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산골마을에서마음에절로찾아드는시를붙잡은나날의기록
마창공단노동자에서합천군황매산자락조그만시골마을농부로,시를찾아나선삶에서시가찾아드는삶으로서정홍은성큼들어섰다.봄여름가을겨울그의시간은늘새롭다.
남다른눈으로세상을바라보고,그속에자리한무언가를새롭게발견할줄아는사람이시인이라면,산골마을에서땅에발붙이고농사짓는나날은마음에쉴새없이찾아드는시를가만히글로붙잡는하루하루다.
손등이며이마에주름골이패는동안그주름골골이땀흘리며긴세월살아온이웃들이‘땀쑥땀쑥’나눈귀한말들을,이들과함께조그만산골마을에서농사지으며살아가는더없이충만한하루하루를시로쓴다.첫손주를맞이한기쁨으로벅찬나날속에서때로농업의오늘과세상의위기를근심하는순간들도,혼인37주년,긴시간함께걸어이제‘사람’으로마주선아내이야기도빠짐없이시속에담긴다.
그의시를통해우리는자연의크나큰은혜로움을,농사짓는하루하루의기쁨을,시골마을어르신들이몸으로다져온지혜를,아직은이어지고있는마을공동체의넉넉함을,장애인을새식구로맞이해깨우치는또다른세상을만난다.바삐걷느라우리가잊고지내던,혹은미처보지못하던많은것들이서정홍의시들사이로조용히모습을드러낸다.
가장쉬운말로삶의한복판을드러내는서정홍시의힘
그가대중을향해쓴첫글은푸릇한시절,다니던공장화장실벽에써내려간낙서였다.쇳일하던노동자들반찬은두세가지내면서,책상머리앉아일하는간부들반찬은여남은가지,다먹기도힘들지경으로내다니,화가났다.
“힘들게일하고이밥묵고우찌일하겠노.
편안하게앉아서일하는사람보다힘들게일하는사람들이잘묵어야일을하지.”
혹시누군가내가쓴글씨를알아볼까겁이나왼손으로쓴짧은글이었지만,금세메아리가돌아왔다.“내가딱하고싶었던말이다.”“속이다시원하다.”“욕도좀써라.”“잡히갈라조심해라.”같은동료들의‘댓글’이그의낙서아래로주렁주렁달렸다.혼자가아니구나,용기가솟았다.모두가출근길에볼수있도록공장정문에더크게썼다.어쩌면그것이그가세상을향해가슴속깊이들어찬슬픔과분노,외로움을토해낸첫시였다.그리고얼마지나지않아,밥때면으레두줄로나눠서던줄이하나가되었다.한공장,한식당에서함께밥먹으며일하던이들의밥상을가르던차별이순식간에무너졌다.땀흘려일하는사람들이글을써야한다는것을,그래야세상이바뀔수있다는것을,글의‘힘’을그는그렇게깨달아갔다.
이후로그는노동자시인으로살면서“가방끈이짧아가내사어려운글같은거는몬읽는다아이요.”하던동료들이함께읽고웃고울수있는글을쓰고자힘썼다.조그만산골마을로들어가농사지으며사는지금은학교문턱에도못가본마을할머니들이듣고이해못할시는쓰지않는다.
삶터가바뀌면서사는모양도자연스레바뀌었다.그는언제나,발딛고선곳에깊이뿌리내린시들을써왔다.내가아니면,서정홍이아니면쓸수없는시.흉내내지않고,포장하지않는시.누구나아는낱말들로평범한이들의조촐한일상을,자연과더불어지내는크고작은즐거움을,속속들이따뜻하게시속에담아낸다.그의시는그힘으로읽는이의마음을가만히뒤흔든다.
산골마을에서이웃과함께,농사지으며자연과함께
《그대로둔다》속에서는서서히비어가는조그만산골마을을지키며살아가는이웃들이두런두런나누는이야기가오롯이들린다.서정홍시인은20년가까이산골마을에서농사를지으며그동안그속에서마주한자연과삶의이치,‘가슴에찾아온시’를담담히적었다.“살아있는사람수보다/뒷산에무덤수가더많은/산골마을에”사는사람들이꿰뚫고있는삶의지혜,몸에배인자연의순리라는것은얼마나서로를환하게감싸안는가.시집곳곳에등장하는이웃어른들의말을그대로옮긴시는그이들의삶이곧시이고노래라는것을고스란히드러낸다.
시골에는이제할머니,할아버지들만남았다.하지만그렇게살아가는중에도웃음이나고,서로를북돋아기운을내고,도리를지키려애쓴다.“서산에쥐꼬리만큼남은저녁노을이”환한배려를남기듯,한사람한사람이서로를보살핀다.예순이넘어서도시인은그런와중에아주가끔씩,작은새순이돋듯새로운삶이피어나는것을놓치지않는다.
예순즈음에길어올린깨달음을덤덤히담아낸시집
〈예순〉
몸을쓴만큼섬겨야할나이/머리쓴만큼비워야할나이/뱉은말만큼들어야할나이/느낀만큼나누어야할나이
고요한숲으로돌아와/미움도원망도욕심까지도/하나둘그냥내려놓고/받은만큼베풀어야할나이
나를찾아위로할나이
58년개띠,이제환갑을넘긴시인은《그대로둔다》에서지나온삶을찬찬히돌아보고,남은삶을어슴푸레헤아린다.나이듦을제나이에걸맞게받아들이는이가드문때에,시인은고요히앉아나이들어가는자신을또렷한눈으로바라본다.
〈더없는시간〉
책을읽다가자주덮는다/무얼깨달았나싶어서
길을걷다가자주뒤돌아본다/걸어온길이그리워서
잠을자다가자주깬다/살날이얼마나남았나싶어서
“가을걷이끝난빈들판에”앉아“봄비맞으며연둣빛새순이자라고/여름가뭄이지나가고/가뭄에도들꽃이피고지고/가을이훌쩍지나”간뒤이만하게맞이한겨울을감사히헤아리듯,돌아본삶은못내‘더없는시간’이었다.농부시인이이순즈음에길어올린시들은햇살좋은가을,잘여문곡식처럼실팍하고단단하다.
오늘도서정홍은“어제와같은길이지만/어제와다르고//어제와다른길이지만/어제와같은길을”걸어간다.“시시하거나/특별하거나/아무렇지도않게.”
붙잡고욕심내기보다,어느새내려놓고비우는시간속으로들어선시인의덤덤한시들이또새로운길을낸다.
눈이불편한며느리를맞이하며쓴시16편이주는감동
어느날,아들이며느리될사람을데리고왔다.시인과시인의아내눈에는다른것은아무것도보이지않고,며느리될사람이앞을거의못보는사람이라는것만보였다.식구들의삶은요동쳤다.“앞이캄캄했습니다”시인은순순히고백했다.
4부의시16편은마치한편의연작시처럼눈이불편한며느리를맞이하며출렁이는마음의풍경과,첫손주를본뒤열린새로운세상을숨김없이펼쳐보인다.남다른새식구를맞으며식구들사이에무슨일이있었는지,어떤마음이었는지하는것도,장애인이살아가는세상이어떠한것인지에대해서그동안자신이눈뜬장님으로살았다는것도,낱낱이시로드러냈다.흔들리고,받아들이고,채우고,또다시함께나아가는과정을놀랄만큼숨김없이솔직하게썼다.외면하지않고들여다볼때,비껴서지않고부딪칠때,배제하지않고함께할때,우리가사는세상이조금더나아질수있다는것을서정홍은이시들을통해누구보다도아름답게말한다.장애인과서류상으로만가족이아니라진짜식구가되어가는과정은결코순탄치않지만,그래서더우리마음을움직인다.
〈그래서슬프지않다〉
서로는세살입니다
아빠랑공원에놀러가면/아빠손을놓고마음대로뛰어놉니다
엄마랑공원에놀러가면/엄마손을꼭잡고놓지않습니다
서로도압니다/엄마가눈이불편하다는것을
이제서정홍시인은며느리의불편함을먼저헤아리고자애쓰는시아버지이자,“아침마다스마트폰을켜면짜잔!하고”나타나는손주사진을보는즐거움이어디에비길데없는할아버지가되었다.
‘건네는말’,시집‘발문’을대신하는새로운실험
서정홍시인은땀흘려일하는이들이글을써야한다고,그래야땀흘려일하는사람이더욱존중받는세상이될수있다고믿는다.그래서시란누구나읽고,누구나쓸수있어야한다고여긴다.
《그대로둔다》뒤쪽에‘발문’대신실린‘건네는말’은그런믿음으로시를쓰는이의책을〈상추쌈시집〉첫권으로내게된출판사의응답이다.시집에붙인이산문은시를해설하거나,가치를가늠하거나,시인의뜻을헤아리지는않는다.대부분의독자들에게는‘무명씨’에가까울이가첫독자로서,시를읽고자신이시읽은이야기를그저적었다.
글을쓴옥수수(김주혜)는이시집을읽고‘건네는말’을쓰고있을때‘자가격리’중이었다.지난여름섬진강물이넘쳐구례읍내가온통물바다가되고난얼마후,젊은옥수수가이웃할머니를모시고갔던병원에코로나19확진자가있었다.다행히검사결과는음성이었지만,그는2주동안꼼짝없이자가격리를해야했다.전화기너머목소리는자가격리생활의어려움을아랑곳하기보다,물에잠긴읍내이웃들에게일손을보태지못하는것을더마음아파했다.그나마집안에있는동안이시집을읽을수있어서다행이라고,가만히집안에앉아시집을읽은이야기를담은글을보내왔다.옥수수의‘건네는말’이이시집을읽는독자들에게서정홍의시와는또다른즐거움이될수있기를바란다.무엇보다이시집을읽은독자들이자신의이야기와더깊이만나는마중물이되었으면한다.
땅에뿌리내린삶을노래하는시들을한자리에모아꾸리는〈상추쌈시집〉
상추쌈출판사는경상남도하동군악양면에있다.출판사를꾸려가는두사람이2008년이곳으로이사를와서농사를짓고,책을낸다.시골에서살면서좋은것하나는마을어른들말씀을자주들을수있다는것이다.늘지나듯하시는한말씀한말씀이귀하다.비유가아니면말하지않는다.툭던지는말씀에빛나는삶의지혜가있고늘유머와환대가있다.이것이야말로시와같은말씀이다싶은것들.논밭에서일하고,마을사람들끼리어울리고,자연을받아들이고하는모습들도다르지않다.이런것들에닿아있는시집을내자,그런생각으로시집을기획했다.서정홍시인의시집은〈상추쌈시집〉의첫권으로더없이맞춤한것이었다.
두번째권으로는20대여성농부,서와의시집을펴낼계획이다.청년이자여성농민으로서20대초반을시골에서농사지으며지나온삶이오롯이담긴그의시들은조붓한어린잎을끝내밀어올린봄싹처럼당차고풋풋하다.다른삶을살아가는도시의또래들과꼭함께읽고싶은시들이다.
세번째권은나고자란도쿄를떠나비어가는야쿠섬으로삶터를옮겨섬사람으로평생을살다간야마오산세이선생의시선집이다.한국에서는그동안《어제를향해걷다》,《더바랄게없는삶》,《여기에사는즐거움》같은산문집으로크게사랑받았지만,그가남긴빼어난시들이시집으로묶여소개된적은없다.
이후로도〈상추쌈시집〉시리즈는몸으로또마음으로땅과맞닿은삶을살아가는이들의시들을골라한권씩더하고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