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

글쓰기 사다리의 세 칸

$21.21
저자

엘렌식수

프랑스의영문학교수이자작가,극작가,시인,문학평론가겸탈구조주의철학자이자페미니즘사상가이다.프랑스령알제리오랑에서유대인가정의장녀로태어나프랑스에서고등교육을받았다.제임스조이스에관한박사논문을준비하던중에자크데리다와자크라캉을만나공동작업을했으며,같은알제리출신유대인프랑스인인데리다와는탈구조주의비평및분석방법론을함께구상하며평생에걸쳐교유하며공동집필등을이어나갔다.1968년에출간한《제임스조이스의망명또는대리예술》로평단의격찬을받았고,1969년에출간한《안으로》로메디시스상을수상했다.프랑스68혁명의성과로교육부산하에구성된위원회의의장을맡아파리제8대학설립을주도했고,이후영문학부초대학과장을맡으면서유럽에서는처음으로학내에여성학연구소를설치했다.1970년대프랑스페미니즘흐름을이끈중심인물로서,1975년에현대페미니즘의중요작품으로평가받는《메두사의웃음》을출간하여기존의남성중심적언어체계와사고체계를전복하는이론적틀이자대항담론으로서‘여성적글쓰기’개념을제시했다.활발한사회참여활동과더불어왕성한창작활동을지속하여시와소설,희곡,문학이론,예술비평등90여권에이르는저서를출간했다.

목차

편집자의말

망자의학교
꿈의학교
뿌리의학교
옮긴이의말

감사의말
옮긴이의말

출판사 서평

글을쓰겠다는당신에게H의가호가있기를!

이책에서엘렌식수는H를가지고글문을연다.H는I와I사이에놓인다리이다.두세계를,두언어를진동시키거나가르는선이다.엘렌식수는“글쓰기는두해안을잇는통로를만드는”일이라고말한다.
엘렌식수는자신이수수께끼같은애착을가질정도로좋아하는작가들은모두이런사다리를빈번하게오르내렸다고말한다.그런데,내려오기란곧올라가기이다.아니,올라가기보다더고통스러운극단의행위이다.
엘렌식수가H에서프랑스어단어‘Hache’(도끼)를떠올리고,이어카프카의도끼를연상하는것은더없이자연스럽고도의미심장하다.여기서도끼는은유어가아니라상징어이다.“더깊이내려가라고다그치지만말아줘”하고호소하던카프카가이번에는“해치고찌르는책”을,자살같은책을,재앙같은책을,그러니까그유명한문장처럼“우리안의얼어붙은바다를깨부수는도끼”같은책을써야한다고힘주어말하고있으니말이다.승리하고싶으면서도,늘패배를원하는자처럼자신의한계선이내에서한없이유영하고배회하는신중한사내가결국위반할수있게되었을때,궁극의글쓰기가터진다.금기가있기에반드시위반이있을것이고,건널수없는제한선이있기에반드시건너가게되어있다.한없이지연되는내공술의침잠이H의내려가기였다면,도끼는올라가기가비로소가능할것이라는,축약된기쁨과공포의예고이다.
사다리H의부적이내온몸에숙지되었다면,이제실질적인수행이수반되어야한다.엘렌식수는이것을세칸의방으로,그러니까세칸의학교로명명한다.망자의학교,꿈의학교,뿌리의학교가그것이다.


망자의학교

(글쓰기를,삶을)시작하려면죽음이있어야합니다.저는망자들을좋아하는데,망자들은한쪽을닫고다른쪽길을‘열어주는’문지기입니다.-19쪽

망자의학교는우선읽기의영역이다.읽기란우리의첫스승들을만나는일이고,그스승들은대부분망자들이다.
엘렌식수는어떤망자를읽는가?어떤스승을두었는가?아니,어떤“몰래먹기”를하는가?식수자신이가장존경하는작가인브라질소설가클라리시리스펙토르와러시아시인마리나츠베타예바,오스트리아소설가잉에보르크바흐만,토마스베른하르트,도스토옙스키,그리고그누구보다카프카를읽는다.엘렌식수는이망자들과우리의관계를곰곰이생각해보면미움이나파괴가아닌사랑의관계일수있고,글을쓰고싶다면,특별히애착하는이망자들의도움을얻어볼수있다고말한다.이들이꿈에나타나놀라운선물을준다는것이다.


꿈의학교

여러분은그책의문을열자마자다른세계로들어가서는이세계로통하는문을닫아버립니다.읽기는백주의도피이고,타인에대한거부입니다.-41쪽

망자의학교가벽너머에있었다면,꿈의학교는침대밑에있다고엘렌식수는말하는데,그렇다면글쓰기학교에서도수련의방법은달라진다.꿈의학교는우선시작은하지만,도착하기를꿈꾸어서는안된다는훈련지침이따른다.우리는스스로,내몸으로,걸어가고걸어가며,자아라는올가미를하나둘털어내버리면그만일뿐,목표라는도착점에이르면다시자아의올가미에붙잡히고말기때문이다.랭보처럼바람구두를신고한없이,신발을닳게하며,즐겁게걸어야한다.
우리는각자꿈일기를써볼수도있다.엘렌식수는꿈의학교에서클라리시리스펙토르의꿈을,장주네의꿈을특히환기하고서술하며,어쩌면모든문학의배양지를이렇게구성해볼것을제안하는지도모른다.
현실에서힘을잃을때,허무주의와무기력에빠져글을쓸수있는동력을상실했을때,꿈속의그섬뜩하고생경한밀도와힘에의존해본다면,서서히글쓰기의기운을회복할수있을지모른다.


뿌리의학교

어떤추방자는분노로죽고,어떤추방자는추방을하나의나라로바꿉니다.-210쪽

그리고마지막,뿌리의학교.뿌리는최고의심층이므로숭고한근간이자근원일것같지만,엘렌식수에게그것은우선어떤불결함이다.
새,여성,그리고글쓰기.이른바‘세계바깥에있는것들’은더럽고불결하며불순하다.성서에서는새가그러하며,남성중심의사회에서는여성이그러하다.그리고글쓰기가그러하다.글쓰기는장주네가말한것처럼“낮은곳”에가서사는일이기때문이다.글쓰는자들은제일힘들고,제일살기어렵고,제일위험한나라에사는자들이다.새와여성,글쓰기.이것은하나의등가어이자,삼중의층위어로이런운명은현실세계에서너무나걱정스러운삶을살게되겠지만,문학으로서는어쩌면너무나치명적인광휘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