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라르트윙어르
저자:헤라르트윙어르 1942년아른험에서태어난헤라르트윙어르는암스테르담헤릿릿펠트아카데미를졸업한후1975년부터평생에걸쳐20여종이넘는글꼴을개발했다.그는특히신문,서적및교통시스템의가독성을향상시키기위해많은노력을기울였다.대표적인글꼴로네덜란드도로표지판을위해디자인한ANWB폰트,네덜란드와스칸디나비아신문,옥스퍼드영어사전에사용된스위프트(1985),『USA투데이』,『슈투트가르터차이퉁』을비롯해몇몇유럽신문에쓰인걸리버(1993),스코틀랜드와브라질신문에사용된코란토(2000)등이있다.이외에우표,동전,잡지,아이덴티티디자인등폭넓은분야에서활동하는한편헤릿릿펠트아카데미와레이던대학교에서학생들을가르쳤으며,특히1993년부터는25년간영국레딩대학교에서강의하며젊은세대의글꼴디자이너들에게영감을주었다.『텍스트에대한텍스트』(1975),『글꼴디자인이론』(2018)등을저술했으며H.N.베르크만상(1984),마우리츠엔스헤데상(1991),SOTA타이포그래피어워드(2009),피트즈바르트공로상(2012),TDC메달(2017)등을수상했다.그의책『당신이읽는동안』(1997,2006)은영어,독일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등일곱개언어로번역되었다. 역자:최문경 그래픽디자이너.로드아일랜드스쿨오브디자인과바젤디자인대학에서그래픽디자인과타이포그래피를공부했다.글자의시각이미지에관심을가지고브랜드‘한때활자’를운영,『Oncetype』,『구텐베르크버블』등의전시를열었다.타이포잔치2015큐레이터,홍익대학교겸임교수,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이사를역임했으며,『타이포그래피교과서』,『당신이읽는동안』을번역했다.현재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에서스승으로일하고있다.
개정판을펴내며서문/크리스토퍼버크질문들실용적인이론간극사라지는글자들글자의얼굴프로세스조각들전통독자의눈글꼴디자인마장마술일탈보기와읽기선택공간환영신문과세리프레퍼토리공존읽는다는것역자후기주(註)참고문헌찾아보기
개정판을펴내며네덜란드글꼴디자이너헤라르트윙어르의책『당신이읽는동안』(1997,2006)은지금까지일곱개언어로번역되어많은이들의아낌을받았다.저마다언어가다르고,그만큼쓰고읽는방식도다른여러나라에서이책이지금껏널리읽히고있다는사실은,그만큼여기실린내용이특정문화권의관습을넘어섬을시사한다.윙어르가평생에걸쳐좇았던‘읽는다는행위’의메커니즘과‘글꼴’사이의관계는비단글꼴디자이너가아니더라도매일수많은글자를읽으며살아가는우리에게유용한관점을제공한다.이책의한국어번역본이처음나온2010년대초는한글글꼴및타이포그래피에큰변화가일던때였다.2010년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가『글짜씨』를창간하며글꼴에대한학술적터전을마련했으며,2011년에는국제타이포그래피비엔날레가재개되어글자를둘러싼다양한담론이생성되었다.같은해발표된안삼열체는이후한글글꼴디자인에새로운물결을일으킨독립글꼴디자이너들의활동을예견했다.한편모니터나휴대폰등디지털기기에표시되는텍스트는윙어르가예견한대로기술발전과함께인쇄된텍스트와점차그차이를좁혀나갔으며,2000년대중반부터이어져온기업과지자체의글꼴개발도더욱활발해졌다.무엇보다도디자이너들이그토록원하던본문용한글글꼴이점차늘어나기시작했다.글꼴에대한출판활동도눈에띈다.2012년에『타이포그래피사전』이출간되었으며,『당신이읽는동안』한국어판이나온지1년후인2014년에는『한글디자이너최정호』가출간되었다.한국에서도드디어한명의글꼴디자이너를깊게다룬책이출간된것이다.윙어르가글꼴디자인에있어그토록전통과관습에중심을두고작업할수있었던배경에는라틴알파벳권의두터운글꼴디자인역사가있다.“인쇄활자는500년이상의역사를가진다.그전신을찾아거슬러올라가면1500년전로마시대에닿는다.(…)역사를알고그위에서작업해나가면되는것이다.우리의지식과기량이어디에서왔는지알면어디로갈지도알수있다”는그의말을내심부러워하던터라반가운마음에단숨에읽어내려간기억이있다.그전까지는글꼴디자인실용서에서드문드문등장하는한글글꼴의역사를접할수있었지만누가어디서,어떻게해서나온글꼴인지자세히알길이없었다.현재우리가사용하는한글글꼴에큰영향을미친최정호가1950년대중반동아출판사체를개발할때의일화는윙어르를떠올리게한다.“나는완전히광인이되었다.책이든신문이든아무리읽어도그내용을파악할수없었고,다만보이는것은그글자하나하나가지고있는뼈대요,늘어서있는글자의종합적인구조뿐이었다.”―안상수·노은유,『한글디자이너최정호』(파주:안그라픽스,2014),35.윙어르의버전은이렇다.“앞부분을보던나는갑자기여태껏책을하나도읽지않았다는사실을깨달았다.12페이지정도를넘기는동안책에쓰인,내게새로웠던글꼴만본것이다.(…)덕분에몹시읽고싶은책이었는데도12페이지를넘기는동안내가한것이라고는b,d,r이좁다든가,y가넓다든가,ll과tt처럼글자가결합된형태만관찰하고있었다.”윙어르는평생20여종이넘는글꼴을디자인했지만,교육자로서도많은공헌을했다.네덜란드의릿펠트아카데미와레이던대학교에서도학생들을가르쳤지만,교육자로서가장큰영향을끼친곳은영국의레딩대학교였다.1993년부터생을마감하기일주일전까지25년간그곳에서가르쳤다.특히1999년크리스토퍼버크와제리레오니다스가설계한글꼴디자인석사과정커리큘럼에서윙어르의강의와개인지도는이과정붙박이로20년간진행되었다.암스테르담에서때론새벽비행기로출발해아침9시면학교에도착했다는윙어르는1년에일곱번,한번에나흘씩머무르며레딩대학교에서가르침을지속했다.이과정을졸업한그의제자에따르면윙어르는위트가넘치는소문난멋쟁이였다고한다.그런그가이번개정판소식을들을수없게되어아쉽다.2016년암진단을받은윙어르는혼신의힘을자신의마지막저서에쏟았다고한다.그리고2018년『글꼴디자인이론』(TheoryofTypeDesign)이출간될즈음그의부고소식이들려왔다.그로부터3년이지나윙어르의레딩대학교동료였던크리스토퍼버크는윙어르에관한모노그래프『헤라르트윙어르:글자로살아가는삶』(GerardUnger:LifeInLetters,2021)을펴냈다.이번개정판서문은그에게부탁했다.(최문경,박활성)발췌많은사람들이세리프란말을들어본적이없을것이다.이것은이를테면사람들이자동차정비소를방문할때벌어지는일과비슷하다.수많은사람들이매일자신의자동차엔진에서나는소리를듣지만우리는평소와다른소리가날때야비로소거기에관심을가진다.자동차정비소에서정비공이타이밍벨트에관해이야기하면꽤나설득력있게들리긴하지만,사실우리는타이밍벨트가뭐고자동차에서어떤역할을하는지모른다.후드를열고엔진을살펴봤자별소용없다.글자도마찬가지일까?신문헤드라인에사용된글꼴이어떻게생겼는지정확히묘사할수있는사람은극소수에불과하다.우리가그에대해가진지식은기껏해야반무의식적이기때문이다.하지만신문의글꼴을바꾸면사람들에게꽤나강력한감정을불러일으킬수있다.1843년프랑스공증인르클레르는책전체를반쪽짜리글자로인쇄한짧은책을한권발행했다.보이는것은글자의위쪽뿐이었다.르클레르의생각은책을싸게만들자는것이었다.글자를반으로나누면원가도그만큼줄어들지않겠냐는게그의생각이었다.여기에자극을받은프랑스의안과의사이자에스페란토학자에밀자발은같은실험을반복했다.이실험을통해자발은우리의눈이문장을따라조용히움직이는것이아니라점프한다는사실을밝혀냈다.또한그는글자의윗부분만봐도글을읽을수있음을알아냈다.반대로글자의아랫부분만보는경우에는읽기가매우어려워진다.그렇다고아랫부분을없애자는건아니지만,어쨌든글자의윗부분이아랫부분보다더변별력이높다는건분명하다.우리가단어를읽거나인식할때단어의완전한시각적형태는중요하지않다.그럼에도불구하고읽기에대해논의할때우리는항상단어전체,즉실루엣이나윤곽을포함한단어의형태전체를읽는다는식으로생각해왔다.단어의일부를흡수해서인식하는과정에서우리가단어전체를읽는다는인상을받기때문이다.문맥을통한예측도단어들을그냥통과시키는데자주일조한다.이미읽은것,또는알고있는지식으로부터연역하여의미를파악하기때문이다.연구결과에따르면숙련될수록,또많이알고있을수록독자들은단어를잘건너뛴다.실제로무려15퍼센트의내용어(명사,형용사,동사)와60퍼센트의기능어(관사,전치사,접속사)를건너뛴다고한다.평균을따지면총단어의20퍼센트에해당하는양을우리는그냥지나친다.검은색모양을흰색위에붙여놓고잘관찰하면경계부분이다른부분보다대비가커보인다.검은색은더검게보이고흰색은더희게보이는것이다.이는‘가장자리탐지’(edgedetection)와관계된현상이다.우리망막의신경세포들은그런경계에서흑백을더증폭시킨다.내디자인의큰속공간은이러한눈의특성을활용한것이다.속공간을더밝게함으로써글자의검은부분이더어둡게보이고이로인해더읽기쉬워진다는생각이다.물론이는내가경험에기초해세운(1972)이론이라서과학적으로증명할필요가있다.그러나오랜세월사람들이내게들려준바에따르면효과가있었다.나는매스컴을사랑한다.특히시공간을초월해서수백만의사람들을서로만나게해주는관습이라는거대한뗏목에매스컴이전적으로의존하는방식을좋아한다.그것이내가관습을소중히여기는이유다.따라서나는무슨일이있어도사람들에대한실험을게을리하지않을것이다.나는사람들을관습적특징들과섞이게하고싶다.대부분의내디자인에오래된친숙한그림으로녹아들어있는것들,그저인식만할수있는그런존재들과말이다.조지버나드쇼는다음과같은말로유명하다.“의심스러울때는캐즐런으로정하라.”물론캐즐런은안락의자에앉은것처럼읽기편하고보기에도무난한글꼴이다.또한매우중성적이어서어떤주제라도소화할수있다.그러나캐즐런대신헬베티카로페이지를채워도무방하다.헬베티카역시많은사람들이아무런의심도하지않고그저계속쓸뿐이긴하지만말이다.따지고보면19601980년사이에헬베티카가이것말고다른이유로사용된사례가얼마나될까?막판에는너무많은회사들이헬베티카를사용하는바람에이것이‘회사’를의미하는글꼴로인식될정도였다.20세기의마지막10년동안에는로티스(Rotis,1989)가똑같은운명에처했다.글자가만들어내는환영은크게두가지다.하나는글을읽으면서저자가말한내용이우리의마음속에그려지는환영이다.한편세밀한부분으로들어가면다른환영이나타난다.많은세부요소들이실제로눈에보이는것과다르게보이는것이다.글자들은바람직하지않은시각현상을상쇄시키기위한시각적보정작업으로가득차있다.제대로보이려면우리눈을속여야하는것이다.마치먹으면서하는다이어트광고처럼들리긴하지만,그게글자가작동하는방식이다.나는개인적으로19세기초영국의기상학자루크하워드(17721864)가개발한구름문자세트를무기고에추가하고싶다.그는구름의분류체계를세우고권운이나적운같은이름을붙인사람인데,흥미롭게도그가만든이기호들은글자의기본형태를구축하는것과근본적으로유사한요소로되어있다.변화무쌍한모습으로늘내게영감을주는구름들,이것이바로내가구름을사랑하는이유가운데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