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캐

암캐

$19.80
Description
『암캐』의 원제 la perra는 암컷 개를 의미하며, 여성에 대한 멸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실제 이 소설은 여성이라는 성, 모성,
채워지지 않는 욕망, 상실, 연대와 배반, 수치와 죄의식, 본능적인 고독과 폭력, 그럼에도 결코 소진되는 법 없이 순환하는 사랑을 한 여자의 목소리로 들려준다.
중년 흑인 다마리스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의 판잣집에서 어부 남편 로헬리오와 살고 있다. 이곳은 콜롬비아의 무역거점이자 지구적으로 중요한 생태지역이지만, 거주하는 아프리카계 후손과 토착민에 대한 구조적 인종차별로 인해 콜롬비아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에 속한다. 부부의 애정과 열정은 아이 갖기의 실패로 막을 내린 듯 보인다. 어머니가 되지 못한 채 희망을 잃고 “시든” 다마리스는 외톨이 개를 입양할 기회 앞에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다. 동물과의 이 강렬한 관계는 다마리스가 그간 염원해온 모성을 실현할 기회이자 실패할 위기로 구체화된다.
안전하게 길러진 적 없는 다마리스의 실존은 그녀에게 하나의 사건과도 같은 존재 암캐 치를리를 맞닥뜨리며 더욱 쓰라리고 강렬하게 빛을 발하지만, 온순하지 않은 이곳 자연과 날씨처럼 예측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것으로, 때로는 폭력과 가까운 것으로 그려진다. 목가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콜롬비아의 야생적인 풍광만큼이나 다마리스의 심리적 초상은 변화무쌍하고 위태롭다.
『암캐』의 간결한 문장 속에는 감히 더 요약할 수 없는 감정적인 폭풍이 도사린다. 우회하는 법 없는 문장이 사나운 빗방울처럼 계속되는 사이, 읽는 이의 맥박 역시 속도를 더하게 된다. 한편 이 책에 등장하는 중남미의 다채로운 나무들, 동물, 곤충들, 우리는 식재료로 쓰지 않는 과일, 이 지역의 독주와 민속요리, 이곳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떠올리는 것도 이 책 읽기의 피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저자

필라르킨타나

PilarQuintana
1972년콜롬비아칼리에서태어나보고타하베리아나대학에서공부했다.콜롬비아의특수성에서끌어올린성과폭력,리얼리즘에관심을둔다.다섯편의장편소설과한권의소설집을냈다.2007년콜롬비아의헤이페스티벌에서라틴아메리카에서주목할만한39세미만29인여성작가한명으로선정되었다.2010년소설『진기한가루수집가』로스페인의라마르데레트라스소설부문에서수상했다.2017년발표된뒤열다섯개언어로번역된킨타나의대표작『암캐』는광활한열린무대에서독특한긴장과불편을그려낸다.이장편소설로킨타나는콜롬비아소설도서관상과펜번역상을,2021년장편소설『심연』으로알파과라소설상을받았다.

목차

암캐7
작업자의말116

출판사 서평

○작업자의말

10년전쯤여행지의바다에서죽을뻔한적이있다.순식간이었다.얕은물에서놀다가파도에휩쓸렸고,옆에있던사람들이점점멀어져작은인형처럼보일때까지떠밀려가기시작했다.그때거의소년에가까운청년하나가알지도못하는나를구하러헤엄을쳐서와주었다.하지만그역시맨몸이었고,이제는두사람이물에빠져허우적거리는모양이되었다.그뒤에다른사람들이카누를타고우리를구하러왔고나는무사히구출되었다.그날이후종종깊은바다에빠지는꿈을꾼다.발밑의물이얼음처럼차가워지고귀가아프도록먹먹한바다의적막속으로가라앉게되리라는것을일순간깨닫는다.나는두려움에압도된다.그리고꿈에서깨어난다.어린다마리스를생각하며저바다를떠올렸다.얼른그날의매를맞으려삼촌의곁에서기다리는,한번도울지못한아이.그아이의세계전부를채우는거대한고독과절망과수치심을생각했다.혹독하고척박하고매정하고언제나그무엇보다더큰,바다와밀림을생각했다.그렇게홀로바다와밀림에둘러싸인채어른이된다마리스의삶에개가나타난다.그리고“개는그녀의것이었다.”라는한문장에담겨있는,담길수없이수없는이야기들이시작된다.라뻬라(laperra)는스페인어에서개의여성형명사로암컷인개를지칭하는말이다.스페인어로개를뻬라라부를때는다른의미가끼어들지않는다.그저수컷은뻬로,암컷은뻬라라부를뿐이다.(물론추상적인개는남성형인뻬로다.)한국말로는개가암컷이라도매번성별을밝혀‘암캐’라고부르는사람은없다.그래서‘뻬라’는대부분그저‘개’로옮길수밖에없었지만,동시에여성에게쓰는욕이기도하므로제목에서는남겨두어야만했다.아마도이제목을듣고그생각을하지않기는어려울것이다.섹스를파는여자,감히원하는여자,자식을돌보지않는여자,나돌아다니는여자.여러남자와관계를맺고난잡하고,그리하여나쁜여자.그러니까,여자.필라르킨타나와그녀의소설을만나게해준쪽프레스와김미래편집자께진심으로감사드린다.번역하다보면같은부분을하도많이읽어서감정적으로무뎌질때가흔한데,이책을번역하다갑자기눈물이차올라서멈추고쉰기억이난다.마지막문장을번역하고소용돌이치던마음도.다마리스와같은대명사를공유하는개역시‘그녀’라옮기고싶은충동을느꼈지만실행하지못한아쉬움을전하며,여기여자와밀림의이야기를내려둔다.-옮긴이최이슬기

졸음이밀려올정도로성격이느긋하고,덩치는엿가락처럼늘어져서몇행이고몇십행이고뻔뻔하게지면을잡아먹는그런소설을좋아한다.그런책들은언제들추어도머리를휘젓지않고생활을방해하지않아서,아주몰입된적한번없이도어느샌가책모서리가부드럽게휘어지고종이끄트머리는벌써몇겹으로나뉘어있다.책들,다읽지않고도읽었다고착각시키는걱정없고조용한책들로가득찬낡은나의장안쪽에『암캐』가들여진다면.박힌책들과박힌먼지들과박힌그풍경은타고난느긋함을잃고만다.아직인쇄되지않은,만져진적없는『암캐』는구김하나,온기하나없이,장과벽에기대지않고,갈피도끼이지않고그저서있다.-편집자김미래

『암캐』는남미에서생활하는흑인여성의일상에스민불평등과인간의모순된내면을아주솔직하게서술한다.지나칠정도로개를보호하려는마음,어린시절자신과동일시한니콜라시토의죽음을목격한충격,갑자기떠나고제맘대로돌아오기를반복하는개를향한감정,바닥으로곤두박질치다가일순간자세를바꾸고는결국가장큰폭력을행사하는의지등……세계를의심하지않으려는다마리스로하여금,삶은그의심을자꾸만부추긴다.마지막문장에다다르기까지나의시선은,마치암캐를바라보는다마리스처럼다마리스를두둔하고연민하면서미워했다.이소설의많은장면이축축하다.날씨와공간이다마리스의마음을대변하는듯이.나무와덩굴로우거진숲은다가가기두려운과거의절벽으로향하는길이며,두려움을거두고진흙을밟으며암캐를찾아헤매는곳이다.그래서『암캐』의독자라면자기도모르게빠져들어숲안으로선뜻걸어들어가기를바라며금방이라도비가내릴듯한숲을표지로삼았다.숨가쁘게넘어가는종이만큼쪽번호도신경질적으로내달린다.-디자이너정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