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노래는 이미 - 아침달 시집 27

우리의 노래는 이미 - 아침달 시집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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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계이름 바깥의 멜로디 같은
우리들의 이야기
만화가 루나파크, 카피라이터, 시인 등 다방면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홍인혜의 첫 시집 『우리의 노래는 이미』가 27번째 아침달 시집으로 출간됐다. 2018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4년만이다. 홍인혜의 시는 누락된 괴짜 같은 이들을 내세워 어두운 도시의 풍경을 그린다. 저마다의 사연과 슬픔을 안고 있는 이 등장인물들은 한데 모여 서로를 위로하는 노래가 된다. 홍인혜의 시는 오늘이라는 소설의 한 페이지를 건너, 다시 범람하는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잠자리로 드는 충혈된 도시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자장가다.
저자

홍인혜

광고회사TBWA에서일했고,홈페이지루나파크를만들어만화를그려왔고,2018년시인으로등단했다.지금은회사를떠나다양한분야의창의노동자로살아가고있다.여러마리의토끼를쫓느라늘힘에부치지만모든토끼가사랑스러워걸음을늦출수가없다.지은책으로는『혼자일것행복할것』『루나파크옷걸이통신』『지금이아니면안될것같아서』『루나파크』등이있다.

트위터/인스타그램@l...

목차

한장의사람
묠란드
언데드
두두
물의살
파본
소설
우리의노래는이미

야간비행
미래의효나
소굴
단체
기울어진


민들레병원
엘리제를위하여
여름재미
죄와

뱀기차
룰라바이
등장인물
빙하기
태주의무덤
미미레레
대잔치
묵시
윤회
미래소녀
세도나
태주의무덤
카니발
원근
숱한

눈꽃과불꽃
복선
잎새의온도
취급
신앙고백
외출

부록
시의사람들

출판사 서평

충혈된도시의사람들

모두가춘다음악이들리면추고귀신이들리면추고너나없이삶이들려추고삶이떠나도추던가락으로추고
―「춤」부분

홍인혜의시에는노래와춤이가득하다.그런데그노래는조금은어둡고쓸쓸한멜로디를띠고있으며,그춤은괴짜들이펼치는몸부림에가깝다.어딘지기묘해보이는그러한노래와춤에는처량한한편나름의최선을담고있는듯해,보는이의마음한구석을찡하게만드는데가있다.홍인혜가그리는시의풍경은어디를향하고있는것일까?

왜이곳에왔는지묻지않지만부은발목과젖은머리칼에서,화약냄새와불탄소맷단에서서로의이력을더듬는나라묠란드손마디굵은사람들이오렌지나무아래기타를치고선율과함께손금이풀려나간다둥치마다밤이기웃거린다매달렸던사람들모두내려와춤추고음표마다사라지는멍자국들
―「묠란드」부분

묠란드라는상상의나라다.그곳의풍경은아주평온해보인다.고양이들은지붕에배를내놓은채로졸고있고,아이들은마음껏뛰노느라더러워졌고,노인들은부끄럼없이더디게산다.“화약냄새와불탄소맷단에서서로의이력을더듬는나라”라고한데서유추할수있듯이,묠란드는전쟁또는그와같은지난한경험으로부터상처를입고탈출한이들의망명지이다.그들은묠란드에서노래를듣고춤을추며지난상처들을치유받는다.
그들은묠란드에서더이상문제가없어보인다.하지만이따뜻하고너그러운풍경에서느껴지는으스스한느낌은무엇일까?어떻게그들이전쟁같은현실에서벗어나묠란드로망명하는일이가능했는지가영마음에걸린다.시의결구는단서하나를준다.“신발끈은헐겁고사람들은너그러워마치한번쯤죽어본것처럼”.마지막진술로인해묠란드는비현실적인환상의공간을넘어서상처를입고죽은이들이모인천국의이미지를덧입는다.따스하지만오소소하고다정하지만서늘한,이상한형용이가능해지는세계를홍인혜는그려내고있는것이다.

다정한피가너를한바퀴돌아나를이어달리곤했다

팔이발생하자서로를안았다최초의포옹은타인을안는동시에자신을안는것이었다
―「빙하기」부분

홍인혜의시에는“다정한피”가돌고있다.홍인혜는‘오늘’이라는이름의소설을살아가는이들의삶에시선을준다.그런데이들이등장하는소설은밝고희망찬이야기를들려주지않는다.이들이등장하는소설은“문법에서탈주”한소설이며,소설속인물들은“플롯에서낙오한”사람들들이다.쏟아지는눈풍경속에서펼쳐지는그들의이야기는“투명한파국”을향해간다.
홍인혜가보여주는다정함은동정에서오는시혜가아니다.“팔이발생하자서로를안았다최초의포옹은타인을안는동시에자신을안는것이었다”라고써두었듯이,그다정함은같은처지에놓인동족을바라보는데서온다.따라서홍인혜는그렇게발생되는다정함을연민의어조로말하지도않는다.그의힘은어두운것을어두운것자체로보는데에서온다.따라서홍인혜에게있어대상의슬픔을바라보는일은나의슬픔을바라보는일이되며,대상의어두움을바라보는일또한나의어두움을바라보는일이된다.대상을향하는다정하면서도서늘한시선을통한복잡한양가감정은그의시곳곳에서살펴볼수있다.

효나와의마지막대화를떠올렸다효나와나는크게다퉜다너진짜재수없다,그래?우리다신보지말자(…)

동창들은매년같은날모인다해가갈수록효나가아닌아파트와주식을기린다효나는언제나작년이지만우리는내일아마살아있을테니까

새해를맞는카운트다운이시작되고사람들은샴페인처럼바글거린다이제효나의두배를산나는고백한다있잖아효나야

근데그때너도잘못했어
―「미래의효나」부분

이시는효나의기일이배경이다.효나는죽은지한참되었고,동창들은죽은친구를기리기위해그날에모이지만더이상효나에관한이야기는하지않고아파트와주식등의돈이야기만한다.그무리속에서여전히효나를생각하는것은효나와크게다투고절교를선언했던화자다.화자는효나가교통사고로죽은뒤연관성없는죄책감에시달렸을테지만,그렇다고해서효나를고인이라는이유로미화하고용서하지는않는다.
화자는효나를여전히미워하고있는것일까?그보다는좀더복잡하다.화자는효나가귀신이되어자신에게붙으면어떡하나,두려워하면서도평생“네가나를계속무섭게했으면좋겠다”라고생각한다.여전히효나를기리고그리워하는그만의방식인것이다.아파트와주식이야기를하는친구들무리에자연스럽게어울리고있지못하는,플롯에서낙오한듯한그만이보여줄수있는복잡한다정.
홍인혜의시에는지나간좋았던시간에대한추억과사라진것들에대한쓸쓸함,그리고해가저물어다가오는어둠에대한인식이얽혀있다.때문에홍인혜가그려내는도시의풍경은밤이깊어도꺼질줄모르는,“충혈된도시”이며그속에서“조용히허물어”지는사람들이다.앞서말했듯이이는무엇보다도자신의이야기이기에,홍인혜는“침대밑에도사린검은악어를”잠재우듯이,기도와도같은마음을담아“미미레레”하고스스로에게들려주는노래를부른다.신에게바치는찬송가(미제레레,‘불쌍히여기소서’)와는달리내방에미미하게울릴뿐인자장가를.그러나그노래는“계이름바깥의멜로디”같은사람들에게“라디오가감지한비밀주파수”를통해퍼져나가,더많은이들에게전해질것이다.

안태운시인의추천사:질겅이고픈밤의양태들

『우리의노래는이미』를거듭읽으면서도앞부분으로돌아와“푹젖은어깨로도/무지개를봤으니/이제됐다고”하는시인의말을더욱질겅이게되었는데,왜냐하면시편들을이문장이포함하며감각하고있다고느꼈으므로,그희노애락과낙차혹은애환,삶을살아가면서인간이겪을수있는좋음과나쁨이시한편에서자글자글동시에드러나있을때,그렇게“매일피부에일상을적어넣”고있을때정말좋다고생각했기때문이다.특히나왜좋은시들은그시편에서양가감정을,건조함과함께동시에물기를느끼게하며그렇게이상한군데군데를남기며내몸을숭숭뚫기도자박자박메우기도하는가,“그창궐하는감정”은무엇인가,왜나를조금넓히는가(물론이윽고수축하지만)가늠해보기도했는데,나는그중에서도시집에드러난밤의양태에대해서언급하면좋을듯하다.“밤은겹이너무많”고그겹은이제자라나어른이된사람들을표상하고,어른들은일을해야하므로“옷에눌려점잖”게되지만,그럼에도밤에는“팔다리”를조금은“까불”수있나.“밤의농담엔뼈가없”으므로“우리의약속은언제나불시”이므로우연히마주하게하므로춤추게하니까?춤.춤춤.춤춤춤.나는?춤?이라는시를읽고좋았다.춤은많은것들을하게하는것같다.추는행위는그무엇도하게하나?앞서언급한희노애락과애환과좋음혹은나쁨도,그래서추나.밤의앞과뒤인낮들도추게하나.“음악이라서”또“눈빛이”이므로“엉켜서”,“고요히누운사람의불면”이라서“가만히”,“추던가락”이며“비난하던너의입술”이라서,“심야택시계기판”이라서“고독”이며“충혈된도시”라서계속춤추고있는시.나는몇주간드문드문이시집을미리읽으며취기에춤추고싶었고,무엇보다춤추고난후?여름재미?에나오는사람처럼“밤을질겅”이고싶었다.사실춤은마음속으로만추었지만밤은실제로질겅여보았다.밤에거닐면서시집의문장들을떠올릴때마다질겅질겅질겅질겅턱관절을움직이며,밤을질겅거린다고감각해보면기분이정말좋았는데……그러니까“징그럽게즐겁게”.―안태운(시인)

책속에서

탄산같은햇살게으른파도형형색색으로칠했지만엇비슷한빛깔로바래가는지붕들고양이들은배를내놓고잠들고그림자를쓰다듬던여름마저꾸벅거리는섬아이들은마음껏더럽고노인들은부끄럼없이더디고왜이곳에왔는지묻지않지만부은발목과젖은머리칼에서,화약냄새와불탄소맷단에서서로의이력을더듬는나라묠란드손마디굵은사람들이오렌지나무아래기타를치고선율과함께손금이풀려나간다둥치마다밤이기웃거린다매달렸던사람들모두내려와춤추고음표마다사라지는멍자국들
―「묠란드」부분


십일월의공기엔푸른이빨이섞여있지
나는살을감추며버스를기다리네

점퍼마다새를가둔사람들
모여서서날개뼈를웅크리고

“들었어?
오늘이소설이라니”

문득올려다보는
이마에차가운느낌표가찍히네
―「소설」부분


동창들은매년같은날모인다해가갈수록효나가아닌아파트와주식을기린다효나는언제나작년이지만우리는내일아마살아있을테니까

새해를맞는카운트다운이시작되고사람들은샴페인처럼바글거린다이제효나의두배를산나는고백한다있잖아효나야

근데그때너도잘못했어
―「미래의효나」부분


모두가춘다음악이들리면추고귀신이들리면추고너나없이삶이들려추고삶이떠나도추던가락으로추고접시위엔조각난낙지가추고이게춤이라고?비난하는너의입술이춘다
―「춤」부분


너의차에탔다
와줄줄몰랐어,그일은계속하니,아직도구파발에사니
많은말을삼키고
수동이는요즘도많이짖니?

너는대답이없었고창밖은
도시였다가바다였다

여기는강릉이구나아니
제주도곽지해수욕장인가
마지막으로같이갔던보홀일지도
―「우리의노래는이미」부분


우리는심장을공유하는하나의반죽이었다

다정한피가너를한바퀴돌아나를이어달리곤했다

팔이발생하자서로를안았다최초의포옹은타인을안는동시에자신을안는것이었다

갓꺼낸다리로해변을걸었다발목에감겨드는물빛레이스들

엉킨발자국들에겐주어가필요하지않았는데

한덩이는문득이름을갖고싶었다불러주고불리고싶었다
―「빙하기」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