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렴풋, 당신 (동길산 산골 시 산문집)

어렴풋, 당신 (동길산 산골 시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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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은은하면서 은근한 향기
저자는 부산 토박이다. 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와 대학을 부산에서 나왔다. 군 복무도 부산에서 하고 학교 졸업 후 첫 직장도 부산에서 다녔다. 그러다 삼십 대 초반이던 1992년 도시 생활을 접고 생면부지 산골로 들어갔다.
경남 고성군 대가면 갈천리 어실마을. 생면부지 산골인 거기에서 저자는 2022년 올해 만 삼십 년을 맞는다. 방문을 열면 산 그림자를 품은 호수가 보이는 산골에서 산 그림자 같은 시, 호수 같은 산문을 쓴 세월이 하루하루, 한달 한달, 한해 한해 첩첩이 쌓여 삼십 년에 이른다.
〈어렴풋, 당신〉은 산 그림자 시와 호수 산문을 모은 시·산문집이다. ‘풍경소리’에서 ‘당신’까지 모두 71편의 시와 71편의 산문이 때로는 산 그림자처럼 깊숙하고 때로는 호수처럼 일렁인다. 〈어렴풋, 당신〉에 빠져들면 당신 역시 깊숙해지고 일렁이리라.
산골 30년 시·산문집 〈어렴풋, 당신〉은 남다르다. 시와 산문의 결합은 흔히 보는 바지만 〈어렴풋, 당신〉의 시와 산문은 ‘한 편’이면서 ‘한편’이 아니다. 시는 산문에 스며들고 산문은 시에 스며들면서도 시는 시의 중심을 잡고 산문은 산문의 중심을 잡는다. 삼십 년 산골의 내공을 보는 듯하다.

두근대는 마음은 바람 잠잠한 날에도 소리를 낸다. 마음 끝에 촉수 예민한 풍경을 매달고 반응한다. 당신이 어디에서 오든, 그리고 아무리 멀리서 오든 마음 끝 풍경은 당신을 감지한다. 당신이 오른쪽에서 오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두근대고 왼쪽에서 오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두근댄다.
- ‘풍경소리/ 처마는 멀고 마음은 가까워도’ 중에서

한쪽 돌담이 낮아 보입니다 돌을 쌓아올립니다 이번에는 다른 쪽 돌담이 낮아 보입니다 낮아 보이는 돌담을 다시 쌓아올립니다 맞춘다고 맞춰도 어느 한쪽은 아무래도 낮아 보입니다 가만둬도 될 걸 일머리 없이 건드려 몸이 고생입니다 담만 높아집니다
- ‘돌담/ 소중한 건 돌담 아니라 돌담 너머 당신’ 중에서

산골 시·산문집 〈어렴풋, 당신〉은 짧고 가벼워서 좋다. 문장이 짧고 주제는 가볍다. 그래서 쉽게 읽히고 술술 넘어간다. 귀촌이 로망인 도시 사람의 감성을 슬쩍슬쩍 건드리며 마음 깊숙한 곳 어렴풋한 당신에 대한 기억을 슬쩍슬쩍 건드리며 읽었던 페이지를 다시 보게 하고 접었던 책장을 다시 펴게 한다.
마음 깊숙한 곳 어렴풋한 당신. 당신은 어감부터 따뜻하고 포근하다. 당신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직이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훈훈해진다. 많은 것을 놓치고 사는 우리에게 당신은 그 자체로 위안이며 하루하루를 다독이는 믿음이다.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당신은 우연인가. 아니면 필연인가. 둘 다 맞으면서 둘 다 아니다. 당신은 우연이면서 필연이고 필연이면서 우연이다. 방문을 열면 보이는 산골의 새벽 저수지 물안개. 안개가 우연인 듯 보여도 우연이 아니듯 마음의 문을 열면 보이는 당신 역시 우연인 듯 보여도 우연이 아니다.
- ‘당신/ 온전한 당신’에서
저자

동길산

저자동길산시인은1960년부산에서태어났다.1989년무크지〈지평〉으로등단했으며〈꽃이지면꽃만슬프랴〉등의시집과〈우두커니〉등의산문집,그리고한국신발100년사〈고무신에서나이키까지〉를냈다.2020년김민부문학상을받았다.
글만큼이나그림도따뜻하고포근하다.책에실린그림은서른가깝다.서른가까운그림을흔쾌히보탠노충현은경남창원에서작업하는중견화가다.창원과고성은한시간거리.동길산시인이고성에이주할무렵갑장인두사람의연이이어졌다.시인이책을내면화가는그림을보태겠다는삼십년약속이이책〈어렴풋,당신〉이다.
꽃.노충현그림에종종보이는소재다.집에뿌리내린꽃도종종보인다.집에뿌리내린꽃은축복(Blessing)을뜻한다.〈어렴풋,당신〉에뿌리내린꽃!꽃의향기가은은하면서은근하다.멀리멀리퍼지기를바란다.

목차

14처마는멀고마음은가까워도::풍경소리
20내옆구리내가치는밤::한밤
26눈이부셔서마음이시려서::달빛
32날면서더많이울까앉아서더많이울까::새는
38훈훈한낙엽이한잎두잎::낙법
42나무의한평생만큼장한사람의하루::사람의하루
46둘도없는당신이햇살::남향집
52아장아장,봄의기운::임도
56사랑은멀고높은곳삽시간에밀려왔네::황사
60핀꽃에손을대고지는꽃에손을대다::꽃몸살
64이슬까지둥글어지려는눈물까지둥글어지려는::보름달
68어느꽃자리에서너는여물고있느냐::매실
72아무리많아도,아무리멀어도::별
78참다가참다가비가오는::참다가참다가
82저기저풀잎언제쯤에나나를보며붉어지려나::하세월
86나무의단풍,사람의단풍::노을
90어디에서봐도반짝이는물잎::물잎
96봄바람은슬슬불고웃음은실실나오고::저수지
100무얼하며지낼까살아는있을까::비
104소중한건돌담아니라돌담너머당신::돌담
108한잎도아까운데한꺼번에두잎세잎이::복사꽃
114대야가비맞고있습니다대야가빗물을받아내고있습니다::세숫대야
118꽃잎보다얇은꽃잎의막,당신에게두꺼워진나를나무라는::꽃잎의막
122달빛이천군데강물에비치듯::중이염
126오로지한방향,당신!::면벽
132피는꽃이지는꽃을보는마음지는꽃이피는꽃을보는마음::어느꽃도어느잎도
136앞산을넘어저수지를건너::비는느리게
140안그래도이고진게많은나무에새집까지::편법
144젊은날설레던당신처럼내가슴꾹꾹눌러주길::송창식
150어느잎도자기만내세우지않고어느잎도자기만앞에두지않아::빗물
154“다이얼이잘못됐으니다시걸어주세요”::지구는둥글까
158꽃피는기쁨꽃지는아픔::무화과한그루
162천리만리천만리무궁한꽃길,그길을따라당신은오시라::금목서
168나무와잎,그리고당신과나::낙엽
172모양도같고빛깔도같은꽃이저마다가장멀리가장높이::나뭇가지
176언제나잠시고언제나아득한::면사무소가는길
180저억새는언제부터저기있었을까::평생
186다다른고드름::고드름
190수시로빠지거나굴러떨어지는사람의갈지자마음::날갯짓
194반짝반짝얼음반짝반짝얼음구멍::언저수지
198나무는구부러져자라고새는구부러져서야내려와::등이구부러지다
204동백은떨어져서도동백::최고의말
208이꽃이저꽃같고저꽃이이꽃같아도::개나리
213꼭꼭숨기고서살짝살짝꺼내는꽃길::큰재벚나무
218꽃보다꽃::한쪽
222도란도란이파리::초록에서초록으로
226이파리가꽃을놓아주듯이햇빛이이파리에서물러나듯이::아카시아
232꽃이꽃을깨물어서꽃이지다::꽃이깨물다
236이비를보며한잔저비를보며한잔::비는느리게
240빨간양철지붕의추억::뒷짐
244오늘은하루를또얼마나물렁하게::스와니강물
248나는언제쯤에나나무에올라가보나::나뭇가지한가지
252아무리잠와도또박또박들리는::동해물
256잎이잎에기대듯마음이마음에기대어::꽃진자리
262시인이독자를의식하듯언젠가는비가나를의식하리라::장마철
266나무맨위에난잎,가장높고가장파릇한::잎의역설
270높다랗고청정한천죽千竹의노래::우리집대밭
274나나나무나제나름의속셈으로::나무를밀다
278사흘을울어서목이쉰소,또울다::소
282늘다니던산길에서길을잃다::숲
288나를이만큼이나키운건빨래::나를올리다
292산,늘다르면서늘같은::산너머산
296황토가사람을알아보다::황토
302나가는길이끊기면들어오는길도끊겨::길이끊기다
306차를산그날폐차한베스타슈퍼봉고1987년식::녹-1종보통
310나무같은당신이넘어지기전에::넘어진나무
314뻐꾸기는뻐꾸기대로나는나대로::뻐꾸기트럭
318둑길중간쯤화해의술상::춘분
324많이먹어라먹고더먹어라::밥한그릇
328내기억에평생을갈지도모를별::낮별
332온전한당신::당신

336작품목록::노충현

출판사 서평

‘걸어온길은언제나잠시고걸어갈길은언제나아득하다.’
‘이꽃을보면이꽃에다가가고저꽃을보면저꽃에다가간다.다가가고또다가가느라산골은하루가다간다.’
읽는즉시그대로외우고싶은구절들이갈피마다살아있는동길산시인의산골이야기는그대로한편의서정적인시이고일상생활을전하는일기이며자신의철학을담고있는단상입니다.봄여름가을겨울사계절의산골이야기가더정겨운것은인생의사계절과구체적으로맞닿았기때문입니다.시인이연재해온나무이야기,등대이야기,포구이야기를감탄하며읽은한사람의독자로서‘면사무소가는길’과같은시인의산골이야기를더많은이들이읽고마음속에잠시쉬어갈수있는그윽한사색의정자하나만들면좋겠습니다.
〈어렴풋,당신〉처럼정겹고아름다운벗으로초대되어서!
●이해인/수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