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블로 카살스의 마스터 클래스 (새들의 노래: 카살스의 말, 이야기, 인상)

파블로 카살스의 마스터 클래스 (새들의 노래: 카살스의 말, 이야기, 인상)

$15.30
Description
‘첼로의 성자’ 파블로 카살스가 들려주는
삶과 예술에 대한 마스터 클래스
“그는 다른 필멸의 인간들이 포기하는 지점에서부터 시작했다. 자신의 기교에 한 치의 의심도 없었던 그는 오로지 음악에 대해서만, 그리고 작곡가가 전달하려 한 메시지만 생각했다. …… 그는 정신과 영혼을 다해 따라야 할 자세의 표상이다.” _ 피아니스트 제럴드 무어

“카살스는 단순히 독보적 첼리스트가 아니라 유일무이한 예술가였다. 그는 또한 바흐가 살아 있었더라면 아마 그랬지 않았을까 싶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즉 삶과 예술이 일체를 이루는 완전한 사람 말이다.” _ 첼리스트 폴 토르틀리에

세계적 음악가 동료들로부터 이런 찬사를 받는 이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클래식 음악의 긴 역사 속에 이름을 남긴 이들은 대개 우리가 한평생 주변에서 거의 접하기 힘든 수준의 성취를 이룬 천재들이다. 어려서부터 신동 소리를 듣던 사람조차 성장한 후 희미하게 잊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등장 이전과 이후가 나뉘는 우뚝한 인물 역시 드물게 나타난다. 사람의 목소리를 가장 닮았다는 악기, 첼로 분야에서는 파블로 카살스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오늘날의 첼로 연주는 그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카살스와 함께 첼로는 다른 악기들을 저음으로 뒷받침해주던 악기에서 독주할 수 있는 악기로 영역이 확장되었다. 음악평론가 하비 색스는 “오늘날 활동하고 있는 첼리스트 중에서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카살스가 남긴 혁신의 혜택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단언했다.

4세에 피아노를, 7세에는 바이올린을 다뤘던 그는 11세에 첼로 연주를 처음 듣고 그 악기와 사랑에 빠졌다. 본격적으로 첼로를 공부하기 시작한 이래 불과 두어 해만에 연주법을 혁신적으로 개량했고(오늘날에는 모두 그 방식으로 첼로를 연주한다), 이십 대 초반에 그 분야를 대표하는 세계적 음악가의 반열에 오른다. 13세에 바르셀로나의 고악보점에서 발견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꾸준히 연습하여 단편적으로 연주될 뿐 거의 잊혔던 곡을 널리 알려 인기 있는 정규 레퍼토리의 자리에 올렸고 세계 최초로 전곡 녹음했다(1936~1939, EMI). 자신의 인지도를 활용하여 노동자들을 위한 음악회를 꾸준히 열고, 사비를 털어 고향에 정상급 오케스트라를 키워내고, 조국을 장악한 독재 정권에 과감히 맞섰던 위대한 음악가였다.
이 책 《파블로 카살스의 마스터 클래스》는 뛰어난 음악가이자 정상급 첼리스트인 줄리언 로이드 웨버가 파블로 카살스를 다룬 글과 단편들을 모두 섭렵하고 하나하나 정성껏 모아 엮은 것으로, 존경하는 카살스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다. (웨버는 세계적 뮤지컬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동생이기도 하며 한국에도 애정이 깊다. 그가 1996년 국내 발매한 앨범 〈자장가Cradle song〉에는 우리 자장가(김대현 곡, 김영일 시)도 포함되어 있다.)
저자

이석호

좋은음악을듣고,좋은글을읽는것이낙이다.그낙을다른이들과나누는것또한즐거워그럴궁리를하고지낸다.음악관련책을스무권넘게우리말로옮겼다.‘우리가사랑하는음악가’시리즈중에서푸치니,드보르자크,로드리고,버르토크,스트라빈스키,바그너편을번역했다.그밖에옮긴책으로《말러와1910년의세계》,《쇼,음악을말하다》,《다시피아노》,《음악에서무엇을들어낼것인가》,에드워드사이드의음악비평집《경계의음악》,필립글래스의자서전《음악없는말》,《크레모나바이올린기행》,《스뱌토슬라프리흐테르,피아니스트》,《지휘의발견》,《인간으로서의베토벤》,《슈베르트평전》,《스타인웨이만들기》,《왜말러인가?》,《라흐마니노프》등이있다.

목차

2024년서문
1985년서문
1부마에스트로,마에스트로
연주회에서
연주회공포증
첼로
유년기
어머니에대하여
다른음악가들이본카살스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
카살스와평론가들
바흐
다른작곡가들에대하여
현대음악
팝뮤직
피카소
음악에대하여
2부인간으로서,예술가로서
전쟁과평화
정치
인간으로서
종교
천재와천재성
스승으로서
기교
직관과해석
녹음
매니저와임프레사리오
미국
공산주의
영국
연주여행
스페인
마르타와의결혼
나이에대하여
스트라디바리우스
파이프담배
교육
은퇴
일에대하여
옮긴이의말
연보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나는음악이,혹은그어떤다른예술형태라도,그자체로해답이될거라고느낀적이없다.음악가는먼저인간이며,삶에대한그의태도가그의음악보다중요하다.그둘은결코분리될수없다.”“나는예술가다.그러나내예술을실행함에서나는일개육체노동자일뿐이다.평생을그래왔다.”_파블로카살스

“이작은책은비단음악을사랑하는분들뿐만아니라삶을사랑하는분들을위한것이기도합니다.이책에담긴소박한지혜의말들은파블로카살스생전만큼이나지금도진실한울림을지니고있기때문입니다.”_엮은이줄리언로이드웨버

**옮긴이의말

때로어떤음악가의명성은그가행하고이룬바를뛰어넘어드높은위상을획득하곤합니다.엄청난업적에세상의감사와선의가더해진숭상이겠습니다.제대祭臺위에놓인거인의동상앞에선사람들은삼가공경하는마음이들지않을수없습니다.감히조금의흠집도낼수없는명성이요,짐짓어깃장을부려보자싶어도대단한불경죄의심판대에오를각오를단단히해야하는압도적높이입니다.보통이런위인들에게는‘거룩할성聖’자가붙곤합니다.괴테는시성詩聖이라는칭호로숭앙받았고,베토벤은‘음악의성인樂聖’으로우러름을받습니다.그리고이책의화자이자주인공인카살스역시‘첼로의성자’라는표현이몸에착달라붙는옷처럼자연스럽습니다.

생각해봅시다.카살스만한연주자가흔히있었던가요?자신이종사한악기에서일가를이룬사람들이야적지않습니다만,만약그악기연주의역사를그사람의전과후로나눌수있는인물을꼽아보라하면다섯손가락을채우기도쉽지않습니다.바이올린에는파가니니요,피아노에는리스트이며,노래는엔리코카루소와마리아칼라스정도가전부이지않을까싶습니다.첼로라는악기가독주악기로서위상을획득한건누구보다그의공로였습니다.주법의혁신을가져온것은물론이요,첼로의구약성서라불리는바흐의〈무반주첼로모음곡〉이라는작품집을연주회용레퍼토리로격상한것이또한카살스였습니다.음악평론가하비색스는“오늘날활동하고있는첼리스트중에서직접적으로든간접적으로든카살스가남긴혁신의혜택을받지않은사람은아무도없다”고단언했습니다.첼로의역사를‘비포카살스’와‘애프터카살스’로나누어마땅한근거입니다.

그가올라선제대를떠받치는기둥이음악뿐은아닙니다.오히려그에게‘성자’의광휘가더해진이유는음악바깥의행적에기인한바큽니다.카살스는음악이외의분야에서도분명히자기목소리를낸거인이었습니다.군사정권에게멱살잡힌조국스페인의운명을비통히여겼고,그에앞서세계어디서든평화와자유,민주를갈망하는목소리를내길주저하지않았습니다.프랑코정권이들어서자조국의독재상황에동조하거나침묵하는국가에서는결코무대에서지않겠노라공언했고그다짐을행동으로실천했습니다.전세계의존경을받는음악가가망명상태에서벌이는반정부활동에심기가불편해진프랑코의최측근인사는한라디오방송에출연해“만약카살스를생포하게되면당장그의팔을팔꿈치아래로절단해버리겠다”는극언을서슴지않았다고합니다.

대의를위해자신의이익을희생하는그의자세는다른면에서도빛났습니다.카탈루냐사람들에게좋은음악을접할기회를제공하겠다는뜻으로1920년파우카살스오케스트라를창단했고,악단의연주기량이일정수준에오를때까지몇년간사재를털어단원들에게급료를지급하며연습시켰습니다.뿐만아니라형편이어려운이들도큰경제적부담없이훌륭한음악을만날수있도록‘노동자연주회협회’를조직했습니다.월수입이500페세타에미치지못하는이들이오직주머니사정때문에음악에다가가지못하는부조리를막기위해소액의연회비만내면협회의회원으로받아주었고,회원들을위해연6회의무료연주회를개최했습니다.


**책속에서

이책에서우리는카살스본인의육성과주변인들의회억을통해첼로의성자와만납니다.한줄짜리촌철에서부터비교적긴길이의일화까지모두가카살스의진면목을짐작케하는값진단편들입니다.본문에는담기지않은예화하나를덧붙이며글을마무리하겠습니다.1971년10월24일,파블로카살스는뉴욕의유엔총회에모습을나타냈습니다.그의평생의공적을기리는유엔평화메달을수여받는자리였습니다.유엔사무총장우탄트는다음과같은치사와함께카살스의목에메달을걸었습니다.“돈파블로,당신은진실과아름다움,그리고평화에당신의삶을바치셨습니다.한사람의인간으로서,또한한사람의예술가로서당신은이유엔평화메달이상징하는이상을실천하셨습니다.깊은존경을담아이메달을당신께수여합니다.”카살스는다음과같은인사말로화답하며첼로를집어들었습니다.“나는근40년동안대중앞에서연주하지않았습니다.그런데오늘은연주를해야겠습니다.이곡은‘새들의노래’라고불립니다.하늘을나는새들이‘피스(평화),피스,피스’하고노래합니다.이음악은바흐와베토벤,그리고모든위대한음악가들이사랑하고우러렀음직한그런곡입니다.무척아름다운곡이며,내조국카탈루냐의영혼과도같은음악입니다.”

“첼로는나의가장오랜친구이자가장소중한벗이다.”

“가르치는것은배우는것이다.”

“가장완벽한기교는조금도인식되지않는기교다.”

“어느작품이건매번다시고찰하지않는다면어찌생동감있는연주를기대할수있겠는가?해마다봄이되면나무에선새파란잎사귀가돋아난다.그러나그모습은매년다르지않던가.”

“지난80년동안나는매일똑같은방법으로하루를연다.기계적인루틴은아니지만내일상생활에는필수적인그무엇이다.나는일어나면피아노로가서바흐의〈전주곡과푸가〉를두곡씩친다.이것말고다른방법으로하루를시작하는건생각조차할수없다.이것은마치내가거하고있는공간에내리는축복과도같다.”

“내가지금까지첼로를켜오며그토록행복했다면,모든악기중가장위대한악기인오케스트라를손에넣을수있다면어떤기분이들겠는가!”

“내관심은오로지음악연주에있다.그리고오케스트라보다나은악기가있을수있겠는가?……음악을심오하게느끼고자신의가장깊고가장내밀한생각그리고감정의모양과형식을음악으로옮기고싶은사람에게는오케스트라만한매개체가없다.또한오케스트라는협력이라는사상을골자로하고있기에매력적이다.여러사람이모여음악을만들어내는경험에나는매료되지않을수없다.”

제2차세계대전종전직후인터뷰에서카살스는다음과같이말했다.“전쟁중에도영국인들은문명의불꽃을꺼트리지않고사수했음을역사가늘기억할것입니다.그런일이가능하다는걸직접목격할수있어서대단히행복합니다.이전쟁이시작되던당시나는이미노인이었고,오늘은그때보다더나이들었지만,지난몇년간나는참으로충만한삶을열심히살았다는말씀을드리고싶습니다.세계전역을덮은거대한변화를견뎌냈고,그무엇보다혐오스러운형태의두독재정치체제가무너지는걸목도했습니다.이모든모습을살아내고나니새로운힘이생김을느낍니다.”

“때때로내주변을둘러보면서완벽한절망감에사로잡히곤한다.오늘날세계를괴롭히고있는혼돈속에서나는삶의가치그자체를무시하는현상을발견한다.아름다움은우리주변어디에나있지만얼마나많은이들이이를알아보지못하는눈뜬장님인가!두눈을뜨고서도이지구상의경이를조금도보지못하는자들이천지다.사람들은정신없이바쁘게살고있지만자신의삶이어디로향하고있는지는거의생각하지않는다.그들은마치길을잃고자포자기한이들처럼흥분그자체를위한흥분을추구한다.”

“나는어디에서나거룩한신성神聖을본다.음악에서,바다에서,꽃한송이에서,나뭇잎하나에서,친절한행동하나에서.이모든것에서나는사람들이하느님이라부르는존재를본다.그리고내게도이거룩한신성의요소가있다.그리고바로그것이더높은무엇인가,너무나도높아믿지않고는달리도리가없는그무엇인가의존재에대해내게일러준다.그리고나는다른그어떤것보다도음악의기적속에서신성을본다.바흐나모차르트같은음악가들이창조한소리는뭔가무한히선량한것,뭔가‘거룩한것’을생각하지않고는그누구도설명할수없는기적이다.”

스트라디바리우스를사용하지않는이유를묻는질문에카살스는이렇게대답했다.“나는카살스의소리를듣는편을선호합니다.”

“은퇴라고?은퇴는상상조차할수없다.나와같은직종에종사하는사람이라면그누구도은퇴할수없다는게내생각이다.정신이남아있는한은말이다.내게일은곧삶이다.그둘은결코분리될수없다.따라서‘은퇴한다’는것은내게는곧죽는다는것을의미한다.일을하면서일에싫증을내지않는사람은결코늙지않는다.가치있는것에흥미를잃지않은채꾸준히일할수있다면그만한노화방지특효약도없다.나는하루하루새로태어난다.매일매일새로시작하는것이다.”


**파블로카살스PabloCasals,1876-1973

예술가의책무와헌신을강조하고실천한20세기첼로의거장이다.1890바르셀로나고악보서점에서바흐의〈무반주첼로모음곡〉악보를발견하고입수해모음곡을세상에널리알리고연주회용레퍼토리로격상시켰으며,모음곡전곡을최초로녹음(1936-1939)했다.1876년12월29일스페인카탈루냐지방에서교회오르가니스트의장남으로태어나부친에게음악을배운뒤바르셀로나시립음악학교에서본격적으로첼로수업을받았다.
1899년파리에서라무뢰오케스트라와협연해독주자로입지를굳혔고,1901년에는80여회의미국순회연주를했다.이후티보,코르토와함께카살스삼중주단을결성해1937년까지왕성한연주와녹음활동을펼쳤다.사재를털어‘파우카살스오케스트라’를창단하고노동자연주회협회를만들어노동자를위한음악회를열었다.이후프랑코독재정권과서방의모호한태도에항거하며한동안공개연주를거부하고프랑스프라드에은둔했다.
1950년바흐서거200주년기념연주를계기로프라드에서연주를재개했고이후프라드페스티벌과푸에르토리코카살스페스티벌을이끌었다.1971년유엔총회에서자작곡〈유엔찬가〉를초연지휘하고,인류의평화를기원하며‘새들의노래’를연주했다.1973년이스라엘음악제에서마지막연주후그해9월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