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재의 예술혼에 취하다 (극재 정점식의 삶과 예술 | 양장본 Hardcover)

극재의 예술혼에 취하다 (극재 정점식의 삶과 예술 | 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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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이 책은 선생의 삶과 작품세계를 연대기로 나누어서 살펴본다. 그것도 선생의 작품을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맥락 속에서 다루고, 선생이 추상을 지향하는 가운데서도 현실의 경험을 작품으로 승화시키고자 한 사실을 작품으로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작가로서 뿐만 아니라 비평가로서, 교육자로서 선생의 면모가 그려진다.
저자

김남희

계명대학교미술대학회화과(1987)및동대학교대학원회화과를졸업(1992)했다.2009년에동대학원박사과정에서「조선시대감로탱화에나타난시간성과공간성표현에관한연구」로미술학박사학위를받았다.석사학위논문으로「동양화에있어서의여백연구―중국회화의사상적배경고찰을중심으로」가있고,그동안17회의개인전을개최했다.

한라대학교겸임교수를역임하고,계명대학교에서미술실기와이론을강의하고있다.논문으로「19세기감로탱화와풍속화의비교연구」(2012),「19세기풍속화와우키요에에나타난인물상분석」(2016),「선사시대미술에나타난기호의예술적의미」(2016),「조선후기감로탱화에나타난민화적요소연구」(2017)가있다.지은책으로『한국미술특강』(2012),『중국회화특강』(2014),『일본회화특강』(2016),『조선시대감로탱화』(2018)이있다.

목차

서문004
프롤로그013

1.어린시절과하얼빈시절(1917~1945)

‘약전골목’과예술적기질017
그림을동경하다019
책에서길을찾다026
교토에서하얼빈으로029
쓰다세이슈를만나다034

2.해방의그늘과전쟁의빛(1946~1956)

해방후의한국화단041
1940년대의대구화단043
‘6·25전쟁’이라는문예부흥기049
첫개인전과두번째개인전052

3.지역화단을넘어중앙화단으로(1957~1969)

‘모던아트협회’와<현대작가초대미술전>065
극재예술의본질과주술로서의예술071
체험의조형화와체온이깃든추상084

4.미술대학개척과교육자의길(1964~2001)

기초와모험정신을강조하다095
미술대학을빛내다101
<대구현대미술제>와해외전을유치하다105
미술교육의특성화와장학제도107

5.‘곰탕거리’같은그림을그리다(1970~1983)

1970년대의한국화단과대구화단113
‘남들이모르는그림’117
『한국현대미술대표작가100인선집』에들다127

6.‘예술의독학적경험주의’(1984~1995)

비평가극재135
서문과공감의비평144
서로다른두경향의화해무드151
‘중용’의입장과평형감각164

7.한국추상화의별이되다(1996~2009)

찬란한황혼기175
1999년의어느인터뷰179
정신의자유를구가하다182
극재미술관과‘2004올해의작가’,‘이동훈미술상’193
비평으로본극재의예술세계198
극재의화집들213

에필로그219

주224
참고문헌247
찾아보기252

연보266
저서,논문,화집278
연구자료280

출판사 서평

‘과연이길수있을까?’에서
‘반드시이겨낸다!’로
극재(克哉)정점식,스스로호(號)를짓고예술로우뚝서다

옛말에등잔밑이어둡다고했다.정작가까이있는것은제대로모른다는뜻이다.저자에게스승이그랬다.크고작은인연속에대학원때가르침을받았고,졸업후에는자동차로간간이전시회에모시고다녔다.그러면서스승이살아온파란많은인생사와우리근·현대미술사속의기라성같은화가들의이야기를신기하게듣곤했다.그런데지나고보니그때는그것의중요성을몰랐다.스승이타계하고,탄생100주년이되기까지스승의존재도막연했다.여전히큰작가이자교육자라는,막연한상태였다.한번도그막연함속의실상을디테일하게좇아보려고하지않았다.그러다가탄생100주년을계기로스승을비로소공부하기시작했다.오랜시간,스승의저서와관련자료,작품들을공들여찾아읽고들여다보았다.그결과물이한권의책으로나왔다.『극재의예술혼에취하다』.이책은제자가그린스승의초상화이자스승의삶과예술의지형을눌러담은서사시같은책이다.

‘극재’라는화두를공부하다
여기서‘스승’은극재(克裁)정점식(鄭點植,1917-2009)선생이다.한국추상화1세대작가인선생은제1회남조선미술전람회(1936)에입선한뒤일본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를졸업(1938-41)하고,한국현대미술의출발기점으로통하는1957년에결성된‘모던아트협회’회원(1958-63)이자조선일보사가주최한재야전인<현대작가초대미술전>에초대출품(1958-70)하면서활발한활동을펼쳤다.그리고현재계명대학교미술대학의전신인‘미술공예과’(1964~77)출범과예술대학미술학부(1978~80)로의승격,다시미술대학(1980-83)으로자리잡고성장하기까지씨를뿌리고가꿔온교육자였다.작가로서는평생대구지역을중심으로활동하면서이중섭,유영국,장욱진,박고석,한묵등의동년배작가들에비해거의조명을받지못했지만추상화에투신하여구십평생을추상화가로서,돌올한예술세계를일구었다.만년에은관문화훈장(1998)을받았고,‘2004올해의작가’로선정되었다.2005년에는제3회이동훈미술상을수상하였다.

선생에관한공부의키워드는‘극재(克哉)’라는자호(自號,스스로지은호)였다.극재에는‘이길수있을까’와‘이겨낸다’는뜻이공존한다.저자는학부에서강의를할때선생을초청해서학부생들에게특강을맡겼던시절을회상한다.

“나는극재가호를스스로지었다는사실과심오한뜻에내심놀랐다.그때까지한번도극재의자호(自號)에관해깊이생각해본적이없었다.곰곰이돌이켜보니,‘극재’야말로그도저한예술적인생을압축한키워드가아닐수없었다.그렇다면‘파괴에서얻은가산’은극재의예술적전략이고,‘인간생활에서평형상태를유지하기위한대용물’로서의예술은극재예술의지향점이아니었을까.끊임없이파괴의모험을단행하며,‘평형을잃은정신의불모지’에서마치저울추로균형을잡듯이예술로평형상태를추구했던것이아닐까.”(「프롤로그」에서)

일제강점기에서해방,6·25전쟁등격동의시절을거치면서수많은갈등(‘이길수있을까?’)을겪는가운데자신의길을간선생은마침내자신을이기고(‘이겨낸다’)한국적인추상화로우뚝섰다.선생은호(號)로자신을세우고,호에자신을새겼다.그리고후학들의빛이되었다.

이책은선생의삶과작품세계를연대기로나누어서살펴본다.그것도선생의작품을한국근·현대미술사의맥락속에서다루고,선생이추상을지향하는가운데서도현실의경험을작품으로승화시키고자한사실을작품으로보여준다.이과정에서작가로서뿐만아니라비평가로서,교육자로서선생의면모가그려진다.

비평가정점식―공감의비평으로응원하다
선생은미술이론에밝았다.한때한국미술평론가협회회원(1963-70)이었을만큼비평가로도대구미술발전에일조했다.물론이협회회원이되기이전부터날선비평의글을발표해왔다.전쟁중에발간된『전선문학』(1952)에현역대가들이명화를모사하며의기양양해하는것을비판한「저회(低徊)하는자아도취」등이실렸는데,이는선생이가진비판정신의일단을확인시켜준다.비평가가드물던시절,선생은대구지역의비평을주도하며대구추상화의정착과개화를견인했다.선생의비평은비평을전문으로하는비평가가아니라‘작업을잘아는’작가-비평가였다.당시에는작가들이비평을겸하곤했는데,김영주,정규,박고석등이선생처럼비평의빈자리를메웠다.선생의비평은정도에서어긋난일에는쓴소리를서슴지않았지만,대부분척박한풍토에서작업을하는동료작가들을향한비평적격려에무게를두었다.해방무렵,선생이하얼빈에서만난쓰다세이슈(1907-52)의조언에힘입어자신감을얻었듯이,선생도그런역할을하며,미술은물론현대미술이생소하던시기에현대미술과예술에관한각종논문과‘서문’작업을통해미술인구의저변확대와작가층을두텁게했다.저자는선생의비평을‘공감의비평으’로명명한다.작업을하는작가로서동료작가들의작품세계에밀착하되,그것을미술사나이론의맥락에비춰서의미를묵직하게발효시켜,사람들의관심을환기시켰다.미술인구의숫자가적고,미술과생활의거리가큰상황에서우선필요한비평은다양한미술의적극적인소개이자작가들에대한응원이었다.선생은이일을마다하지않았고,이로써대구미술을튼튼하게했다.

선생은다독가였다.일찍부터다양한분야의책들을가까이해서평생책을손에놓지않았다.이런독서는인문학적소양을토대로국내외의미술동향을꿰고작품의내실을다지는데든든한자양분이되었다.그리고6·25를계기로유명문인들과교유하면서자연스럽게글쓰기가잦아졌고,비평을겸하며지속적인글쓰기를이어갔다.

선생은문장가였다.4권의저서를통해선보인글들을사유의폭과깊이에서인문학자를방불케한다.물질문명과현대미술을사유하면서일관되게그것이가진문제점들을헤아리고작업도그연장선에서해나갔다.원고청탁과필요에의해쓰여진글들은미술과예술전반에관한내용이대부분이지만지금도그정보의적확성에서다시한번놀라게된다.이는선생이정확한이해를바탕으로미술을사유하고펜을들었다는뜻이다.그리고예술과무관한,일상을다룬글들은생활인으로서선생의면모를엿볼수있다.선생의글에는그것이논문이든일반에세이든일관된생각과체취가배어있다.

그런데선생의사유세계를엿볼수있는저서들은모두절판된지오래여서,시중에서구할수가없다.또전시회때발간된화집들도구하기가쉽지않아서,화집에실린평문들에대한접근이어렵다.따라서극재의삶과작품세계에관해알고자하면,쉽게접근가능한자료부족으로곤란을겪게된다.

이책은이런현실을고려하여저자의육성을접할수있게최대한원문을인용했다.그리고선생의작품세계를다룬비평가나미술사·미술이론가들의평문과논고를독자들이한자리에서원문대로음미할수있게이역시인용과축약으로길게소개했다.

‘부록’으로마련한「연보」와「연구자료」에도충실을기했다.특히「연보」는그동안의오류를최대한바로잡았다.기존의화집들과선생의글과구술,그리고극재미술관의연보에도오류가한둘이아니다.연보정리에마지막까지신경을쓴까닭이다.그리고「연구자료」는극재의예술을조명하고자하는연구자들을위해최대한그러모았다.
교육자정점식―계명대학교미술대학을짓고가꾸다
선생은교육자였다.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를졸업하고바로하얼빈으로가서보통학교교사를시작했고,해방후에는중고등학교교사를거쳐1964년계명대학교미술대학을만들고가꾸었다.재학생과교수들이함께전시하는<교수미전>을개최하여사제간의유대는물론학교에대한자부심을심어주었다.1983년정년퇴임한후에도명예교수로후학들을가르쳤다.저자는졸업생들의인터뷰를통해극재교육의일단을보여준다.기초실기의강조와엄격함(장이규),‘파괴에서얻은가산’으로요약되는완성단계에서의모험걸기(정민영),특성화교육과장학제도등은미술교육에열정을쏟아온교육자로서선생의단면을증거한다.선생의제자사랑은졸업후에도이어졌다.전시회에‘서문’을보태고,전시장을찾는것으로실천했다.그것은제자를넘어작업실에서고군분투하고있는작가에대한,선배이자동료작가로서의따뜻한응원이었다.

그리고<멕시코문명전><샘프란시스전><전화황전>등의해외전과70년대의미술계를뜨겁게했던<대구현대미술제>유치로재학생들은물론대구시민들에게수준높은해외전을관람할수있게했고전국적인현대미술제의붐을일으켰다.


작가정점식―환원적·구축적세계에서서체적추상으로
선생은‘남들이모르는그림’을그린추상화가였다.자연주의일색의대구화단에서선생은‘회화의유전자’가달랐다.일찍부터자연주의와는다른세계에마음을주며,비구상의추상세계로나아갔다.활시위를떠난화살처럼,자신의생각을올곧게밀고나갔다.덕분에,대구에추상미술이뿌리내리는데든든한지주이자리더였다.

선생의작업은크게,환원적·구축적인세계에서서체추상으로전개되었다.

“극재는한국적인뿌리를가지면서도시대감각을담아내는미술을염두에두고작업을했다.특히묵화기법은‘시대감각을담은한국화’를모색하는과정에서무의식적으로,‘환원적이고구축적인화면’과‘서체적충동’이라는두가지경향으로나타난다.”(62쪽)

1983년정년퇴임을기점으로그이전까지가환원적수축적화면을보였다면,그이후는서체충동에의한자유로운붓질이역동적인전개를보였다.물론환원적구축적작업시기에도서체충동의흔적은지속적으로나타났다.그러다가80년대중반부터분출한것이다.

선생은자신의내면에축적된심상을단순화한형상의추상적이미지로표현하되,고풍스럽게숙성시키고자했다.이때의심상은어려운시절에겪은온갖체험이용해된세계였고,작품은그것의조형적표현이었다.비록이미지가추상적이기는하나선생의작품은한시대를사는작가로서치열한고민의표상이었다.그래서선생의작품은이미지가추상적임에도자연이나생명의체온같은것이느껴졌다.

“내가피카소와다른점은,나는타고난생리적인그것으로써완전히자연에서벗어나는,어떤생명에서벗어나는예술은하고싶지가않았지.그래서누가내그림을볼때추상이라하지만실은추상이아닌것같은,자연적인숨소리같은것그건것이들어갔지.언제든지.그랬기때문에이런점을눈치채고아는사람이있었어.좋다며그림에서체온을느끼기도했지.그랬지.나는형은단순화시키고추상화시키더라도,작품에서어떤체온을느낄수있는그런걸그리려고노력하고있지.”(92쪽)

이와관련하여흥미로운사항은,선생은추상을했지만그속에는누드같은형상이있거나해체되어있다는점이다.피카소가해체의극한에서순수추상으로넘어가지않고,확인가능한형상에서멈췄듯이선생도형상에서쉽사리벗어나지않았다.선생은문인화가들이형상을통해심의(心意)를표현하는것처럼,즉대나무형상으로관념적인절개를드러내듯이형상에의지해서추상의지를발휘하고표현했다.만년에선보인캘리그래피한작품에서비록누드같은형상은자취를감추었지만그것은누드의곡선이리드미컬한붓질로승화된것이라할수있다.

어린시절,고모부앞에서자유롭게놀렸던붓질이오랜시간잠재되어있다가서서히드러났는데,그것이서체적추상으로폭발하듯이만개한것이다.

“이무렵(80년대중반―저자주)의10년간은제작방향을하나로결집시키며완숙미를더해간다.화면전체가생체적인리듬감으로충일한가운데,가는선들이서로섞이고간섭하면서색의깊이를자아낸다.한결같은것이있다면토속적마티에르와시정적분위기이다.그리고여기에회갈색의완숙한색조가어우러져작품에무게를더한다.1990년대이후의작품들은필선의구성이두드러지면서정신의자유가화면을밝힌다.그린다는것은정신의자유를구가하는것이란사실을뚜렷하게드러내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