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마감의나날을함께한음악들
음악을틀어놓아야일이잘되는사람이있는가하면,오히려음악이일에방해가되는사람이있다.전은경은후자에속했던사람이다.“음악이좋으면좋은대로정신이팔려집중력이저만치달아나고,싫으면싫은대로거슬”리는그녀는정작글을쓰거나마감할때는음악을잘듣지않았다고고백한다.그러나마감이시작되기직전,일하는틈틈이,늦은밤집으로돌아가며듣던음악이없었다면그녀의삶은몹시팍팍했을것이다.이책에실린음악은그렇게고단한나날을그녀와함께하며마감의긴장을풀어주었던음악들이다.
18년전기자생활을시작할때만해도그녀는자신이이렇게오래기자로,편집장으로,디렉터로잡지를만들줄은몰랐을것이다.월간『디자인』“400호기념호를진행하면서500호도내가할것이라고는당연히생각하지않았다.1년도아니고8년4개월후의일을누가알겠나?그냥한달한달바쁘게일하다보니그렇게되었다”며담담히지난시간을되돌아보며,그녀는“겨우겨우마감을맞추면서나자신에게주먹질하고싶었던적이한두번이아니”라며아쉬움을토로한다.
그렇게오랫동안다양한분야와주제에걸쳐특집을기획하고,여러나라를오가며전시와행사를취재하고,수많은국내외디자이너와전문가를인터뷰하며쌓인시간은한권의책이되었다.재즈와클래식,영화OST와국악,시티팝,보사노바,오페라에이르기까지이책에소개된음악만큼이나많은사연과함께.마감하면서듣는음악이란이런재미있는글을쓸좋은핑곗거리이자,이제야비로소마음편히음악을들으며원고를마감할수있게된그녀가독자에게보내는초대장이다.
책속에서
피터새빌은영국의포스트펑크록밴드조이디비전의첫번째앨범을위해『케임브리지천문학대백과사전』에실린초신성의방출선스펙트럼이미지를차용했다.에고로가득찬사람의마성의디자인이아닐수없다.1979년에나온앨범이지만어쩐일인지힙스터를상징하는이미지로등극해패션디자이너라프시몬스를비롯해유니클로에서도『미지의즐거움』앨범커버를활용한티셔츠를선보인바있다.록밴드앨범에서티셔츠와에코백으로매체를갈아타더니패션브랜드로승화된듯하다.
가끔뵐때마다좋은책을선물해주시는어떤서점대표님을연말에만났을때,내상태를어찌알았는지이바라기노리코의시집『처음가는마을』을건네면서이렇게말했다.“편집장님,77쪽을보세요.”“바싹바싹말라가는마음을남탓하지마라”라는문장으로시작하는「자기감수성정도는」이라는시였다.시를읽을마음의여유는없었지만,내마음이강퍅하게느껴질때마다내감수성정도는스스로관리해보려고빌에번스를듣는다.
흔한이름12위쯤할것같은은경대신수전손택,프랑수아즈사강같은이름이었으면나도훨씬멋진글을썼을터라고,이름탓을해본다.매달마감의고비는편집자의글을쓰는일이었다.오랫동안많은기사를쓰고,한달에40쪽이넘는특집도잘도쳐냈건만,겨우A4한장밖에안되는분량인데그걸쓰는게어려웠다.
각성제를먹는것처럼집중과긴장을하고싶어서스티브라이히의『18인의음악가를위한음악』을듣기도한다.필립글래스와함께미니멀리즘음악의개척자로이름난스티브라이히의대표작인『18인의음악가를위한음악』은거의1시간분량이다.반복적으로들리는음계를따라가다보면적당한긴장감이생기는데마감을독촉하는것처럼들린다.이곡이끝나기전에편집자의글을다쓴다,이런식으로몰아붙이는것이다.
『달의어두운면』은시적인가사로자본주의를비난하고시간,돈,광기,죽음처럼사람들을허무하고미치게만드는것들을다룬다.예전에는핑크플로이드를잘난척하는음악광들이나좋아하는밴드라고생각했는데,이제는음악을만든다는게책한권을쓰는일이라는걸알게되었다.음악과독서는비슷한경험이다.내가사서라면이앨범은철학서가에꽂아두겠다.
바로크시대에는어땠는지모르겠지만,텔레만의음악이21세기직장인이식사할때어울리는음악인지는잘모르겠다.하지만누군가“베토벤교향곡같은뜨거운음악은타펠무지크로적합하지않다”라고한말에는크게공감한다.천천히세공하는듯한텔레만의음악은언제들어도질리지않고,물흐르듯이어져맛없는걸먹어도체할일은없을것같다.
황량한풍경을배경으로수화기를들고있는사람의손을포착한사진이쓸쓸하면서도초현실적이다.누구의사진인가했더니독일의현대음악가닐스프람의아버지이자ECM의사진가로잘알려진클라우스프람이었다.이앨범의뒤커버에등장하는팻메시니와피아노를맡은라일메이스의사진도좋다.팻메시니를들을때마다느껴지는감정이뭘까생각해보니,그것은어디론가떠나야할것같은방황하는마음을부추기는것이었다.
잡지와다르게약속했던시간을한참넘기긴했지만이원고또한이제슬슬마감할시간이다.한번도진지하게생각하지않았던,이것저것잡다하게듣는나의음악취향을알아가면서온전히나랑하는시간이었다.그동안무언가를기념하기위해마감했던것과달리마감을기념하며무얼들어볼까뒤적거리다가찰리헤이든의『야상곡』을골랐다.
---본문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