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 이름이 나하고 같아 - 아침달 시집 26

그 여자 이름이 나하고 같아 - 아침달 시집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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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몸으로 생생히 느껴지는 듯한
조각난 마음의 무늬들
시집 『어떤 사랑도 기록하지 말기를』 『차가운 사탕들』 등을 통해 진한 고통과 슬픔의 시를 전해온 이영주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그 여자 이름이 나하고 같아』가 아침달에서 출간됐다. 이번 시집에는 43편의 시와 함께 3편의 짧은 산문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추천사를 쓴 유형진 시인은 이영주를 두고 “슬픔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라 말한다. 슬픔으로 시를 쓰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어디서든 조금씩 고통의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시인에게 고통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만성적인 상황이다. 친구마저 적과 혼동되는 이 적대적인 시공간 속에서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재난과 죽음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우리 인간이 해야 할 일이라고 시인은 말하는 듯하다. 이때 시를 통한 고통에의 동참은 도덕적 지위를 지닌 모든 존재의 고통에 관해 생각해보는 통로가 된다.
저자

이영주

1974년서울에서태어나명지대학교문예창작학과박사과정을졸업했다.2000년[문학동네]로등단했다.시집으로『108번째사내』,『언니에게』,『차가운사탕들』,『어떤사랑도기록하지말기를』,『여름만있는계절에네가왔다』등이있다.

목차

친분
점성술
불쏘시개
고적운
내친구타투이스트
졸업여행
사제의개
친구와적
갱도체험
전염
여름에온마트료시카
표백
스승과제자
이삿짐
패션
독서
누군가
솜틀공장
무늬목
아랍친구
한파주의보
북극으로
네안을걷다보면
미래예찬
도서관을가면
나는선생님이아니다
곰과돌
우리
백과이
문예창작
2인칭의자세
인간수업
유기묘
나의선교사
겨울산책
특산물
소설
포스트
연인의안부
가죽공방
없어졌으면
사슴농장
심해

부록

펼친책
-주석1
-주석2

출판사 서평

고통을바라보며느끼게되는동질감을통해
서로의내면을걸어보는경험

병원에간다.
친한사람을찾고싶다.

희미한냄새가혈액안으로가득찬다.
부풀었네요.

친한사람으로가득찼으면좋겠다.
―「친분」부분

고통은이영주시의인장과도같다.『그여자이름이나하고같아』는병원에서시작된다.병원풍경을그리는시「친분」의첫몇구절은담담하여편안하게느껴지기까지한다.그러나병원이“친한사람으로가득찼으면좋겠다”로소망하는순간까지오면독자들은기묘한부조화를느낄듯하다.병원은아픈이들이찾는공간이니까.병원이친한사람으로가득찼으면좋겠다는소망은,다르게말하자면‘친한사람들이고통스러웠으면좋겠다’는이상한바람이기때문이다.
이러한이상한바람은여러방향으로생각을뻗어가게만든다.가장단순한생각은친한이들도나처럼아팠으면좋겠다는나쁜마음일것이다.그보다나아가는생각은고통을통해서만보고느낄수있는것들을친한사람들도함께경험하고알게되기를바란다는,고통이라는경험으로의초대일것이다.조금다르게해볼수있는생각은함께고통스럽다는이유만으로도형성될수있는친밀감,고통을통해서이루어지는사람사이의연결일것이다.이러한생각들과함께다음으로이어지는시「점성술」의첫구절을지어볼수있다.

끝나지않는두통때문에우리는각자다른곳에서울었다.서로알지못했고서로에게서멀리벗어나있었는데.
―「점성술」부분

어떤이들에게세상을사는일은그자체로아픈일이다.고통의경험이자신의신체안팎에서발발하며몸의감각을헤집고,우리의두통은멈추지않는다.이런영원할듯한고통을나만느끼는것이아니며당신도느끼고있다는사실,서로알지못하면서도같은고통으로울고있다는사실로인해나와너는우리가된다.
이영주시의‘나’가느끼는이러한통증은자신의근원,내면에서비롯되어세상의통증을감각하는과정으로까지나아간다.나는10대청소년시절부터외부의억압과폭력을통해이미고통을느끼고있다.그고통의연원은아버지일수도있고,학교선생일수도,수치심이라는단어를알게만들었던“남자아이들”일수도,“자정이넘으면내그림자를짓밟으며문앞에서호흡을흘리는타인”들일수도,혹은그와비슷한세상의수많은폭력일수도있다.
이러한어린시절의통증속에서‘나’는문학과만난다.시「불쏘시개」에서소설속여자주인공은말한다.“너무깊게읽지말고,너무동화되지말고,너무매혹되지말고,너무사랑하지말”라고.하지만문학의언어는한창예민하던어린고통과만나며진동한다.‘나’는상처가“흉터없이사라지려면무언가를쓰지않아야한다는것을”알았지만그렇게하지않았다.쓰고읽는일,문학만이어두운방을조금이라도밝혀줄불쏘시개가되어주었기때문일것이다.

세계여,아직도망하지않고있다니.너는실망한다.엎드려서굴을판다.투명한삽.망한지오래되었는데,너는어느세계에있는거니.물고기만물에있는것을모른대.나는불타는삽을들고서잿빛털이불근불근솟는너의등을보았다.
―「갱도체험」부분

“나는재난의한가운데홀로남아있었다.”라고말하는‘나’는,자라나며자신이느끼는고통이혼자만의것이아니라는것을깨닫게된다.세상에는자신처럼고통받고슬퍼하는이가있다는것을알게되면서나의통증은여자의통증,그리고세계의통증과연결된다.이영주시인이보는세계는이미망한세계이다.물고기들이자신이물에있는것을모르듯이,망한세계를살아가는이들은이미세계가망했다는것을모른다.시집에등장하는여러겨울이미지는시인이바라보는지구의계절과도같다.“검은겨울속으로”“영원히떠밀려가는듯한”풍경과인물들은재난이후에도래할무덤속에서관람될죽음이미지들이다.

애도는언제까지가능할까.애도는언제끝이날까.
아주오래전부터나는애도의인간일지도모른다.우리는모두그렇지않을까.
―산문에서.

이영주의시집은재난현장에서불타는것들과잿더미가된것들을바라보는일의정신적고통에대한기록이다.망해가는세상에서살아남아고통을기록하는일에슬픔말고어떠한의미가있을까.고통의기록은지나간슬픔에대한기억이자애도행위일뿐더러,앞으로다가올재난에대한예지이기도한것은아닐까.이영주의시속에흐르는“현실너머의초과된세계로흘러가는문장들을따라걸”어가다보면남은세상을어떻게살아가야하는지저마다자문하게될수도있겠다.그러한자문도좋겠지만,조금은슬프게느껴질이겨울산책이누군가에게는그저깊은우정으로건네는위안이되어줄수있기를더바란다.

겨울을향해흘러가는하늘이두꺼워지면언니생각이많이났다.
―산문에서.

거실에남겨둔빛
천천히쓸어보는검붉은재
다태우고가자
―「스승과제자」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