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삼간 오막살이 - 브로콜리숲 시집 2

초가삼간 오막살이 - 브로콜리숲 시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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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한 떨기 들꽃의 지극히 짧은 순간의 환대로도 한 생의 보람을 찾는다는 시인.
옭 굵은 삼베 같은 투박한 입술에서 흘어나오는 노래는 우리를 생의 근원적 슬픔 앞에 마주하게 한다. 한평생 과수원에서 꽃과 열매를 길러내며 작은 수첩에 뭉툭한 연필로 적어낸 깊은 적막의 시. 감히 말하건대 노르웨이에 울라브 하우게가 있다면 한반도에는 이문길이 있다.”

-장옥관 시인

이문길 시인의 열일곱 번째 시집. 열일곱 번째라고는 말하지만 순서를 매기는 일도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우습다. 1부 그쪽, 2부 이쪽, 3부 저쪽으로 구성된 이번 시집은 과거ㆍ현재ㆍ미래를 이야기하지만 어쩌면 이러한 시간의 구분 조차 의미 없을지도 모른다. 과거는 이미 빛을 잃었고 현재 또한 빛깔이 희미해져 가는 중이다. 또한 미래라고는 하지만 색채가 소거된 아직 도래하지 않은 오늘들이고 과거이기 때문이다. 미래는 이미 지나간 과거와 오늘의 또다른 현현이기도 하니까.
“나는 사람이 있기 전에 있었던 곳/ 내 생명이 없었던 곳/ 그곳에 가서 살고 싶었다”(「살 수 있는 길」). 시인의 끊길 듯 이어지는 흔적은 어디에나 깃들고, 어디에도 있지 않은 것 같다.
이쪽에서 그쪽을 돌아보고 그쪽에서 다시 훌쩍 이쪽을 넘어 저쪽에 앉아 있기도 하다. 신출귀몰과는 다른 스밈으로의 자리 이동. 느리다고만 할 수 없는 거스를 수 없는 도도한 고집이 만져진다.
어쩌면 이렇게 다 들어내고 빼버릴 수 있을까.
하나님이 없어서 “하나님이 있는 줄 어떻게 아노?”라는 말로 하나님을 믿게 되고, 추기경이 가장 잘 하시는 외국어가 거짓말이라는 말에 신심 깊은 신자가 되는 시인.
“한 번만 눈 감았다 뜨면/ 흔적 없어질 사람의 모습”(「소」)을 견지한 시인이 고개를 돌려 먼 산을 쳐다본다.
어어이 어어이………
저자

이문길

저자:이문길

1939년대구출생

1959년서라벌예술대학문예창작과수료

1981년『허생의살구나무』를냄

1983년대구문학상수상

1998년《현대문학》등단

『떠리미』『날은저물고』『헛간』『보리곡식을걷을때의슬픔』『복개천』등16권의시집과시산문집『석남사도토리』동시선집『눈물많은동화』를냈다.

목차

시인의말_서까래일곱개

_1부그쪽

대청마루012복없는가족013행각승014
걱정016선시017폭포018벚꽃020
마늘022새한마리024길나섰다025
방문026밤027은하028사람031
꽃032소나무034살수있는길036
내소리038길039아내2040
술집042산속의나무는044

_2부이쪽

서쪽길1048서쪽길2050잠1051
산불052자고나면054꽃중의꽃056
12월말에058겨울059낙엽060
너무오래061감사기도062쐐기풀063
벙거지노인064수락산뒤골짝066
그늘068자는꽃070저승3071
풀꽃072장마073환풍기074
천당075바다076병원에서078
봄079해1080해2082
어두워서084돌086산2088죄089
산3090술092예술이란093
가을094천상096까치097
어어이098이사온지100

_3부저쪽

문닫힌집104구름1105아무도안보면106
큰일108산1110저승1112저승2114
마음116구름2118강119타향120
화경121안경122소114젖어있는길126
민들레128하직130잠2131산하132
주저앉아있다가133하늘134아내1135
슬픈날136우습다137빈집138

_산문

망했다142

출판사 서평

시인의말

서까래일곱개

서까래일곱개로오두막을지었다
산골짝에외딴집을지을때같이
구들을놓을돌이없어땅을파고
가마니를둘렀다

부엌도없고마루도없고잠자리도없는
방가운데혼자앉아모닥불을피웠다

남은세월석기시대사람같이살다
떠나려고한다
시집제목을『초가삼간오막살이』라고
유행가가사로했다

나는근사한제목이싫고
표지그림이나색깔있는것도싫어
흰색으로만했다
서까래일곱개마음을주신분께
이책을드린다

책속에서

잊히지않는다
나초등학교들어가기전
저녁무렵지금은없어진
옛대구농고커다란전봇대나무
매타쉐콰이어에
어디서날아와잠들어버리던
비둘기만한새한마리

한평생잊히지않는다
앉자마자솔방울같이잠들어버리던
새한마리
-「새한마리」전문

모르겠다
사람을보면
왜눈물이나려고하는지

모르겠다
모르겠다
사람을보면
왜눈물이나려고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을보면왜눈물이나는지
왜자꾸눈물이나는지모르겠다
-「사람」전문

꽃이아름답다지만
아름다운여인만큼아름다울수는없다

나에게도잊히지않는
아름다운여인이있다

토요일이면교회에돈얻으러와
전신주에기대서있던
지능장애인여인

내가다니는병원에서
한번밖에보지못한
아름다운수녀님

그리고타향에공직으로있을때
마누라딸있는데도
나보고도망가자고하던
아름다운술집아가씨

그리고또한명있다
우리집위층에살다이사간여인
나보고인사잘하던키가조그마한여인

지금도나에게는
보고싶은여인이있다
꽃보다아름다운여인
평생잊히지않는여인
-「꽃」전문

생명없이도
살수있는길은없는것일까
나는세상에오자걱정이되었다

생명있는곳은
사는것이편하지않다는것을
알았기때문이다

나는오고싶지않은곳에와서
살고싶지않으면서사는것이싫었다
나는사람이있기전에있었던곳
내생명이없었던곳
그곳에가서살고싶었다

나는세상오기전부터알고있었다
세상생명이
죽어서갈저승이없다는것을

나는돌아오지못하더라도
가보고싶었다
세상생명이없는곳
거기가보고싶었다
거기가서혼자살고싶었다
-「살수있는길」전문

몸이편하면
잠이온다

밤중에
깨어있어보면안다
편한잠자리가
어디인가를

거기서기다리면
잠이온다는것을
-「잠1」전문

모르겠다
쐐기풀이왜전봇대를
타고올라가는지

지난해마른풀줄기
아직남아있는데
왜자꾸타고올라가는지

길지나다쳐다보고있으니
쐐기풀이말한다
세상에서쓸모없다하는것이싫어
도망갈곳이전봇대뿐이라네
그래자꾸올라간다네
거기가세상끝인줄알면서도
자꾸올라간다네
-「쐐기풀」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