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신대철
억새풀숲을슬쩍비집는햇살
노란잎집틈새로
곱게분장한야고한송이
발간빛깔을내민다.
장터에천막치고
나팔소리날리다
곡마단떠나던저녁
줄타던처녀맨발로도망쳐
할머니집뒤꼍으로숨어들었고
바람바뀔때마다온동네
분내쓰다듬은아리아리한길.
꼬마야,저리가,저리
구경꾼들무서워한곡마단처녀
그겨울무사히넘겼을까?
오랜시간흘렀는데
바로앞에서다시들리는
숨죽이며외치는소리,
저리가,저리
“저리가,저리”
맨발로곡마단을탈출한처녀가숨죽이며외치는소리.남의집뒤꼍에숨어들었다가,호기심에다가온아이를황급히내쫓는절박한소리.아이에서이미어른이된시인에게그소리가바로앞에서들린다.그것은누군가의위기와불행,나아가세계의참상에어찌손쓰지못하는문학의무력함을꾸짖는소리처럼들린다.현실이더나빠지는동안,시인이구경만하며괴로워한다고끝없이자책하는동안,어느새겨울을넘긴시한편이피어난다.억새틈새에서야고가발간자홍색꽃잎을반짝드러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