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 b판시선 46

산 - b판시선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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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동네 뒷산의 사계(四季)를
시적 서정의 사계로 옮겨 놓다”
산을 좋아해서 등산을 자주하며 산을 주제로 시를 쓴 시인들이 많다. 조재도 시인도 산을 좋아하는 시인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시인 중에 하나다. 시인이 살고 있는 천안에 태조산이 있는데 30년 동안 수천 번도 넘게 올랐다고 할 정도이다. 태조산은 고려 태조의 군사 주둔지에서 산 이름이 유래했다고 하는데 천안시 동쪽 교외에 해발 421미터짜리로 그리 크지 않은 산이다. 그 산에 거의 매일 오르내리면서 빚어낸 시 80편을 묶어 시집 〈산〉을 펴냈다. 시집의 시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편으로 4개의 부로 나뉘어 구성되었다.

산은 봄이면 잎과 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열매를 맺고 초록이 무성해져서 가을에는 열매와 씨앗을 익히고, 겨울이면 그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인고의 시간을 갖는 순환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모습이 이리저리 엮이는 풍경을 그려보면 마치 우리네 사람살이와도 유사하기만 하다.

“울면서 산을 오른 날 있다/직장 잃고 갈 곳 없을 때였다//울면서 산을 내려온 날 있다/그분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주저앉아 산에서 운 날 있다//어머니 돌아가신 후 어느 날이었다”(「푸르른 날」, 전문)와 같은 시는 삶의 격랑과 고난에 찬 인간이 산으로부터 위로를 받고 정화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 “먼 산이 녹슨 종처럼 엎드려 있다/그리움 한껏 부풀어 종소리 차올라도/쳐주는 사람 없는 엎드린 종이다//내가 가마/내게 오고픈 간절한 너의 소망을 위해/내가 가 너를 울려주마”(「종소리」, 전문)와 같은 시에서는 꿩이 자신을 희생하며 치악산 절간의 종을 울리는 우화가 떠오르게 하는데 이는 시적 화자의 타자를 향한 사랑이 엿보이는 대목이라 느껴진다. 산에 오르내리며 산으로부터 자신의 슬픔을 위로받는 것은 물론이고 또 타자의 소망을 기원하고픈 충동의 경험을 그려내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면서 “저 산을 어떻게 올라야 할지 까마득할 때가 있다//저 산을 어떻게 넘었는지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겨울 산」)는 시에서처럼 산행의 경험 속에서 결코 녹록지 않은 삶에서의 경이와 찬탄을 토해내고 있기도 하다.

동네 뒷산을 오르내리는 소박하고 아담한 산행 시편들은, 거대한 산을 정복한다거나 특별한 체험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서도, 깊은 삶의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놀랍다. 매일 다니는 산이지만 시인의 눈에는 날마다 그 얼굴이 천변만화하는 산을 통해서 인생의 깊은 의미를 읽어내는 것이다.
저자

조재도

저자:조재도
1957년충남부여에서태어나청양에서자랐다.1985년<민중교육>지에시?너희들에게?외4편을발표하며작품활동을시작했다.등단과함께필화를겪었으며그후두차례학교현장을떠나기도하였다.여러일이많았지만,시쓰는일을놓지않아1988년에나온첫시집<교사일기>이후13권의시집을발간하였다.
그동안근무한학교에서2012년퇴임하였고,청소년들이평화롭기위해서는어른들이먼저평화로워야한다는취지에서‘청소년평화모임’을만들어그일을10년째하고있다.시쓰기외에어린이와청소년문제에관심이많아<이빨자국>,<불량아이들>같은청소년소설,<넌혼자가아니야>,<전쟁말고평화를주세요>같은동화와그림책을펴내기도하였다.
요즈음주로하는일은밥먹고,산에가고,글쓰고,책읽고,잠자기이다.그야말로단순한생활이다.천안우리집뒤에태조산이있는데,그산을지금30년째다니고있다.아마5천번이상갔을것이다.이시집에실린시들도그렇게산에다니면서쓴것이다.산에서달팽이지렁이도토리새들과많은인생공부를했다.그렇게하여얻은것은간소함,담담함이다.그정취가이시집을읽는이에게도전해지길바란다.

목차

ㅣ시인의말ㅣ5

제1부봄산
봄산13
푸르른날14
천지간15
끝물16
이치117
이치218
작은꽃19
찔레20
아카시아향기21
무연고묘22
종소리23
산길을가며24
진주한알25
새소리26
오솔길27
분갈이28
하관29
잠시30
누구는31
나비야청산가자32

제2부여름산
6월35
매미소리36
떠돈다37
마지막영토38
태풍39
여름숲40
작다41
세석평전가는길42
속울음43
계족산황톳길44
산개구리45
동행46
작은힘47
앗48
떡갈나무49
지렁이50
아름다운풍경51
새52
달개비꽃53
막잔54

제3부가을산
첫사랑57
산그늘58
도시낙엽59
가을숲60
바람의소리61
수목장62
처음보는꽃64
길65
산길66
뿔67
투명68
낙엽호수70
업71
돈이열린나무72
끝73
회귀74
시월의새75
별리76
무명77
낙엽78

제4부겨울산
첫눈81
겨울산82
솟구쳐야하리83
얼음산84
양지85
한계86
사나운것들87
눈꽃환상88
교감89
먼훗날90
빈산91
해두덩이92
대추한알93
멧새소리94
제몫95
장작196
장작297
겨울비98
낮달99
시대정신100

ㅣ발문ㅣ김태환101

출판사 서평

책속에서

<잠시>

혼자산에다니는사람이있다
마주친횟수에비해
나눈말은적다
5월지리산야생화보러
밤기차로구례에간다고한다
우린잠시서서
그정도말만하고헤어진다
나는위로
그는아래로

<마지막영토>

아무리낮은동네산도
정상은섣불리내주지않는다

정상의마지막구간
잡아채는고비가있다

다내주어도
함부로내주지않는
산의자존심

네가지키고자하는
너의마지막영토는무엇이냐

<사나운것들>

날씨가어찌나사나운지
산에갈엄두가나지않는다

삶이어찌나사나운지
살아갈엄두가나지않는다

그래도가야지
모자쓰고장갑끼고중무장하고
얼어붙은산에간다

나서기가어렵지
가면또가게된다

■시인의말

다른것도그렇지만산도가까운곳에있어자주찾을수있는산이좋은산이다.그런면에서집뒤에있는태조산은나에게참각별하다.
그산을오래다녔다.거의한30년.그동안나에게도산고랑같은주름몇개더깊게새겨졌다.
산에다니며쓴여러편의시가운데,남들에게보여줄만한것이못된다싶은것은골라내고80편을묶었다.
마음의독(毒)이씻기어,사람이있는듯없는듯살게해주는산.
사람보다품이넓어인간사희로애락이부딪치지않는산.
바다가거품을밖으로밀어내듯때묻은인간의언어를버리라던산.
갈수록말은줄고뜻은넓어진다.
하루가그렇고시도그러하다.

■추천사

조재도시인의자리는귀하다.신군부의치안에저항한교사정치의투사였던그는‘민주화이후’문득돌아와복직된교실을한결같이지켰다.이드문귀거래의힘은어디에서왔을까?“집뒤에있는태조산은나에게참각별하다.그산을오래다녔다.거의한30년.”천안의진산태조산은머나먼고산준령이아니다.“가까운곳에있어자주찾을수있”는산이매,일기쓰듯근면한산행이곧조재도시의원천일것이다.산에서얻은시중80편을봄여름가을겨울로나누어배치한시집산」은그독공(獨工/篤工)의내면을근사(近思)로펼친다.결국은“평지로돌아가는흙무덤”에지나지않는생사의진실에겸허한「무연고묘」의깨달음으로부터시인은무릇작은것들의작지않음에각성한다.“고작은것들이/바람에/추위에/햇볕에/짱짱하다”(「작다)고눈부시게표상하듯이,이소란한세상을묵언으로받치고있는진실의미세한찰나들을점묘한이순한시집을따라읽다보면독자들은어느새살아있음의황홀한합창에감전되기마련인것이다.-최원식(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