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사물들 (악보, 자동 악기, 음반)

음악의 사물들 (악보, 자동 악기, 음반)

$15.00
Description
일반적으로 음악은 소리와 시간의 예술로 이해된다. 여기에 과하거나 동의하지 못할 부분은 없다. 그러나 만약 애초에 음악이 공간적으로 존재할 가능성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사물로서 인식되고, 사물을 통해 비로소 소리로 번역되는 것이 음악이었다면 어땠을까. 음악 비평가 신예슬의 『음악의 사물들』을 읽다 보면 드는 생각이다. 이 책은 음악에서 비롯했으나, 음악의 도구에서 벗어나, 음악의 가능성을 발견한 사물들을 다룬다. 구체적으로 작곡가의 악상을 기록하는 악보, 인간의 연주를 대체하는 자동 악기, 소리를 기록하고 재생하는 음반이 그 주인공이다. 그들을 따라 음악에 대한 질문이 연쇄한다.

저자

신예슬

저자:신예슬
음악비평가,헤테로포니동인.유럽음악과그전통을따르는근래의음악에관한의문으로부터비평적글쓰기를시작했다.서울대학교에서음악학을공부했고,2013객석예술평론상과2014화음평론상을받았다.

목차

서문
악보가말하지않는것
무너지는다섯개의선
듣는음악에서읽는음악으로
스스로연주하는악기의탄생
피아니스트의유령
자동피아노를위한연습곡
소리를재생하는기계
예술형식으로서음반

출판사 서평

무너지는다섯개의선
악보에적혀있는것,적히지않은것,적을수없는것,악보너머로나아가는것,악보가말하지않는것.20세기들어작곡가들은악보에의문을품기시작한다.그이전까지의악보가작곡가의머릿속에떠오른악상을최대한충실히옮겨적기위해다양한기호들을추가해나갔다면,현대작곡가들은공고히구축된오선지를흔들기시작한다.기호를없애고,변형하고,나아가전혀다른기보법을실험하기시작한다.두번째장,「무너지는다섯개의선」은존케이지를비롯해알반베르크,에릭사티,쇤베르크,슈토크하우젠,펜데리츠키,루치아노베리오,캐시버버리언,코닐리어스카듀에이르기까지,악보라는매체에서출발해음악의가능성을탐구한사례를다룬다.그러다만만치않은상대와마주친다.단순히음악의기록으로서가능성을탐색하는데머물지않고,음악을‘읽기’를요구한작업이있었기때문이다.”

듣는음악에서읽는음악으로
책은음악에포섭될수있을까.음악은‘읽기’의대상이될수있을까.독일작곡가디터슈네벨이펴낸‘모-노,읽기위한음악’(MO-NO,MusikzumLesen,이하‘모-노’)이던진질문이다.3장「듣는음악에서읽는음악」으로는순전히이책하나를다루는데집중한다.“그러나첫줄에작품제목을기입하던순간,문제가”생긴다.“이제목을일반적으로단행본을표시하는겹낫표안에넣을것인가,혹은음악작품제목을표시하는홑낫표안에넣을것인가하는문제말이다.우선은이제목을작은따옴표로묶은채이야기를계속해보자.”텍스트와그래픽기보,오선보,사진및그림등이섞인‘노-모’가음악이되기위해서는어떤전제조건들이필요한가.거기에적힌내용이‘음악적’이라면그건무엇을뜻하는가.

스스로연주하는악기의탄생
소위18~19세기서양음악의전통에서음악은작곡가,연주자,청자라는3인의구도안에서이뤄졌다.여기서연주자는빠질수없는요소였으며,연주는늘인간의존재를전제로했다.그러나산업혁명이후많은영역에서기계가인간을대체하기시작하자,꼭연주를사람이할필요도없어졌다.19세기말등장한‘피아노-플레이어’는사람대신피아노를쳐주는기계였다.아직축음기가조악한소리만들려주던시절,사람들은피아노-플레이어에열광했다.초기의불완전한기능은빠르게개선되었고,곧이어바이올린플레이어,트럼펫플레이어가등장했으며,급기야벽을가득채운오케스트라편성까지등장한다.“남은과제는분명했다.이악기가인간없이얼마나더인간처럼스스로연주할수있게만드냐는문제였다.”

피아니스트의유령
초반에등장한피아노플레이어는악보에적힌음표를이진법으로롤에기록해단순한연주만가능했지만,곧이어연주에필요한여러효과들이추가되기시작했고,나아가연주자의연주를그대로롤로기록하는데까지나아간다.‘리프로듀싱피아노’의등장이었다.제작사들은“실제피아니스트의연주를그대로들을수있다’는대대적인모토를”내세우고당대의피아니스트를섭외에연주를롤에기록하기시작했다.그러자음악의저자성도변화하기시작한다.과거에악보가작곡가의저자성을담보했다면,연주가사물로기록되기시작하자연주자도저자가될수있었다.나아가애초에자동악기에잠재해있던새로운음악의가능성들이탐구되기시작한다.

자동피아노를위한연습곡
사람이꼭연주를할필요가없다면,사람을상정하지않은음악도가능하지않을까.작곡가들은곧자동악기에숨은잠재성을파악하고사람너머에있는음악을탐구하기시작한다.6장「자동피아노를위한연습곡」은한스하스의「인터메조」,파울힌테미트의「기계적피아노를위한토카타」,에른스트토흐의「벨테미뇽전자피아노를위한세개의소품」과「기계적오르간을위한연습곡」,스트라빈스키의「피아놀라를위한연습곡」,그리고자동피아노의가능성을극악무도한수준까지추구했던콘론낸캐로우의‘자동피아노를위한연습곡’연작을다룬다.이들이추구한음악적가능성은“자신의곡에종종사람의손으로는도저히연주할수없는부분을포함해놨던찰스아이브스”의다음말로요약할수있다.“사람에게손가락이열개밖에없는것이작곡가의잘못인가?”

소리를재생하는기계
20세기초반호황을누렸던자동악기들은축음기의발전과함께빠르게역사에서잊히게된다.“기술의갱신과암투와도적질이횡행하며기업들의흥망성쇠가이어지던19세기말부터20세기초,발명가와사업가들은유럽과미국동부를중심으로포노그래프,그래포폰,토킹머신,그라모폰,빅트롤라등각자의이름으로축음기와당대최고의음악을담은음반을판매하기시작했다.”그러자흥미로운일들이벌어진다.음반은자신이들려주는소리가‘실제연주’와다르지않다고주장하기시작했으며,곧이어연주는자신이‘음반처럼’완벽하다고주장하기시작한것이다.서로가서로에게충실할것을요구하는이묘한상황에대한관찰은우리가음악에서듣기를바라는것이과연무엇인지묻는일과다르지않다.

예술형식으로서음반
녹음및재생기술의역사는지속적인노이즈제거를통해발전해왔다.녹음과정에서연주소리이외에끼어들수있는노이즈들은물론,재생과정에서음반이내는온갖노이즈들은제거의대상이었다.그러나어느순간음반자체의소리가음악안으로포섭되기시작한다.8장「예술형식으로서음반」은1930년음반재생기법을이용해음악적가능성을탐구한그라모폰무지크부터,어쩌면음악이지금과는전혀다른존재가됐을지도모를제안을했던알렉산더딜만과라슬로모호이너지,“음반만이들려줄수있는그특유의소리를음악적으로이용하는”턴테이블리즘이나케어테이커의사례까지음악으로서매체의가능성을살핀다.

소리의오브제,구체음악
악보,자동악기,음반.“일반적으로음악의현장에서이사물들이딱히주목받을필요는없었다.음악을충실히기록하거나되살려낸다는제기능을완수한뒤사라지면”그만이었다.그러나한편으로이사물들은그“음악의존재론적조건으로기능”했고,지금까지그조건을살피며떠오른질문들은간단치않았다.그질문들을하나로요약하면‘음악이란무엇인가’,혹은‘음악적경험이란무엇인가’일것이다.결국이책은답하기어려운이질문에대한실마리를,손에잡히는사물들부터찾아보려는일련의시도이다.그리고마지막장의주인공은사물을넘어,세계의모든소리를음악의재료로사용할것을제안했던피에르셰페르의구체음악이다.음악은소리의예술이지만모든소리가음악이아니라면,“음악이아닌소리는무엇이되고,음악을듣는다는것의의미는어떻게변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