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옛적이야기,다시들려드립니다!
과학을사랑하는이야기꾼곽재식의괴이한고전읽기
공학박사라는이력때문에곽재식에게는‘SF소설가’라는수식어가종종따라붙지만,사실그는역사소설또한꾸준히썼으며평소우리옛문헌속에서잘알려지지않은신기한이야기를발굴해수집해오고있다.2007년부터무려10년이넘는기간동안한국의토종괴물이야기를모아서자신의블로그에조목조목공개한것도,옛이야기나사료,민담등에서착안해『역적전』,『모살기』등의소설을쓴것도고전에대한곽재식작가의관심을분명히보여준다.
『곽재식의고전유람』은곽재식이우리고전속에서찾아낸새롭고참신한이야기를맛깔나게들려주는책이다.소설가인저자는무수한이야기의보물창고이자영감의원천인한국고전에서이무기,신선,여우,귀신,망조현상,지하세계,저승등에관한기이한소재를포착해특유의입담으로수다스럽게펼쳐놓는다.『천예록』,『순오지』,『학산한언』,『어우야담』같은이야기책부터,『조선왕조실록』,『삼국사기』,『삼국유사』같은역사기록,그리고『금오신화』나「설공찬전」같은고전소설까지,장르를가리지않고옛문헌속에서발견한이상하고신기한이야깃거리를박학다식한소양을뽐내며솜씨좋게엮어서보여준다.
저자는고전에대한전문적인연구자는아니지만,세상만사에대한왕성한호기심을바탕으로옛사람들의생각과그시대의역사를입체적으로살펴보는가하면,자신의전문분야인과학까지곁들여기상천외한방식으로이야기를엮어나간다.아름다운경치구경을하며유유자적팔도강산을유람하듯,오로지옛이야기하나로1,000년이넘는세월을자유자재로오가는곽재식표환상여행이다.
이무기의뼈,구미호의변신,거꾸로된지하세계에는
다그럴만한사연이있다!
한국고전문학을소개하는책은수없이많다.고전이라고하면대개는고리타분한이야기쯤으로여기기때문에보통사람들이가벼운마음으로읽고즐길엄두를못내는게사실이다.한자투성이에,등장인물은판에박힌듯하고,이야기는뻔할것이라는선입견때문이다.곽재식은이책에서그런고정관념을시원하게날려버리며과학이라는도구를활용해독특한방법으로옛이야기에살을붙여나간다.저자는“특히내용이짤막하고전후를알수없는기록일수록과학의눈으로추측하고상상해보면이야기가풍부해진다”고강조한다.구체적인면이부족한옛문헌일수록기록한자한자를샅샅이들여다본다고한들많은의미를알아내는데에는한계가있는데,이때과학을활용하면재미난이야기가된다는것이다.
이책에서고전은박제된옛이야기에그치지않고,소설가의상상력을자극하는소재가된다.역사학자들과고전문학연구가들이수없이읽어왔던하고많은문헌속에서기이한점을포착해새로운이야기로연결해내는참신한시선이단연돋보인다.『천예록』의이무기모험담은공룡화석이야기로이어지는가하면,『잠곡유고』의여우전설은여우와인류의관계사에대한고찰로나아가며,『삼국사기』에실린백제말기의기이한자연재해는적조현상를비롯한기후변화이야기와엮이고,『학산한언』의거꾸로된지하세계전설은카메라오브스쿠라(cameraobscura)라는광학장치에대한탐구로연결되는흐름이독특하다.이책의가장큰매력이바로이‘종잡을수없음’이다.흔하디흔한원전해설에얽매이지않기때문에어디로튈지모르는예측불가능한이야기가이어지고,이것이흥미를유발한다.
“괜히또상상에빠져본다”
끝모르는상상력,아찔한이야기의힘!
이책을읽다보면한국의옛이야기중에도이렇게신기하고이상한내용이많이있다는사실을알게될것이다.조선궁중에서암암리에퍼진사랑의묘약,화포를쏘아유령을쫓아내는총잡이,괴이한불온서적으로낙인찍힌조선판〈엑소시스트〉등현대인의궁금증을유발하는기묘한내용이끝없이이어진다.과연사랑의묘약의효능은믿을만했을까?조선궁중에서총과대포를이용해쫓아내고자한악령의정체는무엇일까?귀신들림을소재로삼은이야기가왜불온서적이되었을까?짤막한옛이야기속에서주변정황을따져가며등장인물의정체를파고들고,숨은뜻을추측하며,새로운가능성을떠올리는저자의능청스러운입담을따라가다보면,마치추리소설속탐정이된듯한기분을느낄수있다.
대담한과학적유머가더해지며설화와전설,민담의소재가반전에반전을거듭하는흐름에서,언뜻MBC〈심야괴담회〉의‘괴심파괴자’로활약하던저자의모습이겹쳐보이기도한다.〈심야괴담회〉에서저자는심령이니유령이니하는것에몽땅과학적근거를갖다붙이며괴담에초를치는코믹한감초역할을맡아왔다.“다된괴담에과학을뿌리는”그역할을두고,신비한이야기를신비한채로남겨두지않고너무세밀하게따지고분석하는것은옳지않다고볼멘소리를하는이들도더러있었다.저자는그말도어떤면에서는일리가있지만,그럼에도과학이야기를함께엮어보면내용이더풍부해지고알수있는사실도훨씬많아진다며이야기에매력을더하는과학의미덕을굳게믿는다.“그자체로는분명한역사적사실이라할수도없고명확한과학이라할수도없는내용이지만,역사와과학이동시에나타나기마련인옛문학에서상상력을통해이야기가연결되는모습은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