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17.19
저자

은유

글쓰는사람.누구나살아온경험으로자기글을쓸수있을때세상이나아진다는믿음으로여기저기서글쓰기강좌를진행한다.성폭력·가정폭력피해자,시민단체활동가등과글쓰기워크숍을진행하며사회적약자들의목소리내는일을돕고있다.

여럿이함께읽고,느끼고,말하며쓰는일의기쁨과가치를전하려『글쓰기의최전선』을,안쓰는사람이쓰는사람이되는기적을위해『쓰기의말들』을썼다....

목차

시에도착하는사람들(은유)‥‥5

즐거운오해(호영)‥‥19
하지만저는해요(안톤허)‥‥53
초과선언(소제)‥‥93
동화가잘되는편(승미)‥‥127
반짝반짝한국어(알차나)‥‥165
엄마이상스피릿(새벽)‥‥199
아름다움교섭하기(박술)‥‥231

주‥‥260

출판사 서평

한국,시,번역가

한국현대시번역가에대한이야기를듣자마자가슴이두근거렸다.시가좋아서무작정시를읽고자발적으로다른언어로번역해퍼나르는사람들이있다고했다.어디에요?왜요?처음에는말자체를못알아들었다.외국시를한국사람이보는건익숙해도,한국시를외국사람이본다는건상상이가지않았다.낯선존재의출현은늘단번에파악하기어렵다.
─서문중에서

‘AI가대체할직업1순위,번역가’라는통계에는어떤맥락이생략되어있을까.작가가작품을쓴원어를‘출발어’,이를다른나라언어로옮긴번역어를‘도착어’라고부른다.7인의한국시번역가들은한국어로쓰인작품들을각각영어,일본어,독일어로옮긴다(때로는그반대의일도한다).이들이출발어와도착어사이에존재하는문화적간극을면밀히살피고단어를골라배치하여문체와문맥을살린문장들이독자에게도착한다.작품을깊이읽고고민을거듭해야하는일이기에애정이없다면지속하기힘들고,잘할수록투명해지는노동이다.효율의논리에포섭되지않고아름다움을좇는사람들,이미존재했지만낯을몰랐던애정과노동의면면을톺아보기위해은유작가는질문한다.시도번역이가능한가요?그일을왜하시나요?그리고모든질문은결국당신은시를어떻게,왜읽냐는질문에다름이없기에인터뷰이들의답은늘삶과정체성에대한이야기로뻗어나간다.

망망한언어의지평에서
자유롭고외롭게교차하기

내가잘할수있다,없다의문제가아니라뭔가머릿속에서폭죽이터지는느낌.번역하고싶은글을만났을때,뭔가피가돌고약간상기되는기분,그런기분이생기면하게돼요.
─호영,29쪽

다른길을걸어가야된다는걸깨닫고,다른길을걸어도살수있다는걸믿었어요.저는처음으로저를믿었어요.다른사람이아니고저를믿었어요.
─알차나,169쪽

7인의번역가들은모두‘문이있으니열었다’라고말하듯담담히운명으로서번역을말한다.그것은때로무구하고호기로운마음을따라―“바보가되는것과정해진것은아무것도없다는생각을좋아한다”(소제),“(문학이)그렇게재밌는것이라면나도한번해보자”(승미)―때론진동하는삶을수용하기위해―“언어는도망갈수있는출구같은거예요”(박술),“처음에는고민했는데이젠그냥내가두아이덴티티사이에서계속불안과사랑을동시에가지고살아야한다고생각하게됐어요”(새벽)―한시절을치열하게언어에천착한사람들이견지할수있는태도일것이다.

인터뷰에참여한번역가들은거의이민자나유학파로서언어와학력등문화자본을가진주류에속하지만,백인중심적인문화에서혹은가부장제사회의논리안에서근원적인억압과차별을경험했다.이때문학번역은“퀴어와논바이너리정치를논의하고”(호영)동양인멸시에맞서“우리도감정과생각이있는사람”(안톤허)이라는것을보여주기위해‘운동으로서의예술’로기능한다.자신을보호하기위해시를연장처럼쥐는한편,최고의언어학습법은사랑에빠지는것이라는속설이있듯이들은모두어떤사람,작품,혹은언어자체의팬이다.“하염없는몰입”의반짝이는순간을묘사하는이들의“감탄하는능력”은대화안에서공명하며듣는사람으로하여금“생의한시절피난처가되어주었던시”(은유)의기억을소환시키기도한다.

번역‘노동자’

책에는번역현장에있는노동자의기쁨과슬픔도가감없이담겨있다.일상에서듣게되는“‘번역은쉽잖아’‘번역은창작이아니잖아’라는”함의가담긴무게없는말들에서부터“비백인번역가의자리를지우는영미권출판계”(안톤허)와“시를읽는문화가부재하는”(박술)현실.자리뺏기싸움처럼문학번역안에서도상업성의논리에따라지원의파이가나눠지는시스템까지.아름다운작품을발견하는밝은눈과그것을누군가와나누기위해시간과힘을쏟는이들번역가의아낌없는태도는핍진한현실과대조되며무체계와비합리의구조를역설하기도한다.하지만외려그들은“시독해와번역은정답이없다.이러한혼돈과불확실성을편안하게받아들이는자가번역의세계에서살아남는다”는은유작가의묘사처럼,시대의명령을따르지않고가로지르며“무언가를이겨내려면그힘은공동체에서온다”(소제)는소신에따라한국문학불모지에균열을꾀하는선구자의역할을자처하기도한다.

우리는순수한것을생각했다.

불순물이없는게순수가아니라불순물까지보는게순수다.
─서문중에서

비로소우리에게도착한문장들이한번역가가생을통과하며체화한감각으로써읽는이를상상하며건네는대화임을상상하게되었다면,번역가의일이기계로대체된다는전망은이제독자에게드리운다.당신은시를어떻게,왜읽는지.미래에는어떤대화가우리에게남을지.

은유작가의문장으로오해의자리를비워두며자신의해석을믿고나아가는호영의단단한시선을,‘번역판’을만들고키우는안톤과소제가관료화된시스템에던지는질문들을,한국어를사랑해서시번역가가되었다는알차나의넉넉한사랑을,일상과번역일을함께운용하며겪은실패의경험을풀어놓는승미의소탈함을,경계에있는사람으로서완결되지않을질문을품고시를번역하는새벽과술의혼란을모두읽은후라면우리가생각하는번역가의상은사뭇달라져있을것이다.무엇보다시를읽지않는시대에기어코시에도착하는사람들,그들의꼿꼿한문학에의사랑은우리가잊고지낸시적사유에대한나름의답변이되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