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 - 착상 시리즈 2

비극의 탄생 - 착상 시리즈 2

$18.00
Description
사상과 예술과 학문을 도발한 반시대적 선언문니체 철학의 전체 주제를 배태한 기념비적인 첫 저작
“현존과 세계는 오직 미적 현상으로서만 정당화된다.”
“《비극의 탄생》은 나에게 모든 가치의 첫 번째 전도였다.하여 나의 의욕과 나의 능력이 생장하는 토양으로 나 다시 돌아가 서노라,나, 철학자 디오니소스의 제자가, 나, 영원회귀의 스승이…”

니체라는 비극적 영웅을 세계의 무대에 올린 디오니소스적 분출학문의 문제 자체를 탐구한 “불가능한 책”

젊은 니체가 이론적 세계관에 투쟁하여 내놓은 첫 저작, 《비극의 탄생》 개정판이 읻다의 철학 시리즈 ‘착상’ 두 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니체는 “모든 것은 지성적이어야만 아름답다” 혹은 “지자만이 유덕하다”라는 소크라테스의 예술 폄훼 사상과 이성주의를 비판하고, 질서 정연한 ‘아폴론적인 것’에 대비되는 도취와 광기 등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가치를 재조명한다. 이러한 의도 아래 니체는 “학문을 예술의 광학(光學)으로”, “예술을 삶의 광학으로” 보려 하며,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는 두 예술충동의 투쟁에서 마침내 비극이 탄생하기까지의 그리스 예술사와 비극의 기원을 설명한다. 이 책은 당시 니체가 몸담던 고전 문헌학에서 벗어나 학자들을 “노예계급”이라 폄하하고 동시대의 사상과 예술, 학문을 도발하기에, 출간 당시 “기발할 정도로 경망스럽다”는 등의 혹평을 받으며 외면당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삶과 예술, 학문의 본질에 대한 니체의 철학 전체를 배태한 고전으로 손꼽힌다. 니체 스스로 “불가능한 책”이라고 자평한 이 책에서 우리는 비관주의, 쇠퇴, 붕괴, 실패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접할 수 있다.

니체의 생애를 결정적으로 뒤바꾼 하나의 운명,《비극의 탄생》의 기원

“지금 내 안에서 학문과 예술과 철학이 함께 자라고 있다.
분명 언젠가는 켄타우로스를 낳을 것이다.”

25세의 젊은 나이에 바젤 대학교 문헌학 교수로 임명된 니체는 대학 시절부터 이미 명성 높은 문헌학자로 촉망받았다. 그러나 1865년 라이프치히 대학에 다니던 중 우연히 마주친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압도당했다. 이어 1868년 바그너와 처음 만나 쇼펜하우어와 음악에 대해 대화를 나눈 뒤 문헌학에 심각한 회의를 품고 철학 논문을 구상하게 된다. 그는 바그너 부부와 수시로 교유하며 1870년 여름부터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을 집필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비극에 대한 문헌학적, 역사학적 탐구가 아닌 철학적 해석을 논한 글로서 《비극의 탄생》의 바탕이 되었다. 그 해 겨울 니체는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을 다듬고 축약한 원고 〈비극적 사상의 탄생〉을 들고 바그너 저택을 방문했고, 리하르트 바그너의 아내 코지마 바그너에게 생일 선물로 건넸다. 이 논고는 후에 《비극의 탄생》 전반부인 1~10장을 구성하는 요체가 된다. 이어 1871년 니체는 소크라테스주의에 의한 비극의 죽음을 다룬 강연 원고 〈소크라테스와 비극〉을 개정하여 〈소크라테스와 그리스 비극〉이라는 소책자로 자비 출판했으며, 이후 일부 수정을 거쳐 《비극의 탄생》 11장~15장에 수록한다. 이 해 니체는 《비극의 탄생》 후반부 집필에 매진하며, 이듬해인 1872년 새해 벽두에 출간 작업을 마무리하고 헌정사인 〈리하르트 바그너에게 바치는 서문〉과 함께 《비극의 탄생》 초판본을 바그너 저택에 전했다.

이론적 세계관과 비극적 세계관의 영원한 투쟁

“예술의 발달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에 달려 있으며, 이는 번식이 두 성에 의존하는 것과 같아서 끊임없는 투쟁과 간헐적인 화해가 있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라는 두 예술충동은 각각 ‘조형·영상·언어’와 ‘음악’을 충동하는 “예술가적 권력들”로서, 양자의 투쟁과 화해를 통해 서사시, 서정시, 비극 등의 예술장르가 탄생했다. 티탄전쟁에서부터 호메로스 서사시, 도리스 예술, 서정시, 비극에 이르는 여정은 그들의 불일치와 일치가 남긴 “끝없는 흔적”이다.(1장∼4장)
니체의 통찰에 따르면, 언어와 음악 간의 비밀한 관계를 드러내는 서정시에서 비극이 싹텄으며, 언어·음악·춤이 함께 펼쳐지는 디티람보스라는 제의예술과 가무단에서 비극이 직접적으로 기원했다. 오케스트라 위 가무단의 가무서정시와 무대 위 배우들의 대화, 즉 가무단의 디오니소스적 서정시와 무대의 아폴론적 꿈세계의 비의적 합일이 바로 비극이다.(5장∼10장)
그러나 에우리피데스는 극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제거하고 순수히 비디오니소스적인 예술·풍습·세계관 위에 건립하려 했고, 소크라테스는 지성과 앎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고 비극을 비철학적인 자극제, 유익하지 못한 예술로 간주하여 배척했다. 그로 인해 그리스 비극의 예술작품은 몰락하고 만다.(11장∼15장)
학문의 정신, 이론적 세계관이 한계에 다다르고 보편적 타당성에 대한 요구가 파멸할 때 비극의 재탄생을 희망할 수 있다. 그 표지는 바로 “음악 하는 소크라테스”, 즉 음악마저 현상(現像)을 모방하는 예술로 전락시키는 문화형태다. 이 황폐한 문화에서 학문의 낙관주의가 한계에 부딪히며, 디오니소스적 정신이 서서히 깨어나고 비극적 문화가 유입된다. 바흐, 베토벤, 바그너로 이어지는 독일음악과 칸트, 쇼펜하우어의 독일철학은 “독일적인 것들의 회복”이며, 디오니소스적 정신의 재각성, 비극의 재탄생이다.(16장∼20장)
비극은 자체 안에 음악 황홀경을 흡수하고 비극적 신화와 비극적 주인공을 제시한다. 음악의 도움을 입은 비극적 신화는 언어만으로는 결코 성취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 의의를 성취한다. 니체는 바그너의 음악극 〈트리스탄과 이졸데〉 제3막을 사례로 들어 설명한다.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합일, “완성된 극과 그것의 음악 간에 섭리하는 예정조화” 덕분에 무대의 극은 최고 수준의 현시(顯示)에 도달하며, 음악은 무대의 세계를 내밀하게 비추어 무한히 확장시킨다.(21장∼25장)

원문의 문체적 특징을 살리며문헌학적 비평의 자세로 접근한 공동 번역

문헌학자였던 니체는 고대 언어에 능통하여 낱말의 의미에 다중적으로 접근하고 문체적 갈등을 겪으면서 자기만의 표현을 시도했다. 그는 낱말의 의미를 이질적으로 취하거나 새롭게 분절하기도 했다. 따라서 《비극의 탄생》의 언어와 표현은 문헌학적 비평의 자세로 엄밀하게 접근해야 한다. 이 책의 옮긴이들은 독일어 낱말이 어떤 고대어와 연계되어 있으며 당대 언중의 활용과는 얼마나 다른지, 낱말의 이질적인 의미 선택이 어떤 중의적 효력을 갖는지, 외래어를 도입한 의도는 무엇인지, 니체의 사고가 어떤 고대 문헌 및 근대의 사상과 연결되어 있는지 등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번역어 선택에 고심했다. 또한 오역을 최대한 줄이고 니체의 의도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고대 언어 및 문헌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가진 제1역자의 초역 이후 두 번의 공동 검토와 세 번의 개정 끝에 번역 원고를 완성했다.
저자

프리드리히니체

19세기독일의철학자이자음악가,문학가이다.1844년독일작센주뢰켄의목사집안에서출생했고어릴적부터음악과언어에서탁월한재능을보였다.집안영향으로신학을공부하다가포이어바흐와스피노자의무신론적사상에감화되어신학을포기했다.이후본대학교와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언어학과문예학을전공했는데박사논문을제출하기전에이미명문대인스위스바젤대학교에초빙될만큼뛰어난학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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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자기비판의시도
리하르트바그너에게바치는서문
비극의탄생
옮긴이해제

출판사 서평

니체의생애를결정적으로뒤바꾼하나의운명,《비극의탄생》의기원

“지금내안에서학문과예술과철학이함께자라고있다.
분명언젠가는켄타우로스를낳을것이다.”

25세의젊은나이에바젤대학교문헌학교수로임명된니체는대학시절부터이미명성높은문헌학자로촉망받았다.그러나1865년라이프치히대학에다니던중우연히마주친쇼펜하우어의《의지와표상으로서의세계》에압도당했다.이어1868년바그너와처음만나쇼펜하우어와음악에대해대화를나눈뒤문헌학에심각한회의를품고철학논문을구상하게된다.그는바그너부부와수시로교유하며1870년여름부터〈디오니소스적세계관〉을집필하기시작했는데,이는비극에대한문헌학적,역사학적탐구가아닌철학적해석을논한글로서《비극의탄생》의바탕이되었다.그해겨울니체는〈디오니소스적세계관〉을다듬고축약한원고〈비극적사상의탄생〉을들고바그너저택을방문했고,리하르트바그너의아내코지마바그너에게생일선물로건넸다.이논고는후에《비극의탄생》전반부인1~10장을구성하는요체가된다.이어1871년니체는소크라테스주의에의한비극의죽음을다룬강연원고〈소크라테스와비극〉을개정하여〈소크라테스와그리스비극〉이라는소책자로자비출판했으며,이후일부수정을거쳐《비극의탄생》11장~15장에수록한다.이해니체는《비극의탄생》후반부집필에매진하며,이듬해인1872년새해벽두에출간작업을마무리하고헌정사인〈리하르트바그너에게바치는서문〉과함께《비극의탄생》초판본을바그너저택에전했다.

이론적세계관과비극적세계관의영원한투쟁

“예술의발달은아폴론적인것과디오니소스적인것의이중성에달려있으며,이는번식이두성에의존하는것과같아서끊임없는투쟁과간헐적인화해가있다.”

아폴론적인것과디오니소스적인것이라는두예술충동은각각‘조형·영상·언어’와‘음악’을충동하는“예술가적권력들”로서,양자의투쟁과화해를통해서사시,서정시,비극등의예술장르가탄생했다.티탄전쟁에서부터호메로스서사시,도리스예술,서정시,비극에이르는여정은그들의불일치와일치가남긴“끝없는흔적”이다.(1장∼4장)
니체의통찰에따르면,언어와음악간의비밀한관계를드러내는서정시에서비극이싹텄으며,언어·음악·춤이함께펼쳐지는디티람보스라는제의예술과가무단에서비극이직접적으로기원했다.오케스트라위가무단의가무서정시와무대위배우들의대화,즉가무단의디오니소스적서정시와무대의아폴론적꿈세계의비의적합일이바로비극이다.(5장∼10장)
그러나에우리피데스는극에서디오니소스적인것을제거하고순수히비디오니소스적인예술·풍습·세계관위에건립하려했고,소크라테스는지성과앎에최고의가치를부여하고비극을비철학적인자극제,유익하지못한예술로간주하여배척했다.그로인해그리스비극의예술작품은몰락하고만다.(11장∼15장)
학문의정신,이론적세계관이한계에다다르고보편적타당성에대한요구가파멸할때비극의재탄생을희망할수있다.그표지는바로“음악하는소크라테스”,즉음악마저현상(現像)을모방하는예술로전락시키는문화형태다.이황폐한문화에서학문의낙관주의가한계에부딪히며,디오니소스적정신이서서히깨어나고비극적문화가유입된다.바흐,베토벤,바그너로이어지는독일음악과칸트,쇼펜하우어의독일철학은“독일적인것들의회복”이며,디오니소스적정신의재각성,비극의재탄생이다.(16장∼20장)
비극은자체안에음악황홀경을흡수하고비극적신화와비극적주인공을제시한다.음악의도움을입은비극적신화는언어만으로는결코성취할수없는형이상학적의의를성취한다.니체는바그너의음악극〈트리스탄과이졸데〉제3막을사례로들어설명한다.아폴론적인것과디오니소스적인것의합일,“완성된극과그것의음악간에섭리하는예정조화”덕분에무대의극은최고수준의현시(顯示)에도달하며,음악은무대의세계를내밀하게비추어무한히확장시킨다.(21장∼25장)

원문의문체적특징을살리며문헌학적비평의자세로접근한공동번역

문헌학자였던니체는고대언어에능통하여낱말의의미에다중적으로접근하고문체적갈등을겪으면서자기만의표현을시도했다.그는낱말의의미를이질적으로취하거나새롭게분절하기도했다.따라서《비극의탄생》의언어와표현은문헌학적비평의자세로엄밀하게접근해야한다.이책의옮긴이들은독일어낱말이어떤고대어와연계되어있으며당대언중의활용과는얼마나다른지,낱말의이질적인의미선택이어떤중의적효력을갖는지,외래어를도입한의도는무엇인지,니체의사고가어떤고대문헌및근대의사상과연결되어있는지등을면밀히검토하면서번역어선택에고심했다.또한오역을최대한줄이고니체의의도를놓치지않기위해고대언어및문헌에대한전문적지식을가진제1역자의초역이후두번의공동검토와세번의개정끝에번역원고를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