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름이 있었다

나는 이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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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오은

오은은1982년전북정읍에서태어나서울대학교사회학과를졸업하고,카이스트문화기술대학원에서석사학위를받았다.2002년『현대시』로문단에나왔으며,시집으로『호텔타셀의돼지들』『우리는분위기를사랑해』가있다.‘작란(作亂)’동인이다.

목차

사람
궁리하는사람
바람직한사람
얼어붙는사람
기다리는사람
드는사람
빠진사람
읽는사람
좋은사람
옛날사람
도시인
손을놓치다
마음먹은사람
산책하는사람
비틀비틀한사람
일류학
큰사람
애인
응시하는사람
갔다온사람
선을긋는사람
주황소년
유예하는사람
58년개띠
계산하는사람
무인공장
서른
시끄러운얼굴
물레는원래문래
세번말하는사람
한발
사람

부록

않는다
물방울효과

출판사 서평

「사람」과「사람」사이의,지극히평범한‘사람들’

오은시인의『나는이름이있었다』가아침달에서출간되었다.2009년민음사에서출간한첫시집『호텔타셀의돼지들』을시작으로,2013년문학동네『우리는분위기를사랑해』,2016년문학과지성사『유에서유』를선보이며활동은이어온시인은2018년현대문학의『왼손은마음이아파』발간과거의동시에아침달시집을발간했다.

『나는이름이있었다』는서른두편의‘사람’연작으로구성된다.「사람」으로시작해서동명의시「사람」으로끝을맺는이시집은읽는이에게갖은사람과의만남을선사한다.「궁리하는사람」,「읽는사람」,「마음먹은사람」,「비틀비틀한사람」,「세번말하는사람」등다양한‘사람’과의만남을경험하게한다.

무인공장에내가있었다.무인공장인데내가있었다.무인공장인데내가있는것이유일하게습득한기술이었다.어느날에는스위치를켜는심정으로불쑥내이름을발음해보았다.무인공장과는달리,나는이름이있었다.무인공장과는달리,나는사람이었다.
―76쪽「무인공장」중

심지어사람이없어야할「무인공장」에서까지독자들은사람을느끼고이해할수있다.사람이없는공간에머무는화자가‘무인공장’과‘나’를비교하며(‘무인공장과는달리,나는사람이었다’)사람으로서의존재감을선명하게드러내는까닭이다.결국사람은사람이기때문에‘사람이없어도사람인채버티’는존재이며,‘무인공장인데내가있’는것처럼,곁에아무도없는상황에서도사람일수밖에없는존재다.‘스위치가다시켜지지않’게된이후에야사람구실을할수없게된화자는말한다.‘비로소무인공장이무인공장다워졌다’고.결국‘스위치가켜’져있다면제아무리무인공장에있더라도‘사람’일수밖에없다는것을방증한다.

소란때문에궁금해진옆반선생님이우리반을찾았다장선생님어인일로여기까지오셨어요?장선생이선생님의스마트폰을들여다보곤낄낄웃었다김선생은아직도그게임을해요?이럴때보면꼭옛날사람이라니까장선생의말에김선생의얼굴이새하얘졌다그새새로운게나왔나요?그새라니요,한달이넘었는데!업데이트를좀하세요,업데이트!장선생의훈계에제기를차던아이들이키득키득웃었다순식간에옛날사람이된김선생의얼굴이붉어졌다
―38쪽「옛날사람」중

『나는이름이있었다』에는사람만큼다양한대사가등장한다.주고받는대화에서부터혼잣말(그는고개를떨구며혼잣말을했다.친했었는데…….―66쪽,「유예하는사람」중),그리고독백까지도.그까닭에이시집은각각의시편이누군가의일상이자하나의에피소드처럼보이기도한다.처음보는시가이토록정겨운이유는시인이만나고거쳐온,이시집에기록한사람들이대단히특별한존재가아니라지극히평범하고일반적인인물들로구성되어있기때문이다.

『나는이름이있었다』를읽는독자들은시속장면들이어디선가경험한것처럼일상과맞닿아있다고느끼기에충분할것이다.이와같은까닭에독자들은『나는이름이있었다』에쉽게몰입하고공감할수있을테다.인간이라면으레느낄법한감정-후회,환희,선호,기쁨,부끄러움,분노(사람을뭐로보고이런걸줘요?//불우이웃을도울사람이화를냈다―34쪽「좋은사람」중)-들이곳곳에머물러있으니말이다.

사람과사람,그내면에흐르는특별한감정

같은곳에서출발했지만지금나는여기에,너는거기에있다.많이변했구나.나는말했고너는웃었다.오래되었잖아.나는그말이나이를많이먹었다는말인지헤어진지오래되었다는말인지이해할수없었다.둘다.너는덧붙여말하고하얀이를드러내며씩웃었다.내마음을읽는것은여전히잘하는구나.그럼,오래되었잖아.그말은분명우리가오랫동안만났다는사실을가리키는것이었다.둘다한동안아무말도하지않았다.우리는서로의첫사랑이었다.
―94쪽,산문「않는다」중

『나는이름이있었다』에는오은시인의두편의산문이수록된다.시편에서사람그자체에관해이야기했다면,‘너’와의이야기「않는다」에서는사람과의‘관계’와화자가느끼는‘감정’을명징하게드러낸다.시인이제시하는BGM을재생하고,그리듬까지독서인양읽어내려가다보면,화자의감정에동화되고나아가그감정에눅진하게녹아드는경험에이르기도한다.시인은『나는이름이있었다』를통해사회속의사람,역할을수행하는사람,‘나’로서의사람뿐아니라‘사람’과‘사람’사이의‘사람’,그리고그내면까지다각도로이야기하고있다.

“나도모르게나에게영향을주는사람들을기록하고자했다.”

시인의앞선시집들에서언급되던요소가언어유희와말놀이,그리고그이면에드리워진사회비판과블랙유머였다면이시집에서는‘삶’그자체에관해이야기해야할것같다.시인은『나는이름이있었다』를사람연작으로꾸린이유를‘나도모르게나에게영향을주는사람들을기록’하고자했기때문이라밝혔다.그가말한‘사람’은기인이나달인과같은특별한존재가‘아니다’.그저주위에있는사람,스쳐지나간사람등,이어지거나이어지지않은,부딪치거나부딪힌사람이며,마침내그의삶을뒤튼사람들의나열이다.사람을기록하겠다는애초의목적은‘또다른나’를발견하는작업으로이어졌다고시인은고백한다.시인의고백으로말미암아,독자들도편편의시를통해또다른나를발견할수있기를바란다.익히알고있던나,여태몰랐던나,알지만외면했던나……결국은‘사람’인나를.

물방울한점이바다를들썩이게만든다.물방울은그저몸을한번뒤틀었을뿐이다.자신의몸을신나게미끄러뜨렸을뿐이다.바다위에서물방울의뒤척임은나비의날갯짓만큼이나위태롭고강력하다.예의그예민한섬들이몸을떨고있다.무시무시한물방울효과.
―105쪽,산문「물방울효과」중

사람에서사람으로이어지는시는마지막산문「물방울효과」에이르러‘잘여문물방울이’되어‘굴러간다.’(104쪽)‘물방울한점이바다를들썩이게만든다’(105쪽)는것은시인이앞서언급한‘나도모르게나에게영향을주는사람들’과크게다르지않아보인다.인식하지못할만큼작은물방울한점이바다에닿아들썩이게하는그모양은,「물방울효과」에서말하듯‘위태롭고강력하다.’(105쪽)사람은,그어떤재능때문이아니라그저사람이라는이유로‘무시무시한’(105쪽)영향력을지닌다.하나,혹은여러개의이름을가지고있을모든독자가『나는이름이있었다』를통해그영향력을느낄수있기를바란다.『나는이름이있었다』가‘사람’이기때문에다른사람에게영향을미칠수있다는그사실만으로,‘나의존재’를,‘나의이름’을몇번이고더사랑할수있게만드는시집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