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약한것들로가장강한것과맞선다”
:다나카쇼조의감연하고올곧은생애를말큰말큰하게간추린책
일본의공영방송NHK는일본역사를41부작으로정리하면서그가운데한부를'일본시민운동의아버지'로불리는그의이름에할애했다.NHK는또다른프로그램에서다나카쇼조가아시오광독피해주민들의고통을마주한“그때역사가움직였다.”고도평가했다.
다나카쇼조는19세기후반메이지일본의성장을이끈아시오구리광산에서광독오염수유출이계속되면서광산아래와타라세강기슭이심각한피해에시달리자,6선국회의원자리를스스로내려놓고,광독으로고통받는이들속으로들어가,1913년돌아갈때까지와타라세강기슭야나카마을에서이들과함께살며싸워나갔다.이책은동아시아근대사속한거인의장엄한삶을,청소년들눈높이에맞춰친근하고입체감있게그려낸다.
일흔을넘긴나이로,광독에시달리던와타라세강줄기를답사하느라1800킬로미터가넘는길을오가면서도,길가에구르는조그맣고보잘것없는돌멩이조차함부로대하지않았던이의한생애가사에슈이치의다정한문장에실려놀랍도록생생하게펼쳐진다.
지금왜,다나카쇼조인가?
일흔하나가되던해인1911년부터다나카쇼조는'세계의원주민'이라는말로자신을표현하기시작했다.그는지금으로부터100년도더전에드넓은시야로세계를내다보며,지구시민의한사람으로살고자한,지구환경문제의진정한선구자였다.
지구촌전체가가파른성장을위해더욱내달리고,사사로운눈앞의조그만이익을위해누가먼저랄것도없이서슴없이공익을해치는데거리낌이없는이때,예민하고풍부한감수성으로세상과마주서서,마땅한삶의길을더듬어찾고있는청소년들에게,한평생올곧은태도로공공하는삶을일관한한사람의일대기를건넨다.
다나카쇼조가온힘을다해싸웠던아시오광독사건은이후동아시아에서벌어진수많은국가폭력과공해사건의일종의원본이다.그세부내용에소소한변주가존재할뿐,이윤에눈이먼기업,끈끈한정경유착으로인한정부의적극적묵인과방조,양심을저버린전문가집단,과학의이름으로진행되는여론조작과호도,위장된해결로인한피해확대,진실규명을최대한늦추고책임을조금이라도축소시키기위한정부와기업의마지막안간힘까지…큰얼거리는마치복사판처럼대개흡사했다.다나카쇼조가돌아간지어느덧110년이라는시간이지났지만,쇼조의분투와외침이그아득한시차를훌쩍넘어,조금도낡지않은채,여전히깊은울림으로다가오는것은바로이때문이다.
그러므로새롭게또다른비극을마주한우리가다른길을열수있으려면,되풀이되는참극을막으려면,우리는풀뿌리민중의삶을,자치의뿌리인마을을,가없이베풀어주시는자연의은혜로움을지키는것이야말로곧국익이고문명이라고여겼던쇼조의발자취에서다시,배워야한다.
다나카쇼조는"조금이라도사람목숨에해가된다면/조금쯤은괜찮다고말하지말라."고말한다.가습기살균제피해자들이여전히싸우고있는지금,후쿠시마핵발전소오염수태평양방류로분노와시름이더없이깊어지는지금,가장작고약한것들속으로들어가,이들을어울러가장크고강한것들과싸워나간이가남긴꺼지지않는빛이여기,또렷이우리앞을비추고있다.
“소의걸음은발자국도없이”
:동아시아근대사의거인,다나카쇼조가남긴장엄한궤적
큰비를맞고맞으며커다란짐을끌고가는
소의걸음은발자국도없이
1913,다나카쇼조
일본남성의평균수명이마흔셋쯤이던무렵다나카쇼조는일흔셋까지살았다.그가구의원을시작으로직업정치가로처음나선것은서른여덟이되던해였다.현의원을거쳐,쇼조는나이쉰에이르러서야처음으로국회의원에당선된다.대개는공적인삶을정리하고차차은거하기시작하던나이였다.
그런데지역구가있던지역에서동아시아최초의대규모공해사건인'아시오광독사건'이일어난다.쇼조는동료의원들이“지방의자잘한일”이라며내팽개친아시오광독을자신의문제로끌어안는다.의회에서그매듭을풀기위해온힘을다했고,그것이여의치않자6선국회의원자리를던지고는목숨을건채메이지덴노에게직소를함으로써이문제를일본전역에공론화하기에이른다.덴노직소는20세기가막시작되던1901년에벌어진,일본역사에서전무후무한일이었고,사건당일도쿄전역에는호외가발행될정도였다.
그러다광독피해지역이유수지건설계획으로수몰위기에처하자쇼조는수몰예정지인야나카마을로들어가몇남지않은마을사람들에게서배우고이들과함께싸우며서슴없이나아간다.이때그는와타라세강의물길을강제로틀어광독수해를막겠다는일본정부의결정이틀렸다는것을증명하기위해강줄기곳곳을훑느라,1800킬로미터가넘는거리를몸소걷는다.
다나카쇼조는일흔셋의나이로와타라세강답사를나갔다가,저항운동에필요한돈을모으려벗들의집을차례로돌아야나카마을로돌아오던길에,낯모르는이의집툇마루에쓰러져와병하다숨진다.머리맡에남겨진유품은늘지니고다니던허름한주머니에든일기장세권과두터운〈와타라세강조사보고서〉초고,〈신약성서〉한권,‘일본제국헌법’과‘마태복음’을하얀실로묶은책,다나카집안에대대로내려온휴대용필기구하나,갓딴강김과휴지몇장,그리고조약돌세개뿐이었다.“물질이모자람을애태우거나마다하지않”으며“온몸으로공공에이바지하는삶”을살았던사람.끝내,우물도담도남기지않은무소유의삶이었다.
그의생애는불가능한싸움과끝없는패배의연속이었지만,그가지키고자했던가치,그가이루고자했던일들은꺼지지않는등불로우리앞에여전히남아있다.
‘공공의이익을해친다.’
:공해라는말의시작,아시오광독사건
아시오광독사건은19세기말,동아시아최대의구리광산이었던아시오광산에서벌어졌다.일본최초로벌어진당대최대의공해사건이었고,이때문에'공해公害'라는말을일본에서처음으로사용한것도바로아시오광독피해자들이었다.'공공의이익을해친다.'는뜻이었다.
1890년12월쇼조의선거구인아시카가군아즈마마을에사는농민들이임시촌의회를열어도치기현지사앞으로부친결의문에서"공익을해치는"구리광산의조업을정지할것을요구했다.이말은1873년발포된일본최초의광산법인일본갱법에나와있는말이기도했다.쇼조또한이해에의회에서이조문을들어아시오구리광산광업정지를일본정부에요구한다.
이후일본뿐아니라동아시아전체가산업사회로빠르게접어들었고,산업사회폐해로인한피해도닮아갔다."진일보한기술뒤에,편리한전자기기뒤에가려진슬픔의다른이름",'공해'를이르며한중일은모두같은한자를쓰고있다.이렇듯동아시아환경운동의출발점에는부인할수없이,바로이아시오광독사건이자리잡고있다.
누구나쉽게,일본시민불복종운동과환경운동의출발점이된
다나카쇼조의일대기를단숨에훑을수있는한권
작가사에슈이치는도쿄에서태어나자랐지만,도쿄공습당시본가가파괴되면서외가가있는도치기현으로피난을떠나청소년기를보냈다.때때로아버지와와타라세유수지에서낚시를하곤했는데,그러면서다나카쇼조에대한이야기며,쇼조와함께싸웠던일가붙이들이야기를듣고자랐다.
예순즈음에이와나미쇼텐으로부터청소년들에게다나카쇼조이야기를들려줄수있는책을써달라는부탁을받고,그는매일같이전차를타고와타라세유수지를지나학교를다니던그시절을떠올린다.그리고,죽기까지사람다움을지키며한순간도진보를멈추지않았던사람.그래서동아시아환경운동의출발점으로마침내우뚝선사람.다나카쇼조의공공하는삶의궤적을,무한한존경과애정을담아이한권으로압축해써내려간다.
청소년들을깊이배려한듯,사려깊고다정한문장은매우쉽고간결해서,이웃나라의근대초기형편에어두운우리독자들을다나카쇼조라는낯선거인의삶속으로금세잡아이끈다.길지않은책이지만,한평생자치와인권,생명과평화의가치를위해헌신한다나카쇼조의올곧은걸음을어스름히겉잡을수있다.특히쇼조의다양한면모가운데,시민불복종운동과환경운동의출발점으로서걸출한자취를남긴대목을더욱찬찬하고깊이있게그렸다.그삶의무게에마냥압도되지않고,균형과현재성을놓치지않으려고애쓴대목도눈길을끈다.
굵직하게뻗은갈래만도쉽사리가늠하기힘든거인의훌쩍한삶을단정한글속에선연하게펼쳐놓은노작가의원숙함이,또래친구들과이이야기를잇고자애쓴10대화가의사풋한그림을만나,'지금여기'의독자들을다나카쇼조의세계로단숨에데려다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