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스티 브라운 (양장)

러스티 브라운 (양장)

$59.80
Description
1975년 미국 중서부 네브래스카의 설국
“인간이 눈 결정을 최초로 관찰하기 시작한 대략 3세기 전부터 지금까지 수천 개에 달하는 눈 결정체를 종이나 필름 상에 포착해왔지만, 그 가운데 완벽하게 닮은 한 쌍을 발견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사람 눈에 아예 든 적 없는, 아니 사람이 영영 보지 못할 수십 억, 수조 개에 달하는 눈 결정은 어떨까요? 적어도 개중 서로 얼마간이라도 닮은 한 쌍을 찾을 가능성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1655년 로버트 훅이란 과학자는 사방에 쌓이고 흩날리는, 르네 데카르트가 작은 장미 또는 톱니 여섯 개 달린 바퀴라고 묘사 한 바 있는 눈 결정을 처음으로 그려보고자 했습니다.

훅은 세계 최초로 발명된 현미경 중 하나를 통해 눈 결정을 최대한 가까이에서 살피려 했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이 눈이 녹아 없어졌지요. 그러니 훅이 그린 그림들은 직접 관찰보다는 기억의 산물입니다. 다행히 오늘날 우리가 누리게 된 정밀한 사진 기법들 덕에 과학자들은 눈 결정의 자연적인 증발을 이제 시간 속에 정지시킬 수가 있고, 그렇게 우리는 원껏 눈 결정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연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눈 결정 하나가 손가락 위에 머물다가 돌연 물방울로 되돌려지는 건 한순간의 일이나, 그 물방울을 그대로 얼린다고 눈 결정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죠. 그리 얼려 얻는 건 작은 얼음 방울, 얼음 구슬에 불과해요. 눈 결정 하나의 정교하고 기적에 다를 바 없는 모양은 그 눈 결정이 구름량과 기온과 습도가 어우러져 형성하는 유일무이한 환경 조견을 통과하며 지나온 길이 빚은 것이고, 티끌 한 점에서 탄생해 극미하고 쉽게 깨어지는 결정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의 전 생애를 담아낸 한 폭의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러스티 브라운』에서

1970년대 미국 중서부 네브래스카의 눈 쌓인 저녁, 이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하나의 눈 결정은 아름답고 완결적이며 날렵한 테두리를 둘렀지만, 이들이 이루는 눈보라는 비정형의 꼴로 속도를 내며 거기 속한 이들을 휩쓸고 묻습니다. 아주 작은 것부터 아주 큰 것까지, 다양한 크기의 칸을 통해 크리스 웨어는 여기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꺼번에 전달합니다. 무력한 인물들이나마, 지나쳐온 고유한 환경과 기억이 있고, 그 기억이 현재를 덮칠 때 이들의 미세하고 날카로운 감각이 되살아납니다. 이 책 속의 세부는 단순히 전체에 봉사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의미를 발합니다.
저자

크리스웨어

『쥐』의만화가아트스피글먼이발행하는잡지RAW에작품을게재하면서만화가로성장하고,판타그래픽스에서1993년부터『애크미노벨티라이브러리』라는만화단행본-잡지를펴낸다.매호달라지는판형,실험적인장면구성과내러티브전략,갈수록디테일로파고드는집요한편집방식으로,그만의만화-디자인장르를선보였다.주요작품으로『지미코리건』(2000),『빌딩스토리즈』(2012),『러스티브라운』(2019)이있고,아이스너상,하비상,앙굴렘작품상,앙굴렘그랑프리등을수상했다.

출판사 서평

러스티와다른사람들
이야기에는여섯사람이등장합니다.슈퍼히어로에집착하는수줍은꼬마러스티브라운,SF소설가출신의괴짜교사이자러스티의아버지인우디,러스티반에전학온남학생초키화이트와초키의누나앨리스,러스티를괴롭히는덩치큰소년조던(제이슨)린트,이들을가르치는교사조앤콜이그들입니다.그들의나이,신분,관심의스펙트럼은다양합니다.책은이들을면밀히그려내지만,그것만으로충분하지않아서얼음결정처럼얼어붙어있는풀리지않는서사는독자가채우는수밖에없습니다.초등학교과제에서금상을안고집으로돌아온딸아이를바라보는어머니의쓸쓸한얼굴,10대소년의충족되지않는자기애와통제밖환경,중년의구부정한몸으로쏟아지는눈,죄책감과치매에휩싸인실패한노년의환각등요람에서무덤에이르기까지인간삶이란어디하나비참하지않은순간이없습니다.

만화에관한만화,책에관한책
“책만큼인간의은유로적절한것은없습니다.앞면이있고뒷면이있으며껍데기보다안쪽의세계가두툼하지요.이미지를일궈내고이를미학적경험으로전환하는인간고유의능력을사용하는유일한시각매체는만화입니다.『러스티브라운』은예술가,작가,만화가가덧없고불확실한어린시절의감각,사랑,형언할수없지만필수불가결한공감의매개를그래픽으로나타내려는18년의실속없는시도를압축한결과물입니다.”-크리스웨어

우표만한크기의작은칸들과그사이를채우며이따금소리지르는의성어와접속사는묘한노스탤지어를자아냅니다.지나치게현실적이고무력하며무감정한인물들너머로만화가가그려넣은느낌표와기울임꼴,의성어,접속사는꽤경쾌합니다.여러모로황량한인간군상이고실망과절망에전이들이지만,한사람의막다른골목과낭떠러지운명을초월하는돌파구를,그작은틈을이책말미의‘인터미션’이란문구는열어둡니다.크리스웨어는더스트재킷에『러스티브라운』과작가자신에관한이야기(조소에가까운추천사까지)를,책산사람들만이해할만한이야기(재킷을어떻게접으라든지,어떻게보관하라든지)를적었습니다.읽기어렵지만바로그때문에그의책을그어떤만화보다오래도록쥐게되고,긴물리적인시간을쏟은탓에잊기힘들어집니다.양손을가득채우는무거운양장의세계는책을인간과인생에대입하는클리셰를생소하게느끼게합니다.“형언할수없는슬픔”을감히글과그림으로형용하려는시도의결과물은이만화를읽어치우려는,금방해치우고더중요한걸하려는독자의속도를늦춥니다.

기억의재현과불완전한도구
크리스웨어는첫만화책인『지미코리건』(한국어판세미콜론,2009년출간)의마지막페이지를마친다음날,곧바로새종이를꺼내또다른이야기를시작했고그것이『러스티브라운』이되었습니다.빌클린턴이대통령이던시대였고,공중전화가있었고,세상은계속되고있었습니다.네브래스카의어린시절을작은캐릭터들로채우고무슨일이일어날지그는잠자코지켜보았습니다.그는생각했습니다.우리가스스로나아가려고하지않는다면시간이우리를앞지를것이라고.

기억은개인의서사를유지하는엔진이고나의지속성을보장하지만,매우불완전하고편협한방식으로작동합니다.그러나인간은이도구로만스스로를도울수있습니다.그리고만화는기억의예술입니다.그의이야기에들어가는모든낱말과그림,몸짓,생각,꿈,후회는어떻든만화가의기억이라는깔때기를통해걸러져나왔고,그러니모든그의만화는자전적이라고볼수있을것입니다.나고자란오마하를배경으로그렸고,등장시킨모든인물마다의자질을집적한한인간으로서,웨어는타인을/과거의자신을/자기가만든인물들의다른자질을이해하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