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에게

i에게

$12.00
SKU: 9791189467067
Description
서늘하고도 애틋한 언어로 사물의 실존과 사유의 심부를 밝혀온 김소연이 다섯 번째 시집 『i에게』를 출간했다. 2013년 『수학자의 아침』(문학과지성사)으로부터 5년 만이다. 1993년 등단 이후 여러 권의 시집을 내고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서의 입지와 영향력을 확고히 한 김소연이 신생 출판사 아침달에서 신간을 펴내는 일은, 늘 씩씩하게 낯선 곳으로 향해 움직이는 그의 시적 행보와도 닮아 있다.
38편의 시와 시인 유희경의 발문으로 구성된 이번 시집은 ‘우리’라는 주어의 배면을 살핀다. 유희경이 “순한 말을 참 날카롭게도 벼려 놓았”다고 표현한, 가깝고도 먼 간격을 가진 단어들이 “한 번도 원한 적 없는 이 세계에서” 시작된 우리의 처음과 끝 사이에 놓인다. 표정은 숨기면서도 곁에는 있고 싶어 서로의 뒤쪽에 있으려 하는 우리의 시간들이 펼쳐진다.
저자

김소연

인적을찾아보기힘든동네에서사람보다소등에업혀서자랐다.그래서인지눈이소를닮아고장난조리개처럼느리게,열고닫힌다.매일지각하다.시에밑줄을치게되다.선생과불화하며청소년기를보내버리다.마음과몸이분리되지않고,따라서이일하며동시에저일을하는건불가능한모노스타일라이프를갖게되었다.하기싫은일은죽어도안하는강건한정신의소유자가아니라,하기싫은일은하기도전에몸이거부하는이다.실제로그럴땐고열을동반한몸살에시달릴정도로,몸과마음의완벽한일원론적합체를이룬변종이다.그래서인지마음에관해서는초능력에가까운신기를보인다.고양이처럼마음의결을쓰다듬느라보내는하루가아깝지않고,도무지아무데도관심없는개처럼멍하니하루를보내는데천재적이다.밥은그렇다치고잠조차마음이움직이지않으면몇밤을그냥잊기도한다.몸에좋은음식에는관심이없고아이스크림,초콜릿,커피를주식처럼복용한다.게으름과꼼꼼함덕분에첫시집'극에달하다'를낸이후10년만에두번째시집'빛들의피곤이밤을끌어당긴다'를최근에가까스로펴냈다

목차

1부|그좋았던시간에대하여
다른이야기
코핀베이
경배
손아귀
바깥
누군가
꿈에서처럼
편향나무
출구
냉장고의나날들
사갈시
기나긴복도
i에게
쉐프렐라

2부|동그란보풀이될수있다는믿음
노는동안
동그란흙
우산
너머의여름
있다
뭇국
유쾌한얼굴
남은시간
새장
돌이말할때까지
지금은없는피아노위에
스웨터의나날

3부|MeanTimeBetweenFailures평균고장간격
가방같은방
제로
너의포인세티아
관족
밀고
과수원
우리바깥의우리
내방에서하는연설
MTBF
방법들
대개
유월오후의우유

발문|잠잠이이야기―유희경

출판사 서평

한번도원한적없는이세계에서만난
우리의바깥을이야기하다


서늘하고도애틋한언어로사물의실존과사유의심부를밝혀온김소연이다섯번째시집『i에게』를출간했다.2013년『수학자의아침』(문학과지성사)으로부터5년만이다.1993년등단이후여러권의시집을내고다수의문학상을수상하며문단에서의입지와영향력을확고히한김소연이신생출판사아침달에서신간을펴내는일은,늘씩씩하게낯선곳으로향해움직이는그의시적행보와도닮아있다.
38편의시와시인유희경의발문으로구성된이번시집은‘우리’라는주어의배면을살핀다.유희경이“순한말을참날카롭게도벼려놓았”다고표현한,가깝고도먼간격을가진단어들이“한번도원한적없는이세계에서”시작된우리의처음과끝사이에놓인다.표정은숨기면서도곁에는있고싶어서로의뒤쪽에있으려하는우리의시간들이펼쳐진다.
김소연의시가언제나그랬듯이그말들은요란하거나성급하지않다.“마음에귀를기울이는시인”(유희경)김소연은이번시집에서도마음의깊은곳이말할때까지기다린다.조약돌앞에서“돌이말을할때까지”기다리는사람처럼.



없는당신의,없는팔베개속에서느껴지는
혼자라는감각



우리가“처음만났던날”에대한이야기로시작되는이시집은“우리를우리라고불렀던/마지막시간이”끝나는곳으로흘러간다.시집이펼쳐지는순간우리는“처음만났던날이처음만났던날로부터”점점멀어지는시간을경험한다.우리는처음만났던날그곳에서“손을꼭잡은채로영원히삭아”가는모습이된다.


처음만났던날에너는매일매일이야기를들려주었다.우리가어떤용기를내어서로손을잡았는지손을꼭잡고혹한의공원에앉아밤을지샜는지.나는다소곳이그이야기를들었다.우리가우리가우리를우리를되뇌고되뇌며그때의표정이되어서.나는언제고듣고또들었다.곰을무서워하면서도곰인형을안고좋아했듯이.(…)
―「다른이야기」부분


우리가처음만났던날은아마도좋았을것이다.그렇지않다면우리는우리가아니었을테니까.하지만우리는어느순간우리가아니게된다.우리를우리라고부를때마다우리는점점닳아사라진다.돌이킬수없는사건들을겪거나,혹은그저시간이흐르는탓에.
결국언젠가는이렇게말하게되는날이올지도모른다.“당신과친했던적이있었어요.당신에대해아주잘알았습니다.열손가락에각인된지문을살펴보며낄낄댔던장면이기억나요.실은그것만기억이납니다.당신을만난적이있다는것을못믿겠어요.”우리가언제까지나우리일수는없다는단순한진리는시의옷을입고더진리에가까운모습으로우리의눈앞에나타난다.선연하고낯선감각,그‘혼자인감각’이아니고서야시는이루어지지않기때문이다.혼자를감각하면서,혼자를감각한뒤에야혼자인나는소리없이웃을수있다.“없는나무그늘속에앉아,없는당신의,없는팔베개속에서.”


공포를아는얼굴이되어갈때

모든게끔찍한데
가장끔찍한게너라는사실때문에
너는누워잠을자버리지
다음생애에깨어날수있도록
―「경배」부분


살아가면서우리는온갖두려움과맞닥뜨린다.세상에대한두려움,혼자가되는두려움,성장에대한두려움,차별에대한두려움,진실을마주하는두려움,생존위협에따른두려움…어떻게보면살아가는일이두려움그자체라고도할수있다.
김소연의이번시집에는두려움,공포와죽음을환기하는말과이미지들이자주등장한다.“들끓는것들을제거해야소원을이루는/무더운여름의무서움”에대해,“버려지면좋았을내가남몰래조금씩미쳐”가는일에대해,“사나운꿈”이“이마를열어젖히는”일에대해,“해일처럼거대하고끔찍한내가”나를덮쳐오길기다리는일에대해김소연은쓰고있다.그러한끔찍함에대한인식들은김소연특유의담담하면서도서늘한목소리와맞물려한층더무서운것들로변모한다.
하지만한편김소연은그러한두려움들을피하거나진정으로두려워하지않고정면으로응시하고있는것인지도모른다.김소연은“귀여운병아리들이무서운닭이되어제멋대로마당을뛰어다니다도살”되는풍경을“좋았다”의직유로사용하는시인이기때문이다.김소연은말한다.“공포를아는얼굴”이“가장원하던얼굴”이라고.그러한의미에서김소연은무서운것들로부터아름다움을발견해내는귀한미감을가진시인이다.마침그는이렇게쓰고있다.“아름다움을다하여나는시를쓰는중이다./죽이는소리에죽는소리를입혀서.”


마음에귀를기울이는사람에대하여

『i에게』의뒤편에는후배시인유희경이쓴「잠잠이이야기」라는발문이실려있다.유희경이보고겪은김소연의초상스케치및유년시절부터등단이후오늘날까지의연보를겸하는글이다.유희경이바라본김소연은“마음에귀를기울이는”사람이다.“그렇게하지않으면안될것같은일에최선을다하는”사람이다.또한세상의많은것들이변하고,우리가이따금모습을바꾸는와중에도여전히시인인사람이다.가까운후배가쓴애정어린산문을통해독자들은인간김소연의일면을조금더가까이에서바라볼수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