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나를기다리는것이아니라
내가거기먼저도착해그들을기다렸으면”
1부제주를시작으로,5부섬으로부터까지,여행하는마음으로일상을살다가도이곳이‘남쪽섬’임을잊으며살아가는작가의여정이생생하게담겨있다.이번그림에세이는‘제주’와‘신도시’를오가며보내는생활의면모도엿볼수있지만,무엇보다‘마음’을장소로두고양면의마음을지니는우리모두를초대한다.서로에게다정한말들을나누는모임에서,담벼락을오르며무성히자라는풀을응원하는자리에서,제철과일을만나며계절을실감하는거리에서,엄마의문자메시지속에서작가는삶의장면에함유된다채로운감정을동시에읽어내며마음을어루만진다.
또한,이번책에서자주등장하는소재는바로‘창문’이다.작가는섬과육지를오가며다양한얼굴을하고있는창문을읽어준다.비행기와작업실의창문이나건물에가려진작은건물의창문등을등장시키며창안에있는나와창밖에있는풍경을나란히겹쳐본다.창문은작가가간직하고있는투명하고맑은시선이자,무언가를구분하거나나누는방식이아닌,건너편을마주보는방식으로다시그려진다.
작가는정직하게찾아오는계절을보다가깝게만나며,우리에게주어진시간의소중함과애틋함을그림으로담아낸다.뿐만아니라,삶의여러장면을켜켜이기록하며쓴밀도높은에세이는작가자신이체험한순간을생생하게전달한다.그리하여금세웃음을짓다가도돌아서면이내쓸쓸해지는마음의갈피에대해이야기한다.도망친것이아니라,우리에게더어울리는곳을찾아왔다고생각하자말하는작가의따뜻한메시지는마음둘곳없이시간에휩쓸려정작자신을돌보지못한우리의어떤시간에게보내는위로가된다.
책속에서
오랜만에종이를꺼내과수원으로향하면서보았던겨울의깜깜한새벽공기를먹으로그렸다.깜깜함위에바닷가집들의불빛을주묵으로점점이켜낼때,하나둘씩빛을내뿜으며귤의얼굴처럼밝아오던마음을기억한다.
―15쪽,「돌아오다」
그렇게‘나’는짓궂은친구가내등뒤에붙여놓은쪽지처럼내눈에는잘보이지않아서로의등을보고이야기해줄누군가가필요하다.(중략)우리는더다정하고더쓸쓸해질수있을까,둥글게모여앉아,그래,얼마든지할수있을것만같은밤이었다.
―101쪽,「쓸쓸과다정」
늦은밤,길을걷다가금귤나무를보았다.모두가더워좀처럼가만히들여다보던이가없던한여름에굵은소금을뿌린듯,하얗게꽃을피웠던나무가어느덧열매를맺고노랗게익어가고있었다.깜깜한한밤중에도늦겨울에도조금씩,천천히제철로가고있었다.
―137쪽,「금귤나무」
이야기를듣고나면그곳의모두가알게된다.나의일상도모두의일상처럼평범하면서도특별하다는것을.기록에는그것을알게하는힘이있다는것을.
―161쪽,「여행하는마음」
사람도,
높다란건물도아직은오르지못하는곳을
그러거나말거나
오르는너의천진함을,
넘어서는너의담대함을
좋아해.
―179쪽,「전진하는초록」
미움을가진커다란것보다사랑을품은작은것이되고싶어.그러면너처럼죽음같은추위도,어떤것도무서워하지않을수있을까.커다란온기보다잠깐의차가움과미움을믿어버리는나는작고작은네앞에서더작아지고말았던거야.
―211쪽,「한파」
궁금한게생기면질문을해야지.길끄트머리에서조금더걸어가무언가를처음만나봐야지,그러다무서움이밀려오면무서워해야지,그리고다시걸어야지,별일없는편지를써야지.슬프면이불을뒤집어쓰고그안에서실컷울어야지,그러다가이불밖으로슬쩍,얼굴을내밀어퉁퉁부은눈과가벼워진마음으로일어나세상과화해해야지,그리고꼭안아야지.
―224쪽,「어린이를그리기」
반짝이는바다,겨울에도초록으로반짝이는나뭇잎,나무에매달려노랗게반짝이는귤이‘너는지금남쪽의섬에있어.’라고내게말해준다.
―285쪽,「섬에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