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12.80
Description
서로를 찌르기도 핥기도 하는 관계들
그래도 우리는 마치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

사진가 황예지 에세이
“아픔을 투명하게 갈아 렌즈로 만들고, 흉터를 눈금으로 세상을 재어 이 책이 쓰였다. 매끄러운 부분뿐 아니라 요철이 있는 부분까지 끌어안아야만 얻을 수 있는 밀도에 대해 생각한다. 혈관처럼 얽혀 있는 상처는 어디서부터 나의 것이고 어디서부터 공유되는 것일까? 자신의 근원을 집요하게 짚어보는 황예지 작가의 글과 사진은 페이지를 오래 응시하게 한다. 너무 가까워서 초점이 좀처럼 맞지 않는, 서로를 찌르기도 핥기도 하는 관계들을 어떻게 견뎌야 할지 몰라 울고 싶은 날 읽기를 권한다. 덮고 나면 우연한 모서리에 다치거나 아끼던 누군가를 잃어도 끝내 계속 해나갈 수 있을 거라고, 도무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다정한 세계를 끝없이 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고 조용한 전환에 다다른다.”
-정세랑 소설가

황예지는 가족사진과 초상사진 작업을 통해 위로를 전하려는 젊은 사진가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모두 사진을 전공했고, 엄마와 언니의 모습을 찍은 졸업 전시 〈절기〉로 큰 주목을 받으며 활동을 시작했다. 10년 전에 집을 나간 엄마, 그 빈자리를 채운 언니를 찍는 과정을 통해, 이미 부서졌고 엉성하게 이어 붙여진 관계와 화해하는 방법을 배웠다. 사랑과 증오, 연민과 분노를 동시에 느끼게 하는 이들과 침묵으로 대치하는 시간은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대화가 되었고, 그것은 그다음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었다.
《다정한 세계가 있는 것처럼》은 그런 시간을 지나온 황예지의 에세이로, 가족을 중심으로 한 관계에 대한 서사를 정면으로 직시하며 아픔의 근원을 선명하게 담아낸 책이다. 초상사진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핵심 주제가 된 가족에 대한 복합적인 시선은 사진과 더불어 글에도 촘촘히 드러난다. 이 책에 담긴 22편의 글은 나를 슬프고 아프게 만드는 관계들로부터 바로 서려는 용기의 발로다. 황예지는 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장 증오했던 존재들을 렌즈를 통해 똑바로 보고 그 찰나를 스친 이야기들을 기록한다. 말하는 대신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며 아픔의 근원을 발견하고자 집중했던 시간들을 쌓으면서, 그럼에도 다정한 세계를 향하고자 한다.

저자

황예지

1993년서울에서태어났다.수집과기록을즐기는부모님밑에서자랐고그들의습관덕분에자연스레사진을시작했다.사진과에세이,인터뷰등다양한형식을다루며개인적인서사를수집하고있다.개인의감정과관계,신체를통과해사회를바라보고자한다.사진집『mixerbowl』과『절기,season』,산문집『다정한세계가있는것처럼』을출간하고개인전〈마고,mago〉를열었다.

목차

처음에부르는이름들4

마고11
피의구간17
최초의사랑20
언니라는처지30
몸이라는대명사35
아메리칸드림42
산책53
뭍57
줄연기65
섬망72
장례식장83
철창85
현성이93
몬순101
광물수집가109
노인116
잘못121
찬란한127
우리는숲으로가요134

친애하는당신에게142

책속의전시
병과악과귀145

출판사 서평

가장사랑하면서도가장증오했던존재들,
그찰나를스친장면과이야기들

“이제는슬픔을곁에두고자합니다.그또한나라고말하고싶어요.
아린마음과함께우리가다정한세계로갈수있기를바랍니다.”
-황예지

황예지는엄마가집을떠났다돌아온시간에대한글로이책의포문을연다.엄마의부재가발생한원인과엄마가돌아오기까지의시간은황예지가사진작업의방향을결정한계기이기에.증오했던마음을도리어저주하는방식으로과거와화해하려는그의서사는군데군데응축된감정을숨기고있다.카메라렌즈로투과해마주했던장면들은곳곳에자리한글자들을통해그채도가높아진다.그의사진이습기가득한냉정이라면그의글은채도높은열정이다.
그는뭉툭한흑심으로서툰마음을쓰다가날렵한펜촉을다시끼워단련된시선으로포착한것들을묘사한다.집을나간엄마,자신을소유물처럼여겼던언니,실패의경험으로점철된아버지,가족의대안이될수없었던연인,유일한위로가되어준반려동물들,끝내사랑할수없는나자신등불가항력적으로,혹은선택적으로얻어진관계에대해객관적이면서도뜨겁게서술하기위해노력한다.
이책은황예지의첫에세이임과동시에사진가황예지의작업을한데만날수있는기회이기도하다.여성과사랑에대한다층적해석을다룬<마고Mago>로부터출발해<절기>,아버지의빛바랜필름사진이실마리가된,대안적가족형태를보여준<뉴노멀>,자신의셀프포트레이트를뭉그러뜨린,책속의전시로따로소개한<병과악과귀>등주요전시작품이총망라돼있다.
이사진들을구심점으로삼는황예지의글은사진과사진을잇는징검다리다.우리는그가놓은징검다리위를한발한발디디며우리의관계들을떠올린다.나와엄마,나와아빠,나와자매형제를생각하며,또나보다앞서세상을스치고생명을잃은만나지못한피붙이의존재를그리워한다.가족만큼이나가까웠던연인과친구의자취를되짚는다.

슬픔이부끄럽지않은세계,
우리만의‘다정한세계’를꿈꾸자고말하는용기

“저는제게스친일이더이상부끄럽지않습니다.삶과치열하게싸운저자신이자랑스럽기도합니다.”
―‘처음에부르는이름들’에서(본문6쪽)

황예지는그동안자신의사진을통해“생의의지를회복했다”라고고백하는관객들을거듭만나면서,끝내누군가를위로하고싶다는열망에사로잡힌다.그열망이사진가로서의확고한사명이되어갈때쯤아이러니하게도소중한친구이도진의시한부판정소식을전해듣는다.도진의친구들은‘아픔’에대한이야기딜리버리프로젝트〈앨리바바와30인의친구친구〉를오픈하고,이프로젝트에서황예지는이책의시작이된사진에세이를연재한다.병마와싸우는친구를위로하기위해,아픔을공유하려는동료와구독자들을다독이기위해.
황예지는사진을찍는것만큼이나홀로글을쓰면서해소하지못한감정들과마주해온사람.무엇보다‘아픔’이라는주제를초상사진으로표현해온사람으로서자신과가족,자신을둘러싼관계들에머물렀던‘아픔’을복기한다.

“저는저의가족을찍기까지무척오래걸렸습니다.너무사랑하지만가족은제게가장큰아픔이었고,할수만있다면감추고싶은구석이었습니다.가족을찍을수없어풍경을찍고친구들을찍었습니다.외면하는일이스스로를보호하는일이라생각했지만시간이흐를수록공허함은점점커져갔습니다.”

그는아름다움을카메라에담고싶었지만필연적으로아픔이라는피사체를외면할수없었음을고백한다.사진이라는매체가가진잔인함을아픔의근원인가족들에게향하게함으로써“잔인한화해”를이뤄왔음을털어놓는다.기묘한관계회복은가족이기에가능한걸까.이책을다읽고나면,각자뿔뿔이흩어져지내는네사람이한가족이라는사실을포기하지않으리라는것을알게된다.찬란했던네식구의시간은영원히돌아오지않겠지만,가끔다함께숲으로떠나는‘다정한세계’를꿈꾼다는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