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문학과미학을토대로인간과예술의근원을성찰해온문광훈교수의『피렌체비가』가풍월당에서출간되었다.『피렌체비가』는르네상스시대의지적,인간적성취에대한감상과사유를담은책이다.외견상여행기의형식을취하고있지만,단순한관광이나견문의차원을뛰어넘는다.그가만나는미술,조각,건축등피렌체의유적들이그의생각을저위대했던르네상스시대로자꾸이끌기때문이다.당연히그의감상또한미술,조각,건축등개개의작품을넘어서서그심층에있는사상과이어지며,사상을이해하는과정에서당대의현실과정치,역사를다시금아우르게된다.그래서저자의피렌체기행은점차르네상스시대를향한사유의여정이된다.이책의서문은자코모레오파르디,『칸초네』(1820~1823)의발췌문으로시작한다.
“이폐허들을보라,이페이지와캔버스들,이돌과신전들을.
네가걷고있는지구가어떠한지생각하라.이사례들의빛이영감을주지못한다면,너는대체무엇을기다리는가?일어나가라.”
작품의감상과그것의심층에놓인사상의탐구.이기행은곧예술과문명이남긴총체적자취를향한두겹의여정이된다.저자문광훈은괴테가로마를염원했듯피렌체를오랫동안마음에품고살아왔다.그를사로잡았던그림과건축,거리와유적을직접눈으로확인하고그숨결을체화하며사유하는일은그의오랜염원이었고,그바람을따라두달간피렌체에머물며이책을써내려갔다.
삶의총체성:피렌체르네상스문화를총체적으로경험하다
이책에서다루는주요감상의대상은그림·조각·건축이지만,시와음악도넓은차원에서아우른다.예술은인간사여러풍경과깊이연관되기에배경에놓인정치사와이어지고,미학사와사상사에는자연스럽게문화사가뒤따른다.그래서이책은피렌체를둘러싼예술사·사상사·생활사·미학사·정치사·문화사가하나의흐름안에서엮여가는과정을보여준다.이를통해저자는1300~1500년대이탈리아르네상스문화를총체적으로읽어내려한다.
그러나또한이책은단순한감상의나열이나사변의모음에그치지않는다.이책에서다루는모든대상-그림·조각·건축·풍경·시·음악-은저자의언어속에서다시태어난다.그림은말을걸고,조각은호소하며,건축은손짓한다.곧저자는매순간작품과만나며,작품이걸어오는메시지에응답한다.이러한만남으로그는잊혀있던자신과다시마주하고,새로운하루를살아가게하는힘을새로이한다.
예술이삶의총체성과맞닿아있지않는다면,다시말해만일예술적체험이삶을새롭게해석하게하지못한다면얼마나무용할것인가.저자문광훈은이러한문제의식을저작내내에서환기한다.이책의문장과이미지에는저자의실존적감정,반응,응답이녹아있다.독자의마음깊은곳에도달하는호소력은바로이러한생생한언어로부터비롯된다.
지금여기의주체성:오늘날우리사회를비추는사유
예술작품과의개인적만남,이만남에대한응답으로끌어내는사유와성찰.거기서발견하는인간적삶의총체성등이이책의골자다.그러므로이여정은르네상스시대의탐구에서멈추지않고다시저자개인의삶으로돌아오고,궁극적으로는지금여기의한국사회를비추는시선으로수렴된다.지금의삶을잃고는세계역시상실된다는인식,생활속에서느끼고생각하는주체없이는어떤문화도의미를잃는다는문제의식이책전반에놓여있다.결국모든예술과문화의읽기는자기삶이일상적으로쇄신될수있다는희망위에서있다.
예술의자기화:‘예술을자기화하는’독보적시도
이책은외국의문화예술유산을단순히소개하거나해설하는데그치지않는다.생생한체험의언어로그유산을읽고,해석하고,재구성하려는시도이다.이시도를‘자기화’라이름붙일수있을것이다.외국의것을그저일방적으로수용하는게아니라주체적으로인식하고,창조적으로반응하여예술사·문화사·사상사속에서각대상이가지는의미가지금의한국문화에는어떤울림을주는지를검토한다.
그래서저자는한문장,한단락에서도독자를강요하거나강제하지않는다.개념을늘어놓거나규정하는데만족하지도않는다.감상과사유,언어화,자기표현,지금여기로의적용.어쩌면진정한여행은이러한내적과정을오롯이함께겪는것일테다.그렇게저자를따라그과정에동참하는독자는새로운느낌과새로운사고의계기를얻게된다.모든문장에깃든저자의체감과경험,책임감을가지고세심하게골라낸언어와표현이그의글쓰기중심부에자리하고있기때문이다.
삶의역사전체:전문성을넘어서는사유의힘
한국의미술관련출판물은대개그림에관해그림만이야기하는방식에머물러있다.양식·모티브·개념규정등의기술은예술을공부하기위한조건중하나에불과하다.그림을만들어낸화가가특정시대의생활인이었다면,그의삶과사회적관계,정치·역사적맥락역시함께읽혀야한다.개인의삶은언제나사회성과얽혀있기때문이다.
따라서미술사를바르게공부한다는것은결국‘삶의역사전체’를공부하려는태도에서비롯된다.개개의전문영역에갇힌인간의언어와문화유산은공허할수밖에없다.미술사는회화를넘어서예술사와맞닿고,예술사는미학사의일부이며,미학사는다시사상사로연결된다.이여러흐름이모여한시대의문화사를이루고,당시의생활내역을형성한다.하나의전공안에서여러사유의흐름을하나로꿰어내는작업이있어야만시간이지나도남을만한글이가능하며,그런책만이고전이될수있다.『피렌체비가』는그점을분명히의식하며쓰인책이다.
이책은독일어권·영미권은물론,이탈리아에도없는유형의작업을목표로한다.예술감상을사유로확장하고,내밀한실존적감정에서출발하면서도문화의미래와역사의방향을함께고민하려한다.예술사와사회정치사,문화사와사상사가저자의삶속에서하나로만나는지점,그것이이책이지향하는독자적성격이다.이하나됨의이름은‘삶의즐거운사건으로서의예술경험’이라할수있다.
몸으로걷고,사유로정리한피렌체의지도
2024년가을,저자는두달동안피렌체에머물며도시의길과광장,회랑과강변,성당과미술관을걷고바라보고다시읽었다.두오모의계단,아르노강변산책로,산타마리아노벨라성당의회랑,우피치와브랑카치예배당에서의시선은피렌체를단순한‘관광지’가아닌한문명이형성된장소로받아들이게한다.마사초의「성삼위일체」앞에서만난묘비명,“한때나는지금의당신이었고,당신도언젠가나처럼될것이다”는이기행의출발점이된다.더잘살기위해죽음을기억하라는(mementomori)요청이책전체를관통한다.
르네상스의예술은먼시대의유물이아니라지금우리의감정과생활에까지생생하게닿아있는살아있는세계였고,그안에는인간정신이이룰수있는가장높은성취가응축되어있었다.피치노의『사랑에대하여』가보여주는사랑의확장,마사초의「추방」이나라파엘로·브론치노의초상에서드러나는인간존재의품격은그가오랫동안마음에품어온이유였다.무엇보다도피렌체의문화는평온한시대가아니라혼란과갈등속에서비롯된것이었다.그복잡한현실을버티고넘어서는과정에서새로운예술과생각이태어났다는사실은그에게큰울림으로다가왔다.
다섯번의산책과여섯개의개념
책의1부는저자가피렌체를직접걸으며이어간다섯번의산책으로이루어진다.리베르타광장에서아르노강,산마르코,브루넬레스키의돔,우피치미술관으로이어지는길위에서마사초와조토,브루넬레스키와미켈란젤로를다시만난다.성당과광장,정원과언덕을거치며예술의기원,정치와종교의전통,삶의풍경이자연스럽게한장면안에서맞닿는다.
1부가현장에서의경험이라면,2부는그경험을떠받치는지적기반을깊이있게성찰한부분이다.원근법,초기인문주의,메디치가문과피렌체공화국의역사,신플라톤주의와자연신학까지르네상스를이루는핵심축들이세심하게정리되어있다.
세계의깊이를느끼는일은곧자신의마음을가늠하는일이며,그만남속에서정신과육체의구조가바뀌는듯한변환이찾아온다.그는이러한미적각성이인간의삶을바꾸는진짜힘이라고강조한다.
2,600매에이르는사유의기록과160장의이미지
『피렌체비가』는2,600매에이르는방대한원고와160여장의이미지가하나의구조로응축된드문작업이었다.한사람의저자가오랜시간축적해온사유의깊이와감정의밀도가원고한줄,이미지한장마다응축되어있어,책의구성자체가하나의긴호흡을필요로했다.
절실함이없는문장은쓰지않겠다는오래된다짐아래,이미지의위치와크기,캡션의뉘앙스와해석까지일일이심사숙고하여구성했다.이책에실린160개이미지중저자가“좋아하지않는것은하나도없다”고고백한만큼,모든요소는그의미학적기준과해석을바탕으로정밀하게선택된결과물이다.『피렌체비가』는이러한미학적집요함과출판의정밀함으로나온결과물로서지금여기에서가능한인문학적성취중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