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농공상의맨아래에서조선경제의맨위를떠받친사람들이야기
이책은조선을통치의역사가아니라노동과생산의역사로다시읽는다.농본주의아래상업과기술은‘말(末)’로천시되었지만,현실의조선은그들없이단하루도돌아가지않았다.시전상인은한양의물자를책임졌고,보부상은전국1,000여개의장시를잇는유통망이었으며,기술공들은경복궁의대들보와종묘의석단,금속활자와화포를만들어왕조의뼈대를세웠다.
저자는이들을막연한‘민중’이아니라구체적인‘직업인’으로본다.누가어떤일을했고,어떻게조직되고보수를받았으며,무엇을만들고어디서거래했는가?이질문을따라가면교과서가비워둔조선경제의실제작동원리가드러난다.
제1부-조선상인들의직업세계
육의전과시전상인에서출발해난전,5일장과보부상,그리고의주의만상·개성의송상·평양의유상·한양의경강상인·동래의내상·제주상인에이르기까지,지역별로전문화된거상의세계를다룬다.개성송상이사개치부법(四介治簿法)이라는고유의복식부기로전국송방을연결하고환어음으로자금을돌린대목은조선상업이단순한물물교환을넘어‘가치의교환’으로나아갔음을보여준다.
객주와여각주,운송업자,전객과전당업자,주모와객주모,그리고시장으로진출한여성상인‘저자마님’까지,시장을실제로움직인보조상업층의세계도비중있게복원했다.
제2부-조선기술공들의직업세계
기술이어떻게국가에의해조직되고통제되었는지에서시작한다.선공감의목수·석수·단청장,도화서의화원,장악원의악공과악기장인,군기시의화포기술자들은모두‘공장안(工匠案)’에등록된국가의기술인력이었다.책은이들이신분으로는천대받으면서도현장에서는누구도대신할수없던존재였다는역설을파고든다.
후반부에서는대동법이후기술이관(官)의손을벗어나민간의생업으로내려오는과정을따라간다.도공과옹기장,방짜유기장,대장장이,염색·직조·재봉장인,제지장과필방장이장시와만나‘기술자에서기업가로’성장하는모습은조선후기경제의역동성이궁궐이아니라공방과장터에서시작되었음을말해준다.
▶각도별읽기
이책은주요논점에따라각도별로읽을수있다.
▶각도1|처음으로만나는역사속직업세계
조선상인과기술공의직업세계를다룬책은흔치않다.기존연구는시전상업이나보부상을개별주제로다루었을뿐,상업-기술을하나의경제생태계로묶어복원한시도는없었다.저자박영규는조선왕조실록전권을비롯해승정원일기·각사등록·읍지류등방대한사료를바탕으로조선상인과기술공들의세계를한권에담았다.
책이다루는직업군만해도시전상인·보부상·만상·송상·유상·내상·경강상인·제주상인·객주·여각주·전객·전당업자·고리대상·역관·창고업자·박물상·주모·선주·마상·차상등상업분야20여종,대목장·석수·단청장·화원·악공·악장·도공·옹기장·방짜유기장·대장장이·검장·직조장·염색장·제지장·선장등기술분야15여종에이른다.사농공상의맨아래를살아간사람들의세계가이처럼촘촘히복원되기쉽지않다.
▶각도2|신해통공,조선판‘시장개방’의진실
1791년정조가단행한신해통공(辛亥通共)은흔히‘금난전권폐지’로만알려져있다.그러나책은이조치가얼마나복잡한정치경제적배경을가졌는지를상세히펼쳐보인다.
육의전(六矣廛)을중심으로한시전상인들은금난전권을내세워난전을단속하고물가를끌어올렸다.서민의불만은극에달했다.그러나조정은쉽게손을쓸수없었다.시전상인들은국가재정의사실상‘하청업체’였기때문이다.숙종6년(1680)호조가육의전에서은3만냥을차입해국용을충당했다는기록이이를잘보여준다.국가는상인을억제한다고선언하면서도,현실에서는상인의돈으로굴러가고있었다.
정조는이구조를정면으로건드렸다.《정조실록》15년1월7일자교지는이렇게선언한다.
“금난전권은육의전의사익을위한제도이며,백성의생업을막는다.이제이를고쳐백성으로하여금모두함께장사하게하라.”
통공이후한양에는자유상업이확산되었다.장시기반의지방상인들이급부상했고,전통시전체제는빠르게해체되었다.책은이를‘단속에서시장설계로,도덕행정에서제도설계로’의전환이라고평가한다.
▶각도3|개성송상의환어음-조선의은행가들
개성의상인집단,송상(松商)은단순한장사꾼이아니었다.그들은조선최초의‘금융가’였다.
송상의핵심은환어음과사채였다.지방의상인이한양·의주·평양등지에서거래할때송상의본점을통해자금을결제하게하는방식이다.현금을직접옮기지않고도상단간의신용장부로결제가이루어졌다.오늘날의수표와어음제도에해당한다.전국주요도시에설치된지점‘송방(松房)’은평양·의주·한양·동래·대구·제주까지뻗어있었다.
그들의회계방식도정교했다.‘공장부(公帳簿)’와‘밀장부(密帳簿)’를따로두어투명성과기밀성을동시에관리했고,매월결산·연1회감사를통해채권·채무를조정했다.이자율은연20~30%에달했으며,장기대여금에는토지나창고를담보로잡았다.《동국문헌비고》는이들에대해이렇게기록한다.
“개성의상인은믿음을돈보다귀하게여긴다.”
책은송상의신용문화가단순한미덕이아니라경제적생존전략이었음을설득력있게논증한다.약속을어긴사람은즉시상단에서추방되었고,개성전체에서상업활동이금지되었다.‘신용이돈이다’라는원칙을제도로만든것이다.저자는이를‘조선상업윤리의원형’이자오늘날기업경영의뿌리로평가한다.
▶각도4|보부상,조선의물류혁명가에서권력의도구로
전국1,200여개의5일장을연결한보부상(褓負商)은조선후기유통혁명의주역이었다.19세기후반전국보부상수는약5만명에달했고,700여개이상의장시가이들의조직과연결되어있었다.
그들의힘은단순한상거래능력에서나오지않았다.〈보부상계문(褓負商契文)〉으로대표되는엄격한자치규약이있었다.
“사람을속이거나이익을독점하지말며,약속을어긴자는제명한다.”
보부상은장시의가격담합과사기를자체단속했고,병자나사망자의가족을돕는상조회기능도수행했다.전국적조직망과강력한규율은정부의주목을받았다.1883년고종은보부상을제도권안으로흡수해혜상공국(惠商公局)을설치했고,1885년에는상리국(商理局)으로개편했다.
그러나이포섭이독이되었다.1894년동학농민운동때정부는보부상을진압군보조세력으로동원했고,1898년에는독립협회해산에이들을앞세웠다.《대한매일신보》당시기사는이렇게전한다.
“수천의보부상들이붉은띠를두르고종로거리에몰려들어독립협회해산을외쳤다.”
책은이과정을‘상업자율이제도적으로부정된사회에서상인이걸을수있는길의한계’로날카롭게분석한다.권력에의존해야만생존할수있었던보부상의비극은조선상업구조전체의비극이기도했다.
▶각도5|도화서화원·장악원악공-예술가로불리지못한예술가들
조선의명화《씨름》과《단오풍정》을남긴김홍도와신윤복은도화서(圖畵署)의화원(畵員)이었다전해진다.왕의초상을그리고,국가행사를기록하며,군사지도를제작한이들은예술가가아니라관청소속의기술직공무원이었다.종묘제례악을연주한장악원(掌樂院)의악공들도마찬가지였다.그들의기술은조선문명의정점에닿았지만,신분은천인(賤人)에가까웠다.
책은이아이러니를조선기술사의가장핵심적인모순으로짚는다.도화서의화풍은엄격히규율화되어있었다.사람의비례,풍경의구도,색의농도까지모두정해진법도를따랐다.왕의얼굴을그리는화원은예술가이기전에‘측량자’였다.장악원의악공들역시감정의음악이아닌‘도덕의음악’을연주해야했다.박자하나,음의높낮이하나에도유교적예의질서가깃들어있었다.
악기제작도마찬가지였다.종묘의편종을만드는금장(金匠)은구리와주석의혼합비율이100분의1이라도어긋나면음률이틀어지기때문에불과망치,그리고귀의감각으로음정을맞췄다.조율이틀리면곤장을맞았다.그들의기술은과학이자예술이었으나,이름은기록에남지않았다.
책은그러나조선후기들어이경계가서서히무너지는과정도포착한다.김홍도가백성의일상을그리기시작한것,그것이기술이왕의얼굴에서인간의얼굴로향한역사적순간이었다고저자는말한다.
▶각도6|방짜유기와안동포-지역브랜드의기원
오늘날‘안성맞춤’,‘안동포’,‘방짜유기’라는말은품질의상징이다.책은이지역브랜드가어떻게탄생했는지를추적한다.
안성·청주의방짜유기장들은황동을수십번단조(鍛造)하는독자적기법으로내구성과울림을극대화했다.안성의방씨집안은200년넘게가업을이어오며‘두드림의법’이라는비전(秘傳)을구전으로전수했다.청주에는‘유기전(鍮器廛)’이라는전문상점이있어관청납품과민간판매를동시에담당했다.저자는이를‘조선의첫브랜드시장’으로규정한다.
안동포는경북안동일대삼베의대명사다.거친듯하면서도시원하고질긴안동포는명문가제례복식의안감으로쓰였다.직조기술은어머니에서딸로,스승에서제자로전해졌다.나주의모시,영주·예천의삼베도각지역의기후·토양·물성질과결합해독자적품질을만들어냈다.
책은이지역기술브랜드가단순한‘전통’이아니라장시(場市)를통한치열한시장경쟁과보부상의전국유통망이결합해형성된것임을실증한다.기술은고립된섬이아니라,시장경쟁속에서진화했다.
▶각도7|여성상인과기술자-지워진절반의역사
조선의상업과기술세계에는여성도있었다.책은이‘지워진절반’을여러곳에서복원한다.
제주의김만덕(金萬德)은기생출신이었으나해상운송과곡물매매로상단을꾸렸고,1795년(정조19)큰흉년에사비를들여백성을구휼했다.정조는그의선행을치하하며직접상을내렸다.《정조실록》은이렇게기록한다.
“여인이장사를하되,그뜻이천하에으뜸이었다.”
한양시전에도여성이있었다.일부여성은남편이나아버지의이름으로전방을운영하거나‘상녀(商女)’로서물건을배달하고판매를도왔다.장악원의여악(女樂)은왕실잔치와의식에서노래와춤을담당한전문음악인이었다.제주에서는‘여보상’이라불린여성행상이직접장터를돌았으며,19세기말통영·부산의시장에는‘제주여상단(濟州女商團)’이라는이름으로해산물도매를주도한여성상인들의기록이남아있다.
직조와염색은여성의노동이가장집약된영역이었다.안동포를짜는손,나주모시를다듬는손,쪽물을들이는손,이들의노동이없었다면조선의옷문화는존재하지않았다.그러나그이름은어디에도남지않았다.
▶각도8|오늘의경제에비추는조선의거울
저자박영규는조선상업과기술의역사를단순한과거기록으로보지않는다.책곳곳에서현재와의접점을짚는다.
난전과포장마차의연속성이그하나다.허가받지않은좌판을벌이던조선의난전상인과,1960~70년대거리에서생계를이어간포장마차상인은본질적으로같은맥락에있다.국가가상업질서를독점적으로통제하려했지만,서민들의생활수요가이를뚫고나온결과라는점에서다.신해통공이조선의난전을제도안으로끌어들인것처럼,1980년대이후지자체들이노점상거리를합법화한것도같은논리의반복이다.
송상의환어음시스템은현대은행의어음·수표제도와다르지않다.지점네트워크,회계감사,인재양성을위한상학당(商學堂)까지,오늘날의금융회사가갖춘구조가조선후기개성상단에이미존재했다.방짜유기장의‘비전(秘傳)’전수는오늘날기업의암묵지(暗默知)전승과다르지않으며,보부상의상도윤리는현대기업윤리와맞닿는다.
저자는머리말에서이렇게쓴다.
“시장에서물건을팔던보부상은오늘날의소상공인이고,방짜유기장은금속엔지니어의조상이다.역사를인간의직업과노동의관점에서다시읽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