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반양장)

벽 (반양장)

$19.80
Description
≪벽≫의 놀라운 점은, 잘 읽히는 것과 별개로 저희가 아는 장르 구분의 얼개에 딱 들어맞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스릴러라기에는 반전이랄 만한 사건이나 극적인 전개 따위 없었고, SF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생태주의 소설을 읽는 듯한 안도와 평온에 빠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죠.
오스트리아의 작가 마를렌 하우스호퍼(Marlen Haushofer, 1920~1970)는 잉게보르크 바흐만과 함께 독일, 오스트리아 현대 여성문학의 선구적 작가입니다. 1963년 자비출판에 가깝게 발표한 이 소설로 아르투어 슈니츨러상을 수상하는 동시에 작지 않은 대중적 인기를 거머쥐었죠. 1960년대 첫 출간된 이후로, 1980년대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며 독일을 비롯한 유럽권에서 가장 많이팔린 책에 랭크되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라디오, 연극에 이어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그사이 이 세계는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여성성에 대한 적잖은 재고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저 정복대상으로만 삼았던 동물의 기본적인 권리에 대한 낯선이해도 움틉니다. 소비주의나 핵전쟁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을 시민 대다수가 공유하는 시대가 찾아왔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정치적, 존재적 소외는 여전하며, 최근 닥친 새로운 감염병 앞에서 인류는 근원적인 무력감에 몸서리치며, 연대와 분리를 동시에 갈망하기도 합니다.
저자

마를렌하우스호퍼

MarlenHaushofer
1920년오스트리아의시골마을프라우엔슈타인에서삼림감독원의딸로태어났다.린츠에서가톨릭김나지움을다니다건강문제로학업을중단했다.1939년대학입학자격시험을치르고빈대학과그라츠대학에서독일문학을공부했다.1941년치과의사였던만프레트하우스호퍼와결혼했고,남편을도와병원일을돌보는틈틈이오스트리아의신문과잡지에작품을발표했다.1950년이혼했다8년뒤전남편과재결합했다.1952년마릴리라는여자아이의성정체성갈등을그린단편『다섯살』로본격적인작품활동을시작했고,장편『한줌의삶』(1955),『비밀문』(1956),『우리가죽인슈텔라』(1958)등남성중심의가부장적사회에서소외받는여성문제를심도있게다룬작품을발표하여화제를불러일으켰다.1963년지구상에혼자살아남은한여성의2년여기록을그린장편『벽』을발표함으로써잉게보르크바흐만과더불어오스트리아여성문학을대표하는작가의반열에올랐다.이밖에방송극과동화등여러장르에걸쳐다양한작품을선보였고,푀르더문학상,테오도르쾨너문학기금,아르투어슈니츨러문학상,오스트리아문학상등을받았다.1970년골수암으로투병하다빈에서사망했다.1980년대초핵전쟁에대한위기의식과독일을중심으로한여성문학붐에힘입어『벽』이재조명받으면서전세계적으로‘하우스호퍼르네상스’가일어났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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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더는불리지않는존재,
더는비교대상이없어진존재의자기이해
그의이름은더는중요하지않습니다.타인과구분되지않을때,타인의기대를받지않을때,이름이없어도전혀불편하지도
몰개성해지지도않는상황에처한주인공은역설적이게도이궁핍속에서자기자신을그어느때보다선명하게느낍니다.
누구와도닮지않은,누구의기대도느끼지않는유일한자기자신을요.심지어그녀는실종된가족이나자녀,친구를사무치게
그리워하지도않습니다.그의헌신적이고도순도높은감정은자신을둘러싼작은동물들에게쏟아지는듯합니다.그저
살아가기위해벌이는노동이남긴약간의시간에는그저씁니다.좋아하던필기구도,촉감을고집하는사치도요구하지않는
글쓰기가그녀를지켜냅니다.
챕터구분도기승전결의포물선도없는낯선읽을거리
“이책에는챕터구분이없나요?”
≪벽≫의한국어판을만드는작업에서몇번이나거듭되었던질문입니다.벽이생긴이후고립된상태로,생존의기반을하나하나
만들어나가는여성에관한우화와도같은이장편소설에서,주인공의시간관념은무뎌지고시계도멀쩡할리없습니다.
확실하지않지만더듬어추적한일자관념들이엿보이는대목마다진동하는듯한서체를적용해눈에띄엄띄엄걸리게
디자인했습니다.
400쪽에달하는거대한소설이지만,배경은지극히제한되어있습니다.그러나연극이라고해도무방한이좁고제한된곳이전
세계이고,과거와미래를잇는유일한연결고리에다름아닙니다.챕터로나뉘거나,눈에띄는변혁으로나아가는대신,그저
현재지향으로,생존지향으로계속해서씌이고있는글입니다.보이지않는벽너머로한때세계였던폐허가펼쳐지는한편,
안쪽으로는작지만확실한생명의약동이느껴지기도합니다.물론벽을대단한사회적,생태적,정치적위기로볼수도있을
겁니다.그러나범위를좁혀생각해보면,결국벽은나와타인,우리와그들을가르고배제하는일상적인경계이기도합니다.이
벽은소통을가로막는장애일수도있지만,우리가익히경험했듯타자의무방비한침입을맞서돋아난보호벽이되는법도있을
거예요.
이소설과비슷한소설이몇작품이고떠오르지만이소설과똑같은것은알지못합니다.18세기대니얼디포의≪로빈슨
크루소≫처럼새로운세계에발들인≪벽≫의주인공은,그러나로빈슨크루소처럼자길제외한나머지'그들'을정복하지
않습니다.19세기헨리소로의≪월든≫처럼대자연속에처한유일한인간이지만,엄숙히독립을선언하는자주적인인물로서,
선택하는인간으로서등장하지도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