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를 말하다 : 맥비 2024_1 - 맥락과 비평

폐허를 말하다 : 맥비 2024_1 - 맥락과 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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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맥락과 비평』 0호(2023)를 잇는 창간호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인문학의 눈으로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폐허를 들춰내고, 그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려는 시도다. 무엇보다 막막한 현실을 되돌아보고, 우리 삶의 보이지 않는 이면이 폐허로 물들 수 있음을 환기하려 했다. 귀납되지 않는 현실, 명료해질 수 없는 삶이 솟아오를 때마다 폐허의 함의는 갈라지며 증폭하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관심은 지나간 시간에 섞여 있을 폐허의 흔적 찾기에 머물지 않았다. 그보다는 지금 이곳의 장소, 사건, 궁극적으로는 삶에 주목하려 했다. 폐허가 어디를 지칭하는지, 무엇으로 나타나고 기억되는지, 그리하여 결국에는 어떻게 우리들의 실제 삶으로 연결되는지 묻고 싶었다.

저자

맥락과비평편집위원회

저자:맥락과비평편집위원회
한상철:목원대교수
오은정:강원대교수
임재근: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교육연구소장
김화선:배재대교수
최지인:시인
한영현:세명대교수
이하은:충남대강사
윤은경:시인
손홍규:소설가
고윤수:대전시학예연구관
남기택:강원대교수
정은경:문학평론가
임세화:성균관대비교문화연구소연구교수

목차

서문

Ⅰ잿더미위에서
폐허의세양상한상철
폐허의신전오은정
-히로시마평화기념공원의원폭돔보존과역사기억의전도
폐허와분노임재근
-미군의반도폭격과북한의기록
폐허의기억김화선
시:산조,남쪽최지인

Ⅱ이후의상상력
폐허를찾는일김화선
전후한국영화와폐허의비장소성한영현
내면의공동과폐허의재건이하은
-이청준의「퇴원」,「병신과머저리」를중심으로
시:골링이골,거미야윤은경

Ⅲ소리없는목소리
소설:빛이빛나던날손홍규
폐허의환상통고윤수
-한국전쟁기몇장의사진이보여주는‘대전’
대전,폐허와징후적언어맥비동인편
-1950년대대전의매체에기록된폐허의식

Ⅳ의견들
폐허를읽는시선남기택
알지못하는앎전은경
-침묵은폭력과어떻게공모하는가
죽지않은유령과대화하는방법임세화
-사쿠라꽃과잿더미의폐허를껴안고

출판사 서평

잿더미위에서
미군의폭격으로폐허가된두도시,히로시마와대전의이야기를다룬다.<폐허의신전>은히로시마의상징인‘원폭돔’을역사적기억의전도라는관점에기대어추적한글이다.핵폭발에서살아남은‘인공의잔해’가전후재건과정을거치며평화의상징으로탈바꿈하는맥락이흥미롭다.이어지는<폐허의분노>는한국전쟁초반인민군점령기의대전을‘잿더미’로만든원인이미군의집중적인폭격이었음을입체적으로조명한다.인민군을따라내려온종군작가들의당시기록과수복후미군이남겨놓은사진은하나의폐허를바라보는두시선에대응하는것이기도하다.<폐허의기억>에는대전을문학의터전으로삼았던작가들이여럿등장한다.한국전쟁의복판에서살아남은작가들에게,폐허는‘죽음과신생을동시에품은’공간으로존재했다.삭제되고결락된시간과장소를불러내재현하는과정은폐허를바라보는시선이하나로모일수없음을증명하는또하나의사례가된다.1부의끝에서최지인의시<산조>와<남쪽>을만난다.느릿한가야금의울림이장구소리와만나퍼지는찰나는,‘멈출’수있거나‘정의할수있는’무엇이아니다.그렇게시인은서로무관해보이는일상과환상사이에서흘러넘치는,무명의폐허를붙잡아낸다.우리들의삶곳곳에산조가락처럼폐허가존재함을암시하며경고하는셈이다.

이후의상상력
한국전쟁이전후세대의심성에미친여파를다룬다.<전후한국영화와폐허의비장소성>은1950년대영화에나타난폐허의의미를‘비장소’의출현이라는관점으로살핀글이다.전후세대가지닐수밖에없었던‘폐허감각’이,당시의영화에서기존의질서나세계관이부정되는‘비장소’에대한탐닉으로표출되었다는것이다.남는문제는‘안정과평화’의대척점에있는‘혼란과무질서의임시적’공간이,과연‘정체성’이나‘관계’와는무관한비역사적장소로만존재할것인가라는질문이다.<내면의공동과폐허의재건>은1960년대작가들에게미친한국전쟁의영향을이청준의소설을내세워새롭게읽어낸다.더어린시절에한국전쟁을겪었고,1960년4월에서이듬해5월로이어지는격변기를지나온세대에게,전쟁의기억은내면의공동(空洞)으호현현한다.이청준의소설은“원인을알지못하나이미파괴되어버린현실”을재현한다는점에서,60년대작가들의폐허의식을선취하며확장한사례에해당한다.마무리는윤은경의시<골링이골>과<거미>가대신한다.이름모를죽음들이늘어서있던골짜기의비극을,이제는많은이들이알고기억하며한다.하지만시인은우리들의기억이진정한위무일수있는지묻는다.과거의폐허는지금의현실에거미줄처럼이어지지만,다시거미줄처럼부서질수도있다.

소리없는목소리
한도시의잊힌기억,그것을구성할기록과이미지들을불러모으려했다.문을여는소설손홍규의<빛이빛나던날>에는눈에보이지않는폐허와눈으로볼수없는폐허가나뉘어있다.전자는죽음에대한기억에서비롯하지만,후자는마을사람들의우화로만존재한다.두폐허는먼길을돌아하나의순간으로모여들어빛을이루지만,결국재로변하고만다.삶깊숙이자리한정체모를불안과두려움으로부터폐허가태어난다면,그허물어진마음을밝히는빛역시폐허에서태어나고저무는것일지모른다.<폐허의환상통>은한국전쟁시기의대전이담긴몇장의사진으로부터시작된글이다.이낯선폐허에는살아남은탑,무너진시가지,버려진죽음이동시에존재한다.이들은대전을불협화음의도시로만들며우리의인식을뒤흔든다.<대전,폐허와징후적언어>에대해서는약간의부연이필요하다.이글은한국전쟁직후,대전에서발행된문학매체에실린폐허관련글들을모아놓은원문자료집이다.전쟁의상흔이고스란히드러나있던시절의기록이지만,지금까지제대로다루어지지못한비운의텍스트이기도하다.

의견들
두권의책을빌려폐허의의미를새로운관점에서조망하려는시도로채워진다.먼저<알지못하는앎>은홀로코스트를방관했던평범한독일인들의내면에주목한다.세계대전에참여했던군인과가족,그주변인물들이‘폭력의공모자’로전락한것은묵인과순응이라는‘침묵의나선형’에빠져드는과정이었다.‘생존’과‘폭력’의쳇바퀴가여전히돌고있는현실에서,폭력을행사하는소수가아니라침묵하고묵인하는다수의문제를살펴야하는이유가여기에있다.다음으로<죽지않는유령과화해하는방법>은일본과독일이전후에보인행보의차이에대한최근의성과를비판적으로수렴한글이다.두나라의차이는국가,민족,지역단위의문제로만치환될수없다.그보다는‘역사적현재’와의화해,그리고‘폐허의토양’에대한인식위에서논의될때실체적진실에다가설수있음을강조한다.

서문

다시,폐허에서

시작하는책을위해폐허라는해묵은말을불러낸다.무엇보다지금이곳의바스러진현실을가리켜돌아보기위함이다.그것으로우리삶의보이지않는이면이폐허로물들어있음을환기하고자했다.이작업은말과글로표현되지않는것을말과글로설명해야하는일에가깝다.대지에뿌리내린존재들의삶이무너져내릴때인간의말과글은무력하나,또한유일한목격자가될수있기때문이다.
현실의폐허는대부분구체적장소로존재한다.하지만실체를감춘메타포로발현되는순간역시적지않다.이말에부여되었던,혹은이말로부터끌어낼수있는의미와감정이여럿인것은그때문이다.귀납되지않는현실,명료해질수없는삶이솟아오를때마다그함의는갈라지며증폭될것이다.이런의미에서우리의관심은지나간시간에섞여있을폐허의흔적찾기에머물지않는다.그보다는지금이곳의장소,사건,궁극적으로는삶에정초하고자했다.폐허가어디를지칭하는지,무엇으로나타나고기억되는지,그리하여결국에는어떻게우리들의실제삶으로연결되는지묻고싶었다.
한편으로문학과예술의폐허가종종지난시대의‘맨앞’과연결된다는사실을기억하려했다.백년전,막주춧돌을놓던한국근대문학의첫세대가그랬다.몇몇청년작가들이‘폐허’를내세운것은원래의말을오독한결과였지만,식민지로전락한시대의무게감은모든것을압도했다.와중에‘모더니티’의번역어는‘근대’와‘현대’로갈라졌고,상황은더욱긴박해졌다.늘새로움이자늘현재인무소불위의힘이분열되었으니,지나간것들과다가올것들은주인과노예의변증법속으로빠져들수밖에없었다.끝과시작사이의불편한친연성은다가올미래를끌어당기는과거의구심력으로우리를이끈다.다시,폐허를앞세워야하는이유가여기에있다.
물론위의질문들에대한답변이하나로모여들기를바라지않는다.우리의현실이과거의폐허위에구축된것임을인정하더라도,그현상을읽어내는데는각자의시선이작동할것이기때문이다.그생각과마음을존중하되,소통하고논쟁하려했다.이런바탕위에서폐허의양상과의미를묻기위해,우리는두가지전제를제시했다.장소로서의대전,사건으로서의전쟁이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