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18.00
Description
희박한 아름다움을 좇아
마침내 시에 도착하는 이들의 이야기

한국 시 번역가들이 전하는 사랑과 감탄의 언어
‘한 편의 시는 “네가 세상에 무엇을 더하였는가?”라는 엄혹한 질문에 버텨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에게 글을 쓰는 일은 저 엄정한 물음에 성실하게 대답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나의 노동은 세상에 무엇을 더하고 있나. 나는 누구의 이익에 복무하고 있나. 한국문학 불모지를 개척하는 젊은 번역가들이 사는 법과 직업의 긍지를 조심스레 내놓는다. 문학의 시대는 끝났고 첨단기술이 소설을 쓰고 번역가를 대체하리란 전망이 우세한 시절에 시가, 문학이, 번역이 사람을 살리는 현장 이야기를 얹고 싶었다.
-서문 중에서

르포 작가 은유의 신작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가 읻다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시’와 ‘사람’을 글쓰기의 두 축으로 삼는 저자가 그 교집합에 있는 존재, 한영, 한일, 한독 시 번역가 7인의 이야기를 담아낸 인터뷰 산문이다. 저자는 읽는 사람으로서 시를 통해 삶의 굴곡을 응시했던 첫 산문 《올드걸의 시집》 이후, 이번에는 묻고 듣는 사람으로서 시 곁에 기꺼이 머무는 이들의 얼굴을 조명한다.

한국, 시, 번역가

한국 현대시 번역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마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시가 좋아서 무작정 시를 읽고 자발적으로 다른 언어로 번역해 퍼나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어디에요? 왜요? 처음에는 말 자체를 못 알아들었다. 외국 시를 한국 사람이 보는 건 익숙해도, 한국 시를 외국 사람이 본다는 건 상상이 가지 않았다. 낯선 존재의 출현은 늘 단번에 파악하기 어렵다.
-서문 중에서

‘AI가 대체할 직업 1순위, 번역가’라는 통계에는 어떤 맥락이 생략되어 있을까. 작가가 작품을 쓴 원어를 ‘출발어’, 이를 다른 나라 언어로 옮긴 번역어를 ‘도착어’라고 부른다. 7인의 한국 시 번역가들은 한국어로 쓰인 작품들을 각각 영어, 일본어, 독일어로 옮긴다(때로는 그 반대의 일도 한다). 이들이 출발어와 도착어 사이에 존재하는 문화적 간극을 면밀히 살피고 단어를 골라 배치하여 문체와 문맥을 살린 문장들이 독자에게 도착한다. 작품을 깊이 읽고 고민을 거듭해야 하는 일이기에 애정이 없다면 지속하기 힘들고, 잘할수록 투명해지는 노동이다. 효율의 논리에 포섭되지 않고 아름다움을 좇는 사람들, 이미 존재했지만 낯을 몰랐던 애정과 노동의 면면을 톺아보기 위해 은유 작가는 질문한다. 시도 번역이 가능한가요? 그 일을 왜 하시나요? 그리고 모든 질문은 결국 당신은 시를 어떻게, 왜 읽냐는 질문에 다름이 없기에 인터뷰이들의 답은 늘 삶과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뻗어나간다.

망망한 언어의 지평에서
자유롭고 외롭게 교차하기

내가 잘할 수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뭔가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느낌. 번역하고 싶은 글을 만났을 때, 뭔가 피가 돌고 약간 상기되는 기분, 그런 기분이 생기면 하게 돼요.
-호영, 29쪽

다른 길을 걸어가야 된다는 걸 깨닫고, 다른 길을 걸어도 살 수 있다는 걸 믿었어요. 저는 처음으로 저를 믿었어요. 다른 사람이 아니고 저를 믿었어요.
-알차나, 169쪽

7인의 번역가들은 모두 ‘문이 있으니 열었다’라고 말하듯 담담히 운명으로서 번역을 말한다. 그것은 때로 무구하고 호기로운 마음을 따라-“바보가 되는 것과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좋아한다”(소제), “(문학이) 그렇게 재밌는 것이라면 나도 한번 해보자”(승미)- 때론 진동하는 삶을 수용하기 위해- “언어는 도망갈 수 있는 출구 같은 거예요”(박술), “처음에는 고민했는데 이젠 그냥 내가 두 아이덴티티 사이에서 계속 불안과 사랑을 동시에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새벽)- 한 시절을 치열하게 언어에 천착한 사람들이 견지할 수 있는 태도일 것이다.
인터뷰에 참여한 번역가들은 거의 이민자나 유학파로서 언어와 학력 등 문화자본을 가진 주류에 속하지만, 백인 중심적인 문화에서 혹은 가부장제 사회의 논리 안에서 근원적인 억압과 차별을 경험했다. 이때 문학 번역은 “퀴어와 논바이너리 정치를 논의하고”(호영) 동양인 멸시에 맞서 “우리도 감정과 생각이 있는 사람”(안톤 허)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운동으로서의 예술’로 기능한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시를 연장처럼 쥐는 한편, 최고의 언어 학습법은 사랑에 빠지는 것이라는 속설이 있듯 이들은 모두 어떤 사람, 작품, 혹은 언어 자체의 팬이다. “하염없는 몰입”의 반짝이는 순간을 묘사하는 이들의 “감탄하는 능력”은 대화 안에서 공명하며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의 한 시절 피난처가 되어주었던 시”(은유)의 기억을 소환시키기도 한다.

번역 ‘노동자’

책에는 번역 현장에 있는 노동자의 기쁨과 슬픔도 가감 없이 담겨 있다. 일상에서 듣게 되는 “‘번역은 쉽잖아’ ‘번역은 창작이 아니잖아’라는” 함의가 담긴 무게 없는 말들에서부터 “비백인 번역가의 자리를 지우는 영미권 출판계”(안톤 허)와 “시를 읽는 문화가 부재하는”(박술) 현실. 자리 뺏기 싸움처럼 문학 번역 안에서도 상업성의 논리에 따라 지원의 파이가 나눠지는 시스템까지. 아름다운 작품을 발견하는 밝은 눈과 그것을 누군가와 나누기 위해 시간과 힘을 쏟는 이들 번역가의 아낌없는 태도는 핍진한 현실과 대조되며 무체계와 비합리의 구조를 역설하기도 한다. 하지만 외려 그들은 “시 독해와 번역은 정답이 없다. 이러한 혼돈과 불확실성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자가 번역의 세계에서 살아남는다”는 은유 작가의 묘사처럼, 시대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가로지르며 “무언가를 이겨내려면 그 힘은 공동체에서 온다”(소제)는 소신에 따라 한국문학 불모지에 균열을 꾀하는 선구자의 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불순물이 없는 게 순수가 아니라 불순물까지 보는 게 순수다.
-서문 중에서

비로소 우리에게 도착한 문장들이 한 번역가가 생을 통과하며 체화한 감각으로써 읽는 이를 상상하며 건네는 대화임을 상상하게 되었다면, 번역가의 일이 기계로 대체된다는 전망은 이제 독자에게 드리운다. 당신은 시를 어떻게, 왜 읽는지. 미래에는 어떤 대화가 우리에게 남을지.
은유 작가의 문장으로 오해의 자리를 비워두며 자신의 해석을 믿고 나아가는 호영의 단단한 시선을, ‘번역 판’을 만들고 키우는 안톤과 소제가 관료화된 시스템에 던지는 질문들을, 한국어를 사랑해서 시 번역가가 되었다는 알차나의 넉넉한 사랑을, 일상과 번역일을 함께 운용하며 겪은 실패의 경험을 풀어놓는 승미의 소탈함을, 경계에 있는 사람으로서 완결되지 않을 질문을 품고 시를 번역하는 새벽과 술의 혼란을 모두 읽은 후라면 우리가 생각하는 번역가의 상은 사뭇 달라져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기어코 시에 도착하는 사람들, 그들의 꼿꼿한 문학에의 사랑은 우리가 잊고 지낸 시적 사유에 대한 나름의 답변이 되어준다.

저자

은유

글쓰는사람.누구나살아온경험으로자기글을쓸수있을때세상이나아진다는믿음으로여기저기서글쓰기강좌를진행한다.성폭력·가정폭력피해자,시민단체활동가등과글쓰기워크숍을진행하며사회적약자들의목소리내는일을돕고있다.

여럿이함께읽고,느끼고,말하며쓰는일의기쁨과가치를전하려『글쓰기의최전선』을,안쓰는사람이쓰는사람이되는기적을위해『쓰기의말들』을썼다....

목차

시에도착하는사람들(은유)‥‥5

즐거운오해(호영)‥‥19
하지만저는해요(안톤허)‥‥53
초과선언(소제)‥‥93
동화가잘되는편(승미)‥‥127
반짝반짝한국어(알차나)‥‥165
엄마이상스피릿(새벽)‥‥199
아름다움교섭하기(박술)‥‥231

주‥‥260

출판사 서평

한국,시,번역가

한국현대시번역가에대한이야기를듣자마자가슴이두근거렸다.시가좋아서무작정시를읽고자발적으로다른언어로번역해퍼나르는사람들이있다고했다.어디에요?왜요?처음에는말자체를못알아들었다.외국시를한국사람이보는건익숙해도,한국시를외국사람이본다는건상상이가지않았다.낯선존재의출현은늘단번에파악하기어렵다.
─서문중에서

‘AI가대체할직업1순위,번역가’라는통계에는어떤맥락이생략되어있을까.작가가작품을쓴원어를‘출발어’,이를다른나라언어로옮긴번역어를‘도착어’라고부른다.7인의한국시번역가들은한국어로쓰인작품들을각각영어,일본어,독일어로옮긴다(때로는그반대의일도한다).이들이출발어와도착어사이에존재하는문화적간극을면밀히살피고단어를골라배치하여문체와문맥을살린문장들이독자에게도착한다.작품을깊이읽고고민을거듭해야하는일이기에애정이없다면지속하기힘들고,잘할수록투명해지는노동이다.효율의논리에포섭되지않고아름다움을좇는사람들,이미존재했지만낯을몰랐던애정과노동의면면을톺아보기위해은유작가는질문한다.시도번역이가능한가요?그일을왜하시나요?그리고모든질문은결국당신은시를어떻게,왜읽냐는질문에다름이없기에인터뷰이들의답은늘삶과정체성에대한이야기로뻗어나간다.

망망한언어의지평에서
자유롭고외롭게교차하기

내가잘할수있다,없다의문제가아니라뭔가머릿속에서폭죽이터지는느낌.번역하고싶은글을만났을때,뭔가피가돌고약간상기되는기분,그런기분이생기면하게돼요.
─호영,29쪽

다른길을걸어가야된다는걸깨닫고,다른길을걸어도살수있다는걸믿었어요.저는처음으로저를믿었어요.다른사람이아니고저를믿었어요.
─알차나,169쪽

7인의번역가들은모두‘문이있으니열었다’라고말하듯담담히운명으로서번역을말한다.그것은때로무구하고호기로운마음을따라―“바보가되는것과정해진것은아무것도없다는생각을좋아한다”(소제),“(문학이)그렇게재밌는것이라면나도한번해보자”(승미)―때론진동하는삶을수용하기위해―“언어는도망갈수있는출구같은거예요”(박술),“처음에는고민했는데이젠그냥내가두아이덴티티사이에서계속불안과사랑을동시에가지고살아야한다고생각하게됐어요”(새벽)―한시절을치열하게언어에천착한사람들이견지할수있는태도일것이다.

인터뷰에참여한번역가들은거의이민자나유학파로서언어와학력등문화자본을가진주류에속하지만,백인중심적인문화에서혹은가부장제사회의논리안에서근원적인억압과차별을경험했다.이때문학번역은“퀴어와논바이너리정치를논의하고”(호영)동양인멸시에맞서“우리도감정과생각이있는사람”(안톤허)이라는것을보여주기위해‘운동으로서의예술’로기능한다.자신을보호하기위해시를연장처럼쥐는한편,최고의언어학습법은사랑에빠지는것이라는속설이있듯이들은모두어떤사람,작품,혹은언어자체의팬이다.“하염없는몰입”의반짝이는순간을묘사하는이들의“감탄하는능력”은대화안에서공명하며듣는사람으로하여금“생의한시절피난처가되어주었던시”(은유)의기억을소환시키기도한다.

번역‘노동자’

책에는번역현장에있는노동자의기쁨과슬픔도가감없이담겨있다.일상에서듣게되는“‘번역은쉽잖아’‘번역은창작이아니잖아’라는”함의가담긴무게없는말들에서부터“비백인번역가의자리를지우는영미권출판계”(안톤허)와“시를읽는문화가부재하는”(박술)현실.자리뺏기싸움처럼문학번역안에서도상업성의논리에따라지원의파이가나눠지는시스템까지.아름다운작품을발견하는밝은눈과그것을누군가와나누기위해시간과힘을쏟는이들번역가의아낌없는태도는핍진한현실과대조되며무체계와비합리의구조를역설하기도한다.하지만외려그들은“시독해와번역은정답이없다.이러한혼돈과불확실성을편안하게받아들이는자가번역의세계에서살아남는다”는은유작가의묘사처럼,시대의명령을따르지않고가로지르며“무언가를이겨내려면그힘은공동체에서온다”(소제)는소신에따라한국문학불모지에균열을꾀하는선구자의역할을자처하기도한다.

우리는순수한것을생각했다.

불순물이없는게순수가아니라불순물까지보는게순수다.
─서문중에서

비로소우리에게도착한문장들이한번역가가생을통과하며체화한감각으로써읽는이를상상하며건네는대화임을상상하게되었다면,번역가의일이기계로대체된다는전망은이제독자에게드리운다.당신은시를어떻게,왜읽는지.미래에는어떤대화가우리에게남을지.

은유작가의문장으로오해의자리를비워두며자신의해석을믿고나아가는호영의단단한시선을,‘번역판’을만들고키우는안톤과소제가관료화된시스템에던지는질문들을,한국어를사랑해서시번역가가되었다는알차나의넉넉한사랑을,일상과번역일을함께운용하며겪은실패의경험을풀어놓는승미의소탈함을,경계에있는사람으로서완결되지않을질문을품고시를번역하는새벽과술의혼란을모두읽은후라면우리가생각하는번역가의상은사뭇달라져있을것이다.무엇보다시를읽지않는시대에기어코시에도착하는사람들,그들의꼿꼿한문학에의사랑은우리가잊고지낸시적사유에대한나름의답변이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