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

$29.00
Description
풍월당의 출판브랜드 밤의책에서 오랫동안 공들여 준비한 미셸 슈나이더의 신작 『엄마』를 선보인다. 새로운 도서를 출간할 때마다 늘 깊은 설렘이 동반되지만, 이번 신작이 지닌 의미는 특히나 남다르다. 이 책은 전통적인 비평서의 틀을 깨고, 마치 한 편의 팽팽한 심리극처럼 전개되는 대단히 독창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저자가 구축해 놓은 매혹적인 문학적 미로 속에서 거장의 숨은 진실을 마주하게 될 첫 순간을 기분 좋은 긴장감과 설레는 기대감으로 고대하고 있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음악학자인 미셸 슈나이더가 20세기 문학의 거장 마르셀 프루스트의 가장 깊은 내면을 파고든다. 이미 글렌 굴드와 슈만의 심연을 탁월하게 그려냈던 저자는, 이번 신작 『엄마』를 통해 프루스트의 삶과 문학을 지배했던 유일한 존재, 어머니 ‘잔 베유(Jeanne Weil)’라는 거울을 통해 걸작이 태어난 숨은 가닥들을 집요하게 찾아 나선다. 저자는 프루스트가 평생 감추고자 했던 유대인 정체성과 동성애라는 두 가지 비밀, 그리고 어머니의 부재라는 절망이 어떻게 인류의 거대한 문학적 유산으로 피어날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서늘하도록 아름답게 보여준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차마 쓰지 못했던 숨은 아픔과 고독한 쾌락은, 그녀가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종이 위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슈나이더는 이 눈물겨운 글쓰기를 상실의 고통을 달래고 넘어서기 위한 거대한 고해성사로 읽어낸다. 단호하면서도 우아한 저자의 언어는 프루스트의 문장을 넘어 그 행간에 숨은 뜻밖의 진실을 날카롭게 풀어낸다. 그리하여 이 책은 거장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슈나이더의 정밀한 시선 아래에서 마침내 밤마다 문이 닫히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어머니의 입맞춤을 기다리던 우리 모두의 어린 시절, 즉 보편적인 기억으로 가만히 번져나간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깊은 지도를 그려낸 이 독특한 비평은, 프루스트를 이미 사랑하는 독자에게는 뜻밖의 눈부신 발견을, 아직 그를 읽지 못한 독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비밀의 입구를 선물할 것이다.
저자

미셸 슈나이더

출판사 서평

쓰려면 길어질
미셸 슈나이더의 문장은 참으로 경이롭다. 한 호흡으로 읽기 숨이 차면서도, 결코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기묘한 흡인력이 있다. 가장 감탄스러운 점은 프루스트를 다루는 글에서 프루스트 자신의 가장 큰 특징인 '끝없이 이어지는 긴 문장(만연체)'의 형식을 그대로 빌려와 그를 애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상과 형식을 일치시킨 최고의 글쓰기 중 하나다. 글의 첫머리에 "쓰려면 길어질"이라는 말을 툭 던져놓고, 정말로 프루스트의 온 우주를 단 하나의 문장 안에 집요하게 밀어 넣는다. 독자는 첫 구절을 읽는 순간 이미 이 거대한 문장의 흐름에 휘말릴 준비를 하게 된다.

거장의 등 뒤에서 발견한 비밀과 죄책감
지금까지 마르셀 프루스트를 다룬 수많은 평론이 그의 문학적 성취를 찬양하는 데 그쳤다면, 미셸 슈나이더의 시선은 철저히 그 너머를 향한다. 저자는 프루스트를 박제된 문학의 우상에서 내려놓고, 밤마다 어머니의 부재에 숨 막혀 하던 예민한 인간 마르셀의 내면으로 독자를 이끈다.
슈나이더는 프루스트의 삶 전반에 깃든 두 가지 비밀인 ‘유대인 정체성’과 ‘동성애’가 어떻게 문장 속 주름으로 숨어들었는지 정신분석학적 시선으로 정교하게 찾아낸다. 저자의 안내를 따르다 보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단순한 기억의 복원이 아니라, 어머니의 눈길을 피하려 했던 ‘기만’과 그녀의 금기를 넘어설 수밖에 없었던 ‘죄책감’이 빚어낸 거대한 고백의 기록임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프루스트의 가장 부끄럽고 슬픈 비밀을 들추어내며, 그것이 어떻게 문학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옷을 입게 되었는지 그 숨은 진실을 다정하게 증명해 낸다.

"인생은 너무 길고, 프루스트는 너무 짧다"
사람들은 흔히 프루스트를 두고 “너무 길다”며 고개를 저어왔다. 아나톨 프랑스는 “인생은 너무 짧고, 프루스트는 너무 길다”고 탄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슈나이더는 반대로 고백한다. “인생은 너무 길고, 프루스트는 너무 짧다”고 말이다.
저자는 프루스트의 긴 호흡을 슈베르트 음악의 ‘긴 길이’에 비유한다. 그 길이를 자른들 작품은 짧아 보이는 게 아니라 더더욱 끝이 없어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프루스트의 문장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그것이 밤마다 엄마가 오지 않던 ‘기다림의 시간’이자, 영원히 지속되길 바랐던 ‘불안의 두께’였기 때문이다. 슈나이더는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프루스트의 길이를 걷어내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고, 그 서두름 없는 덧없음의 시간 속으로 함께 침잠하자고 권유한다.
이렇듯 문장들이 깊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일반 독자들이 이 책을 쉽게 읽어내지 못하고 어렵게 느끼는 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저자는 "이건 실제 프루스트의 삶이고, 이건 소설 속 장면이다"라고 친절하게 갈라주지 않고 하나의 거대한 반죽처럼 뭉쳐놓기 때문이다. 인과관계가 명확한 서사 위주의 글이 아니라, 인물 내면의 안개 같은 심리를 긴 호흡으로 쫓아가기 때문에 첫 문장을 읽다가 끝에 도달하면 앞 내용을 놓치는 현상이 일어난다. 그러나 이러한 구체적인 묘사들 덕분에 문장이 길어지더라도 지루하거나 난잡해지지 않고, 오히려 독자의 마음속에 지워지지 않는 선명한 잔상을 남긴다. 결국 이 문장 자체가 하나의 작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느껴지며, 읽는 이로 하여금 프루스트의 삶이라는 지독하고 고독한 미로를 한 바퀴 함께 걷게 만드는 독보적인 필력의 산물이다.

침묵의 방에서 잉크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프루스트에게 어머니 잔 베유는 삶의 전부이자 숨을 쉬게 하는 산소 그 자체였다. 1905년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서른네 살의 마르셀을 깊은 어둠 속에 고립시켰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코르크로 방음 처리된 오스만 거리의 방, 슈나이더는 바로 이 은둔의 방이 거대한 문학적 실험실이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프루스트가 작가가 되는 과정을 ‘어머니를 종이 아래 묻기 위한 마음의 훈련’으로 짚어낸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는 그녀의 단호한 시선과 도덕적 금기 때문에 감히 쓰지 못했던 것들, 즉 자신의 악덕과 고독한 쾌락을 어머니가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써 내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완전한 상실이 프루스트에게 집필의 자유를 허락한 셈이다. 슈나이더는 프루스트가 흘린 잉크의 정체가 결국 곁에 없는 어머니를 다시 불러오기 위한 마법이자, 그녀가 사라진 세상에서 자신이 아주 사라지지 않기 위해 던진 편지였음을 조용히 보여준다.

어머니 잔 베유
실제 역사적 사실로 보아도 프루스트의 어머니인 '잔 베유(Jeanne Weil)'는 부유하고 교양 풍부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3개 국어에 능통했던 지적인 여성이었다. 평생 천식을 앓았던 프루스트는 "내가 아파야만 엄마의 완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무의식을 가졌고, 엄마는 성인이 된 아들의 모든 육체적 삶을 통제하려 들었다. 엄마의 무의식적 욕망은 아들이 다른 '성(性)'을 욕망하지 않는 것이었기에 프루스트는 이성애적 갈망을 거세당한 채 자랐다. 엄마가 내 방에 오지 않던 밤들에 대한 복수로 밤마다 남성들을 침실로 불렀던 프루스트에게, 동성애와 밤샘 글쓰기는 어머니라는 거대한 존재로부터 도망치고 동시에 그녀를 소유하기 위해 침대 위에서 밤새도록 글을 써 내려간 처절한 생존 방식이었다. 역설적으로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완전한 상실이 오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집필의 자유를 얻어 그녀를 종이 아래 묻기 시작한 것이다.

‘마들렌’이라는 운명과 ‘어미 없는 아들들’
프루스트의 문학을 ‘문학적 근친상간의 늦둥이’라 부르는 슈나이더의 통찰은 정교하다. 어린 마르셀을 재우기 위해 어머니가 읽어주던 조르주 상드의 소설 『프랑수아 르 샹피』 속 방앗간 여주인의 이름은 ‘마들렌’이었다. 어머니는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사랑의 구절들을 건너뛰며 읽어주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생략된 틈새가 프루스트의 문학적 몽상을 키워냈다. 훗날 잃어버린 기억을 깨우는 가장 거대한 매개체가 된 과자 ‘마들렌’의 이름이 바로 여기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더불어 슈나이더는 프루스트가 소설 속에서 동성애자들을 가리켜 기이하게도 ‘어미 없는 아들들’이라 불렀던 구절에 주목한다. 자식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려 들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무구한 아기”로 붙들어 매려 했던 어머니의 순수한 선의. 말하는 것은 곧 아픔을 뜻했기에 어머니가 살아계신 동안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마르셀은, 그녀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비로소 밤새도록 글을 쓰기 시작했다. 슈나이더는 프루스트의 밤샘 글쓰기와 은밀한 쾌락이, 사실은 자신을 가두었던 어머니의 세계에 대한 가장 우아하고도 잔혹한 복수극이었음을 밝혀낸다.
이 부분은 평론의 정수이자 가장 흥미로운 분석이다. 아버지가 부재하거나 배제된 채 오직 '어머니(마들렌)와 아들'만의 완벽한 결합을 꿈꾸는 환상이 프루스트의 내면에 있었고, 이러한 소년의 심리가 훗날 실제 프루스트의 동성애적 성향으로 이어지게 된 배경을 설명한다. 나아가 프루스트는 자신의 실제 연인이자 운전사였던 알프레드 아고스티넬리가 비행기 사고로 죽었을 때 절망했고, 그 비극을 소설 속 여주인공 '알베르틴'으로 변장시켜 고스란히 옮겨 적었다. 남성 연인을 여성으로 바꾸어 쓸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검열과 수치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과 상실을 기록해야만 했던 작가의 집요한 집착이 동성애라는 코드를 통해 소설 전체를 관통하게 된 것이다. 슈나이더는 동성애라는 정체성에 갇혀 사교계 스타로만 남았던 인물들과 달리, 프루스트는 그 고통과 성적 비밀을 문학이라는 거대한 세계로 승화시켜 위대한 작가가 되었음을 증명한다.

단 한 문장도 스쳐 지나갈 수 없는 예리한 통찰
미셸 슈나이더의 글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독자적인 문학이다. 음악학자이자 정신분석학자, 작가로서 자기가 가진 모든 기량을 이 책에 쏟아부었다. 그의 문장은 단호하면서도 우아하며, 프루스트의 복잡한 내면을 거울처럼 투명하게 비춘다.
"남들의 밤이 망각의 시간이라면 마르셀의 밤은 부활의 시간이다."
"그는 어머니가 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척 가장했고, 어머니는 자신이 알지 못한다고 믿게 하려고 애썼다."
슈나이더는 프루스트와 어머니 사이에 오간 편지, 소설의 초고, 그리고 삭제된 문장들의 행간을 집요하게 파고들며 그들의 은밀한 약속을 되살려낸다. 서로의 비밀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던 다정한 사랑의 신호들. 슈나이더의 언어는 이 모자(母子)의 관계를 한 편의 팽팽한 심리극처럼 그려낸다. 독자들은 프루스트의 문장을 읽는 것을 넘어, 슈나이더가 완성한 정교한 문학적 양탄자 위에서 거장이 평생 숨기려 했던 비밀을 함께 마주하는 깊은 울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전작인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나 『슈만, 내면의 풍경』에서는 음악이라는 거룩한 성벽 안에서 예술가들을 보호하듯 글을 썼고, 인간의 상처와 예술의 아름다움이 화해하는 서정성이 있었다. 반면 프루스트를 다룬 이 책에서는 슈나이더가 훨씬 더 집요하고 공격적으로 내면을 해체한다. 속옷과 배변을 검사하는 엄마의 시선, 복수를 위해 남성을 불러들이던 방 등 예술 뒤에 숨은 지질하고 축축한 사생활을 사정없이 들추어내기에 정서 전반이 다소 무겁고 가학적이다. 인간을 설명하는 데 너무 성공한 나머지 문학이 가진 신비와 신화를 다소 환원시켜 버린다는 아쉬움이 들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이 책은 “예술가가 왜 예술을 필요로 했는가”를 묻는 가장 인간적인 책이 된다. 슈나이더는 우리를 위로하는 대신 프루스트가 평생 누워 있었던 그 고독한 침대 위로 우리를 똑같이 눕혀버린다.

아버지 아드리앵의 그림자, 마음을 살피는 문학
흔히 프루스트의 문학적 유산은 어머니 잔과의 사이에서만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만, 슈나이더는 당대 최고의 의사였던 아버지 아드리앵 프루스트의 존재 또한 놓치지 않는다. 어머니를 통해 예술적 기질과 시적 호흡을 물려받았다면, 밤마다 침대 위에서 사랑과 아름다움의 징후뿐만 아니라 늙어가는 인간들의 무너져가는 신체적 모습들을 필사적으로 채집하고 들여다보았던 불굴의 태도는 의사였던 아버지의 유산이다. 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