동반자들을다른이미지로그려낼수있는힘”을제공한다고설명한다.(215쪽,219쪽)
연합과탈성장을통한내적혁명
협치(거버넌스)사례와실천경로
책에서는다양한거버넌스사례를분석하고,기후협치로의전환을위한구체적인실천경로를모색한다.예를들면,유엔의SDGs의경우이상적인협치의모델로제시되지만,제1세계중심이라는한계와현실적인문제해결에서는무기력함을지적한다.
한국사례로도박원순시장시기만들어진녹색서울시민위원회를든다.하지만,서울시의거버넌스왜곡사례를통해“시민사회기반을포섭하고그기반으로시행정을하려고했던위로부터의거버넌스의전략”이라비판한다.(233쪽)
파리의15분도시는생태주의적도시정책의성공사례로,일자리,도시계획,에너지인프라등을집약하여탄소감축과삶의질향상에기여했음을보여준다.(236-238쪽)그리고재난시공공영역의기능이정지한상황에서지역생협조합원들이자발적으로구호활동을펼친사례(고베생협의대지진대응)를통해,“아래로부터의협치가자본이나국가가공백상태에처했을때빠르고유효한대책을실행할수있는유일한대안”임을강조한다.(241쪽)민방위대와주민들의즉각적인협치를통해사망자0명을기록한쿠바의허리케인윌마에대한대처사례를통해,“마을단위의공동체적관계가살아있고,마을주민전체가민방위대및군대와혼연일체가되어움직였기때문”에가능했음을보여준다.(243-244쪽)
저자들은기후협치가아래로부터의민주적역량강화와함께이루어진다고강조하며,이는“다양한형태의소수자들과연대하면서도어떠한편견이나선입견에사로잡히지않으면서그누구와도수평적인관계를맺을수있는존재들”을만드는일이라고말한다.(259쪽)
궁극적으로이책은“우리를변신시켜새로운차이의존재로탄생시킬우리자신의내적혁명을지금바로시작하자!”는강렬한메시지를던지며,“아래로부터의협치,풀뿌리민주주의이자모든존재가서로에게의존하면서도또한서로를살리는공생적어우러짐만이지금기후위기의유일한실효적대안”이라고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