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쓰고,읽고,다시쓰며내게입혀진말들을벗었다”
글쓰기는어떻게나를나로살게하는가
“승은씨는왜글을쓰세요?”홍승은이첫책을낸이후숱하게받았던질문이다.그때마다그는“입체적으로존재하고싶어서”글을쓴다고답했다.“나에대해서는내가가장잘말할수있기때문에글을써요.하나의정보로존재가납작해지지않도록,제가자유롭기위해서요.”(5쪽)
이제껏많은사람들이여성,이혼가정자녀,탈학교청소년,비혼주의자같은홍승은에대한몇가지정보로그를쉽게판단했다.그들은홍승은에게“부모님이이혼해서어떡하니,그래서비혼주의자구나?”“사고쳐서고등학교그만둔거구나”“천생여자같네”“보기보다여자답지못하네”같은말들을내뱉곤했다.
그런말들은“귀를통해몸으로성큼”들어와그를규정지었다.그는어느새남들이‘정상궤도’라고일컫는것에적응하지못하는자신이나부모님의이혼을부끄러워하게되었고,여자는조신해야한다는말을의식하며내면의욕망이나경험을감추게되었다.글쓰기는그랬던그가자신에게씌워진굴레를벗고,있는그대로의나로존재할수있게돕는도구였다.
“20여년을타인의시선에맞춰살아온나에게오랜편견을벗겨내는일은온몸에덕지덕지붙은때를벗기는일과같았다.글을쓰고,읽고,다시쓰며내게입혀진말들을벗었다.사회와사람에대해새로운관점을제시하는책을발견하면밤을새우며파고들었고,나와비슷한경험을한작가의글을읽으며위로받았다.책에내경험을셀로판지대듯겹치면서편견에왜곡되었던내경험과감정을재해석하고,글로썼다.”(6쪽)
책을읽어가다보면‘내글과삶을권위있는누군가에게위탁하지않기’(39쪽),‘내게강요된불합리를의심하고재배치하기’(63쪽),‘침묵해야할이야기는없음을알기’(100쪽)처럼글쓰기를통해나를나로살게하는법에대한여러단서를얻을수있다.
ⓛ글과삶을위탁하지않기
홍승은은한때청춘들의멘토를존경했고,방황하는자신에게깨달음을줄‘아버지’를찾아다녔다.처음글을쓸때도마찬가지였는데,누군가자신의글을봐주고이끌어주면글도늘고흔들리는삶도평안해질수있을거라생각했다.몇번의시행착오를통해‘아버지’의허상을깨달은홍승은은직접곁의사람들과글쓰기모임을만들어운영했고,손쉬운지적과판단대신서로의글에공감하는자세로조심스러운조언을건네는안전한글쓰기공동체안에서쓰기의근육을단련했다.그러다어느시점에이르니누군가의피드백없이도자기가쓴글에서무엇이부족하고무엇을더해야할지보였고,타인이아닌자신에게권위를부여할수있게되었다.“섣부르게누군가에게내서사의편집권을위탁해선안된다.내삶을가장잘알고가장잘드러낼수있는사람은나자신이므로.”(46쪽)
②강요된불합리를의심하고재배치하기
홍승은이자신의성적경험을털어놓았을때,사람들은그를‘더럽다’고비난했다.홍승은은그런말들에짓눌려사회가요구하는‘깨끗하고순결한여자’를연기하기도했다.하지만읽기와쓰기를통해자신에게,여성에게강요된불합리한감정을의심하고재배치하면서자기몸과감정을세심하게돌볼수있었다.이제는더럽다는말을들어도아무렇지않을수있다.자신을부정할때느낀수치심과억울함보다있는그대로의자신을당당하게드러내며느끼는감정이더견딜만하고자유로웠다.이제그는남들이더럽다고손가락질했던자신의과거를지금의자신을만든토대로써인정할수있다.
③침묵해야할이야기는없다
홍승은이글쓰기수업에서만난많은사람들이같은고민을안고있었다.‘내사소하고사적인이야기가글이,가치있는글이될수있을까.’홍승은은‘나’를지우고‘필자는’과같은말로시작하는글이좋은글이라고교육받아왔던과거를비판하고,끊임없이사소하고사적인존재로호명되어왔지만어떻게든자신에대해스스로말하고자했던나혜석,김명순,아니에르노같은여성작가들의이야기를불러오며말한다.“그간무시당해온어떤수다,한숨,웃음,울음이먼지에쌓여사라지지않도록계속써야한다.”(106쪽)홍승은의글쓰기강연을들었던수강생들의후기에는이런다짐이있다.“나는글을쓰기로했다.이제야내이야기를할준비가되었다.”(101쪽)
“쓰는사람이란특별하게관계맺는사람”
좋은글쓰기의관건은타인과맺는관계에있다
“우리는타자에게상처받고영향받으면서,혹은흠집주고영향을미치면서살아간다.타자와의접촉이없다면우리가어떻게글을쓸수있을까.”(126쪽)
홍승은은타인과의접촉,타인과의관계가글을쓸수있는힘이라고이야기한다.버지니아울프는여성이글을쓰기위해서는500파운드의돈과자기만의방이있어야한다고말했다.홍승은에게그‘방’이란자신의이야기를편견없이듣고지지해줄관계망이기도하다.그가열었던글쓰기수업은글을쓰고자하는사람들에게작은팁을주기위한것이기도했지만,자신과사람들이글을꾸준히쓰게해줄안전한관계망을만드는것이기도했다.
“쓰는행위는곧읽히는행위이고,특히사회적약자와소수자의글쓰기는누구에게읽히느냐에,첫독자가누구냐에지속가능성이연결되어있다.내가처음글을쓰기시작했을때기꺼이읽어주고따뜻한지지를보내주던집필공동체가없었다면,아마나는꾸준히글을쓰지못했을것이다.쓰더라도일기장에고이간직해놓았을지도모른다.”(29쪽)
“내가계속글을쓰기위해필요했던건내글을함께읽고,말하고자하는바를정확하게전달하기위해서어떤부분을보충할지,내사유가어떤부분에서막혀있는지알려줄안전한관계망이었다.관계망을만들기위해서는나부터잘듣는사람이되어야했다.그다음이내이야기쓰기다.”(45쪽)
타인과의관계는훌륭한글쓰기재료이기도하다.엄마,외숙모,할머니,글쓰기수업을함께한동료들,동거인,어느강연에서만난성차별같은건없다고따지는무례한사람들,한번도만난적없는요절하신이모등이이책에등장한다.타인과의일화를그대로옮긴다고글이되는건아니다.홍승은은“누군가를다양한각도에서보는일,관성적인질문이아닌다른질문을던지는일,애정어린관심을갖는일”이필요하며,“존재를다각도로볼수있을때글에도숨이붙는다”고말한다.
가령,어느날홍승은은“잘지내시죠?”정도의형식적인안부만여쭙던외숙모에게평생하지않던질문들을건넨다.“외숙모는외할머니한테서운한건없었어요?외삼촌과는언제결혼하셨어요?외삼촌하고대화많이하세요?계속농사일을하셨어요?”와같은.그질문들을통해비로소외숙모를외숙모가아닌한명의사람,딸,아내,엄마,며느리,농부로만날수있었다고홍승은은이야기한다.
“아마31년전에도,10년전에도,지금도외숙모는‘외숙모’로만존재하지않았을텐데,그저질문하나다르게던졌을뿐인데,한존재가풍경에서쑥튀어나왔다.나와대화하고,손잡고,안을수있는존재로.누군가를풍경의배경으로여기는것만큼고유성을지워버리는간편한방식은없다.글에생기가줄고관점이지루하게느껴질때면나는내애정을먼저의심한다.눈앞의존재를고정된물체로인식하고있지않은지묻는다.”(147쪽)
그동안평면적으로존재했던자기자신과타인을입체적으로살아숨쉬는존재로끊임없이호명하는홍승은의글쓰기를통해,독자들은나와타인을지우지않는,숨이붙어있는좋은글쓰기에대한힌트를얻을수있다.