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란무엇인가’에이은또하나의질문,
‘중국이란무엇인가’
기실중국정치사상사는김영민교수의전문분야이기도하지만,이연구의시작은한국에대한앎의욕구에서비롯되었다.한국에대해이해하고싶은데왜중국을공부하는것일까?저자는어떤대상에대해알고자할때그대상‘만’공부해서는알수없으며,그대상이놓여있는맥락을폭넓게파악해야한다고말한다.한국으로부터멀리떠나보아야비로소한국에돌아올수있다고본것이다.이러한문제의식은전작『공부란무엇인가』와도일맥상통한다.
‘눈앞의효용에연연하지않은공부’를시도한결과물이기도한이책은,저자의공부이야기에공감한독자들에게실질적인연구방법론과학문적글쓰기가어떻게이루어졌는지확인할수있는기회를제공한다.『공부란무엇인가』를통해가볍게스트레칭을경험한독자라면,이책『중국정치사상사』를통해본격적인심화운동에돌입하게될것이다.
인문학과사회과학의접점에서있기에한층더흥미로운분야인정치사상사에관심있는독자뿐아니라동양철학과동아시아를좀더깊이이해해보고싶은독자들에게도필독서로서손색이없다.굳이중국과정치,사상에대한앎의욕구가없는독자라하더라도김영민식의학문적연구와글쓰기가궁금한사람들에게이책은지적욕구를충족시켜주는것에서더나아가지적변화를경험하게할것이다.
중국학자들의관습적해석에도전장을내민,
한국인최초의중국정치사상사!
이책은한국인에의해쓰인첫중국정치사상사라는점에서도그의미가매우크다.그간중국정치사상에관한국제적인논의는샤오궁취안의『중국정치사상사』,거자오광(葛兆光)의『중국사상사』,류쩌화(劉澤華)와그의동료들이집필한『중국정치사상사』등,이미국내에도번역출간되어있는중국학자들의저술에기대어이루어져왔다.이저서들은대개중국정치사상이전제국가를정당화하고옹호하는이데올로기라는시각에기초하고있는데,김영민교수는기존의이러한지배적인패러다임에이의를제기함으로써그간중국과중국정치사상에대한관습적해석에도전장을내민다.
샤오궁취안의『중국정치사상사』를포함해기존중국정치사상통사들이기반하고있는전제들을재검토하겠다는분명한문제의식을지닌이책은,일련의테마들을통해중국정치사상에대한비민족적이고비본질주의적인설명을제공한다.중국정치사상의역사를단순화하거나유교라는본질주의적언명에호소하지않으면서도미시적인분석과거시적인서사를유려하게결합함으로써영리하게중국정치사상의긴흐름을한권의책에담아냈다.‘중국이란무엇인가’라는근본적인질문을던지고그에답하는이책은중국의지적전통에대한우리의앎을혁신적으로확장해온새로운학문적업적들을반영하면서중국사상의역사적,정치적맥락을훌륭히복원해냈다.특히‘중국’을원래부터존재해온단일한덩어리로보는경직된사고에서벗어나변화하는역사적조건속에서다양한정치적행위자에의해지속적으로발명되고재발명되면서꾸준히움직이는표적이자일종의구성물로간주함으로써,기존의역사서술방법과결별을시도한다.
이책의미덕은단순히중국정치사상사를한권의책으로엮었다는데있지않다.이책의진정한가치를알기위해서는저자가자신의특유한문제의식을펼쳐가기위해어떠한질문을던지고,이야기의꿰미를선택하고,또그선택을통해어떻게이야기의서사를조직해나가는지에주목할필요가있다.이전의중국정치사상사연구에서는발견할수없는독특한구성과전개는독자들로하여금새로운통사쓰기의방법론과그전범을발견하는즐거움을동시에누리게한다.또한지금까지막연히익숙하게여겨온중국을완전히낯선대상인동시에새로운이해를획득한존재로받아들이게된다.마지막책을덮는순간,“입구는중국고대였으나출구는대한제국,일본,베트남으로뻗어있는교차로가되게끔책을쓰고자한”저자의의도가적중했음을깨닫게된다.
중국정치사상사연구방법론의새로운혁신!
기존의중국정치사상사책은일반적으로시대와학자또는그의주요사상을중심으로단순히나열되어있다는인상을준다.이와달리김영민교수의중국정치사상사는시간의흐름에따라각시기별로출현한정치질서의비전,즉‘계몽된관습공동체,국가,형이상학공화국,독재,정체政體,시민사회,제국’등에주목하면서이들테마를중심으로새로운목차구성을제안한다.지금까지중국정치사상연구에서는없던혁신적인시도이다.
저자는여기에서더나아가이러한정치적질서와각시기를관통하는사상이어떻게출현하게되었는지그정치적사유의진화과정을면밀히추적해나감으로써중국정치사상사에일관된서사를제공한다.그러나이책은목적론적서사를거부하며표면뒤의변화를읽어내는것에집중한다.특히정치사상을‘전승된지적자원에대한창조적인반응’이라는독특한아이디어와이에상응하는‘독창적인질문’을기반으로,외적환경의변화가어떤창의적인지적변화로이어지는지고찰한부분은압권이다.
『논어』의“우물에빠지는일”에관한구절이후대에이르러『맹자』의「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장으로이어지면서각각의시대마다사상가들에의해어떻게반복적으로재해석되는지를추적하거나,이(理)와기(氣)의범주와개념을탐색하는데집중하면서이들맥락에담긴보다큰이슈가무엇인지해석하는저자의집요한질문과해석은3천년중국정치사상사의역사를한호흡으로읽을수있는재미를선사한다.
분과학문의경계를횡단하며
중국이해의고정관념을타파하다
이책의또다른주요관전포인트는방대한지식을토대로학문분과의경계를자유롭게넘나들며개념을융통성있게활용하거나광범한문학및예술자료를정치사상의텍스트로읽어낸점이다.
저자는중국의원사료뿐아니라한국,일본,서양학계의다양한문헌까지능숙하게활용함으로써역사적이면서철학적인내러티브를들려준다.예를들어공자가구상한계몽된관습공동체를공동체내개개인의미시적행위양태를매개로해석할때미셸푸코를비롯한서양학자의미시성에대한개념을차용하거나,장자의호접몽을‘익스트림롱숏’이라는예술언어로해석하고,19세기근대동아시아의중화주의를‘픽션’이란개념으로해석하는등동양과서양,과거와현재의시공간에구애되거나주저하지않으며적극적으로다양한개념을융통성있게활용한다.
이책은공문서이외의자료를통해서도중국의정치사상을발굴해내고있다.당나라때원진이쓴『앵앵전』,송대인생의유한함을논한문학작품으로여겨져온소식의「적벽부」,원나라때마치원이쓴『한궁추』뿐아니라조창운의그림〈유신완조입천태산도〉,조맹부의〈이양도〉,청나라옹정제의13점에달하는비공식초상화와건륭제의비공식초상화인〈시일시의도〉,그리고〈평안춘신도〉등의문학과예술자료는사료의다층적의미를추적해나가는저자에의해적재적소에활용됨으로써중국정치사상을읽는정치텍스트로재탄생한다.특히당나라,남송과금,몽골제국,청나라등중국의정체성이혼란스럽다고느껴지는시기에나온이자료들은평면적인문헌자료의한계를넘어해당시기를입체적으로이해하는데꼭필요한정치텍스트로탈바꿈한다.
융통성있는개념의활용과독특한사료선택,여기에더해사료의다층적의미를추적하며꼼꼼히읽기(closereading)의전범을보여주는저자의집요한탐구방법은중국에관한고정관념을타파하는것에서더나아가국내지식인들에게사상사연구방법론의새로운진수를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