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통신학교 (이승규 시집)

꿀벌통신학교 (이승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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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개인의 언어에서 사회와 역사의 증언으로
시는 언제부터 설명이 되어야 했을까. 이해 불가능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의미로 위로를 주어야 한다는 기대 속에서 시는 점점 안전한 언어가 되어왔다. 『꿀벌통신학교』는 그 흐름을 거스르는 시집이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설명하지 않으며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말이 되지 않는 삶, 이해되지 않는 기억, 끝내 정리되지 않는 세계를 있는 그대로 껴안는다.
그렇다고 이 시집이 개인의 내면적 서정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이 시집은 시가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 그리고 말하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는지를 말한다. 첫 시집 『냉기가 향기롭다』를 통해 단단한 시어로 현실의 시적 장면을 잘 포착해 보여준 이승규 시인은 이번 두 번째 시집을 통해 개인의 기억에서 출발해 동시대의 현실로 확장되는 시의 전형을 보여준다. 시가 개인의 언어이자 사회적 언어로서 우리 삶의 증언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저자

이승규

1972년서울북한산아래서태어나그산곁에살고있다.2016년『문학의오늘』을통해등단했다.시집『냉기가향기롭다』,산문집『그숲에시인이산다』,연구서『김수영과신동엽』등을펴냈다.빗방울화석동인으로활동중이다.

목차

시앞에·5

1부사랑이무엇인줄몰라도
사라오름에가자
봄의표준
봄속에봄
말도안되는시가
윤사월편지
알라딘의시간
나무와같다
스위스칼
참외
외도외길
고양이들
한여름의시처럼
내일의바다
브흐으
비둘기낭폭포

2부모두시인이되려고했다
누구나농부의자손
술아저씨,1982년
하늘이믿으시는네사랑
구파발행1
장욱진
김중업
김종팔선생님
가을가기전에
수유리
과메기
진리1
진리2
위미의눈
왜종달리에서
대한에서우수
니시와세다언덕에서
쑥튀김보다쑥국

3부백학관찰보고서

안국역1
안국역2
전야
봄의선고
식목일
교동도구름
주황색잠수함
녹슨수평선
후방
흐른다는것이
양구밖에서
굽은강이오래흐른다
두루미나라에갈까?
백학관찰보고서

4부같이걷는게꿈인길
몰운대에서
산늪에서태어나
철암
묵계
불행을막기위한일
물속마을따라
무등,무등산이여
계당산봄까치꽃
보림사보물일까?
편백나무사이로
떠오르는길
조약봉가는길
꿀벌통신학교
신동엽옆에서
정맥길에빛들면
아는얼굴
제멋대로휘어진
열원을지나며
날개밑에서
국망봉능선길
노적봉을향하여
백운대
꽃을기다리는동안


산문
바닷가에서온시
접경지역에피어나는꽃

출판사 서평

말이되지않는것말하기
이시집에서시는“말도안되는말”로규정된다.시는한숨,침묵,눈물,곰팡이균,먼지같은비언어적감각으로구성되며,언어의실패자체를드러낸다.꽃과나무,바다와눈같은자연의이미지는위로나낭만의대상이아니라결핍과기다림,도달할수없음의형상으로반복된다.
시를쓰는행위는시인에게치유나구원의차원에있지않다.이시집에서시는“혀를찌르고입술을비트는”행위이며,버티기에가깝다.그럼에도불구하고시인은계속시를쓴다.말할수없다는사실을알고있으면서도,말하지않으면안되는세계앞에서시쓰기를멈추지않는다.이시집은그러한시의불가능성과필연성을동시에끌어안으며,시인의자리를묻는다.

어른이사라진시대와광장의시인
노부부,술에취해울던어른,병상에누운스승,함께시를꿈꾸던친구들….이들은불완전한우리의이웃들이다.그러나이들의말과침묵,태도는시인의삶을형성한토대가된다.시인은기억을미화하지않는다.왜어른이울었는지끝내이해하지못한채남겨진질문,설명되지않는슬픔과실패는감상의대상이아니라시의출발점이된다.기억은과거에머물지않고,지금의삶을어떻게살아야하는지에대한질문으로이어진다.따라서개인의기억은시인의세계관이자삶의태도가된다.
따라서이시집은동시대의사회적현실과도직접맞닿을수밖에없다.광주,남태령,안국역등구체적인장소들이등장하지만,시인은구호와선동의언어를선택하지않는다.응원봉과진압봉,차벽과군중사이에서시는한개인이느낀감각을,그추위와열기를,불안과벅참을차분하게기록할뿐이다.시는선언이아니라증언인까닭이다.“당연한것을당연하다고말해야하는”상황속에서시인은우리시대의아이러니를드러내며,드디어시는개인적서정을넘어,공동의시간과책무를향해확장된다.

21세기라지만여전히갈라진
마지막으로시인은전쟁,군대,분단의기억을상기한다.북한강과임진강,양구,잠수함사건등의서사는추상적인담론이아니라구체적인얼굴과사건으로제시된다.분단이라는현실이외면된일상에서우리공동의기억에깊이각인된불순한이데올로기를호출한다.뼈아픈전쟁과그상흔을치유는커녕복기하지도못한채,21세기의첨단에서살아가는우리한국인들에게여전히망령처럼떠돌며끊임없이괴롭히는이데올로기를상기시킨다.다만,시인은비극을과장하지않고차분하게보여줄뿐이다.강물은경계를넘어흐르지만,인간의삶은그렇지않다는사실을환기시키면서.

이시집은대상을설명하지않고,미화하지않는다.그리고독자를위로하지도않는다.대신말이되지않는삶을끝까지놓지않는다.개인의기억에서동시대의현장그리고역사적비극에이르기까지이어지는이시집은시가여전히필요한이유를차분하고단단하게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