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임시정부대한국민의회와
통합임시정부의역사와여정을담은다큐멘터리
이책은우리나라임시정부의역사가러시아연해주에서수립된임시정부인‘대한국민의회’에서시작되었다고본다.당시러시아연해주는항일독립운동의중심지였다.일제의감시와탄압으로국내에서더는독립투쟁하기어려웠던수많은애국지사가만주의간도를지나연해주로넘어왔다.헤이그특사였던이상설과이준,의병을이끌고온의병장유인석과이범윤,미국과일본에서활동하던안창호를비롯한여러독립운동가가모여든것이다.최재형과동의회가준비하여실행한안중근의하얼빈의거로연해주에서의독립투쟁의기세는드높았다.1919년일본유학생들의2?8독립선언과국내의3?1만세운동에이어3월17일최초의임시정부인‘대한국민의회’가세워지고독립선언서가선포된것이다.
이후4월11일중국상하이에모인애국지사들이대한민국임시정부를수립했다.대한민국임시헌장을선포하고임시의정원과임시정부각료명단을발표한것이다.국내에서는4월23일13도대표들이모여국민대회를열면서한성임시정부를수립하고선포문과약법,각료명단을발표한다.이렇게러시아연해주와중국상하이,국내에서각각수립된임정들을통합하는데는안창호가앞장섰다.단절된민족정권을계승한하나의정부를세우고국내외의항일독립운동을강건하게진행해나가기위해서였다.1919년9월11일세임시정부는대한민국임시정부로통합되었고,대한민국임시헌법을공표하며대통령이승만,국무총리이동휘등각료명단도발표하였다.
이후자주독립과애국을앞세운임정의길은험난하였다.일제의감시와탄압은갈수록심해졌고,임정내부의파벌갈등과수많은애국지사의투옥과사망등산적한어려움속에서도임정은27년간꿋꿋이버티며조국의독립을위해노력했다.첫청사는상하이에자리잡았지만,1932년이후자싱,항저우,난징,창사,충칭등으로머나먼여정을떠나야했고,김구는중국과미국인사의도움으로따로피난처를마련해야할정도로아슬아슬한시간을보냈다.하지만한국광복군을창설하고연합군과함께국내로진공할날을준비하며광복의그날까지임정은굳건히제역할을담당하였다.
러시아연해주,상하이등중국각지의대한민국임시정부유적지현장답사기행
이책은러시아와중국각지의임시정부유적지와항일독립투쟁현장을답사하고,각기념관관계자와현지인들의목소리를함께담았다.
러시아연해주는국내외에서모여든항일민족지사와독립운동가들이‘연해주독립운동의대부’최재형과함께동의회,13도의군,권업회,전로한족회,임시정부인대한국민의회등을조직하고의군을양성해독립투쟁을한곳이지만1937년스탈린의한인강제이주로한인촌은폐허가되었고,항일독립운동유적지가많이소실되었다.안중근의단지동맹기념비가있는크라스키노와하얼빈의거를준비했던우스리스크의최재형저택과기념관을비롯해전로한족회중앙총회건물,블라디보스토크의한인중심지였던신한촌과기념비,이상설유허비,발해성터등을돌아보며독립투사들의발자취를더듬는다.
중국에서는대한민국임시정부의수립과형성,이동,귀환까지의과정을각지역을답사하며살펴보았다.당시상하이는영국,프랑스,미국등의조계가있던지역으로독립운동가들이일제의눈을피해활동할수있었다.상하이에서는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과임정옛터를돌아보며임정수립과정과임시요인들의활동을돌아본다.1932년한인애국단단원윤봉길의의거현장인루쉰공원(옛훙커우공원)과윤봉길기념관을살펴보았다.
윤봉길의거이후임정은일제의심한탄압을받게되고,김구와임정은상하이를떠나야했다.중일전쟁발발후엔항저우,전장,창사,광저우,류저우,치장,충칭까지육로3,000리수로3,000리를옮겨다녀야했던임정과임정가족.그고단한여정을되짚어보면서김구피난처와남호의나룻배,광복의그날을보지못하고순국한독립투사들의여러묘지,광복군대원과임정가족들이지내던투차오마을,각지청사옛터와기념관들을돌아보았다.
마지막임정청사가있었던충칭은임정황금기이기도했다.대한광복군을창설하고대일선전포고를했던곳이었다.충칭과시안에서국내진공작전인독수리작전준비를위해미군OSS와연합훈련을했던종난산훈련지와광복후환국을준비하던임정의자취를찾아보았다.
인물과사건을입체적으로구성한항일독립투쟁장면들
이책은임시정부의역사뿐만아니라항일독립투사들의활동과의거를사건현장과역사기록을토대로입체적으로재구성하여이야기로풀어낸다.한일병합이전에나라의자주독립과동양평화를위해대한의군특파대장으로이토히로부미를처단한안중근,일왕암살을하러떠나며‘영원한쾌락을얻으러간다’고했던이봉창과‘중국백만대병도불가능한거사’를단행하면서임정독립투쟁의진로를바꾼윤봉길의장대한의거를만난다.
그외에도연해주독립운동의대부인최재형과이상설,독립운동가들의발이되었던이륭양행의조지쇼,황족이지만상하이로망명하려했던의친왕이강,이봉창과윤봉길의거를계획했고이후물위를떠돌며가짜부부로위장해살기까지했던임정주석이자한인애국단단장김구,일본군대를탈출해충칭임정에도착하기까지죽음을무릅쓴장정을한장준하와학도병들,의열단과조선의용대를창립했던김원봉,임정의잔다르크로불린정정화,한국광복군의지청천과이범석,광복군제2지대대원으로활동했던이월봉등수많은인물이야기가살아숨쉰다.
“총알을피하지말고앞으로나아가붉은피로독립기를크게쓰고동심동력하여성명을동맹하기로청천백일에증명하노니슬프다동지제군이여.”-최재형(14쪽)
“죽기를결심하고속히우리국권을회복한뒤에태극기를높이들고처자권속과독립관에서로모여일심단체로육대주가진동하도록대한독립만세를부를것을기약하자.”-안중근(18쪽)
“나라를빼앗긴상황에무슨낯으로조국에가겠느냐.유품과시신을화장해서동해로흘러드는쑤이펀허강물에뿌려달라.”-이상설(31쪽)
“내나이여든여섯이오.우리부모님은빼앗긴나라를되찾는게꿈이었소.지금내꿈은남과북이하나되는것이오.원래대로말이오.”-카레이스키최소망(59쪽)
“나는차라리자유한국의한백성이될지언정,일본정부의친왕이되기를원치않는다는것을우리한인들에게표시하고,아울러임시정부에참가하여독립운동에몸바치기를원한다.”-이강(103쪽)
“제가영원한쾌락을얻으러가는길이니,우리기쁜얼굴로사진을찍읍시다.”-이봉창(122쪽)
“사람은왜사느냐.이상을이루기위하여산다.보라.풀은꽃을피우고나무는열매를맺는다.나도이상의꽃을피우고열매맺기를다짐하였다.우리청년시대에는부모의사랑보다형제의사랑보다처자의사랑보다도더한층강의한사랑이있는것을깨달았다.나라와겨레에바치는뜨거운사랑이다.나의우로와나의강산과나의부모를버리고라도그강의한사랑을따르기로결심하여이길을택하였다.”-윤봉길(129쪽)
“중국에첫발을디딘순간부터지금까지단한순간도나는조국을위한투쟁을게을리하지않았다.지금우리가가진무기라야권총몇자루와폭탄몇개에불과하다.비록미력하지만나는한국이독립을이루는그날까지결코투쟁을멈추지않을것이다.”-김구(148-149쪽)
“다시는부끄러운조상이되지않으리라….”-장준하(184쪽)
“조국광복을위해싸우다힘이부족할때에는이넓은만주벌판을베개삼아죽을것을맹세합시다.”-지청천(208쪽)
“고국을위하여희생한독립운동가들을정치적으로나경제적으로절대이용하지말라.”-김준엽(227쪽)
“아…보인다!한국이!모두들옹색한기창(비행기창문)으로쏠렸다.손바닥만한기창밖으로아련히트인황해가푸른잠을자고있었고,그광활한푸르름아래거뭇거뭇한섬들이나타나기시작하였다.”-장준하(229쪽)
러시아연해주독립운동사와새로발굴한안중근의거관련기록
이책은그동안잘알려지지않았던러시아연해주의독립운동과안중근의거,최초의임시정부수립에관한부분을자세히담았다.당시연해주는을사늑약이후두만강을건너온최재형,이상설,이범윤,홍범도,안중근,신채호,이범진,이위종,문창범,이동휘,이동녕등수많은애국지사의활동무대였다.모든해외민족운동세력을연결하는한민족네트워크의구심점이었다.간도의간민회와연해주의권업회에같은인물이상당수참여했고,미주에서결성된안창호의대한인국민회도연해주와하바롭스크에조직이있었다.
특히3?1운동이임박했던1918년11월에는파리강화회담에파견할대표를선발하기위해문창범,이동휘,김립,윤해,계봉우,오영선,김하석,이강,이동녕,원세훈등과간도에서건너온김약연,정재면,상하이에서온여운형등이빈번하게서로왕래했다.이러한바탕위에서최초의임시정부인대한국민의회가1919년3월17일러시아연해주에서탄생한것이다.
이책은안중근의사하얼빈의거직전에는미주에서활동하던전명운,정재관등이블라디보스토크로왔다는사실과단지동맹을맺은장소가최재형저택임을일본외교사료관에서찾은문서로새로이밝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