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우연이 아니기 때문에

미래는 우연이 아니기 때문에

$17.80
Description
저자의 이름이 제목에 박혀 있는 이야기집으로, 그만큼 개인적이고 개인 본위로 짜여 있다. 전문 에세이스트가 아니고, 지어 쓴 여러 가지 이야기도 한데 들어 있기 때문에, 산문집이라기보다는 이야기집이라고 부르기 알맞다. 이 책은 10년간 간헐적으로 쓴 글을 모은 것으로, 대단한 고료를 받고 쓴 것도 대단한 사명을 띠고 쓴 것도 아니다. 그래도 저자 본인에게 (이번의 출간은) 사소하지 않은 사건이다. 그것은 그에게 더없이 소중한 사람(들)의 내력이나 행적을 밝히는 사료인 까닭에서이고, 이런 면에서 모든 개인적인 책들에 예외는 없을 것이다. 예기치 못하게 대단치 않은, 그러나 어떠한 재앙에도 전소되지 않는 몇 가지 자질이 어느 인간에게나 있을 터. 그러니 미래는 우연이 아니다. 이 책의 제목은 안네마리 슈바르첸바흐의 「한 여인을 보다(Eine Frau zu sehen)」에서, 표지 그림은 찰스 에밀 하일의 「한 가지 위 두 마리 새(Two Birds on a Branch)」에서 가져왔다. 하나의 가지가 부푼 두 마리 새를 태우고도 휘청이지 않는다.
저자

김미래

저자:김미래
외국친구를만나면future라고소개한다.그러면그친구는동명의래퍼를떠올리고는,나와그의외양적불일치에개구진웃음을짓는다.때로여유가될때면,그는작은체구의동양인으로부터맘바멘털리티같은것을상상해보기도한다.이번에는,그가찾은영혼적일치!그리하여이동양인은자길크게봐주는사람앞에서원래보다한뼘커진다.그치만애초에,그는작지않았던게아닐까.그전에쓴책으로『그건,고래』(2024)와『편집의말들』(2023)이있다.

목차


베어진나무에서자라난가지를보다
긴기다림
실패자의자취
타월
타월의탄생
신체를얻을때
손톱
초인의비밀
초인의비밀2
초인의비밀3
인어가되고싶은사람도있어
빛나는녹색점
남색쿠션이놓여있다
컨택트
고스트월드
나그네의옷
개별적인하얀셔츠들
욕조
오늘밤의초현실
고양이세수
산짐승주의
아버지의집
당신과당신의늙은어머니
92년장마,종로에서
미터기는멈추지않는다

우리들은즐겁다
어느바텐더의춤
책이끼
영영잃기
우리는함께살을찾게될것이다
라일락와인
정체와행로
먼지의행복
모리의언어에대한감각

출판사 서평

이런당신에게

세련된책이부담스러운백지의공포가있는한편으로는빽빽이들어찬벽돌책포비아가있는소량제작이라는키워드에끌린만에하나중쇄된다고해도토라지지않을오탈자한두개는귀엽게봐줄수있는필사를좋아하는좋아하지않더라도세문장정도는적어볼수있겠다싶은서명이된책모으기를즐기는누군가의편지가적힌헌책을발견하면오히려정이가는남의일기엿보기를좋아하는그일기를읽고나면전만큼은남처럼못느끼는우연의좋음을알지만때로랜덤한무엇(특히랜덤한나?)을참지못하는빠져들만큼깊은수렁도좋아하는여행답게여행하고생활답게생활하기보다는여행하듯이살고살듯이여행하는책더러워지는게괜찮은실은그더러움이더러움이아니라고보는옷에묻은케첩의성분에문제가없음을아는

책속에서

내안에서나는여러갈래다.실처럼자아내면그실은굵었다가가늘었다가거칠었다가간간이부드럽다.내안에서내문장은변화무쌍하고하나이자여럿이며간혹모두가되기도한다.그러다누굴만나면나는그저굵은것혹은그저가는것,그저나,그러니까세계의일부로전락한다.그것이누구와함께하는유일한법임을알기에,서글픔을무릅쓰고,전부에서일부로기꺼이살기도한다.
---p.3

친구보다는동료에가깝던사람이,세계에서사라졌다.대부분의관계정의에인색했던나는그를동료로들이는데도수년을필요로했다.그는수년간이따금요청했고,나는힘이닿는선에서절반이상을수락했으며,그일들이미친영향,그일들을하는동안내가맞은일들,그러는새쌓인나라는사람의생애가그를‘동지’로자리매김시켜주었다.그가내가있는세계에더이상존재하기를멈췄을때,나는아쉬워했다.우리가아직친구가돼보지못한것을.그가늘그랬듯태연하게부탁을던지던톤으로나의집에방문하겠다던목소리를거절한것을.‘지금당장’의시간은너무나폭좁고,‘언젠가나중’의시간은너무나폭넓었던그때에언제나처럼어색하게굴었던것을.
---p.9

긴놀이는휴식이된다.긴잠은운동이된다.긴머리카락은근성의지표가된다.긴것은활동이되고,직업이된다.그사람의긴것은그이의생활이되고그사람자신이된다.하지만……아무리길었어도줄어들고있는것은,곧해소될것은,곧자취를감출것은아무래도그사람은아닐것이다.그사람이었지만차차그사람과무관해지고있는것.기다림이끝나면기다리는자는존재를감춘다.오늘의캘린더에는우리의만남만이기록될뿐,우리의만남보다도훨씬길었던지금의기다림은적히지않을것이다.
---pp.13-14

맨처음타월을만든사람이있었습니다.그는용도를정하지않고그저쓰는사람마다자신의편의에맞추면거기걸맞은쓰임새가생기는타월이면좋겠다싶었습니다.무엇이든될수있다면,어째서타월을만드는가묻는다면,글쎄요.만들어보고싶기도했고,만드는걸도와줄사람도가까이있었습니다.목화솜부터꼼꼼히골라채취해서잘말리고,면의결을고르게하여원단으로가공한다음,그것으로딱한장의타월을만들었습니다.과연,아주보드라운타월이태어났습니다.새로만든타월이깨끗하고단정한벽에걸렸을때,만든사람은물론,보는사람마저뿌듯해졌지요.화려하거나눈길을끌지는않아도,아니그렇기때문에한층오래도록바라보아도질리지않고,매일,아니하루에도몇번이고써도충분히포근하고따스했으니까요.
---p.25

단한번도싸우지않은전갈은단한번도이겨보지않은전갈이될수도있었을텐데요.그렇게되는대신,단한번도져보지않은전갈,위대한전갈로국제적인명성을더해갔습니다.생의첫단추부터제가꿰지않은전갈입니다.그가바라는대로세상이움직여주지않으니,전갈은주변의기대가기껍지않았습니다.무엇하나꾸미거나덧대지않은,태어난그대로의몸이,그에게는벗을수없는탈처럼느껴졌습니다.같은껍데기라도소라게나달팽이처럼썼다벗었다하며몸을집으로삼을수있었더라면한결가뿐했을텐데요.전갈은영혼이가볍게느껴지지않는이유를언제나껍데기탓으로돌렸습니다.
---p.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