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는 나의 입장

지금부터는 나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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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나를 어기는 즐거움,
나와 거리 두고 나를 바라보는 즐거움
유계영 시집 『지금부터는 나의 입장』이 20번째 아침달 시집으로 출간되었다. 2019년 『이런 얘기는 좀 어지러운가』에 이어 네 번째 시집이다. 시인 유계영은 독특한 시선과 언어 활용, 자명하고도 혼란한 이미지를 통해 그만의 시 세계를 선보여왔다. 유계영의 새 시집은 그간 계속해온 시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하려는 듯하다.
유계영은 좋은 것을 좋다고, 싫은 것을 싫다고 말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는다. 시인 안미옥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는 유계영에게 있는 “마음의 직진성”이다. 이러한 직시의 태도를 통해 유계영의 시는 우리 삶을 둘러싼 것들을 선명하게 그려내며, 정서에 매몰되기보다는 그러한 서정들과 거리를 둔 채 낯선 감각에 몰두하게 한다. 정서적 끈적임이 없는 이 거리감은 쾌적하다. 이 거리감을 유지하며 유계영의 시는 안전한 선의의 편에도 손쉬운 위악의 편에도 서지 않는 모험을 계속한다. 스스로를 어기는 일의 위태로운 줄타기가 성공할 때 얻을 수 있는 즐거움. 유계영의 시를 읽으면서만 얻을 수 있는 새로운 기쁨이다.
저자

유계영

2010년《현대문학》을통해작품발표를시작함.시집으로『온갖것들의낮』,『이제는순수를말할수있을것같다』,『이런얘기는좀어지러운가』가있음.

목차

1부
하나의얼굴로파다하겠지
좋거나싫은것으로가득한생활
울로만든모자
에너지
파이프
Oihoyjoy
얼굴
얼굴
기념식수를위해모인마당
좋은물
체인질링
호애친
양의일기
미래에관한네가지입장
예감
두고왔다는생각

2부
혼란혼돈혼곤혼선
나는왜웃음이날까
셔터스피드!
잠이우리에게그렇게하듯이
비장소
바다엔폭풍이불고있지만
새로운기쁨
눈딱부리새의관점
버거
Um
절반정도동물인것,절반정도사물인것
간유리에사자
하우스
송신送信
의사는말했지여기왜왔다고생각해요?/난말했어잘모르겠습니다
작고멀쩡한여름
바람이불기때문에
썩지않는빵
거목

3부
작은것들은계속해서작고
양파꽃은피지않고
안녕하세요계영씨
새똥닦기
인디언식이름으로
Firework
동시에
표면장력
친절한이웃으로서
점박이가슴웃는지빠귀
마가목
오고가고
화장실에서오줌을눌때마다생각한다/이런것들이빠져나간다는건/확실하고즐겁다
거울에게전하는말

블링크

발문
유계영에대한짧은별말씀-김소연시인

출판사 서평

안전한상상력을넘어서

결정적인사건이일어날것만같은경계선에날렵하게멈춰선그녀는,낯선세계로부터우연히이곳에도착한문제적인물같다.-김소연,발문「유계영에대한짧은별말씀」에서

유계영의시는우리를자주멈추게만든다.멈추어서서낯선풍경과조우하도록만든다.언어가관습을벗어나낯설게활용되고적확한표현을찾으려는사이,독자의눈길도그행간에잠시멈춘다.이를통해선명하게떠오른낯선이미지들은그러나무엇을설명하려하지않는다.오히려무언가를설명하지않겠다는태도만을견지하려는듯이보인다.
시인김소연은발문을통해“유계영의시에는속단이없다.”라고말한다.쉬운서정과슬픔,퇴폐와관능,명랑과우아,깊이와선의등에쉽게발을들여놓지않으려는이유에서다.어쩌면“쉽지않은경로로접근하려애쓰는태도에시의행로가따로이있다”고믿어보는것같다고,김소연은말한다.일반적으로시가서정과관능,우아와깊이,그리고선악을주요하게다루는예술이라는점을생각해볼때,이러한말은또다른질문을독자들에게던져준다.그렇다면쉽지않은길을가야만하는시의행로란어떤것이며,왜그래야하는가.혹은유계영은왜그러한길을가려하는것일까?

눈동자한숟갈만퍼먹어도되겠니매우달콤할테니까
고약한네가아름다운시를써와서영혼이하는일을이해할수없었다
-「좋거나싫은것으로가득한생활」부분

시집을펼치면보이는첫시부터독자들은위반의언어와마주한다.고약한네가아름다운시를써와서영혼이하는일을이해하지못하던‘나’는,아침에새치기하는너의부드러운몸짓을보고미소지으며영혼이하는일을조금이해하게된다.
또다른시에서는이렇게말하기도한다.“나는내가슈퍼마켓매대에서사과한알을훔쳐주머니에집어넣는것을본적이있거든(…)다음날에는한입베어문사과를사과더미속에깊숙이찔러넣고돌아서는것도목격하고말았거든/이것은사라지는즐거움내가나를어기는즐거움”(「에너지」).
이런올바른인간상에위반되는상상들은시집전반에걸쳐서나타나는데,이런상상력은많은생각을가능하게한다.몇가지예를들자면이런생각이뒤따를수있을것이다.첫째.나를어기는일은나를관찰하는데적합하다.둘째.지상위에인간이유일하게옳은생물은아니다.셋째.인간은옳음만으로구성되어있지않으며,옳음은필연적으로옳지않음을경유하며드러난다.
그렇기에내면으로라도고약함을알지못하는인간은옳음에관해서도말하기어려울것이다.어떤것이옳은것이며옳지않은것인가,하는판단의문제도뒤따른다.때문에인간은단일하고통일된존재라고보기에는지나치게복합적이고모순적이며,어쩌면그점이인간의가장아름다운점인지도모른다.“부모를닮아서”(「하우스」)이목구비는마음에들지만말투는마음에들지않는다고말하는사람처럼.“나의내부에는자신의출신지를외계라믿는커다란사람들이있”다고생각하는사람처럼.
“나는화장실에서오줌을눌때마다생각합니다/이런것들이빠져나간다는건/확실하고즐겁다”(「썩지않는빵」)라고유계영은말한다.우리가더럽다고생각하는것이다른무엇도아닌내안에존재한다는것,그리고그것이우리의몸밖으로시원하게빠져나간다는것.자기안을오래들여다본사람만이쓸수있을진술.여기엔경쾌하기까지한명징함이있다.

사람이죽으면체온은대기중으로사라지겠지
우주가되는일의즐거움이겠지
-「에너지」부분

멀리던지고
대답이돌아오길기다리고있어요.
얼굴에생긴구멍은
언젠가당신의폐속에공기가있던흔적,
돌멩이말구요,새가아니라요.
-「Firework」부분

한편유계영의시에는“내부를떠돌다입밖으로흘러내”리는죽은사람의말처럼죽음이미지가가득하다.그러나그죽음이미지들은슬프거나끔찍하거나두려운정서들을몰고다니는식으로나타나지않는다.나의소멸인그것은오히려그저자연이거나,즐거움이기까지하다.죽음이후의시선을갖게되는일도종종목격된다.
이러한생각들은결론적으로‘올바르게하나인,살아있는나되기’에대한부정의행로처럼보인다.이것이‘시의행로’일까.그렇다면유계영에한해서는왜일까?고통과외로움에관해말하는일이나의고유성으로,나의소유로귀결되어서는곤란하기때문이아닐까?그런‘나되기’가,나에대한나의독점이나아닌존재들을소외시키는일이될수도있음을유계영은“독점하지않을것”이라는입장으로밝히고있는듯하다.
유계영의시는죽음이후의시선까지다루고있지만,그럼에도섣불리미래를부르고예견하지는않는다.이는한번도마주친적없는,“흔적토끼”같은미래를아끼기때문일지도모른다.호명하면그힘을잃고도래하지않는것이미래이기에유계영은시에여백을마련하고,“미래의시가마저쓰게할것”이라고적어둔다.그의입장이지속되는한,독자는계속해서미래의그가쓸시를고대하게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