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의 역사 (광인의 수용소에서 프로작의 시대까지)

정신의학의 역사 (광인의 수용소에서 프로작의 시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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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
어디까지가 병이고, 어디까지가 정상인가?
정신의학의 경계를 묻다
광인을 수용소로 보낸 19세기,
급증하는 정신질환자와 생물학 패러다임의 승리까지
과학과 사회 사이의 좁은 틈새를
위험스레 질주하는 정신의학의 생생한 역사!

진료실의 정신과 의사는 머리를 싸매야만 한다. 일상적 고통과 치료해야 할 질환을 감별하기 위해, 그리고 한정된 의료자원을 분배하기 위해서다. 시장경제 논리가 팽배해지면서 수동적이던 환자는 소비자 고객으로 변화했다. 의료 서비스에 대한 요구는 윤리적 질문에 부딪힌다. 그것은 고통의 존재론이다. 고통은 그 자체로 없어져야 하는 감정인가? 고통으로 점철되는 스트레스와 불행을 둔감하게 하는 약물은 상황 개선의 노력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신과 의사가 아니면 다가갈 수 없는 고통은 무엇인가? 다양한 심리 치료가 난립하는 현실에서 정신의학은 일상의 불행을 치료할 역할을 정당하게 부여받은 것일까? 정신질환의 기준은 정상성인가, 주관적 불편함인가?
저자

에드워드쇼터

EdwardShorter
토론토대학교역사학과교수로,의학의사회적변천과그추이를탐구하는의학사학자이다.의학사뿐아니라,출산의의료화,의사-환자관계의변화,정신신체적질환과정신약리학의역사,근대가족과성애의역사까지폭넓은분야를연구하고있다.1995년에,캐나다왕립협회가캐나다의료정책의기틀을세운제이슨A.해나를기리기위해제정한제이슨A.해나메달을받았고,2000년에이책《정신의학의역사》로다시해나매달을수여받았다.1991년부터캐나다토론토대학교에서의사학醫史學해나좌座교수로재직중이며,1996년부터는정신과교수를겸하고있다.《근대가족의탄생TheMakingoftheModernFamily》을비롯해《마비부터피로까지:근대정신신체적질병의역사FromParalysistoFatigue:AHistoryofPsychosomaticIllnessintheModernEra》《성적욕망의역사WrittenintheFlesh:AHistoryofDesire》《충격요법:정신병에사용된전기충격요법의역사ShockTherapy:AHistoryofElectroconvulsive
TreatmentinMentalIllness》등다수의저작을출간했다.

목차

서문

제1장정신의학의탄생
정신과가없던시절,광인들은집에묶여있거나길거리를배회하거나,혹은호스피스등에치매,걸인,부랑자들과뒤섞여감금되었다.19세기비로소정신병자수용소가탄생하면서정신의학은비로소독립된전문분과로서첫발을뗀다.

제2장수용소의시대
19세기중반을지나면서치료적수용소가등장하기시작한다.그러나구속과사슬이없어지고광란의울부짖음도사라지는그즈음수용소는몰락의조짐을보이기시작한다.
초만원으로변하는수용소에서,의사들은밀려오는환자들에짓눌린다.

제3장생물학적정신의학의탄생
19세기과학혁명의물결은틀이잡혀가던정신의학에도흘러들어왔다.1세대생물정신의학자들은정신질환이운명이아니라뇌의질병이라는것을과학적으로증명하려했다.그러나빈약한근거와퇴행이론등은자가당착에빠지고정치적으로악용된다.

제4장신경성질환의시대
혐오의대상이된정신의학,하지만수용소에들어가지않으려는환자와대중의혐오를피하고부자환자를유치하려는의사는‘신경성’이라는단어를만들어낸다.신경성환자를유치하기위한온갖치료법이난무하던이시기드디어심리적치료의싹이튼다.

제5장정신분석,그리고정신의학의단절
각종요법이성행하던시기에,프로이트는정신분석을고안해내어부르주아계층의자기성찰욕구를채워주게된다.프로이트의추종자들은정신분석을치료에적용하고,더나아가운동의차원으로확장하기에이르렀다.

제6장대안을찾아
정신분석과수용소사이에서정신과의사들은대안을찾기시작했다.신경매독의열치료법과수면연장법등은약물혁명을예고했는가하면,전기충격요법과뇌엽절제술은격렬한반反정신의학운동을야기했다.그리고치료공동체라는새로운대안이등장한다.

제7장생물정신의학의부활
제2차세계대전이후정신의학은두개의진영으로나뉘게된다.정신질환의후천적원인을주장하는정신분석진영과,유전적,뇌화학적요인등기질적원인을주장하는진영,그리고그사이의절충적시각이혼재하는과도기적시기가다가온다.

제8장프로이트에서프로작으로
지역사회정신의학은실패하고,온세계를휩쓸던정신분석도쇠퇴하기시작했다.제약회사의주도로새롭게쏟아져나오는약물이대중의욕구를채워주게된것이다.이변화에큰역할을한것은항우울제프로작이었다.

옮긴이의글
개정판옮긴이의글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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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정신의학의역사를쓴다는것
과학과사회의틈새를질주하는기록

근대이전광인은각가정이나마을에서알아서“처리”되었고,17세기이후에야등장한정신의학은‘대감금’이라는오명을뒤집어쓰며그첫발을내딛었다.의사들은저급한뇌수술을시행하였고,환자들은아무이유도모른채두개골을절단당하고,냉온수마찰과전기충격같은근거없는치료법의희생양이되어야했다.그로부터50년후현대의정신과의사집단은개인의성격적특이성과실존적고통을모조리질병의범주에포함시키려하고있으며,거대제약회사는프로작같은정신약물을가정상비약으로만들어버렸다.
이책이쓰는역사는직선적이다.18세기말치료수용소의등장에서시작된이야기는,20세기말정신과개원의의조용한진료실에서끝난다.지난반세기동안정신의학을장악했던프로이트이론은겨울의마지막눈처럼사라져가고있다.정신의학의역사를새롭게바라볼시점이다.정신질환의근거가뇌에있다고보는흐름은우리시대에와서뇌에최우선순위를둔생물학적관점에도달했다.또한이책이쓰는역사는지성의역사가아니라망각된인물을생생하게복원하는사회사이다.정신의학이문화와어떻게서로영향을주고받았는지초점을맞출것이다.종종순수한과학의승리라고묘사되는사건에도문화와상업성이어떻게침투했는지보여줄것이다.

이책의원서《AHistoryofPsychiatry》는1997년에,한국어판역서는2009년에출간되었다.그리고2020년,역서의개정판이출간된다.대략10여년의간격을두고있다.2009년의정신의학을1997년의특성이양적으로팽창하고범위가넓어진것으로본다면,2020년은10여년전과어떻게달라졌을까?
200여년동안정신의학이추구해온궁극적인주제는사회적가치관과정책의영향으로부터벗어나정신질환의과학적실체를찾는것이었다.의료는질병을넘어서삶의불행을돌봐야할책임이있는가?어느지점에서‘필요’가‘욕구’로넘어가는가?
(옮긴이의말545쪽참조)

질병극복의영웅담이아닌
인간을향한의학의시선이노골적으로담긴역사

정신의학의역사를사회사적시각으로살핀캐나다의저명한의학사학자에드워드쇼터의《정신의학의역사》개정판이출간되었다.이책의원서초판은1997년출간된이래지금까지정신의학분야의고전으로자리매김해왔다.또한단순히정신의학전공자를위한역사교재가아니라근대화과정에있어서인간정신의실존적고통에대한의료화의추이를살펴볼수있다는점에서커다란사회적의미를지닌책으로도평가받아왔다.
정신의학의역사는일반적인의학사와는다른맥락에위치한다.질병의극복과새로운치료법의개발같은영웅담으로만존재할수없기때문이다.인간이면서도가장비인간적인취급을받은광인들,끔찍하고치욕적인수용소,냉온수마찰과전기충격,각종쇼크요법등저급하고비인간적인치료법까지,인간에대한의학의시선이고스란히드러나는분야가바로정신의학이다.
18세기말치료적수용소의풍경에서시작된이책의이야기는20세기말정신과개업의의조용한진료실에서끝난다.푸코의‘대감금’주장에대한반박,초기수용소의끔찍한상황,프로이트에대한혹평등이책에는우리가전혀몰랐거나일면만알고있던사실들에대한반전으로가득하다.또한최근거대제약회사들이벌이는정신이상의의료화음모에까지파고들면서정신의학의미래는어디에있는지를묻는다.

수용소의환자기록으로본
푸코의“대감금”에정면반박하는근거들

미셸푸코는《광기의역사》에서,정신의학이국가권력에의한인민의통제를강화하는과정에서,사회적병리를관료적으로통제하기위해발명되었다고주장한다.그근거로당시유럽전역에“대감금”이있었다고말한다.푸코의이런주장은20세기지식인들사회에서대유행을하게되었고,정신의학에대한편견과오명을강화시키는기제가되었다.
이책의저자에따르면푸코가말하는“대감금”은어처구니없는난센스에불과하다.푸코는“정신의학”이국가권력에의해발명된것이라하는데,국가통제가강력했던독일에서도19세기까지는‘정신과’라는단어조차없었다.또한저자는수많은역사적기록과통계자료를들어당시의광인수용시설과수용자의수를제시한다.이에따르면프랑스에서가장컸던시설인비세트르도사실상은종합병원시설이었고,여기에수용된광인은간질환자와정신지체를포함하여245명뿐이었다.
푸코가‘대감금’의사례로꼽은잉글랜드에도1826년의조사를보면공립이든사립이든수용소에있던사람은소수였고,베들렘과세이트루크병원에있는환자를다합쳐도500명이었다.감옥에있던자중광인으로분류된사람도53명뿐이었다.따라서푸코의말처럼정신질환자가3000만명이넘었다는‘대감금’의근거는희박하다.

“봐라,봐라.저기미친놈이간다”
정신과가없던세상,광인으로살아간다는것

“튼튼한남자나여자가미쳤다고간주되면,마을에서이들을관리하는방법이라고는오두막바닥에구멍을파서밀어넣은다음기어나오지못하게덮는것이다.구멍의깊이는1.5미터정도……대개는그안에서죽게된다.”_1817년아일랜드지역구의원의기록(본문14쪽)
정신병은어느시대에나존재했다.인간의역사만큼오래된정신병은부분적으로는생물학적이고또유전적이기도하다.고대그리스의사들이정신병자를돌봐왔고관리지침서등이있긴했지만,18세기말이전까지전문의학분야로서의정신과라는것은아예존재하지않았다.18세기이전까지광인을돌보는주체는가정이나마을이었다.그러나‘돌봄’의방식은매우드물었다.전통관습과사회적역할이중요했던그시절,마음과기분의병을가진사람들은가장잔혹하고무자비한방식으로다뤄졌다.
1870년스위스프라이부르크주에서정신병자실태를조사했다.확인된164명의정신병자중5분의1은냉방이나광에묶여있어서“비좁고어둡고습한곳에서오물냄새에절어”있거나“자기배설물로뒤범벅이된짚더미에”있었다.집안이나마을에광인이있다는것은수치스러운일이었고,그래서행여수용소가있다하더라도가정단위로범죄에가까운(강제격리)일들이비일비재했다.
미국도예외는아니었다.사회개혁가인도로시아딕스가메사추세츠주의시골을다니며발견한것은“새장에갇힌여자”“사슬에묶인정신박약한명”“17년간축사에갇혀있던사람”“쇠창살우리안에네명의여자”등이었다.이런일화들은극단적이고기괴한상황이아니라당시의전형적인증상이었다.정신의학이존재하지않던시절,환자들은관대한처우를받지못했으며,멋대로돌아다니게방치되지도않았다.동정심없는야만스러운처우와추방만이그들에게허락된모든것이었다.

“치유가능성이없어보이는사람도
사회로복귀할가능성은있다.”
계몽주의적의사들의등장과치료적수용소의탄생

1793년,프랑스의자코뱅정부는38세의젊은의사필립피넬에게비세트르호스피스의운영을맡긴다.계몽주의와사회진보철학에고취된피넬은비세트르에서정신질환의치유가능성과인도주의적돌봄이라는개혁주의적이상을발휘한다.그는이곳에서광인을사슬로부터풀어내명성을얻게되고,그덕에1795년살페트리에르의원장이되면서그곳에서도광인의사슬을풀어주었다.필립피넬의주장은명료했다.수용소감금은치료적으로이용되어야하며,수용소의본질은심리적치료를하는곳이라는것이었다.그는환자들과친밀했고,따듯한목욕으로환자를안정시켰으며,환자들은부지런하고규칙적으로생활했다.
프랑스에필립피넬이있었다면,독일에는할레대학의요한레일이있었다.수용소의끔찍한실상에경악한계몽주의자레일은인류애와시민의식이실종한이불행한사태를해결할이는의사밖에없다고생각했다.그는수용소가가족은제공할수없는시설과보조적치료를담당하는곳이어야한다며인간적대우를강조하고새로운치료법을개발했다.
이렇게18세기후반으로넘어서면서정신병자수용소는치료적수용소로조금씩탈바꿈하고있었다.당시수용소가치료적효과를내기위해필요한조건은두가지였다.하나는공동체정신을갖춘환경,또하나는의사-환자관계였다.이중의사-환자관계를강화한방식은“도덕치료”라고불렸고,이는수용소가이전의“광인의집”과구별되는새로운역사적출발점이되었다.

“누구도나에게이런것을물어보지않았어요!”
정신분석은과연정신의학의혁명인가,역사적퇴보인가
많은사람들이쉽게생각하는것과달리프로이트의정신분석은정신의학의역사상반세기에이르는커다란‘단절’이었다.정신분석이정신의학계를지배한몇십년동안정신의학은일반의학으로부터멀어지고,과학적발전은오랫동안침체되어야했다.그러나이단절이정신의학계에미친파장은엄청났다.그중가장큰의의는정신과의사들을수용소로부터벗어나게해주었다는점이다.프로이트식의정신분석은정신과의사로하여금역사상처음으로자신의진료소에서환자를보는전문의사로서의위상을확립하게해주었다.
정신분석에대한기존정신의학계의반응은부정적이었다.성이정신질환의원인이라는프로이트의주장에주류정신과의사들은“프로이트식사교에는구역질이난다”거나“경험많은정신과의사가역겨움을느끼지않고프로이트를읽을수는없다”고반응했다.
이와같은학계의부정적인반응과달리,중산층사회는프로이트에열광한다.이러한열광의배경에는정신적고통을안고있는고학력의중산층사람들이자신의문제가‘광인의수용소’에갇혀야하는수치스러운것이아니라,세련된상담실에서두어시간의상담으로해결될수있는비교적‘멋져보이는’문제로치환될수있기때문이었다.정신분석은독일사회에서최신유행상품이된것이다.

신앙이된정신분석,세계를장악하다

프로이트와함께《히스테리에관한연구》를쓴요제프브로이어는본래“환자가찾아주지않는신경과의사”였던프로이트에게“일거리를주려고”유태인히스테리소녀환자한명을소개시켜주었다.프로이트는이소녀를비롯한일련의젊은여자들의얘기에들어있는성적요소에골몰하게되고,현실의정신적고통은어린시절의성적트라우마로인해생겨난다는자신의이론을확립하게된다.
1902년프로이트는자신의집에서매주수요일토론그룹을이어갔고,그러면서자신의추종자를끌어모았다.문제는프로이트가자신의학설을퍼뜨리는데하도열성적이어서,그것을환자의불안한심리상태를연구하는방법에국한시키지않고,일종의운동으로변환시키려했다는데있다.이수요그룹에게있어프로이트라는지도자의말은신앙과같았고,반대는불가능했다.이유는간단했다.이들은모두프로이트가보내주는환자에의존하여경제적이득을얻고있었기때문이다.
정신분석이세계로뻗어나가는데는세계대전전후의유태인박해가결정적인요인으로작용한다.나치독일을피해미국으로건너간유럽의유태인정신분석가들에게미국은새로운신천지였고,유행에민감한미국인들은곧바로정신분석에열광하게된다.망명유태인들은자신들의정신분석이일종의‘문명화의사명’이자전세계에주는치유의선물이라고생각했다.심지어뉴욕에서는정신분석을받고자안달하는속칭‘뉴요커증후군’이라는말까지생겨났다.실제로1932년미국정신분석협회의회원은92명이었는데,1968년에는그수가1300명으로증가했다.‘미국정신분석의황금기’라는1960년대에는20개의훈련연구소와29개의지역협회가있었고,심지어는정신과의사가군복무중정신분석훈련을받을때는군에서그비용을대주기도했다.

“마지막으로한번더높은볼트로해보게.”
뇌엽절제술과전기충격요법...정신실험의잔혹사

생물학적정신의학의기본이념은,정신이상이그저마음의질병이아니라뇌의특정한기능이상으로인해발생한생물학적이상이라는것이다.이는초기수용소시절의끝무렵부터서서히고개를들기시작했다.물론근대이전에도정신이상이광인의머리속에들어있는‘광기의돌’때문이라며,‘일단절개하고보는’외과적처치를하기도했다.그러나이때는‘신화’의시대일뿐‘과학’의행위는아니었다.
초기의외과적처치는미숙했고,위험했다.특히1949년노벨생리의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