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읽는수준높은대중고고학서
빙하가정점에이르렀던서기전20,000년에서서기전5000년까지인류의역사를다룬책이다.인류의운명이결정된때라고평가되는이시기,현생인류는빙하가녹으면서초래되는환경변화에맞춰수렵채집생활에서농경을도입하는등문명의토대를구축한다.이책은인류의역동적인삶의모습을학문적으로높은수준을유지하면서도일반대중이재미있게읽을수있도록고고학자의탐방기형식으로생생하게묘사한다.고고학전공자뿐만아니라일반인도15,000년동안세계각지에서펼쳐진선사인들의삶과농업혁명,문명의기원에대한이해와통찰을갖게해준다.
빙하가녹으며역사의수레바퀴구르기시작하다
대중고고학서『노래하는네안데르탈인』,『마음의진화』로우리에게낯익은영국의고고학자스티븐마이든(미슨)은전세계곳곳에서벌어진선사시대삶의현장으로우리를안내한다.혹심했던빙하시대,곧플라이스토세말현생인류는전세계로확산하였다.20-50명정도의수렵채집민은무리지어이동하면서주변집단과끊임없이교류하고,고위도와신대륙끝까지퍼져나갔다.동굴에아름다운채색벽화를남기고,상아를깎아예술품을만들고,얼굴에칠을하고,머리를묶고,조개로귀걸이와팔찌를만들고,먼곳에서누가,무엇이사는지늘궁금해했다.지금우리와같은모습과삶으로인간정체성의토대를놓았던것이다.
이사람들의삶은‘빙하가녹으면서’커다란전환을맞이한다.전에없었던규모로일어나는환경변화는재앙이었다.저지대에바닷물이들어오고,이동하는동물과철새도더이상찾아오지않고,숲에서얻는수확도예전만못해졌다.전세계많은집단은이제서로다른길을걷는다.서아시아와동아시아,중앙아메리카에서는밀과보리,콩,쌀,옥수수를가꾸기시작하며,양과염소,소와돼지도기른다.한곳에정주하는마을을이루며살면서인구도불어났다.이것을신석기혁명또는농업혁명이라부르기도하지만,사실한순간에벌어진사건은아니었고기나긴과정이었다.
변화의과정은결국인류사에커다란전환을가져왔다.노동을조직하고,곡물의저장과분배를통제하는사람이등장하여,부를축적했다.이사람은엘리트가되어권력을잡고,자신의지위를자식에게물려주었다.결국주변집단을정복하여권력을과시하고,수많은전쟁포로와일반민을강제동원하여거대한기념물을만들었다.이제우리가문명이라부르는변화로가는길이열린것이다.지은이스티븐마이든의말마따나서기전5000년이면근대세계의토대는갖춰진다.이로부터역사의수레바퀴는구르기시작했던것이다.
고고학자의선사시대유적탐방기
고고학자마이든은놀랄만큼넓고깊은학식과함께이야기를풀어쓰는재능을가진저술가이다.사실고고학자가발굴하는유적이나유물은깨진돌과토기조각,무너진집터같은것이전부이다.바구니와옷,작대기,그리고갈대를엮어올린지붕같은일상도구와과거의모습은거의대부분이미부식되어사라진뒤이다.그래서대부분의고고학자들은유물과유적을발굴하고석기의제작기법을연구하고토기의양식을분석하여편년하는일에매달린다.사실10,000년전사람들이‘어떻게살았는지’를이야기하는것은사실쉬운일이아니다.그런데이책은철저히고고자료와분석결과에바탕을두면서도우리가그토록알고싶어하는선사시대사람들이어떻게살았는지에대해드라마와같이이야기를해준다.
이작업을위해지은이는‘존러복’이라는19세기저명한고고학자를선사시대삶의현장에보낸다.러복은초원을걷고,바위산을오르고,통나무배를저어사람들을찾아간다.과거사람의모습과유물을보고,손으로만지고,코로냄새맡고,혀로맛을본다.그렇게자신이경험하고느낀것을우리에게전해준다.슐레스비히-홀스타인의아렌스부르크계곡에서해마다벌어지는순록사냥현장을가보자.
적막하다.초조한사냥꾼의깊은숨소리와아드레날린이솟구치는심장의떨림만이있을뿐이다.사냥꾼들은바위뒤에웅크리기도,다가오는동물을피해덤불숲에숨기도한다.존러복도땅바닥에엎드려해마다벌어지는순록도축현장을지켜본다.계곡바닥에있는작은호수사이풀밭에구부러진길이보인다.순록은가을이면이길을따라새로운초지를찾아북쪽으로이동한다.얼어붙은바람에사냥꾼의냄새가날아가고발굽소리에땅이울린다.순록무리가바윗덩어리사이좁은길을지난다.누군가신호를보내자일제히창을던져순록을공격한다.계곡을따라가며더욱많은창을던진다.순록은덫에걸리고만다.놀라서도망치며물로뛰어들어살고자헤엄친다.불과몇분이지나지않아여덟에서아홉마리가땅에드러눕는다.사냥꾼은몸을떠는짐승의머리를내리친다.호수에는몇마리순록사체가떠다니지만,땅위에서잡은것만으로도충분한식량이되기에내버려둔다.사냥꾼들은다시조심스럽게창을거둔다.
물새가날고,갈대밭에숨어조심스럽게지나가는사슴을겨냥하고,덫을놓거나토끼를쫓는모습,돌과식물을빻고피와소변을섞어물감을적시고등잔을밝히며휘젓는날렵한손놀림,모닥불뒤로동굴벽에흔들리는그림자,오랫동안숲길뒤에숨죽이며매복하다가날리는화살,늘어뜨린가죽을밀어젖히고움막에들어가는모습,어두침침한방안에서퀴퀴한냄새가풍기고,불가에서나는아로마향이퍼지는광경,식물을태운연기에취하고,북소리,갈대피리를부는소리,서로어깨동무하며함께노래부르고춤을추는모습을생생하게묘사한다.
그런데동물뼈가있지만,사냥을어떻게했는지,식물유체가있어도어떻게심고,가꾸고,수확했는지를알기란쉽지않다.상상만으로마음대로쓸수도없는노릇이다.분명고고학적으로엄밀한자료에근거해야한다.지은이는발굴로드러난유물과유구뿐아니라주변환경과동식물자원을세밀히복원하고,현존하는수렵채집민과원예농경(원경)민의민족지자료까지검토함으로써학문적신뢰도를높인다.자료에충실하면서도상상력을동원할때는가장그럴듯한시나리오를과감하게제시한다.이로써스스로의도했듯이선사시대인류의삶을고고학이라는수단으로생생하게그릴수있었던것이다.
지구온난화에대처하는선사인들의이야기
우리는오늘날급격한지구온난화에직면해있으나효과적인대책을세우지못하고있다.선사시대예기치못한규모로일어난지구온난화란환경재앙에우리선조는어떻게대응했을까?혹심한빙하시대의추위가서서히물러나고고위도에서급격하게빙상이녹는다.현재한국의서해같이육지로노출되어수렵채집민의삶터였던곳은빠르게바닷물에잠긴다.침엽수림이빽빽했던곳에활엽수가들어오고,천년동안이어진가뭄으로숲이사라진다.식생이변하고,수많은동물이서식지를옮기거나멸종하던때인류에게는어떠한대안이있었을까?이책은이처럼인류사의중요한시기에이루어진광범위한환경변화와그속에서살아가는사람들의다양한적응과문화변화를생동감있게이야기하고있다.
그러면서저자는현재우리가직면하고있는지구온난화에대해서도교훈을찾으려애쓴다.남아있는빙하마저사라지고있는현재,지구온난화는인간스스로자초한일이다.새로운도전에직면한우리는어디서실마리를찾을수있을까?고고학으로풀어내는먼과거의이야기는그저흥밋거리만이아니다.인류는환경변화의소용돌이라는어려운시기를겪으며새로운실험과적응을하고,여기에우연의연쇄가어우러져역사의수레바퀴는오늘에이르렀다.만년전인류는환경조건에적응하며수렵과채집을계속하기도했으며,씨앗을뿌리고가꾸기도,가축을기르기도하면서전세계에서다양한문화를꽃피웠다.그러나급속히다양성을잃어가는우리는지구온난화라는커다란도전을맞아어떤대안을찾을수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