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의 편지

코로나 시대의 편지

$18.00
Description
어떻게 홀로 인간답게
만남의 끈을 이어 갈 것인가
아무도 편지를 쓰지 않는 시절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진행해 왔던 대면 강의를
영상강의로 전환하면서 매주 편지를 함께 보냈다.
편지의 수신인은 수년간 그의 강의를 들어왔으니 오랜 제자라 할 수도 있고,
때마다 한결같이 풍월당을 격려하고 키워 주었으니 스승이라 해도 좋았다.
이 ‘제자 선생님들께’ 2년 반 5학기 동안 80여 통의 편지가 배달되었다.
이 책에는 그 절반쯤을 추려 실었지만, 한 통 한 통의 편지에는
받는 이와 나누고 싶은 글쓴이의 이야기가 굽이치며 흐른다.
잔잔한 웃음과 세심한 배려가 행간마다 넉넉하다.

코로나 3년의 기록,
풍월당이 전하는 위로와 감사의 편지

“그러면서 저는 여러분과 가장 많은 소통을 하고 있는 셈이며, 늘 여러분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씁니다. 물론 홀로 고독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실은 가장 고독하지 않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지금 옆에는 제가 좋아하는 한 잔의 커피와 한 조각의 과자가 있고, 이탈리아노 현악 사중주단이 연주하는 40년이 넘은 슈베르트의 마지막 네 개의 현악 사중주곡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100여 년 전만 해도 귀족이나 누렸던 호사를 제가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고독 속에서도 행복합니다.” _「고독으로만 이룰 수 있는 위대한 것들」 중에서

이 책은 서울의 한 클래식 음반 가게 풍월당이 코로나 시기를 지내며 써내려간 3년의 기록이다. 풍월당은 음반 가게이지만 클래식 감상자를 위한 예술 아카데미이기도 해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일상이 멈추자 아카데미에서 하는 음악 강의도 모두 중단되었다. 대면 강의는 영상 강의로 대체할 수 있었지만, 매주 강의실에 모여 함께 나누던 만남의 온기까지 대신하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이에 풍월당을 창립하고 10년 이상 아카데미에서 음악 강의를 해온 박종호 대표는 그가 ‘제자 선생님’이라 부르는 수강생들에게 매주 강의 영상과 함께 손수 쓴 ‘편지’를 띄워 보냈다.

난생처음 겪는 거리두기와 일상의 단절이 기약 없이 길어지면서 편지도 차곡차곡 쌓여갔고, 2년 반 동안 그렇게 80여 통의 편지가 모였다. 이 책은 그중 40여 편 정도를 추려, 이 편지의 본디 수신자인 제자 선생님들뿐 아니라 코로나라는 긴 터널을 지나는 모든 이에게 띄우는 편지로 새롭게 엮었다.

편지에는 코로나로 외출이 제한되는 기간 동안, 받는 이들이 ‘홀로 있어도 풍성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예술 이야기와 삶에서 건져 올린 진솔한 단상들을 담았다. 저자가 직접 읽고 본 좋은 책과 영화 이야기,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어린 시절로, 젊은 시절로 돌아가 본 추억담, 거리를 걸으며 만나는 소외된 이웃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연민이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가슴 시리게 우리를 위로한다.

읽으며, 추억하며, 걸으며 되새기는
평범한 것들의 소중함

“이 편지들에는 반복해서 등장하는 주제가 있다. 어머니, 추억, 우리가 잃어버린 미덕, 이웃에 대한 적선 등이 그러하다. 이 주제들은 너무나 중요한 것이어서 후렴구처럼 우리 마음을 울린다. 가끔은 시가, 추억이, 내면의 목소리가 읽는 이를 정적의 쉼표로 안내하기도 한다. 그런데 바로 이런 것이 일상의 음악 아닐까.” _「들어가는 글」 중에서

학교가 문을 닫고, 가족을 만날 수 없는 명절이 이어졌다. 마스크는 우리를 감염병으로부터 지켜주었지만, 상상 이상으로 사람들 사이에 불편과 단절감을 초래했다. ‘언택트’라는 이름으로 실물과 접촉하지 않고도 서로를 연결하는 디지털 세상은 이 위기를 발판 삼아 더 정교하고 더 거대해졌다. 이렇게 ‘홀로 있음’을 강제당한 코로나 기간에,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타인과 함께했던 시간들을 채우고 자기만의 생존법을 터득해나갔다.

저자는 이 시간 동안 어떻게 ‘홀로’ 있으면서도 ‘만남의 끈’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 고민의 산물인 이 편지들에는 문학과 현실을 오가며 끊임없이 ‘나’를 사색하고, 시종일관 ‘너’를 그리워하는 글들이 가득하다. 자신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어머니, 우리나라 영화계 발전에 이바지한 유년시절의 영화 친구, 군 시절 인연을 맺었던 시인, 진정한 예술가의 품위를 보여주는 성악가,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는 출판사 등을 통해 그는 이 시대에 우리가 좀 더 세심하게 가꾸고 간직해야 할 소중한 가치들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아가 여기서 소개하는 시, 소설, 희곡 등의 문학작품과 영화들도 우리가 지금 누리는 일상의 소중함과 공동체적 연대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들이 주를 이룬다.

이렇게 저자는 홀로 있는 고독의 시간 동안 사색과 독서로 자신을 채웠으나, 자족하는 데 머물지 않고 편지를 쓰는 내내 ‘산책자’의 삶을 살았다. 어깨에는 배낭을, 주머니에는 현금을 넣고 거리로 지하철로 나가 하루에 몇 시간씩을 걸으며, 만날 수 없는 시대에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에서도 그의 시선은 몇 푼이라도 벌려 노점에 나온 할머니들, 세상에서 밀려나 이제는 불러주는 이 없는 노인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에게로 가닿는다.

코로나 시대 이후,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지금은 힘든 시기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의 삶에 대해서 진정으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_「지금도 어디선가 고통 받는 사람들」 중에서

잦아들 만하면 다시 고개를 쳐들기를 반복하는 코로나를 두고 우리는 어느덧 ‘위드코로나’를 이야기했고, 일각에서는 한발 앞서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코로나가 종식되어도 코로나 이전의 삶을 온전히 되찾을 수는 없을 거라는 암울한 진단도 있었지만, 유발 하라리를 위시한 국내외 다수의 학자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해법으로 ‘공존’과 ‘연대’를 말하며 새로운 시대를 전망했다.

공존과 연대가 전 지구적, 거시적 차원의 해법이라는 느낌이라면, 저자가 말하는 ‘적선(積善)’이란 소박한 개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더 힘 있게 다가온다. ‘적선’이란 보통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행위의 의미로 쓰이고 있으나, 말 그대로 풀이하면 ‘선을 쌓는다’는 뜻이다. 저자는 가끔 높은 차에서 내려와 거리를 걸으며 소외받는 이웃을 돌아보자고 말한다. 그러면서 노점의 물건도 사주고 구세군 냄비에 돈도 넣자고 말한다. 많은 돈을 적선할 수는 없어도, 그 돈이 그들을 힘겨운 삶에서 구하지 못한다 해도, 우리의 행동은 그들이 살려고 애쓰는 노력에 보이는 관심이자 응원이며,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도 모르게 행한 잘못을 되갚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끈질긴 바이러스는 우리의 일상을 앗아가고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지만, 그동안 우리가 감추고 잊으려 했던 많은 진실들을 수면 위로 드러내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이웃이 아프면 나도 아플 수밖에 없는 더 긴밀해진 공동체를 살고 있다. 코로나 시대에 내가 사는 법은, 저자가 글과 몸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소외되고 뒤처진 이웃을 살리는 것이 아닐까.

저자

박종호

풍월당대표,오페라평론가,문화예술칼럼니스트,정신과전문의등의직함을가지고있지만,그자신은품격있는교양인이자균형잡힌경계인이되는것을인생의가장중요한목표로삼는다.어떤곳에도속하지않고관찰하는사람을못마땅하게여기는한국사회에서정작필요한사람은날카로우면서도따뜻한시선을가진관찰자라고생각하는그는,보고듣고읽고공부하고생각하고쓰는삶을지속하기위해서라면어...

목차

들어가는글_홀로있어도풍성하게,풍월당이보내는편지

1부

언젠가는다시만나게될여러분에게
나는세상에서잊히고
생각하라,저등대를지키는사람을
그리운선생님
아버지의수첩
세상의모두가우리아버지들
어린시절의영화구경
잊을수없는영화친구
작약이흐드러지는계절에
우리안에있는우리가만든사슬을
나하나만이라도
30년을넘어날아든시집한권
모든것을버림으로써해방된남자
우리가먹을것을집까지가져다주는분들

2부

마지막사랑을향해서
우유를데우면서
평전을읽는즐거움
고독으로만이룰수있는위대한것들
그날에내가품위를지킬수있기를
책을통해서꿈꾸는상상의세계
힘든시기에더욱뚜렷해지는사랑의의미
가을이오면그리운도시
청라언덕이생각나는저녁에
산자락에서매일음악과함께했던시간
평생을헌신한가장들이마지막에모이는곳
우리는육체라는그릇에담긴존재
이토록예술가적인예술가
우리에게주시는한해의마지막기회

3부

공부하는노년
책읽는여행
삼촌,우리가잃어버린이름
들판의출판사,밭두렁의서점
길위에서만나는천사들
홑청의추억
지금도어디선가고통받는사람들
지하철학교
소유적인삶과존재적인삶
구세군냄비와할머니
택시운전사
빅토르위고를생각하며
반중조홍감
서로의삶을맞바꾼일생

마지막편지_우리에겐음악과예술이있어

출판사 서평

어떻게홀로인간답게만남의끈을이어갈것인가

아무도편지를쓰지않는시절이되었다.
하지만그는그동안진행해왔던대면강의를
영상강의로전환하면서매주편지를함께보냈다.
편지의수신인은수년간그의강의를들어왔으니오랜제자라할수도있고,
때마다한결같이풍월당을격려하고키워주었으니스승이라해도좋았다.
이‘제자선생님들께’2년반5학기동안80여통의편지가배달되었다.
이책에는그절반쯤을추려실었지만,한통한통의편지에는
받는이와나누고싶은글쓴이의이야기가굽이치며흐른다.
잔잔한웃음과세심한배려가행간마다넉넉하다.

코로나3년의기록,풍월당이전하는위로와감사의편지

“그러면서저는여러분과가장많은소통을하고있는셈이며,늘여러분의모습을떠올리면서씁니다.물론홀로고독한시간이기도하지만,그래서실은가장고독하지않은시간이기도합니다.지금옆에는제가좋아하는한잔의커피와한조각의과자가있고,이탈리아노현악사중주단이연주하는40년이넘은슈베르트의마지막네개의현악사중주곡이흘러나오고있습니다.100여년전만해도귀족이나누렸던호사를제가누리는것입니다.그러니저는고독속에서도행복합니다.”_「고독으로만이룰수있는위대한것들」중에서

이책은서울의한클래식음반가게풍월당이코로나시기를지내며써내려간3년의기록이다.풍월당은음반가게이지만클래식감상자를위한예술아카데미이기도해서,사회적거리두기로일상이멈추자아카데미에서하는음악강의도모두중단되었다.대면강의는영상강의로대체할수있었지만,매주강의실에모여함께나누던만남의온기까지대신하기에는아쉬움이남았다.이에풍월당을창립하고10년이상아카데미에서음악강의를해온박종호대표는그가‘제자선생님’이라부르는수강생들에게매주강의영상과함께손수쓴‘편지’를띄워보냈다.

난생처음겪는거리두기와일상의단절이기약없이길어지면서편지도차곡차곡쌓여갔고,2년반동안그렇게80여통의편지가모였다.이책은그중40여편정도를추려,이편지의본디수신자인제자선생님들뿐아니라코로나라는긴터널을지나는모든이에게띄우는편지로새롭게엮었다.

편지에는코로나로외출이제한되는기간동안,받는이들이‘홀로있어도풍성하게’시간을보낼수있도록다양한문화예술이야기와삶에서건져올린진솔한단상들을담았다.저자가직접읽고본좋은책과영화이야기,수십년의세월을거슬러어린시절로,젊은시절로돌아가본추억담,거리를걸으며만나는소외된이웃에대한따스한시선과연민이때로는유쾌하게,때로는가슴시리게우리를위로한다.

읽으며,추억하며,걸으며되새기는평범한것들의소중함

“이편지들에는반복해서등장하는주제가있다.어머니,추억,우리가잃어버린미덕,이웃에대한적선등이그러하다.이주제들은너무나중요한것이어서후렴구처럼우리마음을울린다.가끔은시가,추억이,내면의목소리가읽는이를정적의쉼표로안내하기도한다.그런데바로이런것이일상의음악아닐까.”_「들어가는글」중에서

학교가문을닫고,가족을만날수없는명절이이어졌다.마스크는우리를감염병으로부터지켜주었지만,상상이상으로사람들사이에불편과단절감을초래했다.‘언택트’라는이름으로실물과접촉하지않고도서로를연결하는디지털세상은이위기를발판삼아더정교하고더거대해졌다.이렇게‘홀로있음’을강제당한코로나기간에,사람들은다양한방식으로타인과함께했던시간들을채우고자기만의생존법을터득해나갔다.

저자는이시간동안어떻게‘홀로’있으면서도‘만남의끈’을계속이어갈수있을지고민했다.그고민의산물인이편지들에는문학과현실을오가며끊임없이‘나’를사색하고,시종일관‘너’를그리워하는글들이가득하다.자신을위해평생을헌신하신어머니,우리나라영화계발전에이바지한유년시절의영화친구,군시절인연을맺었던시인,진정한예술가의품위를보여주는성악가,자발적가난을실천하는출판사등을통해그는이시대에우리가좀더세심하게가꾸고간직해야할소중한가치들에관해이야기한다.나아가여기서소개하는시,소설,희곡등의문학작품과영화들도우리가지금누리는일상의소중함과공동체적연대정신의중요성을강조한것들이주를이룬다.

이렇게저자는홀로있는고독의시간동안사색과독서로자신을채웠으나,자족하는데머물지않고편지를쓰는내내‘산책자’의삶을살았다.어깨에는배낭을,주머니에는현금을넣고거리로지하철로나가하루에몇시간씩을걸으며,만날수없는시대에만날수있는사람들을만났다.그중에서도그의시선은몇푼이라도벌려노점에나온할머니들,세상에서밀려나이제는불러주는이없는노인들,보이지않는곳에서우리사회를굴러가게하는저임금노동자들에게로가닿는다.

코로나시대이후,이제우리는어떻게살아가야하는가

“지금은힘든시기입니다.하지만동시에우리가사는세상과우리의삶에대해서진정으로많은생각을할수있는기회입니다.”_「지금도어디선가고통받는사람들」중에서

잦아들만하면다시고개를쳐들기를반복하는코로나를두고우리는어느덧‘위드코로나’를이야기했고,일각에서는한발앞서포스트코로나시대를준비하기시작했다.코로나가종식되어도코로나이전의삶을온전히되찾을수는없을거라는암울한진단도있었지만,유발하라리를위시한국내외다수의학자들은포스트코로나시대의해법으로‘공존’과‘연대’를말하며새로운시대를전망했다.

공존과연대가전지구적,거시적차원의해법이라는느낌이라면,저자가말하는‘적선(積善)’이란소박한개개인이실천할수있는방법으로더힘있게다가온다.‘적선’이란보통형편이어려운사람들에게돈을주는행위의의미로쓰이고있으나,말그대로풀이하면‘선을쌓는다’는뜻이다.저자는가끔높은차에서내려와거리를걸으며소외받는이웃을돌아보자고말한다.그러면서노점의물건도사주고구세군냄비에돈도넣자고말한다.많은돈을적선할수는없어도,그돈이그들을힘겨운삶에서구하지못한다해도,우리의행동은그들이살려고애쓰는노력에보이는관심이자응원이며,지금의내가있기까지나도모르게행한잘못을되갚는것이기때문이다.

이끈질긴바이러스는우리의일상을앗아가고삶을송두리째바꿔놓았지만,그동안우리가감추고잊으려했던많은진실들을수면위로드러내기도했다.이제우리는이웃이아프면나도아플수밖에없는더긴밀해진공동체를살고있다.코로나시대에내가사는법은,저자가글과몸으로보여주는것처럼소외되고뒤처진이웃을살리는것이아닐까.

책속에서

사람의진가는위기에처했을때에드러나는법입니다.좋을때에는누구나멋지고관대할수있습니다.대신시련이닥쳤을때얼마나의연한모습을보이는가에따라서그의품격이결정된다고생각합니다.전염병이빠르게퍼진다는것은바이러스만이아니라,불안이확산되는것이기도합니다.또한편견과편협함도퍼져나갈것입니다.위생에도유의하고건강도챙겨야하겠지만,하루종일걱정만하고부정적인생각으로뉴스나유튜브에만빠져있는것도어리석은일입니다.그런다고사태가좋아지는것은아니죠.더큰적은우리마음속에있습니다.
-p.12~13

걸레질이야말로모든운동의기본같습니다.자기걸레질은남에게맡긴채로,자신은좋은차타고체육관에가서비싼돈내고딱붙는옷입고그러고는매트위에엎드려서또다시걸레질자세를취합니다.집에서걸레질은도우미아줌마에게시키고,그시간에자신은자동차뒷자리에앉아산꼭대기까지차로올라가서,절에서걸레질자세로절을합니다.절에서절하는사람보다도집에서걸레질하는사람이더부처님에가까울것같습니다.체육관의걸레질자세에는정신이있습니다.그러나진짜걸레질은삶의수고와겸허한자세를가르칩니다.세상의무엇하나몸을직접움직이지않으면이루어지지않습니다…….앞의글처럼걸레질에는침묵,겸허,청빈,실천이있습니다.어떤수도사의행위보다도진실된자세입니다.
-p.41

그렇게미성극장에서한참영화에빠져있을때에,갑자기극장뒤편의문이열리고는“종호야!”라고저를찾는여성의목소리가들립니다.저는놀라서어둠속으로숨지요.그러면좌우측의출입문에서도누군가가들어와서또“종호야!”합니다.심지어“종호야!”는“종호야,밥먹어라!”로발전합니다.극장까지와서밥먹으라는소리를들은사람은아마저밖에없을겁니다.제가보이지않으니까,어머니의명령으로집에서일하는누나들(어머니의양재일을돕는누나들,소위‘시다’누나들이저희집에는항상많았지요)이극장까지와서저를찾는것입니다.제가또영화보러간줄을어머니가아시면분명어머니에게맞을테니(어머니는원단을재는길이한마[91센티미터]짜리‘마자’로걸핏하면저의등이나어깨를내려치며저를키웠답니다)저는다른문으로달아나서집으로들어갔습니다.
-p.63~64

그때부터저는매주제글을오리고뒤집어서J의글을읽었습니다.그글에는얼굴을보지않아도행간에장난가득한그의눈이선하게보였습니다.그때우리는보지않았지만,매주그렇게지면에서만났습니다.얼굴을보는것이아니라글로써등을맞대고말이죠.전화번호야신문사를통하면알수있었겠지만,일부러연락하지는않았습니다.아마J도저를기억하리라생각했습니다.미술실에서함께영화와오페라얘기를하던두소년이30여년이지나서매주등을맞댄채로옛친구의따뜻한등을느꼈던것입니다.우리의칼럼은서로에게다시들려주는옛날이야기같았습니다.
-p.75

유명상표핸드백을사지못하는상태가구속이아니라,그핸드백을사야겠다는마음이바로구속입니다.그것이쇠사슬입니다.그런사람은원하던옷하나를사면당장은자유로워지는것처럼느끼겠지만,그것은며칠정도입니다.어쩌면하루로끝날지도모릅니다.대신에이번에는또다른핸드백이보이고,또또다른모델이보입니다.그다음에는또다른목표가생길겁니다.결국끊임없이사야하고끊임없이나가야하는길고긴사슬로본인의몸을칭칭동여매게됩니다.하지만한번만그사슬을끊으면,그때부터는세상이달라보이고,영혼에서부터자유로움을느낍니다.
-p.86

그리고제앞에서,저한명만앞에놓고,저를위해서,혼자서콘서트를열어주었습니다.그가불러준노래들로우리의30년이바로녹아내렸습니다.30년전정신병동에서환자들을모아놓고앉아서소총대신에기타를들고천진하게웃던그의얼굴이생각났습니다.그가부르는모든노래는자신이쓴시에자신이곡을붙인것입니다.직접쓰고짓고기타치고노래부릅니다.정말잘부르고또한감동적입니다.
-p.111

편지를기다리시는분들이많다고해서기분이좋았습니다.열심히쓰고있습니다.그런데……혹시여러분도편지를쓰시나요?한번써보세요.이런기회에컴퓨터나전화기말고종이에손으로편지를써서한번보내본다면,여러분이편지를보내는것이상으로받는분도즐겁지않겠습니까?누구에게보낼까생각만해도즐겁지않습니까?굳이가깝지않아도됩니다.단골생선가게할아버지나채소가게아주머니도좋지요.단골병원의까칠한간호사도좋고요.우리아파트경비원할아버지는어때요?긴편지가아니라도엽서나카드도좋지요.별내용이없어도됩니다.이건어때요?“덕분에잘먹고잘삽니다…….”정말고마워하실겁니다.안에작은책이나음반이나손수건이나양말이나과자라도넣으면더좋아할것입니다…….
-p.130~131

시인은“이세상에살아남기위해사랑을한것이아니라,사랑을하기위해살았다”고말합니다.맞습니다.사랑을하지않으면삶의의미가있을까요?그리고사랑은지나갑니다.그런데사랑했던사람이그리운것이아니라,연애가그리운것이아닐까요?시인은“한여자보다한여자와의연애를그리워하였다”라고말했습니다.나이를먹는다는것은사랑하는사람은사라지고,사랑했던기억만남는것일겁니다.늙어가는것은사랑했던사람이그리운것이아니라,사랑했던그시간을그리워하게되는것일지도모릅니다.
-p.140~141

아,그런데……갑자기눈시울이붉어집니다.이것은너무나익숙한광경입니다.어머니는밤에일어나시면이렇게우유를데워드셨습니다.저는그런어머니를보면서한번도우유데우는것을도와드린적이없습니다.그때는왜저러시는건지?무엇을원하시는건지?왜우유를마시는건지?왜데워서먹는건지?도무지알길이없었기때문입니다.밤이면어머니는일어나서속이쓰리다면서배를만지시고,우유를드시고,약을드시고,또쓰리다면서파란병의하얀위장약암포젤엠을찾으셨습니다.

데운우유잔을양손에조심스레잡고서,발목까지닿는긴잠옷을입으시고,발이시리다면서양말까지신고,화장실을갔다가방으로들어가시던어머니의조용한발걸음이떠오릅니다.저는이제야그때어머니의공복감을,속쓰림을,외로움을,불면의시간을,자주가야하는화장실을,빈뇨의고통을,쓸쓸한가을밤을,긴긴밤을,허망해진일생을알것만같습니다.
-p.145

즉각적인자극은인간이심오하고진중하고진실된행복을음미하려는행위를방해합니다.몇초이상앉아서음악을듣지못하는사람이수두룩합니다.책은커녕신문기사하나도다읽지못합니다.오직그들이좋아하는것은읽지않아도되고자극으로가득찬인스타그램입니다.대화를할때에SNS에서얻은것이아닌책에서얻은지식을말하는사람을만나기가어렵습니다.설탕에찌들고조미료에길들여진사람이깊이있는음식의맛을알기어렵습니다.이렇게대를물리는좋은음식들이사라집니다.음악처럼말입니다.

그래서풍월당은안간힘을다하여그런거대산업과맞서고있는것입니다.당연히우리가질것입니다.저는풍월당의미래를압니다.우리는언젠가장렬하게패배하고처참하게전사할것입니다.다만그날까지그래도세상에가치있는일을했다는얘기를듣고싶습니다.내일세상이멸망해도오늘사과나무를심는다는심정입니다.바보처럼,마치‘나무를심은사람’처럼말입니다.그남자가우리가원하는모습입니다.물론우리는그의발뒤꿈치에도미치지못하지만요…….
-p.168~169

그렇게남의비극을바라보면서우리마음의보험을미리드는것이오페라가주는가장큰힘입니다.하지만많은사람들은그사실을모르고있습니다.그것이오페라가하룻저녁의한낱오락이아니라위대한예술로대우받고여러예술들사이에서도최고의장르로살아남은중요한요인의하나입니다.우리는아름다운음악을들으러극장에가는것만이아닙니다.아리아를즐기러극장에가는것이아닙니다.유명한오페라가수를보러가는것은더더구나아닙니다.그렇다면그것은TV쇼에나오는대중가요가수들의뒤를쫓아다니는것이나별반차이가없습니다.오페라는비극을보는것입니다.인류역사상가장정신성이발전했던그리스시대가낳은비극의정신과교훈을만나는것입니다.
-p.174~175

피천득선생이썼던수필의배경이라며춘천사람들이자랑하던길을걸어천천히올라갔습니다.높은플라타너스가양편으로늘어선길을따라걸었습니다.코트깃을세우고양손을주머니에넣는것은필수지요.그런데제마음이급했던지,9월에는아직낙엽이별로없는것이아닙니까?그래도언제다시밖에나올수있을지몰라서도보위에드문드문떨어져있는커다란플라타너스잎사귀를찾아서징검다리건너듯이,거의폴짝폴짝뛰듯이,아니이건너무촐랑대보이니까성큼성큼,낙엽을찾아다리를벌려가면서일부러그위를신발로밟으며걸었습니다.아무튼가을의낙엽은밟은것입니다…….
-p.198~199

비뇨기과병동의일반적인호칭은모두‘아버님’입니다.그곳에서근무하는젊은간호사와보조원들과간병인들과직원들은모두가젊습니다.게다가제가잘못보았는지모르지만,의사들을제외하고는거의가다여성들입니다.그들은환자들을무심히,당연히,해오던대로,관례대로‘아버님’이라고부릅니다.거기에는‘아버님’이라는숭고한단어가가진,유교적이거나가부장적의미도,부모에대한어떤효심도,나이든사람에대한존경심도,가족의장로에대한경외심도,사회적으로헌신한노장에대한공경심도실려있지않습니다.그렇다고그녀들이며느리가되려는생각이있어보이는것도아닙니다.그런데도‘아버님’이라니,어색하고난감합니다.그렇다고그분들이환자들을불친절하게대한다거나잘못치료한다는말도아닙니다.그들은최고의의료지식과기술에다나무랄데가없는친절함과배려심도가지고있습니다.다만그곳에서부르는말이,똑같이집안에서그렇게부르던말의감정과는전혀상관이없는‘호칭’이되어버렸다는말입니다.
-p.225

그런삼촌들이사라진지가오랩니다.저는지금아이들이항상엄마나아빠하고만지내는것이안타깝습니다.그런것이아이가세상을보는시각을좁게할수도있고,부모를통해서단순한사고만을주입당할수있습니다.또한오직자신만을위하는부모의품에있으니,아이는자기위주가되고,그의가치관도소가족위주가되며,결국잘되어도시야가좁은소시민으로머물게됩니다.삼촌의존재는아이에게객관성을가르쳐주고,자신만을중심에두는세상이아닌넓은세상을알려줍니다.부모는늘최상을가르치고최고만을주지만,삼촌은이류도주고B급도주고때로는세상에C급도있다는것을알려줍니다.그래서아이는많은대체물을알고,세상을헤쳐갈여러방법도알게됩니다.세상에는부모가알려주는반듯하고모범적인세상만있는것이아니기때문에,삼촌이필요합니다.
-p.276

손님을대접할방도,앉을의자도,내놓을차한잔도,과자한조각도없었습니다.검은흙이묻은손을비비고다들들판에앉았습니다.꽃이진꽃밭너머서쪽으로사라지는석양을향해서한방향으로나란히앉아다함께서쪽만바라보았습니다.그렇게말이없는사람들을오랜만에보았습니다.말이많았던제가부끄러워졌습니다.모두가말이없었습니다.특별히할말도없었습니다.하지만모두가같은쪽을보고있었습니다.석양이그렇게아름다울수가없었습니다.그때만큼제마음이가난하고텅비고깨끗해진적이없었을겁니다.
-p.283

높은곳에앉아서는그들이보이지않습니다.즉우리가항상자동차를타고다니고,차로백화점이나고급슈퍼마켓에서만쇼핑을하고,으리으리한호텔의식당만다니면,세상은보이지않습니다.마치저구름위에서사는것과같습니다.세상을알려면세상에어떤분들이사는지,그들이어떻게생활하고있는지를알아야합니다.보아야합니다.그래야그들이보입니다.제가걸어보니,서울은하나의서울이아니었습니다.자가용을타고보는서울이있고,택시에서보는서울이있으며,걸으면서보는서울이다다릅니다.그리고지하철에서보이는서울은또다른서울입니다.

내려와야많이보입니다.자가용에앉아서는그런분들이보이지않습니다.버스에서보는사람과보도에서보는사람과지하철에서보는사람조차다다르더군요.그런곳에서는그들을만날수있는많은기회들이있습니다.
-p.297

걷기좋은가을입니다.걸어보세요.시골길이나산길이나공원이좋은데,제가왜굳이도심을걷는지이해하셨을겁니다.저는여전히자연보다도사람이좋습니다.저의관심사는사람입니다.특히소외되고힘없는사람들입니다.저는걸으면서배웁니다.길은저의학교입니다.저는책에서읽었던것들을길에서확인하고실천하려고노력합니다.제방이저의도서관이라면,길은저의실습실입니다.
-p.299

시인의시를읽으니어머니의일생이란생애전체가저를기다리는시간이었다는것을새삼깨닫습니다.저처럼못난사람은훌륭한예술을통해서야깨닫나봅니다.항상부모를기다리고부모에게달려오던아이는어느때가되면더이상돌아오지않습니다.그가“오래도록돌아오지않는때”가되면,그때에부모와아이는“서로의삶을맞바꾼듯”마주봅니다.그아이의성장에는평생을뒤에서“기다려준”부모가있었던것입니다.하지만아이는그것을모르고,그는이제오직자기아이만을기다립니다.그것도좋고당연한것이지만,그뒤에는어버이날에도지하철역에앉아있어야하는늙은부모가계시지요.
-p.374

제가이글을여기에옮기는것은여러분을향한저의마음도다르지않다는뜻입니다.비록한분한분일일이전하지는못하지만,이말씀을꼭드리고싶습니다.코로나시대의3년을서로얼굴을보지않으면서도풍월당을향한끈을놓지않고여전히손을잡아주고계신분들은이제모두저희의동지요,풍월당의식구이며,나중에는다저와함께추억을나눌친구들이라고생각합니다.그래서시를쓰던릴케의심정이나,그시를제게써준친구의심정이나,그것을다시여러분께드리기위해자판으로두들기고있는저의심정이나모두가같은것입니다.시인의말처럼우리는모두음악이라는,예술이라는공통의실로한몸으로묶여있습니다.
-p.3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