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낭독회 - 아침달 시집 41

가장낭독회 - 아침달 시집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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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기원석의 『가장낭독회』가 41번째 아침달 시집으로 출간됐다. 2018년 《시인수첩》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6년 만에 선보이는 첫 시집으로, 극시(劇詩)라는 독특한 형식을 통해 제한적 공간인 무대에서 말이 어떻게 우그러지고 휘발되는지 보여주면서 결코 멈출 수 없을 시 쓰기와 낭독의 미래를 시 42편에 담았다.
추천사를 쓴 정한아 시인은 기원석의 시를 “작가와 독자의 가학적이고 피학적인 역할 놀이에 대한 우리의 무의식적인 향유에 대한 충혈된 의식의 집요한 채찍질”이라고 평한다. 시 속 화자들은 서로 자기가 쓴 원고를 들고 읽으려고 뒤섞이다가 아무것도 읽지 못하고 자리를 떠난다. 관객이 객석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객석이 관객을 잃는 듯한 이상한 전복은 말과 대화의 관계와도 유비된다. ‘나’라는 본편을 시작할 수 없이 ‘튜토리얼’만 반복되는 세계에서 침묵으로 침잠하는 편을 택하는 태도는 시 쓰는 작가로서의 자신을 향한 열렬한 분투를 드러내고 빈자리까지도 읽어줄 독자를 지켜준다. 그들은 모두 낭독회에 새로 초대될 문장이고 객석이다.
저자

기원석

저자:기원석
2018년《시인수첩》으로등단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

목차


1부

튜토리얼
가장낭독회
튜토리얼
무인
어항
네트
포도의필경사
ClosetPoem
바게트
암시집
닫힌새장

2부

튜토리얼
미싱
스노볼
감색청바지
부담
천사
운동회
깍두기
과묵한이발사
이야기꾼
멀티엔딩
열린새장

3부

튜토리얼
CONFIDENTIAL
미라
야광꼬리달린하마에대한나폴리식경고문
현대시작법
현대시독법
미인
여기없어요
모자이크
이야기가어떻게끝날지다알면서도

4부

마지막시
튜토리얼
튜토리얼
admin
벽앞에서
크리에이터
네트
완성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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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침묵만이상연되는무대
영원히끝나지않을튜토리얼

2018년《시인수첩》신인상으로등단하며작품활동을시작한시인기원석의시집『가장낭독회』가출간되었다.이번시집은그가시를쓴지6년만에펴내는첫시집이다.4부구성으로총42편의시가수록되었다.
기원석시인의시는마치연극공연에서무대배경이나장치를수시로바꾸듯다채로운시적정황을펼쳐두고독자들을초대하는데,정작초대장을받은독자들이관객으로들어서면무대는암전되어어두워지고그대로공연이시작된다.관객은객석에앉아도소외되거나종종무대에끌려가배우와교환된다.이러한화자들은시에서설계된그로테스크한상황에감화되지못한채서로대화하기도하고객석을향해혼잣말을하기도한다.하지만말은거의“시가되지않는문장들로이루어져있”(「튜토리얼」)어서소통은단절되고,혼재되는언어의혼란속에서독백이나방백처리되며,차라리자신을“침묵속에서다시읽어주”(「마지막시」)라고권유한다.말하자면백지라는무대는시인이시를쓰는순간암전되어온통암흑으로뒤덮이고,우글거리는문장들은의미가전달되는대상없이부유하여먼지속에서떠돌면서침묵을상연하는것이다.기원석이말하는침묵은말하기를포기하거나말하는도중에입을다무는정도가아니라거듭하여말하기를반복하는데도불구하고세계와독자에게전달되지못해스스로말을창살에가두어버리는행위로확장된다.
이번시집에서보여주는삶은모두일종의게임속‘튜토리얼’을반복하는형태로그의미를드러낸다.“튜토리얼은반복을직조”(부록「제목을입력해주세요」)한다는시인의말처럼,삶의주인은좀처럼내가될수없고오로지세계의매뉴얼을익히는데에만온힘을다쓰게된다.시집은튜토리얼이라는같은제목의시를여섯번반복하여수행한다.“그러나다음에읽을시는너를절망하게”(「튜토리얼」)하고,“기원석은본편에영영진입하지못한채”“다시튜토리얼에앞에서있”고(「튜토리얼」),“지루하겠지만잘있어보”(「튜토리얼」)라고말한다.삶은이미정해진세계의법칙과구획을바탕에두고말과동작을수행하기위해조작법을익히는연습이라는것이다.그러니시인은튜토리얼만반복되는세계에서시를쓰며나자신을위해다양한이야기를마음껏펼칠수있는무대만이라도원할수밖에없다.“모두가무대밖으로뛰쳐나온다”(「과묵한이발사」)고할지라도시인만은무대에‘이야기꾼’으로홀로남아이야기를마저한다.

R버튼과X버튼사이에앉아
박수갈채를받는수감자

“간격없는반복”(「CONFIDENTIAL」)으로시를건너오면4부첫시로「마지막시」를만나게된다.여기서부터시인은두가지버튼을준비한다.R버튼과X버튼,그것들은각각다른기능을가지고있지만“키설정”(「막」)을잘못하면삶이곤란해질수가있다.화자도독자도마지막문장에도달하면R버튼을눌러처음으로돌아갈수있고,누군가의죽음을애도하기위해X버튼을눌러다음으로넘어갈수있다.
그리고시인은이삶을애초에배우와관객만주기적으로교체되는세계로인식하고있으며각자의의미대로펼치고있는이“공연은한번퇴장한뒤재입장”할수없다고말한다.이세계는처음부터“버그”에걸렸지만수없는튜토리얼을진행해도삶은원하는대로구성되지않는다.아무도바라봐주지않는무대는아무리혼신의연기와대사를펼치더라도죽은영혼이떠도는구천과다르지않을것이다.매순간투명한창살에가둬진듯한기분은곧삶을실재하는감옥으로받아들이게된다.시인은자신이쓴시집의독자일뿐,그밖의다른영향력은펼치지않는다.다만모든공연이종료되는시점에서어떤내용이끊임없이삭제되다가마지막에우리에게묻는다.“진짜삶이우리를죄다비우기전에”내용을삭제하겠느냐고.하지만이미내용은삭제되는중이고질문은괄호에갇혀그마저도삭제된다.
시를쓰는모든시인은감옥에갇힌수감자다.빛보다는어둠에더감응하며시에자신을비추는내용을적는다.기원석은“너를움켜쥐는어둠”을“나의내용”(「암시집」)이라고말한다.시의투쟁이란바로“박수갈채”가전부“음향효과”임을알면서도무대위에서자신의시를끝까지낭독하는일일것이다.시에서는누구나얼굴과몸과태도를거짓으로가장(假裝)할수있다.그리고시인은어김없이낭독회를꾸려독자들을초대할것이다.이무대를시작하려면우선빈의자들부터깔고아무도오지말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