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일직선, 키나 쇼키치를 만나다

평화 일직선, 키나 쇼키치를 만나다

$13.00
Description
음악으로 평화를 그리는 키나 쇼키치
키나 쇼키치를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는 일본 오키나와 출신의 전설적인 음악인으로, 오키나와 민요 명인이자 산신(일본 전통악기) 속주의 달인 키나 쇼에이의 아들이기도 하다. 1976년 발매한 앨범 [키나 쇼키치 & 참프루즈]에 수록된 〈하이사이 오지상〉(ハイサイおじさん, 안녕하세요 아저씨)은 공전의 인기를 끌며 오키나와에서만 30만 장이 판매되었다. 당시 오키나와 인구가 100만 명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의 인기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앨범은 일본 평론가가 뽑은 100대 명반 중 35위에 랭크된다.
키나 쇼키치는 음악으로 평화를 그리는 행동주의자이기도 하다. 저항이나 투쟁의 방법이 축제일 때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체감하고, 음악을 바탕으로 세계 곳곳에서 평화 활동을 펼쳤다. “모든 사람의 마음에 꽃을, 모든 무기를 악기로, 모든 기지를 화원으로, 전쟁보다 축제”가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1980년 오키나와 문화, 산업, 정신을 소중히 하자는 취지로 개최한 ‘우루마 축제’, 1986년 기아로 고통받는 주민을 위한 필리핀 마닐라 네그로스섬 지원 콘서트, 1997년 북한 식량 지원을 위해 수차례 진행한 ‘아리랑에 무지개를’ 자선 콘서트, 1998년 3주간에 걸쳐 미국 대륙을 횡단한 백선(White Ship of Peace) 축제, 2003년 이라크 평화 가두행진 등의 활동으로 드러나듯 평생을 평화 일직선으로 살아왔다.
일본에서 남한과 북한 청년단이 주최하는 ‘도쿄 통일마당’ 행사에 해마다 참여해 〈아리랑〉을 부르고 분단된 한민족 현실에 남다른 관심을 두어 남한과 북한을 오가며 다양한 공연을 펼쳤다. 1993년 대전 엑스포 공연, 1999년 10월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종교와 문화 포럼’ 초청 공연, 2000년 광주 5.18 20주년 기념 공연 등으로 한국을 방문했으며, 2002년에는 북한 평양 공연에 참여했다. 키나 쇼키치는 김대중 정부의 일본 문화 2차 개방으로 2000석 이하 규모의 내한 공연이 가능해진 후, 1999년 9월 한국에서 최초로 공연한 일본 음악인이기도 하다.
밥 말리(Bob Marley),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같은 세계적인 가수들이 키나 쇼키치의 음악에서 영감과 감동을 받았다고 표명할 정도로 동북아를 넘어 세계에 끼친 영향이 상당하다. 2019년 현재 71세인 그는 DMZ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해 공연하는 꿈을 꾸고 있다.
저자

김창규

묻고
필명죽지않는돌고래.《딴지일보》편집장.대학에서일본문학사를전공했고제9회국제통역사절단선발대회및외국어경연대회에서일본대사상을받았다.
《딴지일보》에입사해필리핀에서억울하게감옥에갇힌한국인을돕거나(김규열선장구출작전)수배중인살인범을추적해인터폴적색수배범을잡는데기여하거나(필리핀납치사건-홍석동납치사건)영업중인불법인터넷도박조직의내부를실시간보도해국세청의세금환수를거드는등(인터넷도박묵시록)조금이상한일을많이했다.2013년4월부터데스크전담으로기사선정,기획,출판등을맡고있다.원고추심원계의프로페셔널을자부하나밤낮없이시달린필자들에게밤길조심하라는말을듣는다(내게도다생각이있다).
〈라이온킹〉의‘무파사’같은아내,〈은하수를여행하는히치하이커를위한안내서〉의돌고래같은자식과뒹굴거리는게삶의가장큰행복이며할머니가오래사는게가장큰꿈이다.인터뷰집《범인은이안에없다》와《공익제보하지마세요》(공저)를냈다.

목차

책을펴내며

1부
한국에서키나쇼키치를만나다

01지옥을본남자의유일한친구
02〈하이사이오지상〉과나의오지이상(할아버지)
03이쪽은오키나와,저쪽은미국세계
04미군이떠난날,유치장에들어가다
05그러고보니나는왕따였군
06‘그간격’을봐버린인간
07차별받는자가차별을해결할수있다
08일본인의유전자에새겨진무의식그리고아베
09북한이적이아니라분단된현실이적이야
10평화운동보다는아이들의마음을꺾기싫을뿐이야
11중요한건,일단한다,는거지
12그러지않으면세상이바뀌질않아

2부
일본에서키나쇼키치를만나다

01‘평화’라는원패턴과1964년도쿄올림픽
02어머니와아버지그리고돈
03형무소안에서,다시돌아가다
04내가잘하는것과이라크
05오키나와,미군기지그리고정치
06핵,야스쿠니신사,위안부,독도
07꿈은같다
08인터뷰후:천국과지옥의재료는같다

부록
키나쇼키치연보
주요앨범
주요서적

출판사 서평

김창규묻고키나쇼키치답하다

류큐왕국은1429년부터1879년까지450년간존속했다.일본에무력으로병합돼반강제적으로‘오키나와현’이라는이름으로편입되었다가,제2차세계대전막바지에일본본토를지키기위해버려지는돌로취급돼지상전에떠밀려주민의4분의1이죽는비참한상황에놓이기도했다.전쟁이끝난후,미국에27년간양도되어군사기지가잔뜩세워졌으며1972년반환된이후에도갈등상황은여전하다.
키나쇼키치는1948년생으로미국이오키나와를통치하던시절에태어났고,일본을다른나라로생각하며어린시절을보냈다.음악활동을하다가오키나와주민들의지지를바탕으로국회로갔고(키나쇼키치는전직참의원의원이다)선거에서무참히패배하기도했지만(오키나와현지사선거),그가최종적으로안착한곳은‘평화’였다.그것도무려‘세계평화’.
키나쇼키치는인간을국가나이념,종교나민족에한정해보지않는다.오직개인이다.‘위정자에게의지하지않는삶의방식’으로살아온오키나와인의매력에더해제멋대로살고제멋대로말하고그말을온전히책임지며,미덕도악덕도,자본주의자도공산주의자도모조리받아낸이남자는유쾌하고씩씩하다.
《딴지일보》김창규편집장이남한과북한을오가며평화를노래하는키나쇼키치를만났다.2017년한국에서,그리고꽤오랜시간이지난2019년일본에서이어진인터뷰에는키나쇼키치의삶,음악,평화이야기가녹아있다.2017년첫만남때만해도남과북은언제전쟁을벌여도이상하지않을정도의긴장국면이었다.하지만그때키나쇼키치는평화가급진전될수있음을예감했다.그리고남북한이분단상황을넘어세계평화에이바지해야한다는점을피력했다.불과2년만에그의생각이사실로드러났다.
키나쇼키치의대표곡중하나인〈하나~모든사람의마음에꽃을~(花?すべての人の心に花を?)〉이란노래는60여개국에리메이크되어세계적으로3000만장이상이팔렸다.세계적인위상에비하면한국에선키나쇼키치의존재감은극히미미한수준이지만,그는남북관계의진전을바라며매년아리랑을부른다.그의마지막꿈은DMZ에서한반도평화를위해공연하는것이기도하다.
우리는키나쇼키치를보고있지않았지만,그는계속우리를보고있었다.이제키나쇼키치를발견할때다.그리고그가전하는평화의메시지에귀를기울일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