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라 콜 - 아침달 시집 37

오로라 콜 - 아침달 시집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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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숙희

저자:숙희

서울에서태어나고경기도에서자랐다.

십여년간기자로일했다.얼마전에작은인간을낳았다.

첫시집을펴낸다.

목차


1부
오로라콜
랑헨에서
창문없는방
유물실
상수동
내실
아기침대열두개
랩소디
우리는새라서

2부
제한수역
맥거핀
기린터널
종이나비
작품에손대지마시오
종이나비
안반데기의밤
그들은삶을사랑하기에앞서부를사랑했다
지나가던파랑이검정을흉내내며웃었지
파랑
도망친밤

3부
봬요
서울풍경
미래의습성
순종
헛꽃
쌀알줍기
양자역학의이해
새우를기르는꿈
아스피린블루스
꽃이죽었다는것을언제알게되나요

4부
모르는것을자랑하는것을사랑하는것
태초에마음이존재했다
하교
하현
댄스홀
종로
눈을감고들어라
SinkingSun
외재와내재
독자에게

부록
주파를맞출수없는라디오채널에관하여

출판사 서평

죽음을넘어서기위한기다림의시간

무엇을알기위해서무엇이되기위해서
선잠에들었다깰때
가져보지못한것을그리워할때
밤이긴곳에서불면이이어질때
실패하기위한실패도있다는것을들었을때
이불위에서변기위에서초조할때

핀란드나아이슬란드나
먼극지의호텔에서한밤중손님을깨워준다는
오로라콜을
내방에서기다리지
-「오로라콜」부분

숙희의시는어느새벽의기다림에서부터시작한다.극지와가까운호텔에서오로라현상이발생할때깨워주는전화를,숙희의화자는자신의방에서기다린다.

전화는당연히올리없다.그기다림은실패할것이다.자신의방은극지도아니고호텔도아니므로.창문을열면불켜진가로등이보이고,그위로빛나는별대신에인공위성이보인다.헛된기다림일까?그러나그불가능한기다림을시작하면,“나도그것을볼수있을것같고/빛의휘장을따라달리기를할수도있을것같”다는마음이생긴다.

불가능한현재의시간에가능할수있는미래의시간을끌어오는상상력은그자체로도오로라빛처럼아름답지만,아름다움만을우선시하다보면왜그러한상상력이필요한가라는질문을놓칠수있을것이다.왜그러한기다림의힘이,버티는힘이시속화자에게필요한것일까.왜그화자는“가져보지못할것을그리워”하고,불면을앓고있으며,일상속어디에서나초조해하고있을까.

예수승천대축일을맞아
물놀이를하러온몸들이많았어요

랑헨의계절은
벗고뛰노는몸들이있어
여름으로향해가고

가슴을드러낸여자들과남자들이
수면을넘나들며햇살을끌어당겨요

모래사장위에는
커다란비치타월을들고
어린아이의몸을닦아주는사람이있고
작고젖은몸이
반짝이고있고
-「랑헨에서」부분

시인백은선이숙희의시를두고“냄새나고생동감있는육신을가진여성성”이있다고언급했듯이,숙희의시에는성과몸에관한관심이솔직하고생생하게드러나있다.「랑헨에서」라는시에서보이는저벗은몸들에대한긍정을보자.본능적인성적호기심이솔직하게투시되고있는저장면은외설을넘어서는중이다.바닷속에서벗은여자와남자를보던시선은모래사장으로내려오며어린아이의반짝이는젖은몸으로향한다.사랑의행위와그증명을은유하듯,벗은몸들이빛나는풍경과하나가되는순간이다.그순간은너무아름답게보이기에현실에속해있는것처럼보이지않는다.

모든착한여자애들은죽기전에지옥에갔대
죽고나서야천국으로간대
-「지나가던파랑이검정을흉내내며웃었지」부분

나는아직죽은사람
지긋지긋해어제의나와헤어진지오래지만
나는아직죽지않은사람
(…)
나는생리하는사람
나는참아온사람
나는가위를휘두를사람
나는갑자기우는사람
-「눈을감고들어라」부분

나는언제든다시죽을준비가되어있고
-「랩소디」부분

숙희.시인이우리주변에너무나많을듯한그이름으로시를시작하게된것은암시적이다.순수했던성적욕망은일그러진사회를따라왜곡되어전해지기때문이다.“내가자위를배웠다고해서나를강간해도된다는뜻은아니”지만오늘은여전히‘너에게도문제가있다’고말하는세상이다.이러한성적통제속에서결국계속해서여성은참아야하고,또죽게된다.이는전혀시적인은유가아니라기사로보도되고있는현실들이다.“너무자주들리는사이렌소리”처럼숙희의시집속에서반복되고있는죽음이미지들은그러나여성의죽음에만머무르는것이아니다.

임신을했어요

중단을했어요

휴학을했어요

우울증은치료중

금지된푸른버섯을먹는꿈을꿉니다

꿈속의꿈에선어김없이
내가언덕위의아기가됩니다
-「아기침대열두개」부분

사랑을통한몸의결합을통해서,또한그중여성의몸을통해서아이는탄생한다.그러나오늘날고된삶속에서우울과죽음에더욱가까워진여성들은이제새생명낳기를선택하려하지않고있다.아마도그것이자신의불행뿐아니라아이의불행으로까지이어지는일이라생각하기때문일것이다.안정된사랑의결합이어려워진현실속에서아이의존재는때로는지워지고때로는나타나면서가능과불가능을오간다.인류의역사라는관점에서보자면이는금방이라도사라질듯이깜빡이는미래의시간이다.

이러한죽음이인간종에만한정되진않는다.일례로저자는시「제한수역」에“우리들이매일사용하고버린것들이다사랑이었지/플라스틱/인류애였지”라고쓴다.인간종의사랑이쓰레기가되고다른종과이세계의죽음을야기한다는사랑의아이러니가드러나는이시는,“사는것이민폐임을모르는/이십일세기의바쁜시민들”의존재자체가원죄에가깝다는죄의식을다시금떠올리게한다.

이러한절망들에도불구하고,결국숙희가기다리는미래는죽음만은아니라는것을독자들은알게된다.시는미래의시간을죽음의편보다는새생명의편에서바라보고있기때문이다.그아이들은어쩌면지금까지와는다른방식을통해서탄생하는것일지도모르겠다는예감또한여기에있다.방에서오로라를기다리는일이불가능에가까운기대라고할지라도숙희는포기하지않는다.시의말미에서거짓말처럼벨이울리듯이,그시간이오리라는믿음에는꿈틀거리는생명력이있다.

그럼,잠깐질문좀해도될까?만약에정말신이있다면,신은국경을얼마나이해하고있을까?그물음에대해오래생각하던새벽,최소한의영토는몸일수밖에없구나,그렇게받아들이게되었어.몸이라는영토.
-부록「주파수를맞출수없는라디오채널에관하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